연극.공연2019. 5. 4.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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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면서 따뜻한 봄날에 하는 연극 치곤 제목이 특이하다.
'구멍을 살펴라'라니.. 하수구속 쥐들 얘기 인가?
독특하게도 인터넷 예매처 조차 아무런 사전 내용이 없다.

보통 시놉, 제작의도 정도는 나오기 마련인데 아무것도 없다.

관객은 제법 많지만 태반이 지인들 같은 기분이 들고(지인들이 나왔을때 특유의 웃음들이 관객석 여기 저기 퍼져나옴)
내가 앉은곳은 콘트롤 박스 있는 곳이라 기대어 보니 덜 불편했지만
이곳이 아니라면 제법 불편했을거 같다.(요즘은 등받이 있는 의자는 많던데)

공연 시간도 5시로 조금 늦게 시작해서 3시쯤에 시작하는 연극이 있으면 한편 더 보려 했는데
눈에 띄는것도 없어서 느즈막에 나와 해가 거의 떨어진 시점에 극장을 들어섰다.

썰렁한 무대

연극이 시작되지만 이게 무슨 내용인지 도통 알수 없다.

여러편이 묶여있는 기분은 들지만 명확하지 않아서 연계성을 찾으려 애쓰지만 마땅히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 무렵에 가면 어느정도 이어지려나?기대도 해보지만
계속 이해 안되는것은 그 끝이라도 반전이 기가막혀 모든것이 해소되는 경우는 극히 없었기때문에
이 연극 역시 이해 불가로 인한 지루함의 연속에서 끝을 보겠구나란 허탈함이 중반부부턴 강하게 박혀간다.

작가가 보는 구멍이란것은 인간 내면의 빈틈을 말하는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틈을 통해 수많은 유혹의 손길들이 들어올테니 주의 하란 소리일까?

이런 극을 보고 배우들은 어떤 감정으로 연기를 하는지도 때론 궁금하다.
허구속의 허구?
감정을 이입하려면 어떤 대상(무생물이라도)이란게 존재햐야 하는데 이 연극에선 그것이 있는것인가.
안개같이 잡히지 않는 기분?

작가 의식의 흐름을 종이위에 연필로 적고 그 적은 대본을 배우들이 보고 연기하는것일텐데 작가의 의도가
필체에서 느껴질수 있는것인지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로 그들은 이해하고 있는것인지
하지만 나는 관객으로서 이해할수 없었다.

수많은 이야기, 서로의 연결은 느껴지지 않는다.

글작가가 종이위 몇줄 적다가 동그랗게 구겨 휴지통안에 던져버린 수많은 단편 이야기들을
주어모아놓은거 같이 어지럽기만 할뿐이다.
그 절정이 마지막 키보드를 또닥또닥이는 한 노인의 모습에서 부각되어진다.

나의 구멍은 수도 없이 많을것이고 그 구멍들로 수많은 허구의 유혹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것들로 하여금 희노애락이 생성되어 열여덜열여덜 거리며 여생을 만들어가는것인데
이 것들을 단속하려면 묵언보다 한단계 더 올려서 무념수행을 하란 말일까

아무튼 다시 생각해도 100분간의 연극속 흐름은 너무 다양해서 무엇이 무엇인지 알수 없다.

무슨 내용인지 알기 위해 눈알에 힘을 주다보니 쉽게 지쳐버리는 연극...
지쳐버린 후 의도를 알게 된들 무슨소용있는건가?

출연 : 정태화, 유은숙, 권정훈, 김용희, 박은경

 

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19. 4. 27.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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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벚꽃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지나가버려 아쉬웠는데
연극 제목마져 이리도 씁쓸하다니

인생 끝자락에 사람들이 마주서게 되었을때의 심정을 알진 못한다.
어렴풋(이상한)한 느낌으로 회한보단 하고 싶은것이 많으나 할 수 있는게 없겠다 싶은정도랄까?

좀더 늙어야 느낌이 제대로 올지, 지금 느끼는 감정 그대로 끝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알아도 그다지 쓸모 없는 감정이 아닐까?

인간은 외롭기에 이것을 견뎌내기 위한 수많은 노력을 하며 살아간다.
이 노력의 가지수는 아마도 인류를 모두 합한 수와 같을것이기에 사람들을 이해하려해도
각각의 방법이 다른 만큼 이해의 깊이는 종잇장보다 얕을수밖에 없다.

이 모든 노력이 부질없게 느껴질땐 허탈하여 온몸의 힘이 모두 빠져버리길 기대하기도 한다.

아무튼 이 연극은 끝에 서있는 두 여인과 한 젊은 여인의 이야기인데
전체적인 분위기는 한국풍경이라기보단 일본 느낌이 이상하게 많이 든다.
(두 늙은 여인들간의 대화나 서로의 관계-대인에 대한태도- 한국사회에서 볼 수 있는 것과는 좀 다름)

가끔은 나의 어머니,아버지 두분중 한분이 홀로 되셨을때 외로우실 걱정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두분이 그다지 활동적인 분들도 아니니 어느분이 되셨던 홀로 되셨을땐 많이 외로우실텐데
뾰족한 대안이 보이는것도 아니고

이 연극처럼 근처에 친구로 함께 지내실 분들이 있으면 좋겠지만 글쎄
어쩌면 황혼기의 두 사람의 인생이야기보단
그들을 지켜보는 자식들의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의 그림자같이 다가온다.

그런데 극중 젊은 여인은 어떤 의도인지 잘 모겠다.
그냥 가끔 나와 어슬렁 어슬렁?
저 늙은 여인들의 회상형(?) 인간인가? 아니면 젊은 여인의 미래가 늙은 저 두 여인인가?

시놉을 보면 여성은 어떤 일생을 사는지등 잡다한 얘기가 나오는데
여성은 어떻고 남성은 어떻고?
인생 끝자락으로 넘어가면 다 비슷할텐데 이런걸 남여로 나눠서 될 문제가 아님에도
뭔가 있어보이도록 해놓은것인지

사람이 죽음직전에 무엇이 떠오르는가?는 남자 혹은 여자의 문제는 아닐거 같다.
단지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았냐에 따라서 느껴지는 감정이 달라질뿐

오래전 드라마 '엄마의 바다'같이 전업주부라는 약간은 고립된 삶은 살다가
남편의 죽음으로 험난한 사회로 나온 한 어머니의 삶에 대한 내용같이
다른 세상에서의 깨달음같은 그런 내용에서나 성찰이란 말을 쓰는거지
무슨 여성들의 삶의 성찰이라는 등 그딴걸 적어놓는건지 이해할수 없다.
(이런건 관객 몰이를 위한 과대광고, 작가의 과대망상으로밖에 안보임)
내용 자체만으로 보면 고독한 사람들의 말동무로 잔잔한,
예전 흔하게 동내 사람들의 담소나누며 생의 마무리를 엮던 것 정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는 내용들이다. 그 속에서 작가는 무엇인가를 찾고 싶었던걸까?
(일본쪽이 이런 밍밍한 삶속에서 과할정도로 망상-개똥철학중 왕 개똥철학-을 많이 섞어놓긴 하는데)
자식으로서 부모의 모습을 걱정어린 시선으로 그려낸것인가

아무튼 잔잔히 시작해서 잔잔히 맽음을 하다보니
내용은 강렬한 사건이 발생한다거나 하지 않아서 독립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가정의 달인 5월이 되고 있으니 이런 연극 한편 자식들이 봐보는것은 좋지만
노부모들께서 보시기엔 글쎄..
(연극 자체가 너무 무자극이라 어머님들께서 연신 하품하는 소리가 들리던데 충분히 이해되는 상황임 -.,-;;)

제목처럼(오시마 료타의 하이쿠에서 나오는 한 구절이라고 함)
인생은 순식간에 지나간 아쉽고 그리운 시간들이겠지만 인간의 숙명인것을
(어떤 사람은 모두 이루었다고 자살하기도 하던데)

출연 : 박경은, 김보경, 김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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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19. 4. 21.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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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두번째 판소리 완창인데 엄밀히 따지만 3월에 봤던것은 반만 했기때문에(반이라도 3시간이나 되었음)
이번이 진짜 완창 무대이고 줄이지 않아서 공연시간도 6시간이나 된다.

5시간 이상씩 되는 공연이란걸 작년에 박애리명창의 춘향가 6시간 공연을 보고
(이때가 판소리 완창을 실제로 처음 봤던 뜻깊은 시간이었음)
이 후 봤던 판소리는 모두 줄여놔서 3시간정도였다.
그중엔 몇십분만 당사자가 나오고 제자들이 나머지를 채운 공연도 있어서 섭섭한면도 있다

아무튼 이런 공연을 저렴하게 볼 수 있다는것은 언제나 기분이 좋을수 밖에 없다.

대사(가사?)를 읽어봐도 그렇고 왜 전라도 말들 일색일까?란 의문이 든다.
한국이 전라도만 있는것도 아니고 이런 극이 전라도만 있는것도 아닌데
아리랑도 각 도마다 있듯 판소리도 도마다 색을 다르게 해서 나오면 안되는 것인가
(전라도 억양이 예술적 표현에 매우 적합하다고 할수도 없다. 이몽룡은 경상도, 성춘향은 전라도 뭐 이런식은 안되나?)

아무튼 최진숙소리꾼이 나와 공연이 시작된다.

음...
여성치곤 제법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
그런데 방자와 이몽룡간의 변화차가 크지 않아서 헷갈린다.
여자(춘향,월매,향단)들의 표현은 각각 특색있게 표현을 해서 누가 누군지 충분히 알수 있는데 반하여
남자인 이몽룡,방자,변학도,운봉등은 그 색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아주 헷갈린다.

심지어 중저음 성향을 지닌 목이라도 여자 역활에선 높낮이를 충분히 잘 살리지만
남자들은 저음 일색이다. 억양도 평이하고

뭐랄까? 여자역에 비하여 남자역은 대단히 단조롭다고 해야 할까?
춘향가는 아무래도 남자보단 춘향이가 지배적인 1인 주인공 극이지만 그렇더라도
혼자 여러 인물을 표현해야 한다면 주된 인물들 만큼은 그 색을 명확히 해야 하는것이 아닌가
그리고 초기 한시간가량은 목이 덜 풀렸는지 단조로운 소리로 사랑가전후로 몇분정도 졸기도 한거 같다.
(춘향가의 진국은 서로 죽고 못살때보단 헤어질때부터-이별가- 절절함이 최고인거 같아서 몇분 졸았어도 뭐)

이몽룡과 헤어진 후 중간 휴식이 끝나고 시작할땐 몸이 확실히 풀렸는지 전시간보다 훨씬 멋진 소리를 들려준다.
쇳소리도 좋고 힘도 좋았지만 춘향이 절절함은 왜인지 모르게 맛이 덜하다.
창법때문인지 목소리때문인지 단지 이 사람의 스타일인지 아무튼 좀 심심하다.
뛰어나면서도 밍밍한 느낌.
이렇게 이몽룡은 과거시험을 합격하고 남원으로 오면서 두번째 시간도 맽음을 한다.

마지막 타임
이땐 고수가 최진숙소리꾼이 아버님(최영길)께서 직접 나오셨다.
이분도 소리를 하신다고 하셨고 그 윗대인 할아버님께서도 하셨다고 하는거 같은데
모두 모르지만 부녀가 함께 나와 소리하는 장면?
영화'서편제' 비슷하지만 그렇게 엄했을지는 모르겠고 영화에서 처럼 집요할정도로 한을 표현하려 하는거 같아보이도 않는다.

1대, 2대 모두 대통령상을 받았으니 3대인 최진숙씨도 이 상을 받길 원하시는 여느 아버지들과 같은 모습을 보여준 최진숙소리꾼의 부친.

그래서 좀더 흐믓하다고 할까? 기분 좋기도 하고 좀 느낌이 특이하기도 하고

5시간째 소리를 하고 있다는것은 얼마나 힘든일인지 상상이 안된다.
(노래방에서 노래 몇곡만 불러도 목이 잠기는데 지금 창을 하고 있는 저 사람은 다섯시간째다)

약간은 힘이 빠진듯 보이고 끝에 한두번 대사을 잊기도 하고 두통이 온다고 하는데
이상하게 이해된다.(노래를 많이 불렀을때 두통이 온다는것을 알리 없지만 왠지 공감이 됨)

이렇게 춘향이와 몽룡은 또 해피엔딩이다.(도데체 몇번째 해피엔딩인지 알수가 없음 ^_^)

다 끝나고 최진숙 소리꾼이 아버님께 큰절을 올리고(사회자 말로는 이런일이 그동안 없었다고 함)
벚꽃시즌이 마무리 되는 최고의 공연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밤 9시, 비가 부술부술 내리는 남산 에휴..
늘 가지고 다니던 우산을 오늘은 또 왜 안가져왔는지 하여튼

얼마전부터 갑자기 느껴진것인데
오늘에서야 비로소 확실하게 느끼게 된것이 판소리는 너무 고급진 특수한 계층만을 위한 공연이었다는 것이다.
수많은 한시를 그대로 읊지 않나? 상놈,양반 할거 없이 서로 말장난을 한문으로 한다.
이런 언어유희를 바로 받아드릴수 있는 계층은 적어도 당시 백성은 아닐것이다.

고수 한명, 소리꾼 한명
소리꾼의 목소리가 커봐야 탁 트인(원형 무대도 아닌) 공간에서 들을수 있는 사람들은
코앞 몇미터 정도의 소수들..

서양 음악중 현악4중주 같은게 귀족들만이 즐기던 음악이었듯

기본적으로 음량에 한계가 있는 모든 공연은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즐길순 없었을거다.
예술가도 먹고 살아야 하니 소수만을 위한 공연이라면 당연히 돈 많고 많이 배운 사람들 대상으로 해야 표현이 고급스럽고
대우를 받을수 있었겠지..

그 정점에 올라서있는것이 한국에선 판소리가 아닐까 싶다.

한시들이 즐비하게 섞여있다보니 말들이 대단히 간결하면서 뜻은 깊다.
하지만 지금 세대가 단박에 알아들을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두보시를 음만 듣고 알아들을정도면 대단한 한문 내공의 소유자라고밖엔)

고급스럽다는것은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수도 있는데 그 격차를 좁히는 방법들이 없는것은 아니지만
한국에선 그럴려고 노력하는거 같아보이진 않는다. 그러면서 멀어지고 있는거겠지.
컬레버레이션(콜라보)한다며 인기 있는것들에 편승하려나 할뿐

오늘도 역시나 대사가 잘 들어오는 말이 나올땐 사람들 호응이 눈에 띄게 좋은 반면
한시같이 한국말과는 거리가 먼 말들이 나열될땐 조용한 침묵만이 뒤따를뿐이다.
일부 관련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나 추임세를 넣을뿐

자막이라도 뒤에 나왔더라면 창법 특성상 알아듣기 힘든 발음도 어느정도 극복되고
때에 따라선 한시도 음만 듣고 어느정도 추정가능할수도 있기때문에 이해하고 즐기는데 훨씬 나을수 있겠지만
한국 예술을 한국인을 위한 배려를 하지 않고 있다.

판소리가 즉흥적인 면도 있어서 소리꾼 재량에 따라 이것 저것 붙여 늘릴수도 있고
줄일수도 있다보니 자막이란게 안맞을수도 있지만 이런건 운영자가 적절하게 자르고 건너뛰는등 하며
최대한 맞추면 될것인데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대사집도 4회를 한대 묶어 팔아대서 작년에 샀던 대사집과 겹치는 것이 있지만 다시 사야되고
두꺼워서 지하철같은곳에서 읽으려면 불편하기 그지 없다.(공연을 보기 전에 한번쯤 읽어보고 보는 편)

김세종제던 뭐던 이제 현대에 맞게 한문시도 좀 풀어서 한국말로 넣고
중국고소설들 보면 불필요할정도로 나열을 하는데 판소리도 그런 경향이 있는부분은 조정하고
(서울에서 남원오는데 뭘 그리 지역 지역 모두 서술을 하는지, 흥보가에선 제비가 강남에서 올때 온갖것을 다 나열하고
심청가는 눈뜰때 장님들 나열, 적벽가는 불타 죽는 병사들 나열하는 것등, 수궁가는 아직 못들었음)
지금말로 좀 잘 꾸며서 새로운 부류를 만들면 나름대로 다 의미가 있는것 아닌가?
그런것을 이런 무대에 올려 많은 사람들이 부담없이 즐길수 있게 만들고 (다른 창극들은 가격이 비쌈)

말이 6시간이지 대중공연을 6시간 한다는것은 좀 그렇지 않은가?
상류층이야 하루 종일 하더라도 무슨 관계가 있겠냐만은 일반인들은 늘 일이란것을 해야 하기때문에
이쪽으로 큰 에너지를 소모하기 어려우니 크게 2회정도로 나눠서 하면
소리하는 사람도 부담이 적고 보는 사람도 훨씬 좋지 않겠나?

시대에 맞춰 공연예술의 본질을 깨지 않으면서 어느정도 조절하며 변화해야 하는데
어쩜 이리도 무대뽀일수 있는지

예술가의 자존심도 지키면서 관객도 늘어나는 방법을 좀 고민해줬으면 좋겠다.

 

Posted by 시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