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공연2026. 10. 24.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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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보가는 뭐랄까. 흥겹다? 판소리 다섯바탕 중 권선징악 끝판왕이라 해야 할까?
해학적이기도 하고. 당시엔 형제간 우애를 중시 했던것보다는 매우 수직적인 형태를 지닌다.
흥보가에서 놀보의 말에 흥보는 어떤 거부도 하지 않는다.
거의 왕적인 존재처럼 다가오는데 이 시대에 이런 문학이 나왔다는것은 형제들의 수직 관계가
깨지고 있었다는 소릴 수 있다.  조선 말기였으니까 동학운동도 그렇고 팍팍한 망국의 길로 가고 있었으니
기존 틀을 깨는 세력과 지키려는 세력간의 갈등이 심화됬겠지.

흥보가에선 흥보가 굴욕적인 모습을 보이고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한 유머에서는
놀부가 훨씬 현명하고 흥보는 집안을 말아먹었을거라는 얘기도 빈번하다.
제비덕분에 일확천금이 생겼더라도 금세 가산을 탕진했을거라는 것이 현대 시각의 중론이다.

그만큼 어떤면에서 보면 꽤나 말도 안되는 판타지 물로 심청가 같은 류라고 해야 할까?
이처럼 동화같은 이야기라서 TV에서 만화영화나 아이들용 프로그램으로 많이 제작되고 그림책, 만화책으로도 많이 나온다.
착하게 살아야만 복을 받는다는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다.
(현명하게 사는 법을 알려줘야지 흥보가 처럼 멍청함-당시엔 이것이 선이라 생각했었나? 작가가 기득권층이었나?-은
주변사람들에게 당하다가 홀로 길거리에 앉게 될뿐이다.)
그래서 나는 흥보전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것을 반대한다. 특히 저소득층 부모의 아이들에게 보여준다는건 더욱더 반대
하지만 고소득층 부모의 아이들에게 보여주는건 어떤면에선 찬성이다.

한국사람이면 80~90%이상이 알법한 그러한 내용의 흥보가
이광복 소리꾼은 아직은 젊은 사람으로 명창대열에 오르기 위해 노력하는 분인거 같다.
오늘 소리를 들어보면 틀린곳도 없고 진행도 매끄럽고
워낙 오랜 시간 공부하지 않으면 이런 무대에 설수조차 없으니 이 무대에 오른다는것 자체가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 무대매너부터 순발력 소리 등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다.

초반엔 약간 목이 덜 풀렸는지 목이 너무 젊은거 아닌가? 싶었지만
발음이 좋아서 듣는데 편하고 감정 전달도 잘 되어 흥보와 흥보마누라의 절절함이 적적한 한 가을에 잘 어우러쟈
흥보가가 비극적 서사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오늘따라 유달리 구성지게 들리는건 왜였을까.
판소리 다섯바탕 중 슬프지 않은건 솔직히 거의 없다. 좀 덜 슬픈게 수궁가(별주부전) 정도랄까?

초반 놀보의 만행이 좀 우낀대목인데 이부분에서 목이 덜 풀렸는지 그 맛이 좀 덜 살았던 기분이다.(단가라도 하나 부르고 시작하지)
이상하지? 예전엔 무척 우꼈던 기억인데 이젠 헉! 범죄인데? 란 감정이 덜컥 들다니
시대가 바뀌긴 하는거 같다. 아이때의 기억과 감정이 늙을때까지 이어지는게 아니었나?
난 이런 전통 공연을 보면 나의 어릴적 감정이 어땠는지 기억나질 않는다. 단지 지금 내가 느끼는게
그 시대와는 좀 안맞는거 같은데? 좀 어긋난 기분이다. 옛것 그대로를 전승하고 있으니 당연하지만
관람객 입장에선 이 어색함을 이겨내는것은 예술가의 몫인지 소비자의 몫인지.

판소리가 연기도 함께 해야 해서 연기력도 무척 중요한데
아직은 다양한 배역들의 구분이 쉽지 않았다. 각 인물별로 색을 입혀야 듣는 사람들이 그 속으로 빨려들텐데
특히나 흥보전은 선악을 명확히 구분해놓고 그 사이에서 고통받거나
자식들의 무관심함 같이 캐릭터들이 명확한반면 이광복 소리꾼은 이 구분을 무엇으로 두었는지 살짝 아쉽다.
소리로 구분하기 쉽지 않으면 행동의 표현을 극명하게 드러내면 어땠을까싶다.
보통 소리꾼이 소리가 약간 부족하면 액션으로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서 명성을 떨치지 않는가.
이광복 소리꾼도 다 계획이 있겠지. 아직 그 시기가 안됬을뿐.

1장 80분 2장 70분으로 길다고 하기도 짧다고 하기도 어정쩡한 시간이긴 한데
이부분에서 대단히 이상한 선택을 했다.
놀부가 제비후리러 나가는것에서 끝낸다? 응?
놀부의 악행에 대한 벌을 받고 개과천선해서 놀부 홍보가 사이좋게 지내야만
이야기의 완성이 되는데 그냥 잘라버렸다?
춘향가에서 변사또가 남원으로 부임하고 끝내는것과 뭐가 다르더냐?
심청가에서 청이가 인당수에 몸을 던진 후 끝내는 것과 뭐가 다르더냐?
적벽가에서 제갈량이 동남풍을 일으키고 도망가는 대목에서 끝내는 것과 뭐가 다르더냐?
수궁가에서 토끼를 용궁으로 대려간 후 끝내는것과 뭐가 다르더냐?

가중치가 떨어지는 부분을 잘라서 전체 내용이 깨지 않는 선에서 시간을 줄여도 줄여야지
이렇게 20%정도를 그것도 피날레 부분을 잘라버린다고? 너무 한거 아닌가?

이러면 완창판소리가 아니고 그냥 판소리 무대 아닌가?

흥보가는 흥보가 흥해서 좋은게 아니고 놀부의 악행을 천벌로서 다스려진다는것이 좋은것인데
다 못외웠다면 프롬프터라도 놓고 하지. 한창 무르익고 기대되는 부분에서 막을 내리다니 조금은 황당한 완창 무대였다.
실력은 부족한것도 아니고 왜 이런 선택을 한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신기한 공연이었다.

소리 : 이광복, 고수 : 김태영

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6. 10. 24.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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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밤 전통춤 공연? 뭔가 어울리는거 같지 않은가?
(토,일까지 하는데 이때는 낮에 함)
구성은 정말 축제같은 기분이 든다.

보듬고,고무악
숨:벽사와해원
청풍풍류
태평무

이렇게 구성되어 있는데
일단 시작을 북으로 시작하기때문에 기분이 한층 올라갈수밖에 없다.
북의 소리와 리듬이 그렇듯 강렬하다. 간결하면서도 오고무 같은경우는 화려함도 겸한다.
그리고 리듬 악기만 다루기때문에 군무가 아이돌 저리가라 할정도로 뛰어나서
북을 이용한 춤중엔 젊음의 상징같다고 해야 할까? 활력넘치고 아름다운 인간의 딱 그맘때

북춤과 장구춤은 언제 봐서 흥겹다. 리듬악기가 갖는 매력이겠지

두번째는 갑자기 처용무가 나오긴 하는데 이게 참 난해하다. 귀신을 쫓기 위해 연초에 하는 나례라는 의식에 들어가는 춤이라곤 하지만
오늘까지 합해서 서너번 본 정도인데 처용가의 처용이 왜 귀신을 쫓는 능력이 있다는건지는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아무런 관계도 없는거 같은데.
아무튼 연말 연시 시즌이 오고 있으니 처용무도 나쁘진 않아 보인다만 좀 더 이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오래된 춤사위다.
그리고 살풀이라고 하는 살풀이 춤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여럿이 함께하는 살풀이는
현대무용과 고전한국무용을 컬레보레이션 한듯한?
화려하지만 한국적인 수려함도 겸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한국 여자들의 춤의 표현이 화려하진 않는데 바뀌고 있는 느낌)

청풍풍류는 장구춤인데. 선비춤하고 장구춤을 섞여서 남자 여자 특별히 나뉘지 않아 전통춤만으로 보면 중성적이라 해야 하나.
장구춤는 여성이 많고 화려하면서 파워풀하기도 하긴 한데. 선비춤들이 섞였어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오히려 왜 전엔 이런 시도를 안했던 것일까?란 생각이 들정도다.(이미 전부터 시도해왔는데 내가 보지 않고 있었어서 모를수도)
북과 더불어 참 흥겹다. 박수와 환호가 절로 나올수 밖에 없는 한국 고유 전통공연 중 다 함께 즐기는 공연으론
단연 으뜸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여성들의 군무는 또 얼마나 선이 아름다운가.
남성들은 근육이 많아서 몸의 움직임이 느리고 산뜻하지 못하고 선이 굵어서 둔탁한 느낌이라면
여성들은 하늘하늘하지만 결코 연약하지 않아 발랄하며 가볍고 힘이 넘치지만 굵지 않다. 그래서 보고만 있어도 가벼워지는 기분이 든다.
이런점때문에 나는 왠만하면 여성 춤을 좋아한다. 날고 싶지만 날 수 없어서 날아가는 새라도 보고 싶어하는 기분?

그리고 마지막은 태평무인데 특이하다. 모두 왕비 옷을 입고 있다? 보통 한명만 입고 있는거 아니었나?
찾아보니 한영숙류 태평무는 모두 같은 왕비옷을 입고 나온다고 한다. 오늘 처음봤는데 인원이 많아서 그런가
뭔가 좀 위압감과 위화감이 있고 긴장감이 생긴다. 왜 일까? 옷때문인지 춤때문인지 음악때문인지.
특이한건 20세기초에 도당굿 장단을 사용해서 왕비의 춤을 창작한것이라고 하니 이름과는 느낌이 좀 다르다.
난 이름이 태평무 라고 하길래 조선시대 태평성대를 위해 왕비들이 배운 춤같은건줄 알았다. 역사도 오래된 전통의례같은?
다른 영상들을 봐도 역시 혼자 나와 춤추는게 좀 더 집중하긴 좋아 보인다.

태평무 자체도 근현대 제작이지만 일단 왕과 왕비의 생활을 모르니 전통으로 넘긴다고 했을때
오늘 본 전반적인것은 전통과는 살짝 어긋난 느낌들이다. 다들 현대적으로 각색하고 창작에 열심히인거 같기도 하고
내가 춤에 물드는건지 저들이 나같은 문외한에게 맞추려 애쓰는건지.
아무튼 점차 다가서는 느낌이 드는 훌륭한 전통춤 공연이었는데 좀 아쉽다.
내일과 모래 공연도 보고 싶지만 그러질 못한다니.

가을은 가을인가?
전엔 오늘같진 않았었는데 훌륭한 조명과 음악, 화려한 의상과 최고의 춤 그리고 국내 최고의 무대
너무 찬란하고 영롱하다. 그래서 극장을 나올땐 쓸쓸했던걸까? 가을이라서 더 그런건지

저들은 지금이 인생 최고의 순간일까.

출연 : 국립무용단, 구미시립무용단, 청주시립무용단, 태평무전승회

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6. 10. 18.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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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좀 어려운가? 포스터 느낌도 그렇고
흑백다방같은 느낌의 포스터(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연극임)

문제는 보르헤스가 누군지를 모른다는 것. 그렇지만 연극을 보면서 어느정도 흐름은 알것도 같고
집에 와서 보르헤스가 어떻게 꿈을 꿨다는건지 찾아보니 꿈을 꾸는 방법이라기보다는
현실과 비현실, 꿈 속의 자아와 또 다른 자아 간의 충돌, 갈등, 고민?
인터넷으로 찾아보면 호접몽을 이야기 하는 경우도 있긴 한데 뭔가 좀 다른 늬앙스다.
나는 '스크루지 영감' 이 떠올랐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과거와 현재는 진실이고 미래는 허구

다만 이 연극에서 현실의 인물은 죽기 직전의 노인인것이 이야기 흐름상 맞고
나머지 시간대는 꿈 속의 꿈을 꾸고 있는것이란 설정이 맞을수도? 아닐수도?

1막에서 중간자 역할인 오십대의 한 연극 배우 그리고 이십대의 젊은 배우
이 둘은 같은 존재로서 타임머신을 타고 내려온거 같은 설정인데
따지고 보면 일방적인 설교를 한다. 이것보다 더 수직적인 관계가 또 있을까.
이십대 윤상현은 오십대의 윤상현이 신적인 존재로밖엔 보이지 않을것이다. 물론 믿는다면
그리고 오십대는 과거를 회상하듯, 이십대는 자신이 꿈꾸고 있는 배우의 생활들을 이야기 한다.
대화는 흐름은 일방적일 수 밖에 없는데 오십대의 윤상현이 말하는 것을 이십대가 어떤 반론을 할 수 있겠는가.
이미 지나버린 과거를 그대로 진행해야 하는 운명의 이십대의 심심한 미래일뿐인것을

보통 이런 전개는 미래를 바꿔가는 원동력이 된다.
(영화 '데스티네이션' 처럼 죽을 운명이면 어떻게든 죽을 사람은 죽는다는 설정도 있지만)
신기할정도로 청년은 모든것을 순응한다. 이럴 수 있나?
꿈 속 자신의 자아라서 반항을 하거나 거부한다는게 의미없기때문일까.
그래서 1막의 중반부부턴 살짝 지루함이 있다. 내 자신이 운명론자이나 미래를 알게되었다면
인간이라면 당연히 바꾸려 하는게 당연한것인데 아무리 꿈속이라도 너무 일방적인 흐름은
그냥 중년 남성의 옛날 이야기를 듣는 정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상황 자체가 서로 대립될수가 없기때문이겠지. 서로 쌈박질을 하게 된다면 패러독스(Paradox)에 빠져드니
아마 작가는 이부분에서 스스로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져들었을것이다.

2막은 상황이 바껴서 오십대의 윤상현과 구십대의 윤상현이 나온다.
이건 상황만 바꼈을뿐 1막하고 다름은 없다.
죽기 직전의 윤상현은 오십대의 윤상현에게 또 다시 일방적인 설교를 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오십대 윤상현이 구십대에게 순응하지 않는다.
죽어가는 그리고 그는 자신이 살아왔던 인생을 오십대 윤상현에게 토로하지만
글쎄 이미 오십년이나 살아온 인물이 노인과의 대화에서 어떠한 것들을 받아들이려 할까

오십대는 거부하지만 노인을 말한다. 모두 잊고 몇십년 후 지금의 내가 되어 있을거라는
이것은 청년 또한 몇십년 후엔 오십대의 윤상현이 되어 있을테니
발버둥 쳐봐야 정해진 운명을 거스를순 없다는 천명? 천성? 같은 것일까. 배우의 숙명일까.

다만 여기서 오십대 윤상현이 현실일거란 추정이 되는데 어느 모텔방에서 쓸쓸히 홀로 죽어가는
구십대의 윤상현을 보며 회한같은 감정이 생긴다는 것은 저 말로를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는지 되묻지만. 답을 알곤 있지만 다른 결말을 원하는 것일까?
좋아서 배우가 되었고 좋아서 배우생활을 하고 대학로에서 다작 배우가 되었다고.
이 단 한가지의 이유때문에 모든 인생을 받친것이 아니었나? 그러면 된거 같지만
마음 한 구석은 무엇인가 허전함이 느껴진다.
오십대 무렵 사람들에게 흔히 찾아오는 현타 같은 현상?
이쯤 되면 아흔살의 자신의 미래는 어느정도 보일테니 그 미래의 나와 이야기 할 수록 공허함이 커지겠지.

인간이 어떤 과정을 거친 후 결론에 다달았을때의 감정과 과정을 건너뛴 후 결과를 접하는 감정은
완전히 다를 수 있다. 1억원을 10년동안 힘겹게 일해서 모았을때와 갑자기 1억원이 하늘에서 떨어졌다면
그가 느끼는 1억원의 가치 크기는 완전히 다르듯
이 부분에서 1막과 2막에 공존하는 모순점이 있다. 과정을 이야기 한다고 해봐야 청년과 중년의 대화에서 청년은 이해 못하고
중년과 말년의 대화에서 중년은 이해 못하는 것이다. 서로 뜬구름같은 소리만 하는것이지.
그래서 중년 윤상현이 현실이어야만 이 이야기는 열린결말로 생각을 해볼 수 있게 된다.

끝도 비슷한게 맽음이 되었지만 뭐랄까. 중간이 좀 맹숭맹숭하다고 할까.
스크루지영감(원제 크리스마스 캐롤)처럼 극적 요소가 좀더 가미되야 수직적인 관계라도 재미가 있을텐데
심리서사 모노드라마 형식의 인물 한명의 2인극이라서 사건을 만들긴 어렵겠지만
지나온 사건이라도 좀더 재미있게 구성이 가능했을텐데 아주 조금 아쉽다. (모노드라마들이 대부분 그러지 않던가.)

양창완 배우의 양창완인물과 윤상현배우의 윤상현인물 두 연극이 설마 내용이 다른것은 아니겠지?
서사가 다르다면 두편을 모두 보는 재미가 있었을거 같기도 하고
두 배우의 스타일이 다를테니 느낌은 다르겠지만 내용이 동일하면 또 그게 큰 의미가 없어서
오늘이 하필 막공이라 한편만 본것은 조금은 아쉬운 생각이 든다.

출연 : 윤상현, 유무선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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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