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공연2026. 11. 7.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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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가 프로젝트는 안무가들을 위한 이벤트겠지.
작곡가? 작사가? 소설작가? 시인 등 조금은 구체적인 직업군을 나타내는 명사들은 많다.
그리고 대표적인 인물들도 많다. 그런데 안무가는? 이름은 들어봤지만 유명한 사람은 단 한명도 모른다.
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까? 현대한국사에서 춤은 부정적 의미로 많이 쓰이는 편이었는데
이런 영향때문은 아닌거 같지만 어찌됬던 아는 사람? 낯이 익은 안무가 단 한명 없다.
아무튼 이번 공연은 현대무용으로 안무가 세명이 각각 자신의 독창적인 춤을 선보인다.

프로그램을 좀 미리 보는게 큰 도움이 되었을텐데 무슨 똥배짱인지. 그냥 들어가서 눈알 아프도록 집중 또 집중
타인의 생각을 그것도 추상적일수밖에 없는 춤을 더욱더 추상적인 현대무용을 집중한다고 될까?
개념미술을 뚤어지게 본다고 이해할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인데. 음.... 안되면 마는거지.

첫번째 '죽일 수도 없고'
무엇을 들고나오는데 유골함인줄 알았다. 그런데 얼음.
그래서 얼음 곧 죽음을 뜻하나싶었지만 아닌거 같다. 프로그램에 안무가의 제작 배경과 의도 등을 잘 표현하고 있으니
그것을 보면 되겠지만 일단 무지함에서 나오는 느낌을 이야기 해보자면
긴 작대기를 걸치고 나올땐 난 그것이 창에 꼿힌 물고기인줄 알았다.
일종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인가싶었고 짊어진 굴래같다고 할까? 뭐 그랬다.
선입견일수 있는데 긴 장대같은것은 고뇌의 상징같다고 해야할지.

그 다음 큰 나팔을 들고 나와서 무용수와 나팔은 하나의 몸이라 생각되어 그가 말 하려고 하는것과 들으려 하는것들에 대한
표현으로 보게 되었지만 아닐 확률이 100%는 되 보인다.
축음기 나팔같은것은 소리를 내는 수단일수도 있지만 난청이 있는 사람에겐 듣기위한 도구로도 활용되었기때문에
그 기준으로 춤을 바라볼수밖에 없었다. 프로그램을 미리 봤다면 그 기준을 미리 잡아놓고 무용수의 표현을 판단했겠지.

마지막은 좀 묘기에 가깝긴 했는데 둥근 어항을 머리에 이고 나온다. 처음엔 끈으로 묶은거겠거니 했는데
웬걸.. 머리에 놓고 균형을 잡고 있는것이었다. 이러고 무용을 한다니.
속에 인형 붕어가 있었지만 실제 물이란걸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어항의 물=나의 심리상태로 보긴 했는데 평온할때도 있고 광분할때도 있다.
어항이 터져라 흔드는 경우도 있었는데 사람이 살다보면 내면 상태가 그와 같지 않았을까?
머리위에 이고 있을땐 위태롭고 바닥되 놓였을땐 안정되었다가 누군가 미친듯 흔들땐 혼란스럽다.

그런데 왜 '죽일 수도 없고' 란 제목이 붙은걸까? 내가 내 자신에게 놓고 한 말인가?
절망적인 상태는 아니었던거 같은데.

웅장한 사운드와 겹치는 절묘한 춤들. 음악에 안무를 맞춘건지 안무에 음악을 만든건지 모르겠지만
춤의 미학을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이 아니었나싶다.

두번째는 'COUNT'
카운트다운 하면 딱! 떠오르는건 권투, 격투?
기본적인 리듬은 이 떠오르는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체적인 흐름도 그렇고.
그러나 장르가 춤이라는것이고 선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분야인만큼
강인함을 유려한 곡선으로 그려간다. 어떤것을 표현하는지 알기는 어려운데
프로그램을 읽어봐도 상황의 기억이 잘 안떠오른다.
아무래도 전체적으로 빠른 템포와 스텝이 많고 선이 전체적으로 굵지만 기억에 남는것은
대결구도에서 하나의 선으로 이어가는 리듬이 있다는 것?
조금 아쉬운건 주제에 비해 사운드 스케일이 조금 빈약하지 않았나싶다. 국립극장이 음향시스템을 마음껏 활용했으면
좀더 극적으로 다가왔을텐데란 아쉬움이 살짝 있지만 남녀 할거 없는 무한한 에너지의 장이었다.

왜 여기서 인터미션이 있을까? 아마도 무대 설치를 좀 바꿔야 하는데 시간이 걸리다보니
황당하게도 한시간만에 쉬는 시간을 할애한거 같다.

마지막은 '백야'
나는 여기서 완전 잘못된 선입견으로 출발 할 수 밖에 없었다.

갑자기 잠의 불청객 모기에 괴롭힘 당하는 한 사람이 나온다.
물론 그 괴로움도 아름다움으로 승화하지만 짜증의 감정이 모든 관객에게 전달되었을거 같은 멋진 표현이었다.
이때부터 나는 모든 시선을 모기라는 한 생명체에게 쏟아부었다.

다음부터는 스모그가 바닥에 짙게 깔리면서 시작하는데(누우면 사람이 안보일정도고 짙음)
이 스모그는 죽음의 그림자. 살충제로 생각하고 그 속에서 모기들의 절규도 있고 환각도 있고
짧게 죽어가며 인생을 그려내는 모든것을 하나의 주제속에서 파생되는 소재들의 단편화를 상상해버렸다.
그러다보니 재미있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며 때론 좀 슬프기도 할수밖에 없었다.(죽어가고 있으니)

다음에 이어지는 어둠속 세계 역시 같은 소재의 다른 환경의 삶을 이야기 하고 있는것이라 보았다.
생각해보면 좀 우끼긴 하다. 인간을 괴롭히고 인간의 손에 죽고 인간을 피해 어둠의 세계에서 시간을 그려낸다?

프로그램을 읽어보니 안무가에게 무척 미안한 생각이 든다. 내멋대로 나 편할대로 상상하고 즐겨버렸으니.
최소한의 소재와 지향점은 좀 비슷하게 진행되야 했었을텐데.

뭐 그래도 세편 모두 무척 아름답게 표현되고 뛰어난 연출로 돋보이는 작품들이었다.
언젠가는 연출의 의도를 읽을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아니면 계속 내 마음대로 머리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동화시켜 즐기던가 ^_^

안무 : 이이슬(죽일수도없고),선승훈(COUNT),송윤주(백야)
출연 : 국립무용단 청년교육단원(교육단원은 뭐지? 배우는 학생들이란 소린가?), 그 외 객원

2026 안무가 프로젝트 프로그램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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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6. 11. 5.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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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희라와 최수종 두배우 모두 한국 사람이라면 무척 좋아할텐데(어떤 사건,사고도 없었던거 같음)
최수종배우는 어느때부터 사극에 많이 나온거 같은데
내가 TV를 언제부터 안봤는지 잘 모르겠지만 제법 오래전부턴 하희라 배우를 본 기억은 없다.
거의 잊혀지는 배우정도로 생각했던게 아닐까?

러브레터가 어떤 내용인가 좀 뒤져보니 전에 이미 하희라 배우가 연극을 했다는 정도가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스크린 배우들의 정극 무대는 대부분 실망하는 편이라서 기대따위는 하지 않는 편이다.
이번도 볼까 말까 고민을 좀 하다가 연기자 부부 둘만 나오고 제목에서 풍기듯 로맨스인거 같고
서로 호흡이 더이상 좋을수 없지 않을까?란 생각에서 예매를 했다.

극장이 좌우로 넓게 생긴게 일반 공연용보단 강연용이 아닌가 싶은 구조.
무대도 앞뒤고 깊지 않은거 같아보인다.
이런곳보단 차라리 정동세실극장같은곳이 접근성도 좋고 극장을 더 잘 꾸밀수 있지 않나싶긴 하지만
아무튼 이곳에서 관람하려는 분들은 중간쯤에 보는게 목이 덜 아플수 있지만
배우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라면 최대한 앞자리가 좋겠지.(난 앞에서 세번째 줄)

거너의 러브레터는 연인이라고 하긴 모호하지만 한 남녀가 아이때부터 50여년동안의
편지를 주고 받는 흐름으로 서로에 대한 연민이 있음에도 무엇인가 맞지 않아 연결은 안되었지만
그럼에도 편지를 통해서 평생 동반자 같은 삶은 살아가는 이야기?
낭독극이라고도하고 서간극(주고받는 편지이야기)이라고도 하는데
우낀건 계속해서 남녀가 편지만을 읽기때문에 대본 외울것이 많지 않아서 배우들이 좋아했다고 한다.
하희라, 최수종 이 두배우도 낭독극으로 생각해서 대본을 외우지 않았는지까진 모르겠다.
(계속 편지를 보며 읽기때문에 외우지 않아도 되지만 편지는 펼쳐놓기만 하고 관객을 보고 연기했으면 더 좋지 않았나싶긴 함)

시작이 아이일때부터인데 문제는 이 부분에서 이 둘은 이미 중년의 남녀니 조금은 어색하고
특히 최수종배우는 사극때문인지 목소리는 더욱더 걸걸해져서 솔직히 초반엔 좀 별로?
이 시기는 금세 지나긴 하지만 청년까지도 두 남녀에게 풍기는 중후함때문일까? 썩 잘 어울리진 않는다.
그런데 성인이 된 후부턴 하희라 배우가 훨씬 자연스러워진다고 할까?
청소년기까지는 둘다 어색했지만 최수종배우가 조금더 나은 기분이었는데 갑자기 뒤바뀐다.
그리고 몰랐는데 하희라 배우가 훨씬 연극에 더 걸맞게 연기를 하고 있다는것이 무척 특이했다.
최수종배우는 오이디푸스를 바로 얼마전에 끝냈는데 신기하다.
반면에 최수종 배우는 감정이 고조될땐 그 특유의 늘어지는 딕션때문에 내 감정이 깨지곤 했다.
내가 원래 그런 톤을 안좋아하는건지 오랜시간 수많은 사극을 해서 그렇게 변한건지 원래 그런 특징이 있었던건지.
아무튼 두 배우 모두 묘한 특색이 있다.

연극 자체는 무척 흥미로운 전개와 적절한 극적 요소들과 사건들
막판에 좀 상투적인 전개가 섭섭하긴 했지만 엔딩은 또 왜 그리도 슬픈지.
단 일분간의 몇마디가 수십년간 둘의 독특한 사랑을 일거에 압축하며 밀려오는 감동이 있다.
플래시백몽타주같은 기분이랄까?

하희라,최수종 배우의 팬이라면 추천. 그렇지 않다면 티켓값이 좀 비싸게 느낄지도.

그런데
'넌 내가 단 한 조각도 잃어버리지 않고 남겨둔 모든 거야."라는 대사가 있었나?

출연 : 하희라, 최수종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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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6. 11. 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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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전의 그것은 아니고 영화 '방자전' 처럼 다른 시점을 기반으로 새롭게 창작된 것으로
심청전은 소재로서만 활용될뿐 일관된 내용은 없다.

전체적으로 새롭지만 심청전을 알아야 새롭다고 느낄수 있을거 같은
만약 심청전을 모른다면? 인당수? 인신공양? 몸을 팔아? 인신매매? 뭐 그렇게 느낄수도 있다.
(한국사람은 심청전을 모르기 쉽지 않지만 외국인들은 알기 쉽지 않은 내용)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운점이 있는데 선주는 인당수에 인신공양 할 간난이에게 '마마'라는 호칭을 쓴다.
왜 일까? 죽임을 당하는 존재에게 예의를 표하는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처음엔 죽이니까 어여 죽으라는 선주의 암묵적인 가식인줄 알았다.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는걸 봐서는
그런게 아닌거 같기도 하지만 알기는 어렵다. 선주의 자식 셋은 분명히 간난이를 현혹시켜 인당수에 빠뜨리기에만 급급하지만
선주만은 태도가 확연히 다른데 대화 중 선주가 전에는 그러지 않았다는 말을 하는 대목이 있는데
무엇이 바뀐것일까? 앞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때문에 심청 설화를 진정 믿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 동안 수많은 제2, 제3의 청이를 인당수에 빠뜨렸기때문에 자신도 그것을 믿게 되었던 건가?

사람이 죽을때가 되면 종교적 믿음이 훨씬 강력해진다는 말이 있다. 아무래도 죽음이란것은 돌이킬수가 없기때문에
인간의 두려움이 한층 고조되고 그 공포를 이길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신일수 있으니 신께 의존하고
사후 세계를 믿을수밖에 없는것이 나약한 그리고 불필요하게 높은 지능을 지니고 있는 인간이기때문 아니겠는가.
그래서 진심으로 박간난을 '마마'로 여겼을수도 있지만 그것도 꼭 그런건 아닌거 같기도 한것이
인신공양을 하지 않고 결혼을 시키려고까지 했으니.

심청이는 분명 죽기 직전까지 슬퍼했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효만을 강조하기때문에
약간은 지나친 느낌이 든다. 물론 예전 고대 시대엔 인신공양을 미덕으로 삼던 시대도 있다.
잉카? 마야? 같은 종족은 살아있는 사람의 심장을 꺼내고 인육을 먹기까지 했다고 하는데
기꺼이 죽음을 택했다고 말하지만 최면에 가까운 무엇인가 있었던게 아닐까?란 생각도 지울수 없다.
그러나 심청이가 있던 시절은 또 그렇게 오래전의 내용도 아니라서 아무리 이러 저러한 이야기를 짜깁기 했더라도
좀 심하게 효만을 우겨넣는 기분이 들어서 좋아하는 판소리지만 내용은 그다지 달갑지 않다.
뭐랄까? 심봉사가 독하게 부려먹기 위해 세뇌당한 청이 같다고 할까? 그러지 않고서야 중이 말한다고 공양미 삼백석을
시주하겠다고 약조한다는게 흐름상 맞는 이야기인가? 당장 먹고 살것도 없는 주제에.(집만 있는 거렁뱅이나 다름없는 신세)

원전의 개똥같은 일관성을 깨면서 들어간다.
난 고작 보리 20섬에 팔여왔고 아버지는 난폭한 오입쟁이 노름꾼인데 이 사람이 팔았다.
그런데 이런 부모에게 효를 행하다 인당수에 빠지면 왕비가 될수 있다고 헛소리하는 선주에게
정면으로 대든다. 이게 당연한거 아닌가? 물론 너무 현실적이라서 극적이지 않을 수 있다.
난 간난이가 여기서 도주 하는 내용인가?도 싶었지만 그렇게 진행되면 내용이 영~ 별로였겠지.
선주의 자식 셋중 장남은 고전을 그대로 주입시키는 타입-고리타분?-, 둘째와 세째는 그나마 현실성있게
간난이를 꼬신다. 어떻게 보면 직설적이면서도 허황된다.

어느 시점부터였을까? 간난이는 자신이 인당수에 빠질수 밖에 없는 운명이란것을 직감하는데.
삼형제가 제시하는것을 모두 보고 난 후 선주의 진실됨을 보며 간난이는 느꼈을까?
자신의 죽음이 강요에 의해서가 아닌 자신의 선택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는것을.

간난의 어떤 깨달음은 사후세계를 염두한것으로 보이지 않고 윤회로부터 해탈했다는 느낌적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선주는 그 동안 해왔던 자신의 과오의 산물인 자신으로부터 떠밀려 죽음을 당하므로서
굴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쩌면 이것이 이 연극의 본질일수 있다. 과오에 대한 굴래와 현실에 대한 순응과 절망 그리고 뒤따르는 초연함

여백과 여운이 대단히 깊은 연극으로 자극적이지 않으며 소란스럽지 않지만 속 시끄럽게 만드는 아름답고 슬픈 연극이었다.

그런데 경리는 공감능력이 결여된(잘못되면 사이코패스 잘되면 냉철한 판단력의 인간) 선주의 또 다른 자아였을까.
간난이를 선택하지 않는 선택은 과거 자신의 과오를 반복하는, 인간의 굴래를 벗어난다는게 얼마나 어렵고
되돌릴수 없는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인가.

영화 '맨 프럼 어스'가 떠오르는건 왜일까?

심청가도 제법 슬픈데 이 연극은 다른형태로 제법 슬프고 멋진 연극이니 기회되면 꼭 보시길.

출연 : 송홍진, 강민지, 김지영, 엄태준, 백운철, 이현호, 서보찬, 박소현, 임태훈, 장정윤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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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