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공연2026. 10. 24. 01:02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가을밤 전통춤 공연? 뭔가 어울리는거 같지 않은가?
(토,일까지 하는데 이때는 낮에 함)
구성은 정말 축제같은 기분이 든다.

보듬고,고무악
숨:벽사와해원
청풍풍류
태평무

이렇게 구성되어 있는데
일단 시작을 북으로 시작하기때문에 기분이 한층 올라갈수밖에 없다.
북의 소리와 리듬이 그렇듯 강렬하다. 간결하면서도 오고무 같은경우는 화려함도 겸한다.
그리고 리듬 악기만 다루기때문에 군무가 아이돌 저리가라 할정도로 뛰어나서
북을 이용한 춤중엔 젊음의 상징같다고 해야 할까? 활력넘치고 아름다운 인간의 딱 그맘때

북춤과 장구춤은 언제 봐서 흥겹다. 리듬악기가 갖는 매력이겠지

두번째는 갑자기 처용무가 나오긴 하는데 이게 참 난해하다. 귀신을 쫓기 위해 연초에 하는 나례라는 의식에 들어가는 춤이라곤 하지만
오늘까지 합해서 서너번 본 정도인데 처용가의 처용이 왜 귀신을 쫓는 능력이 있다는건지는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아무런 관계도 없는거 같은데.
아무튼 연말 연시 시즌이 오고 있으니 처용무도 나쁘진 않아 보인다만 좀 더 이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오래된 춤사위다.
그리고 살풀이라고 하는 살풀이 춤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여럿이 함께하는 살풀이는
현대무용과 고전한국무용을 컬레보레이션 한듯한?
화려하지만 한국적인 수려함도 겸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한국 여자들의 춤의 표현이 화려하진 않는데 바뀌고 있는 느낌)

청풍풍류는 장구춤인데. 선비춤하고 장구춤을 섞여서 남자 여자 특별히 나뉘지 않아 전통춤만으로 보면 중성적이라 해야 하나.
장구춤는 여성이 많고 화려하면서 파워풀하기도 하긴 한데. 선비춤들이 섞였어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오히려 왜 전엔 이런 시도를 안했던 것일까?란 생각이 들정도다.(이미 전부터 시도해왔는데 내가 보지 않고 있었어서 모를수도)
북과 더불어 참 흥겹다. 박수와 환호가 절로 나올수 밖에 없는 한국 고유 전통공연 중 다 함께 즐기는 공연으론
단연 으뜸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여성들의 군무는 또 얼마나 선이 아름다운가.
남성들은 근육이 많아서 몸의 움직임이 느리고 산뜻하지 못하고 선이 굵어서 둔탁한 느낌이라면
여성들은 하늘하늘하지만 결코 연약하지 않아 발랄하며 가볍고 힘이 넘치지만 굵지 않다. 그래서 보고만 있어도 가벼워지는 기분이 든다.
이런점때문에 나는 왠만하면 여성 춤을 좋아한다. 날고 싶지만 날 수 없어서 날아가는 새라도 보고 싶어하는 기분?

그리고 마지막은 태평무인데 특이하다. 모두 왕비 옷을 입고 있다? 보통 한명만 입고 있는거 아니었나?
찾아보니 한영숙류 태평무는 모두 같은 왕비옷을 입고 나온다고 한다. 오늘 처음봤는데 인원이 많아서 그런가
뭔가 좀 위압감과 위화감이 있고 긴장감이 생긴다. 왜 일까? 옷때문인지 춤때문인지 음악때문인지.
특이한건 20세기초에 도당굿 장단을 사용해서 왕비의 춤을 창작한것이라고 하니 이름과는 느낌이 좀 다르다.
난 이름이 태평무 라고 하길래 조선시대 태평성대를 위해 왕비들이 배운 춤같은건줄 알았다. 역사도 오래된 전통의례같은?
다른 영상들을 봐도 역시 혼자 나와 춤추는게 좀 더 집중하긴 좋아 보인다.

태평무 자체도 근현대 제작이지만 일단 왕과 왕비의 생활을 모르니 전통으로 넘긴다고 했을때
오늘 본 전반적인것은 전통과는 살짝 어긋난 느낌들이다. 다들 현대적으로 각색하고 창작에 열심히인거 같기도 하고
내가 춤에 물드는건지 저들이 나같은 문외한에게 맞추려 애쓰는건지.
아무튼 점차 다가서는 느낌이 드는 훌륭한 전통춤 공연이었는데 좀 아쉽다.
내일과 모래 공연도 보고 싶지만 그러질 못한다니.

가을은 가을인가?
전엔 오늘같진 않았었는데 훌륭한 조명과 음악, 화려한 의상과 최고의 춤 그리고 국내 최고의 무대
너무 찬란하고 영롱하다. 그래서 극장을 나올땐 쓸쓸했던걸까? 가을이라서 더 그런건지

저들은 지금이 인생 최고의 순간일까.

출연 : 국립무용단, 구미시립무용단, 청주시립무용단, 태평무전승회

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6. 10. 18. 22:13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제목이 좀 어려운가? 포스터 느낌도 그렇고
흑백다방같은 느낌의 포스터(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연극임)

문제는 보르헤스가 누군지를 모른다는 것. 그렇지만 연극을 보면서 어느정도 흐름은 알것도 같고
집에 와서 보르헤스가 어떻게 꿈을 꿨다는건지 찾아보니 꿈을 꾸는 방법이라기보다는
현실과 비현실, 꿈 속의 자아와 또 다른 자아 간의 충돌, 갈등, 고민?
인터넷으로 찾아보면 호접몽을 이야기 하는 경우도 있긴 한데 뭔가 좀 다른 늬앙스다.
나는 '스크루지 영감' 이 떠올랐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과거와 현재는 진실이고 미래는 허구

다만 이 연극에서 현실의 인물은 죽기 직전의 노인인것이 이야기 흐름상 맞고
나머지 시간대는 꿈 속의 꿈을 꾸고 있는것이란 설정이 맞을수도? 아닐수도?

1막에서 중간자 역할인 오십대의 한 연극 배우 그리고 이십대의 젊은 배우
이 둘은 같은 존재로서 타임머신을 타고 내려온거 같은 설정인데
따지고 보면 일방적인 설교를 한다. 이것보다 더 수직적인 관계가 또 있을까.
이십대 윤상현은 오십대의 윤상현이 신적인 존재로밖엔 보이지 않을것이다. 물론 믿는다면
그리고 오십대는 과거를 회상하듯, 이십대는 자신이 꿈꾸고 있는 배우의 생활들을 이야기 한다.
대화는 흐름은 일방적일 수 밖에 없는데 오십대의 윤상현이 말하는 것을 이십대가 어떤 반론을 할 수 있겠는가.
이미 지나버린 과거를 그대로 진행해야 하는 운명의 이십대의 심심한 미래일뿐인것을

보통 이런 전개는 미래를 바꿔가는 원동력이 된다.
(영화 '데스티네이션' 처럼 죽을 운명이면 어떻게든 죽을 사람은 죽는다는 설정도 있지만)
신기할정도로 청년은 모든것을 순응한다. 이럴 수 있나?
꿈 속 자신의 자아라서 반항을 하거나 거부한다는게 의미없기때문일까.
그래서 1막의 중반부부턴 살짝 지루함이 있다. 내 자신이 운명론자이나 미래를 알게되었다면
인간이라면 당연히 바꾸려 하는게 당연한것인데 아무리 꿈속이라도 너무 일방적인 흐름은
그냥 중년 남성의 옛날 이야기를 듣는 정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상황 자체가 서로 대립될수가 없기때문이겠지. 서로 쌈박질을 하게 된다면 패러독스(Paradox)에 빠져드니
아마 작가는 이부분에서 스스로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져들었을것이다.

2막은 상황이 바껴서 오십대의 윤상현과 구십대의 윤상현이 나온다.
이건 상황만 바꼈을뿐 1막하고 다름은 없다.
죽기 직전의 윤상현은 오십대의 윤상현에게 또 다시 일방적인 설교를 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오십대 윤상현이 구십대에게 순응하지 않는다.
죽어가는 그리고 그는 자신이 살아왔던 인생을 오십대 윤상현에게 토로하지만
글쎄 이미 오십년이나 살아온 인물이 노인과의 대화에서 어떠한 것들을 받아들이려 할까

오십대는 거부하지만 노인을 말한다. 모두 잊고 몇십년 후 지금의 내가 되어 있을거라는
이것은 청년 또한 몇십년 후엔 오십대의 윤상현이 되어 있을테니
발버둥 쳐봐야 정해진 운명을 거스를순 없다는 천명? 천성? 같은 것일까. 배우의 숙명일까.

다만 여기서 오십대 윤상현이 현실일거란 추정이 되는데 어느 모텔방에서 쓸쓸히 홀로 죽어가는
구십대의 윤상현을 보며 회한같은 감정이 생긴다는 것은 저 말로를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는지 되묻지만. 답을 알곤 있지만 다른 결말을 원하는 것일까?
좋아서 배우가 되었고 좋아서 배우생활을 하고 대학로에서 다작 배우가 되었다고.
이 단 한가지의 이유때문에 모든 인생을 받친것이 아니었나? 그러면 된거 같지만
마음 한 구석은 무엇인가 허전함이 느껴진다.
오십대 무렵 사람들에게 흔히 찾아오는 현타 같은 현상?
이쯤 되면 아흔살의 자신의 미래는 어느정도 보일테니 그 미래의 나와 이야기 할 수록 공허함이 커지겠지.

인간이 어떤 과정을 거친 후 결론에 다달았을때의 감정과 과정을 건너뛴 후 결과를 접하는 감정은
완전히 다를 수 있다. 1억원을 10년동안 힘겹게 일해서 모았을때와 갑자기 1억원이 하늘에서 떨어졌다면
그가 느끼는 1억원의 가치 크기는 완전히 다르듯
이 부분에서 1막과 2막에 공존하는 모순점이 있다. 과정을 이야기 한다고 해봐야 청년과 중년의 대화에서 청년은 이해 못하고
중년과 말년의 대화에서 중년은 이해 못하는 것이다. 서로 뜬구름같은 소리만 하는것이지.
그래서 중년 윤상현이 현실이어야만 이 이야기는 열린결말로 생각을 해볼 수 있게 된다.

끝도 비슷한게 맽음이 되었지만 뭐랄까. 중간이 좀 맹숭맹숭하다고 할까.
스크루지영감(원제 크리스마스 캐롤)처럼 극적 요소가 좀더 가미되야 수직적인 관계라도 재미가 있을텐데
심리서사 모노드라마 형식의 인물 한명의 2인극이라서 사건을 만들긴 어렵겠지만
지나온 사건이라도 좀더 재미있게 구성이 가능했을텐데 아주 조금 아쉽다. (모노드라마들이 대부분 그러지 않던가.)

양창완 배우의 양창완인물과 윤상현배우의 윤상현인물 두 연극이 설마 내용이 다른것은 아니겠지?
서사가 다르다면 두편을 모두 보는 재미가 있었을거 같기도 하고
두 배우의 스타일이 다를테니 느낌은 다르겠지만 내용이 동일하면 또 그게 큰 의미가 없어서
오늘이 하필 막공이라 한편만 본것은 조금은 아쉬운 생각이 든다.

출연 : 윤상현, 유무선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6. 10. 17. 20:20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연극 소개를 보지 않고 포스터만 보고 구입하고 관람것이라서(시놉을 미리 좀 보겠다고 다짐하지만 잘 안됨)
두 편의 연극이 연이어 있는것인줄은 몰랐다.

그리고 140분이라는데 이상하다. 나올때 시간을 보니 한 80분정도? 됬던거 같은데. 집에 들어온 시간등을 고려하면
틀려보이진 않는다. 그런데 왜 140분이라 적혀있는걸까.

제목이 2인실과 무간도가 붙어 있다고 가정하면 스릴러, 호러? 심리물? 심장이 쫄깃해지는 그런건가싶었다.
포스터도 딱 그렇고. (2인실 병동에서 네명이 서로 뒤엉켜 말로 물어뜯는 치열한 토론의 장인줄 알았음)

하지만 두편을 연이어 공연하는 그냥 짧은 두편의 연극들이었다.

첫번째는 2인실. 두명의 환자가 침상에 누워있다.
한사람은 폐암 말기, 다른 한사람은 정신치료.(이런식으로 섞어서 병실을 배정하기도 하나? 위험할거 같은데)

폐암 말기 환자(화이트)는 몸이 너무 고통스럽고 다른 환자 한명(블랙)은 정신이 고통스럽다.
서로를 이해하진 못한다. 좀 납득이 안되는 대사가 있는데 사랑한다고 팔 다리같은거 막 내던지진 않는다. 그렇지만 블랙은
화이트(폐암말기 환자)에게 몸(세포)이 아픈건 대수롭지 않은냥 말을 던진다. 헤어질때도 고통스럽다는걸 부인하는게 아니라
통증의 종류가 다르다고 해야 하나?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리고 이미 끝에 다다른 사람들이니 피폐해진 정신상태 대화한다면
거칠고 투박한것은 당연해 보이기도 하다. 연극이니 어느정도 정제된 표현을 쓰는데
훨신 더 현실적인 인간의 가장 밑바닥 언어가 나와야 하는게 아닌가싶었다.

이부분에서 서로의 과거를 공유하고 아픔을 위로하며 끝나는줄 알았는데(보통 전개들이 그러하니)
갑자기 서로 영혼을 바꾼다?????????? 왜 갑자기 판타지로?
사이코드라마처럼 대상을 바꾼다기 보다는 상대를 완전히 바꾼다? 그리고 몸이 갖고 있던 기억들이 살아난다?
다시 말해서 폐암환자였던 화이트는 블랙의 몸과 기억을 갖으면서 폐암으로 부터 벗어난다.
블랙도 화이트의 폐암의 몸을 받게 된다. 서로 기억도 가져간다면 좀 우끼지만 둘이 하나로 합쳐져 퓨전이 되던가
아니면 영혼이 바뀐게 바뀐게 아닌 모순에 빠지게 된다.
결국 몸은 두개인데 기억이 같은 동일한 두개의 객체, 혹은 바꼈지만 바뀌지 않은 처음 그대로인 상태

아무튼 문학 허용으로 넘겨보자. 블랙은 입양되었다가 양부모에게 학대받아서 방화로 죽였다?
그리고 양부모가 다른 아이들을 입양한건지 친 자식들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들도 함께 죽였다?
그 죄책감때문에 자살하려고 했던거 같고 그 기억의 고통을 계속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배경인데

이 기억이 일순간에 내 머리속에 들어온다면 죄책감으로 다가올까? 영화같은 기억으로 남게 될까?
우리가 영화를 볼때 느끼는 감정도 충분히 사실적이다. 그 강도가 좀 약할뿐
이 연극에서는 영화같은 감정보다는, 자신이 아니지만 기억을 하므로서 자신의 일이 되버린 쪽으로 선택된다.
그래서 똑같이 괴로워 한다? 이러니까 결국은 영혼을 바꿨는데 바뀐게 아닌게 되는거다.

반면에 화이트가 된 블랙은 어차피 죽으려 했었기때문에 폐암말기고 오늘 죽는다고 하더라도
크게 개념치 않아보였는데. 고통스러워할순 있고 식도가 모두 녹아서 아무것도 못 먹기때문에
무엇인가 먹으면 죽는다고 하지만 가슴쪽에서 오는 뜨거운 통증때문에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려하는데
먹으면 죽는다는 화이트(현블랙) 말때문에 못 먹는다. 신기하지? 10년 후도 1년후도 일개월 후도 아닌 어차피 오늘 죽는다고 하는데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죽을까봐서 못먹고 있다니. 인간의 어리석음을 표현한건지 그가 지금 받고 있는 고통의 두려움을 표현하였지만
나 역시 저 사람이 아니니 저 심정을 이해할수 없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연출이 보여주려한것인지

막판엔 병실에 감금된듯한 늬앙스를 풍기는데 이건 어떤 의미였을까?
이 고통의 굴래에서 벗어날수 없다는 소릴까?

이것과 연결해서 다음은 무간도.
무간도(無間道)란 말은 영화같은곳에서 제법 쓰이는 소재이다.
무간지옥, 틈이 없다라는 의미의 무간, 영원한 시간동안 벌을 받거나 죽지도 못하고 계속 벌을 받거나 휴식없이 고통을 받거나
죄인들을 가득 채워넣어 피할 곳이 없게 한다거나 등 그래서 무간지옥이라고 하고 가장 쌘 지옥이라고 하지만
죽어서도 이런 물리적 고통을 받는다는게 조금은 유치하지 않은가?
지옥은 못된놈이 회계하도록 하기 위함보다는 착한사람을 계속 부려먹기 위해 강요하는 수단으로 만들어진게 아닌가 싶다.
(지금을 보더라도 못된놈은 그냥 계속 못됬다. 지옥이란게 실제로 있다면 이런놈들이 생겨날수가 없지)

업보(카르마)와는 좀 다르긴 한데 한 남자가 끊임없이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삶과 모든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는 삶
두 대립 관계를 일란성 쌍둥이의 인물로 표현하는데 주제나 배경은 제법 참신했다.
쌍둥이라도 공부를 잘 하고 못하고는 좀 다른 문제고 성격의 성향도 다를 수 있어서
서로 다를수 있고 부모의 관심도 역시 다를 수 있다. 대부분의 집들이 그럴텐데 공부 잘 하는 자식에게 관심이 쏠린다.
아예 자식 중 누군가 엄청 몸이 아프다거나 해서 다른 자식들은 소외받아 가정불화의 씨앗이 되는 문제도 종종 있다.
이상한것은 이 소외 받는 자식들은 부모에게 관심을 받기위해 많은 일들을 한다는 것이고
관심을 독차지 하고 있는 자식은 귀찮아한다는 것. (부익부 빈익빈. 인간의 본성에 문제인가?)

2인병실과 비슷한 설정이다. 서로 상반된 처지로 생겨나는 관점의 차이
이들은 이것을 좁혀가려 하는것인가?
독특하면서 식상한(?) 다중인격체로 묘사되기때문에 여기서는 그 마저도 설득력을 잃게 된다.
불을 지른 자의 의식과 그로 인해 화상을 크게 입은 자가 한 사람?
원래는 둘인데 하나는 불타 죽어서 다중인격이 된 형 혼자의 대화다.

엄마를 애증하는 형, 증오했던 동생
이 두 인격체는 서로의 주장을 하는데 판타지가 아니고서 애초에 이런게 가능한건지. '반지의 제왕'의 골룸도 아니고

동생은 분신자살, 엄마는 폐암으로 돌아가신 설정인데
처음에 나왔던 '2인실'에 한명은 방화를 했고 한명은 폐암으로 오늘 죽을 목숨이다. 그런데 이들은 어딘가에 갇혀있다?
'무간도'에 나온 분신한 동생과 첫째를 싫어했던 아니 둘째만 사랑했던 부모가 무간 지옥에 들어서게 된것인가?

두가지의 내용이 서로 연결점은 없다. 그러나 2인실에 갇힌 고통받는 두명의 환자는
현실세계의 죄에 대한 벌의 한 형태였을까.

전체적으로 고민해볼 필요가 있는 멋진 주제긴 한데
흐름에 필요한 소재들이 조금은 낡은건지 해졌다고 해야 할지.
전체적으로 조금은 지루함이 있었는데 그래서 140분짜리를 80분정도로 자른건가?

좀 더 집중해서 보고 싶은 연극인데 다시 올라오면 그땐 오늘보단 더 집중을 해보자.

출연 : 배소희, 김명애, 강민석, 이헌일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Posted by 시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