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공연2026. 5. 17.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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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것을 2024년에 봤었는데 예매하고 오늘 극장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을때까지 몰랐다.
채승혜배우께서 관객들 안내하며 분위기을 올리고 있었는데 제목 늬앙스와는 다르게
장르가 코미디인가? 그런데 왜 제목이 철학적이지?라는 생각까지 했었다.

극이 시작되고 한 5분정도 지났을까? 응? 본거 같은데? 설마?
조금 더 지나니 확실히 본것이고 모든것이 조금씩 기억나기 시작하는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1부진행중 2부나 3부가 생각난것은 아니다. 물론 2부가 진행되고 있는데 3부가 떠오른것 또한 아니다.
진행되는 중에 봤던거였구나. 라는 정도만 생각날뿐 엄마역으로 나온 배우의 목소리가 성우같은데
처음 듣는 느낌이었다.(내용은 기억나지만 배우의 느낌은 모두 잊어버렸던거 같음.)

한번 보고서 오랜세월 기억에 남는 연극은 흔한것이 아니니 별로 이상한 현상은 아니지만
제목만으로 한참을 기대했던 내가 조금 부끄러워졌다고 할까?

총 3부작으로 되어 있고 과거, 현재,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현재이고
엄마의 과거, 딸의 현재, 엄마와 딸의 현재 이런 구성이다.

이걸 가족 연극이라 해야 할지 자기성찰극이라 해야 할지
물론 코미디는 결코 아니고 그렇게 웃긴 부분이 있는것도 아니다.
엄마와 딸, 현재의 엄마가 된 과거의 엄마의 일대기 같은?
제목과 같이 왜 당시에 없어질수 있었지만 지금 이렇게 있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이야기.

여기서 보면 딸과 엄마 이야기 같지만 전체적으로 순수한 엄마이야기다.
엄밀히따져서 딸은 없다. 딸이 엄마에게 있었다면 항암치료를 했겠지만 끝까지 그러지 않는다.
남겨진 자에 대한 예의정도만 보일뿐인데.
2부는 연극단원들끼리 1부 과거 엄마의 내용으로 만든 연극에 대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서
1부는 3부를 뒷받침 해주지만 2부는 왜 있는지까지는 모르겠다.
있어서 나쁠것 없을정도로 지루하지 않고 충분히 재미있고 흐름상 어색함 또한 없다.
단지 필요성한 부분까지는 아닌거 같을뿐이다.
(1부에 붙어서 몇분정도 연극이 끝난 후 에필로그처럼 붙었으면)

2024년에 봤을때의 사진 처럼 무대장치도 같고 배우의 연기도 크게 다르지 않은 기분이 든다.
배우도 같다. 심지어 연극 소개페이지도 대동소이하다. ^_^;

그때는 어땠을까? 당시 관람기를 읽어보면 지금과는 다르게 뭔가 이해하는데 약간은 어려움이 있었다.
오늘은 상대적으로 안그랬는데 집중력이 좋았던건지(2년만에?) 조금 부연설명이 추가 된건지

그때는(2024년) 어머니와 딸, 내 어머니가 떠올랐다고 관람기에 적어놨지만
묘하게도 이번에는 전혀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딸 덕분에 자기성찰의 기회를 찾았고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미래를 좀더 풍요로운 심정으로 지낼 수 있게 된 것으로 이해된다.

어쩌면 자식들만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부모들에게 말하고자 했던것일지도.
왜 내가 없지 않고 지금 이렇게 있을수밖에 없는것인지. 이것은 내 자식때문이 아니라
나의 기억의 연속성때문이란것. 물론 내 마음대로의 해석이다.

다음에 또 공연하면 그땐 봤던것이라는 기억이 나겠지만
신경안쓰고 예매버튼을 누를거 같은 다시 보고싶어지는 연극이었다.

출연 : 구자승, 조주현, 나종민, 장하란, 하지웅, 김하리, 김태우, 이정근, 채승혜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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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6. 5. 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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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긴 공연은 걱정부터 앞섰는데 이제는 이것도 점점 둔감해진다.
장장 6시간의 공연, 단 한 사람이 창을 하고 고수는 얼추 2시간마다 바뀌는데
6시간을 걷거나 서있는것만으로도 쉽지 않아보이는 힘든 여정이다.
한국 역사에서 이런 공연이 현대를 제외하고 있었을까?
조선후기에 판소리가 나왔다고 하지만 그때도 이런 전체를 공연한다기보다는
인기있는 부분을 주로 했기때문에 명창 칭호를 받아도 전체를 외우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하니
이 공연이 얼마나 고생스러운지 직간접적으로 알수 있다.

그런데 도데체 왜 이렇게 완창을 쉼없이 하는것이 명창의 반열에 오르는 첫걸음이 된것일까?
왜 수많은 소리꾼들을 이런 나락으로 밀어넣게 된것일까.
알진 못하지만 이것때문에 수많은 소리꾼들의 목이 날라가 좌절하게 되었을것이다. 
그래서 볼적마다 위태롭다. 저러다가 쓰러지는거 아닌가? 공연중에 목이 날라가는거 아닌가? 등

추임세를 열심히 하면 힘을 얻어서 더 잘할수 있다는데
위태로운 한명의 창자를 더 쥐어짜서 좋은 소리를 듣겠다는 관객의 오만은 아니었을까?

구성은 헤어지기 전까지 1막, 쑥대머리 2막, 그리고 마지막 3막 이렇게 나눠놨지만 중간 쉬는 시간은
고작해야 15분이니 이동안은 옷 갈아입는 정도 말곤 쉴수도 없는 순간에 불과하다.
관객입장에서 이 작은 시간은 몸을 좀 풀고 화장실도 다녀올수 있는 좋은 시간이지만.

처음에는 역시 목이 덜 풀린듯한 약간은 답답함이 있다.
전에도 느꼈지만 목이 덜풀린 소린지 몸상태가 좋지 않아서 나는 소린지 알기 어렵기때문에
시작부터 약간은 관객(나)과의 줄다리기를 하는 느낌이랄까?
소리꾼마다 느낌이 달라서 같은 대목이라도 묘하게 멜로디(?)나 리듬이 다르고 연기력에서도 다름이 보이니
매번 다른 기분으로 관람이 가능하다. 물론 100% 모두 '좋았다'라고 말하는건 쉽지 않다.
때에 따라서 목상태나 딕션이 너무 안좋거나 연기력이 부족하다거나 하기도 하니.

김미진 명창의 소리는 약간은 거칠지만 발음은 제법 좋은 편이라 어느정도 잘 알아들을수 있다.
(관련업 종사자가 이닌 순수한 청취자로서 듣는 입장임)
그래서 초반에 목이 덜 풀린상태라 해도 인물들을 이해하고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중간에 쉬는 시간을 지나고 이제부터 춘향이의 고행이 시작되고 많이 슬프기도 한 중간 토막이 나온다.

여성 소리꾼들이 이런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같은것을 수십년에 걸쳐 연마하게되면
자연스럽게 그 상황이 몸에 배게 될텐데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순종적인 형태로 바뀌지 않으려나?
가수가 자신의 노래 가사에 맞게 팔자가 바뀐다는게 그것에 너무 심취해서 생기는 현상으로 추정하는데
이런 판소리들은 남성우월주의가 빡빡하게 들어가있는 소설들이라서 이걸 평생 되뇌이며 산다는게
한 개인의 본성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는게 아닌가 싶다.
(남성입장에서 보면 최고의 신부감은 소리하는 여성이란 소리가 되려나?)

춘향이가 열대의 장을 맞고 감옥에 투옥된 후 사경을 헤매며 저승을 오가는 귀신 꿈도 꾸는 등
고난의 시간을 보내는 부분이라 전체적으로 슬프다.(계면조라고 하는데 이런것 까지는 잘 모름)
이때부터 목이 좀 풀렸는지 소리도 시원해진다. 소리를 듣다보면 김미진 창자의 창은 뭔가 멜로디의 고저가 좀 다르다.
힘들어서는 아닐거고(처음부터 그랬으니) 갑자기 터져나오는 부분들이 있는데
이런식의 흐름은 처음이라서 순간 순간 좀 특이하게 느껴기도 하고 신선하기도 하지만 조금은 낯설다.

역시 힘들어서일까? 춘향의 고통의 전달이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흐릿해진다.
딕션이 흐트러지기도 하고 그것때문에 리듬도 좀 꼬이고
이때는 이미 홀로 창 한지 3~4시간이 흐르고 있는 중이니 일반인이었으면 목소리 자체가 나오지 않는 시기겠지

개인적인 욕심으론 2막 부분을 처음에 하고 1막 부분을 중간에 하면 극도로 예민해진 춘향이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란 어이없는 생각도 해본다.
(녹음 음반은 항상 좋은 상태로 녹음되니 뭉개지는 현상이 없지만 실황은 거의 인간의 한계를 보게 된다.)

이쯤부터는 관객도 힘들고 소리꾼도 지쳐간다. 마지막을 앞둔 잠시의 휴식시간
하필 이때 떡을 나눠줘서 다들 먹고 들어오느라 관객 입장이 늦다.
(지난번에는 이렇게 중간에 나눠주면 입장이 늦어지니 끝나고 줘야 한다고 했다던데
이번 판소리는 6시간이나 되기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중간에 나눠준거 같긴 하지만 그럼에도 너무 늦게 들어온다)

초반에는 소리가 위태로웠다. 지친 기색도 역력하고. 아무리 공연예술이 화려한 업종이라도
한 예술가가 4시간을 쉼없이 공연하고 다음 2시간을 위해 무대에 올랐다면 그 누가 화려하게 보이겠는가

나머지 두시간을 버틴다는 표현은 예술가에겐 맞지 않아보인다. 이들은 처음처럼 관객의 감동을 위해 달려갈뿐이고
이 후 벌어질 일은 아랑곳하지 않는 불나방같다고 해야 할까.
마지막 불꽃이라는 하는건 단 한번의 마지막 같긴 해서 그렇지만,
땀도 많이 흘리고 몸도 힘들어 보이는데 소리는 더 좋아진 느낌이 나는건 왜일까?

판소리 완창이란 무대는 판소리를 한번에 다 부른다에 의미보다는
소리꾼의 인생을 단 몇시간 동안 함축하여 폭발하듯 선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무대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마지막 '어질 더질'이 나올땐 감동은 누구를 막론하고 벅참으로 밀려온다.

그럼에도 판소리완창 무대는 저들을 너무 사지로 몰아넣는거 같아서 마음이 썩 좋지 않은것도 외면하기 어려운거 같다.

소리 : 김미진
고수 : 김청만, 임현빈, 김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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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6. 5. 9.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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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평일에 회사에서 퇴근후에 가기 편한곳일까?
버스 한번타고 좀 걸으면 정동세실극장이 나온다.

오늘 공연은 총 6명의 명인들께서 한 10분정도씩 각각의 춤을 선사한다.
이승주의 '청연(淸緣)', 이창순의 '송정(松停)', 이정애의 '흥춤'
장인숙의 '무화(舞畵)', 이동숙의 '부채입춤', 허창열의 '고성오광대 덧배기춤'

이러한 공연중 내가 꼭 찝어 이것은 최고다 이것은 어렵다, 난해하다 등을 논할수 있는것은 없다.
익숙한것은 덧배기춤으로 좀 많이 본듯한(탈이 없는 탈춤버전같다고 할까?) 기분만.

저들의 춤을 보고 있노라면 상당히 매혹적이긴 한데 이 춤들은 어디서 행했던 공연예술이지?라는
의문이 생긴다. 술마시는 기방에서 공연 하기엔 넓은 공간에 미치지 못할거 같고
조선시대 백성들을 위한 공연이라고 하기엔 분위기나 형태가 맞지 않아보인다.
옛날 기인들은 어디서 이런 공연예술을 했던걸까. (궁중의 군무는 이것과는 많이 다름)

현대사회로 넘어오면서 무대란것이 생겨나고 그 환경에 맞게 완전히 바뀐,
형태만 차용할뿐 옛것의 원조와는 거리가 먼 그런 장르로 봐야 하는건가?

개인적으로 여성의 춤사위 선을 좋아하긴 하지만 남자가 거의 없는것은
춤은 원래가 남자보다 여자가 많은 분야인지도 궁금해진다.
(국립무용단 같은곳의 공연을 보면 남자들의 춤도 있고 여자들의 춤도 있지만
이런 독자적인 무대를 위한 춤엔 남자들이 것이 원래가 적은건지 판소리마냥 줄어든건지)

총 나흘동안 한 주에 2회씩 수,금을 하는데 모두 출연자가 다르기때문에
4시간 공연을 며칠의 인터미션을 두고 한다고 보면 되지만
이럴거면 차라리 1회공연을 두시간으로 하고 반복 2회(수,금 혹은 토,일)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관람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일반적으로 나흘동안 퇴근 후 시간을 뺀다는건 쉽지 않다.
이런 명인들의 춤을 언제 또 볼지도 알수 없는데 나흘동안 공연시간을 찢어놓고 그것도 평일에만 하니
나는 그 중 하루만을 선택할수밖에 없어서 찝찝함이 훨씬 더 크다.
(나머지 공연들은 어땠을까? 이분도 멋지고 저분도 멋져보이는데. 등)
공연 기획을 할땐 이렇게 만석이 될줄 몰랐겠지만 관람객 입장에서 기획해줬으면 좋겠다.
토요일은 극꼴집회때문에 공연은 하기 어렵더라도(토요일 저녁에라도 하지. 이땐 조용한데)

평일 저녁 힘들게 와서 한시간 남짓 보고 돌아가면 공연을 보는 시간보다 집에 가는 시간이 훨씬 더 길어지는
불쌍사가 벌어지는데 이러면 감동도 버스안에서 피곤과 함께 모두 사라지지 않을까.
시간 배정, 횟수, 주된 관객 등을 고려한 공연을 기획해주고 가급적 1회로 끝내지 말거나
아예 정기공연으로 분기마다 해주던가.(국립국악원에서 하는 '토요명품'같은 매주는 어렵겠지만 시즌별로라도)

국내 국악공연들이 특히 좀 두드러지는 경향은 자신들만의 잔치가 된다는것
어떤 노인은 추임세를 고래고래 소리친다. 다른 관객도 생각해서 적당한 톤으로 해야지
자기가 그 분야에 몸담고 있을테니 저러는건 이해하겠지만 지금 한국의 대다수는 추임세가 어색하다.
기껏해야 리듬에 맞게 치는 박수정도인데 그렇다면 환경에 따라서 좀 어울리는 추임세를 넣어도 되는게 아닌가?
분위기 조절 못하고 질러대듯 해대는 동종 종사자들의 추임세는 때때론 꽤나 거슬린다.
이러한 것들이 반복될수록 그들만의 모임 공연밖엔 되지 않으니 스스로들 알아서 적당한 선을 지켜주길.
(허창열 무인의 덧배기춤을 출땐 이분은 추임세를 어느때 넣으라고 잘 알려준다. 이건 흥을 올리기 위한 장치기도 하니
적당한 시기에 그에 맞는 추임세를 알려주고 관객은 그를 따라서 추임세를 넣으면 공연이 더 즐거워 지니 서로 좋은게 아닌가.
혼자만 툭! 튀어나와 추임세를 넣지 말고. 꼭 넣어야 겠다면 좀 작은 소리로.)

춤이란게 몸으로 어떠한 것을 표현하는것이니 잘 모르는 입장에선 느껴지는 추상적이며 형의상학적인
감정상태를 글자로 표현한다는건 쉽지 않아서 주변 소리만 했지만
공연은 눈물 날정도로 멋지고 아름다웠다. 다들 어느정도 연세가 있어보이는 분들인데
몸을 쓰는 예술분야라서 기력이 중요함에도 그 어떤 제약도 느껴지지 않는것또한 신기했다.

표면적으로 보여지는것 중에는 말도 있고 몸짓, 의상, 냄새, 생김세 등 많은것들이 사람을 판단하게 하는 요소들인데
춤이란게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수단중엔 가장 으뜸으로 보인다.
어느 정도냐면 저들은 자신이 정해진 절차대로 표현하고자 하는것을 표현하는데
저들의 일생이 저 춤과 같은 고혹적이며 기품있는 인격을 지녔을거란 착각(?)마져 들게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머지 이틀 남은 공연은 모두 매진이라 보고 싶어도 못본다.
개똥같다.

출연 : 이창순, 이동숙, 이승주, 이정애, 장인숙, 허창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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