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공연2026. 5. 17.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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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똔체홉극장에서 벚꽃동산 작품을 여러번 본줄 알았는데 몇년전 한번본것이 전부였다.
그러면 머리속에 들어있는 벚꽃동산은 다른 극단들의 작품이었나?
바냐삼촌, 세자매 본것을 착각한것이겠지.

이 작품은 과거 러시아의 현대화에 뒤쳐지는 구세대가 자본의 생리를 따라가지 못하여 생겨나는
형태를 꼬집는 블랙코미디 같은 작품이다.
특별히 복선도 없고(러시아 역사를 몰라서 시대에 대한 복선이 깔려있어도 나로서는)
안톤체홉의 작품들을 읽어보면 그렇게 어렵게 꼬아놓은것 없이 그대로 받아드리면 되는거 같다.
(러시아 작품들이 전반적으로 꼬아놓고 감춰놓는건 싫어하는 거 같음)

대부분 주제가 명확하고 선이 비교적 굵은 편이라서 어렵지 않으나
문제는 백년전 이야기라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로 다가온다.
고전은 그 시대를 글(책)이나 간접적으로 상상하는것을 붙여야 하기때문에
책을 읽던 영화, 연극 등 공연을 보던 중간에 큰 강이 하나 흐르고 있는거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한국의 근 현대사를 보더라도 뭔가 강건너 불구경같이 멀게 느껴진다고 할까?
(현재 한국는 근 현대사의 똥들이 계속 냄새를 피우며 길에 똥을 뿌리고 있어서 현대진행형으로 볼 수 있다.)

조선시대는 어땠을까? 아무리 군주주의라 할지라도 조선말기는 돈이 우선시되던 사회 아닌가?
노비도 사라지고, 러시아도 그런게 사라진거 같고 점차 자본을 앞세운 신진세력(로파힌)이 사회를 잠식하려는 그 과도기.
한쪽에선 공산주의를 표방한 노동자 사회를 꿈꾸는 청년(트로피모프)도 나온다.

귀족사회 구태의 전형인 라넵스카야(엄마)와 가예프(엄마의 오빠), 이들의 몸종인 피르스는 사라지는 구시대의 표상같은 인물이다.

아마도 이정도면 대충 연극의 흐름은 알수 있을것이다. 대상으로서 가교 역활을 했던 벚꽃동산
구세대와 신세대에 교도부역활을 한다고 할까? 전환점의 시작이라고 할까?

무력한 구세대들의 안일함, 신진세력들의 집요하면서 치밀하다.
이렇게 어떤 시대의 이데올로기가 바뀌는 계기는 구세대들의 나태함에서 비롯된다.
국가가 무너지고 이념이 바뀌는 시기. 전세계 어디에나 벌어지는 공통점이라 할까.

벚꽃동산은 이점을 짜증날정도로 잘 표현해주는 작품이다.
(조금 더 길고 인물들의 디테일을 더 살려달라고 하고 싶은데 지금도 2시간30분 연극이라 아쉬움)

안똔체홉 극장 이름처럼 이곳은 안똔체홉학회도 운영하면서 체홉 작품을 주로 다룬다.
그래서 가끔 체홉작품이 보고 싶을땐 이 곳이 운영하는 사이트를 들어가보면 언제 연극하는지 알 수 있는데
그중에 내가 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보면 되고 아니면 다음기회를 보면 된다.

내가 체홉 작품 몇가지를 읽었는지 요즘은 고전을 마구잡이로 좀 읽다보니 섞여서 도통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극장에서 같은 작품 몇번을 보면 어느정도 책을 읽은것처럼 섬세한 느낌을 받을수 있다.
그리고 같은 작품을 비슷한 배우들이 원작을 크게 변화없이 그대로를 적어도 1년에 한번은 공연하기때문에
좀더 심층적으로 바라보기도 좋다. 일반 극장에서 올라오는 작품들은 언제 다시 할지 알 수 없어서
디테일함을 알아채는것이 쉽지 않지만 이곳은 다음에 또 보면 된다.

그리고 내가 적지 않은 크고 작은 극장들 대부분을 다녀봤지만 이곳만큼 의자가 좋은 곳은 없다.
의자만 좋다. 바닥은 좀 삐걱이고 앞뒤 간격이 제법 넓지만 대형극장만큼 여유로움은 없다. 그러나 의자는
영화극장 그것이라서 당황스러울정도로 편하다.(이곳에 올적마다 의자는 특이하단 생각이 듬)
그래서 신경통이 있음에도 불편함 없이 관람할수가 있다. 그리고 체홉 작품은 흐름에 지루함이 특별히 없고
이곳 배우들의 연기력 또한 최고 수준이라서 부족함이 없다.
역시 문제는 고전이라는 것.(이 같은 배우들이 일반 연극 할때도 한두번 본적 있는데 그땐 확실히 다른 느낌이 듬)

난 그래도 오늘같이 체홉작품이 보고 싶을때 이곳에서 뭘 하고 있나? 제일 먼저 찾게 된다.
그리고 이곳이 내게는 표준이 된것처럼 다른 극단이 체홉작품을 올릴때 이곳 작품과 비교하게 된다.
원작을 이곳만큼 그대로 표현하는 곳이 드믈고 다른 극단들은 현대작품처럼 각색들을 하기때문에 늬앙스가 바뀌거나
난해해진다거나 하는게 대부분이라서 개인적으로 원작을 최대한 살리는 이곳 공연이 좋다.

바냐삼촌(한국식으로 각색한 '순우삼촌'이란 작품도 있음), 세자매, 갈매기, 벚꽃동산, 이바노프 까지는
이 곳 안똔체홉극장에서 볼수 있는데 체홉의 단편 연극도 좀 올라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얼마전에 한거 같기도 하고 다른곳인거 같기도 하고)

대학로엔 이렇게 테마를 갖고 꾸준히 공연을 하는 곳들이 몇몇 있는데
나는 으뜸을 꼽으라 하면 이곳 안똔체홉극장의 작품들을 꼽는다.
오랜 시간 반복되어 숙련된 연기와 군더더기 없는 무대, 보기 힘든 훌륭한 관객석,
이유는 모르지만 커피도 주고 연극 관람 중에 마셔도 됨.(커피를 들고 들어가 의자에 꼿아놓으면 됨)
두번째로는 동국극장의 무죽페스티벌인데 연극만 놓고 보면 명품배우들의 능숙한 연기때문에
재미없어도 재미있지만 관객석이 너무 안좋다. 신경통때문에 객석이 안좋으면 좀 불편하다는 단점이 있다.
이 두 곳이 대학로의 수많은 극장들중에 가장 사랑하는 극장일것이다.

요즘같이 연극보기 좋은 계절엔 체홉 작품 한편 보는것도 후회는 없을듯 싶고
지금 한국사회가 뭔가 좀 바뀌려고 꿈틀꿈틀하기때문에 잘 어울릴수도?

출연 : 권민중, 정인범, 정연주, 한소진, 진민혁, 최재호, 김용성, 정혜원, 장희수, 최인철, 유경열, 노수린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6. 5. 17.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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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것을 2024년에 봤었는데 예매하고 오늘 극장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을때까지 몰랐다.
채승혜배우께서 관객들 안내하며 분위기을 올리고 있었는데 제목 늬앙스와는 다르게
장르가 코미디인가? 그런데 왜 제목이 철학적이지?라는 생각까지 했었다.

극이 시작되고 한 5분정도 지났을까? 응? 본거 같은데? 설마?
조금 더 지나니 확실히 본것이고 모든것이 조금씩 기억나기 시작하는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1부진행중 2부나 3부가 생각난것은 아니다. 물론 2부가 진행되고 있는데 3부가 떠오른것 또한 아니다.
진행되는 중에 봤던거였구나. 라는 정도만 생각날뿐 엄마역으로 나온 배우의 목소리가 성우같은데
처음 듣는 느낌이었다.(내용은 기억나지만 배우의 느낌은 모두 잊어버렸던거 같음.)

한번 보고서 오랜세월 기억에 남는 연극은 흔한것이 아니니 별로 이상한 현상은 아니지만
제목만으로 한참을 기대했던 내가 조금 부끄러워졌다고 할까?

총 3부작으로 되어 있고 과거, 현재,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현재이고
엄마의 과거, 딸의 현재, 엄마와 딸의 현재 이런 구성이다.

이걸 가족 연극이라 해야 할지 자기성찰극이라 해야 할지
물론 코미디는 결코 아니고 그렇게 웃긴 부분이 있는것도 아니다.
엄마와 딸, 현재의 엄마가 된 과거의 엄마의 일대기 같은?
제목과 같이 왜 당시에 없어질수 있었지만 지금 이렇게 있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이야기.

여기서 보면 딸과 엄마 이야기 같지만 전체적으로 순수한 엄마이야기다.
엄밀히따져서 딸은 없다. 딸이 엄마에게 있었다면 항암치료를 했겠지만 끝까지 그러지 않는다.
남겨진 자에 대한 예의정도만 보일뿐인데.
2부는 연극단원들끼리 1부 과거 엄마의 내용으로 만든 연극에 대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서
1부는 3부를 뒷받침 해주지만 2부는 왜 있는지까지는 모르겠다.
있어서 나쁠것 없을정도로 지루하지 않고 충분히 재미있고 흐름상 어색함 또한 없다.
단지 필요성한 부분까지는 아닌거 같을뿐이다.
(1부에 붙어서 몇분정도 연극이 끝난 후 에필로그처럼 붙었으면)

2024년에 봤을때의 사진 처럼 무대장치도 같고 배우의 연기도 크게 다르지 않은 기분이 든다.
배우도 같다. 심지어 연극 소개페이지도 대동소이하다. ^_^;

그때는 어땠을까? 당시 관람기를 읽어보면 지금과는 다르게 뭔가 이해하는데 약간은 어려움이 있었다.
오늘은 상대적으로 안그랬는데 집중력이 좋았던건지(2년만에?) 조금 부연설명이 추가 된건지

그때는(2024년) 어머니와 딸, 내 어머니가 떠올랐다고 관람기에 적어놨지만
묘하게도 이번에는 전혀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딸 덕분에 자기성찰의 기회를 찾았고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미래를 좀더 풍요로운 심정으로 지낼 수 있게 된 것으로 이해된다.

어쩌면 자식들만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부모들에게 말하고자 했던것일지도.
왜 내가 없지 않고 지금 이렇게 있을수밖에 없는것인지. 이것은 내 자식때문이 아니라
나의 기억의 연속성때문이란것. 물론 내 마음대로의 해석이다.

다음에 또 공연하면 그땐 봤던것이라는 기억이 나겠지만
신경안쓰고 예매버튼을 누를거 같은 다시 보고싶어지는 연극이었다.

출연 : 구자승, 조주현, 나종민, 장하란, 하지웅, 김하리, 김태우, 이정근, 채승혜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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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6. 5. 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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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긴 공연은 걱정부터 앞섰는데 이제는 이것도 점점 둔감해진다.
장장 6시간의 공연, 단 한 사람이 창을 하고 고수는 얼추 2시간마다 바뀌는데
6시간을 걷거나 서있는것만으로도 쉽지 않아보이는 힘든 여정이다.
한국 역사에서 이런 공연이 현대를 제외하고 있었을까?
조선후기에 판소리가 나왔다고 하지만 그때도 이런 전체를 공연한다기보다는
인기있는 부분을 주로 했기때문에 명창 칭호를 받아도 전체를 외우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하니
이 공연이 얼마나 고생스러운지 직간접적으로 알수 있다.

그런데 도데체 왜 이렇게 완창을 쉼없이 하는것이 명창의 반열에 오르는 첫걸음이 된것일까?
왜 수많은 소리꾼들을 이런 나락으로 밀어넣게 된것일까.
알진 못하지만 이것때문에 수많은 소리꾼들의 목이 날라가 좌절하게 되었을것이다. 
그래서 볼적마다 위태롭다. 저러다가 쓰러지는거 아닌가? 공연중에 목이 날라가는거 아닌가? 등

추임세를 열심히 하면 힘을 얻어서 더 잘할수 있다는데
위태로운 한명의 창자를 더 쥐어짜서 좋은 소리를 듣겠다는 관객의 오만은 아니었을까?

구성은 헤어지기 전까지 1막, 쑥대머리 2막, 그리고 마지막 3막 이렇게 나눠놨지만 중간 쉬는 시간은
고작해야 15분이니 이동안은 옷 갈아입는 정도 말곤 쉴수도 없는 순간에 불과하다.
관객입장에서 이 작은 시간은 몸을 좀 풀고 화장실도 다녀올수 있는 좋은 시간이지만.

처음에는 역시 목이 덜 풀린듯한 약간은 답답함이 있다.
전에도 느꼈지만 목이 덜풀린 소린지 몸상태가 좋지 않아서 나는 소린지 알기 어렵기때문에
시작부터 약간은 관객(나)과의 줄다리기를 하는 느낌이랄까?
소리꾼마다 느낌이 달라서 같은 대목이라도 묘하게 멜로디(?)나 리듬이 다르고 연기력에서도 다름이 보이니
매번 다른 기분으로 관람이 가능하다. 물론 100% 모두 '좋았다'라고 말하는건 쉽지 않다.
때에 따라서 목상태나 딕션이 너무 안좋거나 연기력이 부족하다거나 하기도 하니.

김미진 명창의 소리는 약간은 거칠지만 발음은 제법 좋은 편이라 어느정도 잘 알아들을수 있다.
(관련업 종사자가 이닌 순수한 청취자로서 듣는 입장임)
그래서 초반에 목이 덜 풀린상태라 해도 인물들을 이해하고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중간에 쉬는 시간을 지나고 이제부터 춘향이의 고행이 시작되고 많이 슬프기도 한 중간 토막이 나온다.

여성 소리꾼들이 이런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같은것을 수십년에 걸쳐 연마하게되면
자연스럽게 그 상황이 몸에 배게 될텐데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순종적인 형태로 바뀌지 않으려나?
가수가 자신의 노래 가사에 맞게 팔자가 바뀐다는게 그것에 너무 심취해서 생기는 현상으로 추정하는데
이런 판소리들은 남성우월주의가 빡빡하게 들어가있는 소설들이라서 이걸 평생 되뇌이며 산다는게
한 개인의 본성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는게 아닌가 싶다.
(남성입장에서 보면 최고의 신부감은 소리하는 여성이란 소리가 되려나?)

춘향이가 열대의 장을 맞고 감옥에 투옥된 후 사경을 헤매며 저승을 오가는 귀신 꿈도 꾸는 등
고난의 시간을 보내는 부분이라 전체적으로 슬프다.(계면조라고 하는데 이런것 까지는 잘 모름)
이때부터 목이 좀 풀렸는지 소리도 시원해진다. 소리를 듣다보면 김미진 창자의 창은 뭔가 멜로디의 고저가 좀 다르다.
힘들어서는 아닐거고(처음부터 그랬으니) 갑자기 터져나오는 부분들이 있는데
이런식의 흐름은 처음이라서 순간 순간 좀 특이하게 느껴기도 하고 신선하기도 하지만 조금은 낯설다.

역시 힘들어서일까? 춘향의 고통의 전달이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흐릿해진다.
딕션이 흐트러지기도 하고 그것때문에 리듬도 좀 꼬이고
이때는 이미 홀로 창 한지 3~4시간이 흐르고 있는 중이니 일반인이었으면 목소리 자체가 나오지 않는 시기겠지

개인적인 욕심으론 2막 부분을 처음에 하고 1막 부분을 중간에 하면 극도로 예민해진 춘향이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란 어이없는 생각도 해본다.
(녹음 음반은 항상 좋은 상태로 녹음되니 뭉개지는 현상이 없지만 실황은 거의 인간의 한계를 보게 된다.)

이쯤부터는 관객도 힘들고 소리꾼도 지쳐간다. 마지막을 앞둔 잠시의 휴식시간
하필 이때 떡을 나눠줘서 다들 먹고 들어오느라 관객 입장이 늦다.
(지난번에는 이렇게 중간에 나눠주면 입장이 늦어지니 끝나고 줘야 한다고 했다던데
이번 판소리는 6시간이나 되기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중간에 나눠준거 같긴 하지만 그럼에도 너무 늦게 들어온다)

초반에는 소리가 위태로웠다. 지친 기색도 역력하고. 아무리 공연예술이 화려한 업종이라도
한 예술가가 4시간을 쉼없이 공연하고 다음 2시간을 위해 무대에 올랐다면 그 누가 화려하게 보이겠는가

나머지 두시간을 버틴다는 표현은 예술가에겐 맞지 않아보인다. 이들은 처음처럼 관객의 감동을 위해 달려갈뿐이고
이 후 벌어질 일은 아랑곳하지 않는 불나방같다고 해야 할까.
마지막 불꽃이라는 하는건 단 한번의 마지막 같긴 해서 그렇지만,
땀도 많이 흘리고 몸도 힘들어 보이는데 소리는 더 좋아진 느낌이 나는건 왜일까?

판소리 완창이란 무대는 판소리를 한번에 다 부른다에 의미보다는
소리꾼의 인생을 단 몇시간 동안 함축하여 폭발하듯 선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무대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마지막 '어질 더질'이 나올땐 감동은 누구를 막론하고 벅참으로 밀려온다.

그럼에도 판소리완창 무대는 저들을 너무 사지로 몰아넣는거 같아서 마음이 썩 좋지 않은것도 외면하기 어려운거 같다.

소리 : 김미진
고수 : 김청만, 임현빈, 김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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