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공연2025. 11. 30.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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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이 두번째 보는것인데 예매할때도 몰랐고 볼때도 초반엔 몰랐다.
중반쯤 되서야 아~ 본거였구나. 싶었고. 올해는 아르코쪽에서 동성애 관련 연극에 집중하는가 싶은
기분이 들었지만 이 연극은 사실 그런것하곤 거리가 있다.

세대간의 벌어질수 있는 이해의 장벽같은 존재.
개구리가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고 하지만 그 시절 모든것을 담고 살았음에도
새로운 올챙이와의 상반된 사상들. 지향했던 삶과의 괴리, 왜곡과 굴곡
이건 지금 한국 사회에서 문제되고 있는 세대간 갈등의 문제일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일부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사람을 현혹시켜 인위적으로 갈등을 유발한것이지
연극에서처럼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는 필연같은 현상은 아니다.
물론 이것이 필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극중의 배경 세대와 나와는 거의 같은 세대기때문에
연극을 보는내내 나의 행동이 지금 세대들에게 상처를 줬던것은 아니었을까?란 생각을 계속 곱씹게 된다.
그러면서도 연극에서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왔다 갔다 하는데(플래시 백이 좀 많지만 극단적으로 나뉘어서 헷갈리진 않음)
그와 동시에 나도 나의 과거 시간으로 왔다갔다를 해본다.
주말에는 어김없는 최루탄냄새로 친구를 만나려고 시내를 나가면 언제나 코를 막고 있었어야 했다.
그러나 연극 속의 그 격동기는 아니었다. 조금 흐른 김영삼-김대중 정부시절무렵이 내겐 20대였으니
김영삼정부때를 회상해보면 무언가 흥청망청 여유있는 시대였던거 같긴 하다. 하지만 내 환경은 부유함보단 빈곤함에 훨씬 가까웠다
바로 이후 IMF를 정통으로 맞았지만 워낙 저임금 직장이었기때문에 타격도 없었다. 더 내려갈수 없는 바닥.

내 바로 윗세대인 486세대가 이나라에서 제대로 민주화 학생운동을 했던 세대들이었을것이다.

이 연극의 내용도 이 세대를 주 타켓으로 하지만 연극이 나온 시기를 생각하면 이제는 같은 기성세대가 되버렸기때문에
저 교수(연수)가 고통받고 이해 못하는 그 벽이 이해되려하고 하고 있다.
젊었을때 추구하던 무엇들. 그것을 깊이 간직하고 살아왔으나 이미 주변은 모두 퇴색되어
당시 타파하겠다고 목청 올렸던 바로 그 세대가 되버린 환경. 그러나 나(연수)는 계속 이어가고자 했는데
어이없겠도 지금의 젊은 세대가 그것을 거부한다. 무엇이 이데올로기를 이렇게 바꿔버렸을까?
망가뜨려버렸을까? 내가 망가진것일까? 저 학생이 망가져있는것일까?
모든것이 조심스럽지만 모든것이 이해 안된다. 동시대의 친했던 친구도, 지금 세대가 나(연수)를 두려워 하며 고소한 학생의 이유도

나로서는 어떤 결론을 내주길 기대하지만 내가 못 찾았던, 내 길이 맞는지 증명받고 싶은 마음에
끝엔 어떤 해답을 원하지만, 연수 역시 아무런 해답을 찾이 못한다. 나 역시 극장을 나올때도 그전과 마찬가지로
어떠한 해답도 갖질 못하고 나올수 밖에 없었다.

관객에게 너무 무겁고 많은 질문을 던지는 훌륭한 연극이지만..
아직도 좀 이해는 안된다. 학생이 시간강사를 두려워 하나? 전임교수도 아니고 문제생기면 다음학기엔 웬만해서 보기 어려운 강사에게?
학점이 엄청 좋아서 학점관리를 해야 할 사람이라면 그렇다고 하지만 성적도 별로인 친구가?
설정 배경은 좀 이해는 안된다. 하지만 이것도 내가 이미 늙었기때문에 이해 못하는것일수 있다.
경험이 적은 젊은 세대는 훨씬 예민하고 나약할수 있는데 젊다고해서 무조건 무모하게 덤비거나 하는것은 아닐것이다.

하지만 이게 나의 세대때와 지금의 세대의 어떤 행동양식이 달라서. 그 형태를 내 세대는 이해하기 어려워 한다.
반대로 젊은 세대도 기성세대를 이해못하는건 마찬가지겠지. 오히려 이건 당연할거 같은데
왜 나는 저들을 이해 못하는 것인지.. 그냥 젊어서 저러겠거니라고 치부 해 버린다.
보기 싫어서 회피하는거 같아 마음에 드는 행동은 아니지만 이것 외엔 내가 할 수 있는 대응 방법을 찾지 못하기도 했다.

참 우낀것이 연극에서 연수의 젊었을때의 사랑도 꽤나 어설프다.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과는 참담하다. 이것이 미래의 연수에게까지 이어지는데 이건 누구나 비슷하지 않은가?
무엇인가 한창 어설플 나이때. 그때의 것이 생각보다 바뀌지 않고 늙을때까지 이어지는 어리숙함.

어쩌면 인간의 시간은 생각보다 이러한 결점을 고치기엔 너무 짧게 주어진 단편이 아닐까.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훌륭한 연극이었다. 무대 효과나 장치들이 좀 섭섭하긴 했지만(좋은 무대인데 좀 장치들을 다양하게 활용하지)
지난번에 봤을때와는 조금 다른 생각, 아마도 내년에도 보게 된다면 오늘과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들거 같아서 기대된다.

출연 : 옥자연, 장선, 송치훈, 박다미, 황재성, 최강현, 김관식, 이서한, 최수현, 김하정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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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5. 11. 29.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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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영화였다니.. 기본적으로 성소수자를 말하긴 하는데
간간히 정동극장도 그렇고 이런류를 무대에 올리지만 정작 퀴어하곤 크게 관계없다.
물론 동성애를 다루고 있기때문에 당연히 성소수자긴 하지만 그들이 직면한 문제를
파해치거나 사회고발한다거나 하는게 아닌 그냥 멜로물이다. 이번 역시 거의 다름 없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퀴어 하면 동성애자들만 대변한다. 남여자동성애자 이들은 성소수자라고 하기엔
좀 많지 않나? 오히려 성소수자가 아닌 성비주류 라고 하는게 맞지 않나? 물론 퀴어에서도 빠져야 하고.
그리고 퀴어에 왜 양성애자가 들어있는걸까? 그리고 무성애자는 또 왜? 무성애자를 놓고 누가 뭐라 하나?
사회적 편견이 있어서 불이익을 받는 부류였던가? 세력을 키우려고 이런부류까지 억지로 붙여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퀴어에 인간적으로 양성애자(이들은 엄밀히 봐서 욕심쟁이들이지)와 무성애자는 빼자.
아마도 사회적으로 가장 많은 탄압을 받는 대상은 트랜스젠더겠지만 절절한 영화나 연극을 본 기억은 없다.
동성애관련은 남녀 모두 영화도 훌륭한것들이 많아서 연극도 유명한 작품이 나올법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런 멜로정도로 가볍게 접근하는거 같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남자동성애를 다루는 연극은 아직 못본거 같다.
여자동성애는 한국사회에선 그나마 상대적으로 덜 비아냥 거리는 반면 남자동성애는 도를 넘는 차별이 많아보이는데
남녀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한국사회에선 그렇다. 관객수도 엄청난 차이가 있을듯도 하다.

연극에서 청송은 지역을 말하는데 외진곳인지 이들은 이곳에서 퀴어라는 단어를 못 들어봤다고 한다.
 TV가 있었을텐데.. 나도 TV에서 처음 이 말을 들은거 같은데.(애초에 관심 없는 주제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고)
신기하게도 공부를 잘했다는 영주는 대학을 못들어가서 청송에 남고 가윤은 대학에 들어가서 서울로 상경했다.
서로 그렇게 좋아했다면 영주는 서울에서 재수 학원을 다니면 서로 헤어지지 않아도 될법 했지만
차별의 시선이 두려웠을까? 청송은 어차피 사람도 많지 않으니 둘만의 관계를 유지할수 있었겠지만
(내가 지금 서울을 못떠나고 어떻게든 여기에 남아있는것도 다른곳에 대한 두려움때문인데 비슷한건가)

서울에서 새로 만난 연인 은하. 이 캐릭터는 호방하다. 말 그대로 있는집 자식인지 사회생활을 하지도 않았는데
오피스텔이 있어서 가윤을 대리고 와 동거를 하면서 이 둘이 서로 사랑을 하게 되었지만
문제는 청송에 남아있는 영주. 그런데 영주는 가윤을 기다리는건가? 나(이산)역할이 계속 상황을 나래이션 하다보니
오히려 낭독극도 아닌데 좀 어지럽다고 해야 할지 산만하다고 해야 할지. 이 사람은 미래의 가윤인건지
저 가윤은 나의 과거의 나인지. (과거의 나를 회상하는거 같긴 함)

가윤은 사랑을 한것일까? 아니면 신분상승을 원했던걸까? 지상으로 나가고자 했던게
물리적 반지하 집에서 고층 오피스텔로 전환 되었지만
정작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대외적으로 말한것은 없다. 오히려 반대로 철저하게 감추었을뿐
이걸로 보면 가윤은 영주와 은하를 이용 대상으로만 선택한 것인가?

스스로의 선택으로 반지하로 되돌아온것은 그것이 온전한 내것이 아니라는것을 알게되었기때문있었을거 같다.

일본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처럼 쿨하게 훌훌 털고 그냥 지나가면 되는건가?
인생이란게 다 이렇게 한쪽으로 밀어내며 살아가는거긴 한데
무엇이 주제인지 모르겠고 왜 이런 연극에 퀴어라는 명사를 자꾸 써대는지도 모르겠다.
이상하게도 퀴어 어쩌구 저쩌구 하면 여성관객들이 확실이 많이 보인다. 오히려 연인관객은 상대적으로 적어진다.

이러면 퀴어연극이라도 퀴어라는 수식어를 최대한 빼서 남녀 모두를 보게 해야 할텐데
연출 자신은 관객이 많이 몰리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던것일까? 아무리 봐도 그냥 멜로물..

성장통 드라마의 플롯을 그대로 답습하는 아프고 고민하고 어려웠던 한때의 사랑 기억들의 몇조각 정도를 나열한것뿐이니
뭐라 말해야 할지 좀 난감하다.

그런데 영주는 뭐하고 있으려나. 오히려 이 사람이 훨씬 매력적인 인물인거 같은데
아직도 청송에서 살고 있나? 가윤은 청송을 왜 그렇게 증오를 했을까?
아무래도 결론은 삶의 질(돈)때문이었겠지. 그러니 누구는 좋은곳으로, 다른 누구는 꼴도 보기 싫은 곳으로 기억되는거겠지 

출연 : 김섬, 박은호, 이산, 정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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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5. 11. 22.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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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적부터인지 이 극장에선 안똔체홉작품을 봐야 할듯하게 길들여진거 같다.
이번 연극 제목이 '순우 삼촌'이지만 변화되는 시대가 불편한 바냐 삼촌의 한국판이랄까

롯데월드 뒤쪽 석촌호수쪽 냇가가 한강 본류였다는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 역시도 알게 된지 얼마 안되었는데
그 이유는 지금있는 한강이 너무 거대하니 주변 지류들은 그냥 냇가정도로만 생각하게 된다.
실제 강이 이렇게 넓은것도 토목공사로 인한것일뿐 한국의 대부분 강을 보면 서울 한강처럼 넓은곳은 없다.

당시(1970년대) 잠실 일대에 개발이 들어가면서 일부는 매몰하고 일부는 한강을 더 넓게하는 등 이것저것 한 후
엄청난 아파트를 지어댄것이 지금의 대단지 아파트들일텐데 바로 직전까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런데 당시에 잠실(섬)은 홍수가 엄청 자주 났다고 한다. 그럼에도 수백가구가 살곤 있었다지만
매년 장마가 있는 한국 기후에서 어떻게 살아갔을지.. 또 어떤 계층이 살았을지는 뻔한거 같다.

이곳에서 용이 나왔는데 바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강원 그리고 이 사람을 뒷바라지 한 조환
이강원이 갑자기 온것은 땅을 팔기 위함?(중간쯤 교수자리때문같음) 하지만 이 땅에서 먹고 살았던 조환은 반발한다.
우끼게도 스스로 자살을 시도하다가 이상하게도 순순히 모든 땅을 넘긴다. 왜 저항을 안한 것일까.
안똔체홉 작품도 그렇고 이 각색한 작품도 그렇고 (안똔체홈 바냐삼촌은 엄밀히 말해서 총으로 쏘기도 해서 팔지 않았는데)

좀 특이하다. 요즘 톨스토이 단편집을 좀 보고 있는데 생각보다 신을 빙자해서 자신의 처지에 저항하지 않는다.
왜 그러지? 왜 고통받고 탄압받는데 이것을 이겨내려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라 하며 인내하라고 하는거지?

결국 조환은 이강원의 딸마져 책임지며 남았는데 앞으로 땅도 없는데 어떻게 먹고살지도 좀 납득 안되는 상황이다.
바냐삼촌과는 좀 다르게 한국에서 개발이 들어가면 모두 다 갈아버리니 집한채 고작 있어봐야
그것으로는 어떠한 생계도 해결되지 않는다.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해 보이는 이 집에서 엄마라는 사람은 배다른 자식인 이강원은 남인데도 불구하고
이강원에 대한 엄청난 팬심을 보이는데 왜 이럴까. 바냐삼촌을 봤을때도 좀 이해는 안됬다.
하지만 그 작품과 이 작품의 배경이 좀 다른거 아닌가?
바냐삼촌은 적당히 먹고 살 정도의 토지가 있었지만 순우삼촌은 매년 홍수로 싹 슬려가는 잠실섬에서 농사로 먹고 사는 형편이다.
땅이 있어봐야 가치가 얼마나 된다고..
차라리 배경이 양재, 신사, 삼성 이런곳이라면 논밭이 있던 곳이니 납득될수도 있겠지만 하중도로 여의도, 밤섬, 섬유도같은 잠실섬이었는데
개천에서 용이 날순 있었지만(미국에서 공부하는 뒷바라지가 가능하긴 한 시절인가? 일단 대학교까지는 한국에서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데)
그리고 연극 전반적으로 배경 해설이 좀 미흡해서
생뚱맞은 저 박사와 젊은 애인, 딸, 배다른 동생과 엄마 등 인물들에 대한 배경설명이 거의 없다.
바냐삼촌에서는 교수이자 매형을 지원하는 것이고 그쪽 세계를 동경하하니 그럴수 있는 심정적인 납득도 충분히 된다.
또한 전체적인 인물 배경도 별로 이상하지 않으며 충분히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
물론 여기서도 어머니는 바냐편보단 교수편을 드는 신기한 현상이 있지만..

그러다보니 바냐삼촌의 답답하면서 암울한 격변하는 근현대서의 이면을 보는 느낌이 있었던 반면
어떻게? 왜? 저들은 뭐지? 저 사람은 왜? 라는 의문 투성이인 이상한 한국판 바냐삼촌 아류작을 본 느낌이다.

내용 흐름에도 어떤 기대를 할만하지 않고 새련되었거나 신선함은 없지만 고전은 그 나름대로 독특한 맛이 있는데
이건 웬지 이도 저도 아닌 그냥 한국의 바냐를 만들고 싶었던 욕심에서 나온 특이한 작품이 아닌가 싶었다.
한국은 너무 심한 격동기들이 있어서(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두번의 구테타 군부정권)
차라리 고려에서 조선으로 변화될때가 더 잘 어울릴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출연 : 전순우, 전건우, 민다정, 전지숙, 강석준, 정문자, 정수자, 김철구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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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