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공연2024. 9. 14.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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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가 시작되었다. 추석연휴때라면 저녁에는 싸늘해야 하는데 아직도 덥다.
9월에 열대야도 있다고 하니 지구가 더워지긴 했나본데 북쪽으로 이사해야 할까

변강쇠 점 찍고 옹녀? 변강쇠.옹녀 이렇게 표현되는건가?
포스터를 봐도 그렇고 한국사회에서 변강쇠, 옹녀의 이미지는 코미디언에 가까운 캐릭터이다.
전례된 내용의 변강쇠는 동내 양아치 같은 존재랄까? 물론 섹스를 좋아하고 잘(?)했는지 여자들도 많이 따른거 같다.
다만 영화나 기타 매체에서 변강쇠는 오직 섹스에만 몰빵한 단순한 캐릭터에 오줌발(?) 미친 그런정도?

변강쇠전의 옹녀는 청상살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남편들이 모두 죽는다.
그지같은 말중에 "남편 잡아먹는 년"이란 말이 이런곳에서 나온 것일텐데 이제는 살아져야 할 말들이지만
우수갯소리로 지나가듯 말하는 것은 아직도 남아있는거 같다. (현대극에선 완전히 없어져야 될 말같은데)

아무튼 창극은 옹녀의 등장부터 시작한다. 물론 남편들이 죽어난다. 여차저차한 사연으로 몇명이 죽고
동내 남자들이 가만두질 않았는데 그러다보니 이들도 다 죽어나서 월경촌이 과부촌이 되기직전 그녀는 마을에서 쫓겨난다.
여기까지 옹녀의 바탕이 되는 고난이 나오는데 이상하게 너무 서글펐다. 저 여자의 바람은 한사람과 백년해로하겠다는 대단하지 않은것인데
그게 안되서 결국 저지경까지 몰린것 아닌가. 아마도 죽은 남자들만이 저 여자의 순수성을 이해줄수 있었을것이다.
옹녀의 노랫가락이 너무 슬펐지만 장르가 코미디인지라 눈시울을 닦아낼수밖에 없었다. 한국 노랫가락들이 전반적으로
너무 슬프기도해서 가슴속 깊이 끌어내는 비극으로 만들어도 가능할법한데
'눈물없인 볼 수 없는 옹녀전' 뭐 이런? 언젠가 볼수 있으려나.. ^_^

그렇게 유량민이 되어 어디론가 떠나가다 변강쇠를 만난다.
변강쇠는 동내양아치마냥 놀고 먹고 여자들과 하룻밤 정을 통하고 또 다른곳 가서 그렇게 놀고 먹는다.
어떻게 돈도 안벌고 그럴수 있는지 조선후기땐 지금 한국보다 복지가 좋았던건지 여자들이 먹여살린건지 아무튼 부러운 능력이다.
옹녀와 변강쇠가 만나 부부의 정을 통할땐 온천지가 요동치내마내 하지만 영화같이 웃긴 장면들이 묘사되진 않는다.
(천지가 흔들리고 땅이 갈라지고 오줌싸면 태양을 식히고)

아무튼 전례되는 내용도 그렇고 이들은 분명 남다른 성기를 지니고 있었던지 그 묘사들이 기묘하다.
하지만 알아들을수 없다. 어느시절 말인지 한문인지 뭔지 자막을 봐도 모르겠다. 은유인거 같긴 한데 단어의 표면적 의미도 모르겠으니
이게 말장난인지 학술적 용어인지 뭔지.. 전라도 사람들은 알아듣나? 나만 못알아듣고 있는건가?

이렇게 물고 빨고를 어느정도 그러다가(얼마나 그런건지 모르지만 짧은 시간은 아닌거 같은데 이 사람들은 밥 안먹고도 가능한건가?)
마을로 내려가 정착하려고 했으나 양아치인 변강쇠가 일을 할턱이 없지 않은가.
결국 옹녀만 뼈빠지게 일을 하며 변강쇠를 먹여살리다가 결국은 지리산 어디론가 들어간다. 변강쇠전은 유량민들의 고단함을 표현하기도한다지만
이 극에서는 그러한 것이 표현되지 않는다. 게으른 한 사람과 사랑이란 이름으로 그 사람을 먹여살리기 위한 한 사람
그렇지만 그 게으른 변강쇠도 옹녀말을 안듣는것은 아니다.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라도 조금은 하려 했으니.

원작은 변강쇠가 저주를 내려서 옹녀가 재혼도 못하다가 힘들게 풀렸다곤 하지만
이 극은 전체적으로 둘의 사랑만큼은 애틋하게 표현된다. 변강쇠는 죽어서도 옹녀를 그리워 하고 옹녀는 변강쇠가 죽을때까지도 온갖노력을 하고
변강쇠가 죽어서도 장승들을 죽여가며 변강쇠를 되찾으려 애쓴다. 죽은 사람을 살릴수 없지만
적당한 해피엔딩으로 코미디 장르에 맞도록 그럭저럭 각색되어있다. 일반적인 코미디장르가 그러하듯 다 보고 나면
남는게 별로 없다. 해학적인 블랙코미디는 좀 다르겠지만 아무튼 그냥 남는거 없는게 코미디란 장르다. 스트레스 해소는 되었을라나..

사람들마다 취향이란게 있으니 이 극의 표현을 놓고 뭐라 하긴 그런데
전체적으로 말장난들의 연속이다. 그로인한 웃음이 나오는것은 좋지만 아쉬움이라면 해학적인 블랙코미디 요소는 찾아보기 힘들다는것이다.
요즘 다시 부활한 개그콘서트란걸 보면 시대를 반영한 정치.사회풍자는 오간데 없이 상대방 외모비하로 웃겨먹는 코미디의 기술 중 가장 천박함만이 보여서 못보겠던데
이 작품도 그런 느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10년전에 만들고 시대상을 반영하며 바뀌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울궈먹고 또 울궈먹고 또 울궈먹으니 그런것이겠지만
과연 변강쇠전이란게 처음 나왔을때 단순히 말초신경만 자극하는 대중예술로 탄생했을까?란 생각은 한번쯤 해보는것도 나쁘지 않아보인다.

그리고 항상 느끼는 거지만 한국의 전통 창 발성은 떼창에 과연 어울리는가?이다.
특히 국악기를 서양악기들마냥 세팅하고 마치 오페라를 연상시키듯
떼창을 하려면 오페라나 대형뮤치컬들 처럼 화음을 좀 맞추고 나눠서 전체가 하나처럼 들리면서도 복잡함이 섞인 심정을 표현하면 좋지만
그런것은 없다. 혼자 부르는건 심금을 울려서 사람 미치만드는데 떼창은 정신산만하고 시끄러워 소음처럼 다가온다.
좋은 청력에 절대음감이라도 갖고 있는 사람이 이런 음악을 들으면 미쳐버릴지도 모를일이다.
떼창때만큼은 발성을 좀 현대적으로 바꾸고 음을 좀 나눠서 화성(和聲)이란걸 좀 셋팅하면 어떨까 싶다.
솔직히 떼창때는 짧은 시간이라도 너무 힘들었다.

국악의 고질적으로 섭섭했던것은
고작 10년된 따끈따끈한 신작인데 자막을 보지 않으면 문장 한개도 제대로 듣기어렵다는 것이다.
옹녀는 북쪽 사람인데 왜 전라도 사투리를 써대고 있냐?
단어들도 좀 현대적으로 만들고 딕션좋게 만들어 자막을 안보고 배우들의 표정을 보며 바로 알아들을수 있으면 좋겠지만
머나먼 미래의 얘기다. 어쩌면 구글 통역기를 켜놓고 듣는 시대가 먼저 올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때쯤이면 한국악은 사라지고 유물로나 남아있겠지. 적어도 지금처럼 말초신경만 자극하는 정도라면
그리고 자막은 좀 중앙에 넣어라.. 눈 사시되게 무대 밖 양쪽에 넣지 말고.
사이코페스도 아니고 왜 관객에게 이런고통을 주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무대 밖 양쪽 모니터에 자막을 쳐까는걸 보면 욕이 안나올수가 없다.

그런데 옹녀의 소리는 왜 그렇게 슬펐을까.
그냥 너무 슬펐다.
가을엔 마냥 즐거운 그런것을 봐야 할까보다.

출연 : 이소연,최호성,김차경,우지용,김금미,이영태,나윤영,이광복,윤충일 외 국립창극단 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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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4. 9. 7.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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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동안 선풍기를 틀기는 해도 이불없이는 잠자기 어려울 만큼 시원했지만
낮엔 역시나 덥다. 그래서 회사 사무실이 조금 그립니다.
올해 안으로 이사가는것도 확정이라 어디로 가야 할지도 고민스럽고 회사도 고민스러운 나날이지만
토요일엔 그나마 연극 한편본다는것이 위로되지만 덥다. 미술관도 가면 좋을거 같은데....

고트(gott)? 무슨 뜻일까. 독일어로는 하나님이라 나오고 독일작가니 이 뜻이 맞겠지
연극의 전체 흐름은 백분토론과 거의 비슷한 흐름이다. 토론 형식이긴 하지만 법조계, 의료계, 종교계 각 대표하여
한명씩 나오고 변호사와 윤리위원회 위원은 각각 찬반의 진영에서 이들과 1:1로 토론을 하게 된다.
그러니 총 6번의 토론을 하게 되는것이다. 좀 길게 느껴질수 있지만 1:1 대화가 길어봐야 20분이 안되서 지루함은 없었다.

토론 주제는?
사망조력이란 것인데. 자살할 수 있도록 의사가 독약 처방을 해주고 도와줄수 있는것인가?에 대한 토론이다.
물론 사건의 주최는 건강한 78세의 한 노인이다.
부인을 잃고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도 잃어버린 기운없는 노인 그래서 스스로 죽기를 원하여
의사에게 독약처방을 원했는데 그것이 발단이 되어 이렇게 토론하게 된것으로
충분히 있을법한 내용이며 한국에서 드라마나 영화에서 남편이나 여편을 따라 함께 동반자살하는 소재도
적지않다. 물론 평생 그리워 하며 살아가는 내용도 많지만 어느쪽이든 깊게 생각해볼만한 주제인것은 분명하다.

가끔 심심치 않게 나오는 기사중에는 스위스에서 웰다잉(존엄사)에 대한 것들을 접하게 된다.
물론 이것도 돈 없으면 안되는 엿같은 돈벌래들의 농간같아보이기도 하지만
아무튼 이제는 자신이 원할때 죽을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기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만
애초에 자살은 누구나 할 수 있기때문에 결국은 돈과 연결된 자본주의논리에 부합하는지정도로밖엔 보이지 않는다.

연극에서는 이런 논리보다는 윤리적 문제를 포함하여 다방면으로 논의한다.
첫번째는 법조계 입장에서 보는 조력사망의 법적 해석을 놓고 토론한다.
윤리위원회는 자살하도록 부추겨 봇물이 터졌다고 분통터져하지만 법적으론 개개인의 자율의사를 존중하고 별다른 문제는 없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몇몇 국가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지만 사회문제가 된적도 없다는 증거를 댄다.
그도 그럴것이 "나 죽겠소"라고 한다고 바로 독약을 처방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합당한 사유(윤리적 문제를 피하려고 꼼수피는거로밖엔 안보이지만)가 있는 사람을 충분히 고려하여 선정하고
진행한다고 한다. 그런데 스위스도 그렇고 존엄사를 선택 한다고 해서 돈이 많이 들것도 없는데 왜 그렇게 비싼걸까?
수억원의 돈이 왜 필요한거지? 죽을때 몸에 금이라도 씌워서 극락왕생하도록 해주나?

두번째는 의료계로 직업윤리를 내세워 자신들은 조력사망을 공식적으로 반대한다고 한다. 그러나 연명치료는 반드시 확장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는 산업이 연명치료. 원작을 읽어보지 않았고 독일의 의료시스템을
모르기때문에 의학자문으로 나온 저 사람(슈페르링)이 계속해서 사람이 죽을때까지 숨을 붙여놔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솔직히 모르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라도 더 살려고 고통속에서 노력하는 모습을 병원에서 많이 봤기에 조금은
막힌 사고를 갖을수 있지만 그럼에도 주장하는 것에는 무엇인가 모순점들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 의사들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처음 알게되었다. 그리고 선서엔 임신중절용 약을 주지 않는다는
서약이 있다는것도 처음 알았다. 물론 여기엔 치명적인 약은 절대로 주지 않는다는 문구도 있고
슈페르링은 이것을 인용하지만 이러한 모순된 것들이 있었다는 것때문에 제네바 선언으로 현대에 맞게 바뀌었다고 이야기 하지만
역시 인간의 자의적 행동, 특히 자살을 반대할 명분은 어디에도 없기때문에 엄밀하게 보면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할수밖에 없어보인다.

의료계쪽은 윤리와도 직결된 산업이기때문에 어느정도 빠져나가려 한다면 가능할수도 있어보이지만
좀더 다방면의 사례들이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다소 빈약함이 보이는 아쉬운 토론이었다. 최근작품(2020년)인것을 감안한다면
유전자 복제부터 많은 윤리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있어서 가장 치밀하면서 논리적으로 설득할수도 있을거 같은데
찬성하는 측 변호사(비글러)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모습만을 보이는데 약간의 연민마져 느껴질 정도였다.
이렇게 일방적일때 원작을 읽고 싶다는 충동이 느껴진다. 물론 독일어를 모르니 못 보겠지만
원작의 늬앙스도 이럴까? 단지 사회를 살펴보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을 해대는 일방통행의 저 의원의 모습이 독일인의 모습이었을까?
궁금하지만 독일어를 지금 공부하기엔...

마지막으로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면서 예민하게 다뤄야 할 종교계 특히 기독교계이다.
종교는 보편적 윤리를 추구하는거같아보이지만 배타적이며 아집도 만만치 않다. 이것은 십계만 읽어봐도
이쪽 종교가 타 종교를 얼마나 밀어내고 있는지 느낄수 있다. 이런 것이 신부인 틸(신학전문)에게 여실히 드러난다.
자신이 주장하기 위해 내새우는 증거라는 것이 수천년, 수백년 전 백골마져 없어졌을 그 시절 그 사회에나 맞을법한 사고를 들먹인다.
그들은 현대적으로 맞지 않을것이라 이야기 하며 계속해서 자신들의 주장만을 하는데 왜일까?
종교는 왜 시대를 반영하지 못하는 것일까? 라고 생각하기엔 오늘날 과거 종교계에서 이름을 날린 사람들은 대부분 시대를 반영하기 위해
종교개혁을 했던 인물들이란것을 잊으면 안된다. 그로인하여 탄압을 받기도 하고 사형을 당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의 종교계는 지금 이 순간을 신의 울타속에 넣으려 하지 않고 수백년적 이야기만을 들먹인다.
이러니 현대 감각하고는 맞지 않는것이고 점차 신의 존재유무를 떠나서 종교계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것 아니겠는가.
이것은 종교 그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 아닌 그 곳에 속한 인간들의 탐욕을 반대하는것이며 그러한 사건들을 비글러는 까발린다.
하지만 종교라는것은 인간의 심연을 다루지 않던가. 틸은 어느 30세의 한 여자 사연을 이야기 하며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78세의 저 노인은 앞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약을 받아먹고 죽어도 이미 살 만큼 살았지만
서른살의 한 여인은 자신의 실수로 한 사람이 죽었고 그로 인하여 매일 교회에 나와 죽고 싶어하는데 이 사람에게도 약을 줘서 죽게 하는게
맞는것이냐는 것이다. 감동적이며 순간 너무 마음이 아파왔다.
이부분에서 찬반이 많이 갈렸을것으로 생각되는 훌륭한 마무리였다고 본다.
이후 관객에게 실제 찬반투표를 했는데 미묘하게 반대쪽이 더 많은 결과가 나왔다. 연출쪽에서 의도한 것인지 작가의 의도인지까지는 모르겠다.

이런식으로 각 분야에서 찬반에 대해 집요하게 물고늘어지며 깊게 파헤진다.
그래서 연극을 보고 있는것인지 백분토론 객석에 앉아있는것인지 헷갈릴정도로 내용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심하게 집중하면 기운빠지는데 생각보단 스트레스요인은 적었는지 극장을 나올때 기운없단 느낌은 없었지만
배우와 다르게 관객입장에선 저들의 대화 모두를 들어서 생각하고 정리해야 하기때문에 대사량이 엄청 많으면
잊혀지는 부분들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내용이 엉키는 느낌이 있다. 이것은 한번정도 더 보면 머리속이 한결 개운해지겠지만
다른 한편으론 더 버겁게 다가올 기대감(?) 물씬 풍기는 훌륭한 연극이었다. 그렇지만 모두 매진..
다음 공연을 기약할수밖엔 없겠지..

비글러 변호사의 비중이 대단히 높은데 왜 깐쪽깐쪽거리는 캐릭터로 설정된것일까?
유튜브같은곳에서 좀 찾아보면 그런 캐릭터는 보이지 않던데..(나온지 얼마 안되서 전체가 올라온건 없음)

전회차 모두 매진이라 추천하고 싶어도 할수 없다니.. 에휴

출연 : 예수정, 신현종, 이상직, 김중기, 최광일, 유병훈, 오일영, 구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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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4. 8. 31.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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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또 오고 말았구나. 다시 찾아오는 계절들..
나이 먹으며 좀 무뎌지길 바라는데 도무지 바뀌질 않는다.
좀 둔감해질법도 되지 않았나? 불필요한 감정소모 이젠 힘들고 귀찮고 버겁다.
특히나 자율신경처럼 내가 어쩌지 못하는 감정변화는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혜화동은 차 없는 거리를 만들어 무슨 행사를 한다고 하는데
코로나로 연이어 경고문자들을 난발하면서 아이들은 코로나 걸려도 된다는 건지.
아직도 뾰족한 치료제는 없다는거 같던데.
그럼에도 아이들은 너무 맑게 즐겁다. 부러워해야 하는데 걱정이 되다니

이번 연극이 못지 않게 뭔가 씁쓸함이 남는다.
첫번째는 돈의 노예들이 국토를 더럽히는 것이고
둘째는 직업윤리인지 의식인지 이기주의인지 무엇인지 그 중간에 묘하게 껴있는 저널리즘의 모순적 행태를 꼬집는다.

저널리즘은 오래전부터 이런 딜레마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독수리 옆 굶주린 아이 사진 같은것
죽어가는 사람을 구해야 하는것인지 사진을 찍어 세계에 알리면 국가 차원에서 전쟁의 참혹함을 알려 멈추게 한다든지
아무튼 한쪽에 손들어주기 어려운 주제를 가져왔다.

이 두가지의 주제를 놓고 100분간 잘 끌어가지만
스케일을 크게 만들어놓은거 같아 연극 특징의 작은 공간에서의 치밀성이 떨어진다.
무대 또한 상황을 최대한 설명하기 위한 소품들이 다량 등장하지만 역시나 맞지 않아보인다.
내가 봤을때 이건 연극용이 아니라 영화를 염두하고 쓴 시나리오가 아닌가 싶다.

스릴러, 서스펜스, 추리, 심리물 같은 스케일 큰 영화 혹은 다회 드라마등에 어울릴거 같기도 한데
전체적으로 보면 다큐 스릴러 정도지만 범위 자체가 넓고 연극에서 국가를 이동하는 경우는 극히 없는데
여기선 과감히 다른나라를 가서 취재를 하기도 하고 현지인들의 반응도 살핀다.
물론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만 예전에 뉴스에서 본거 같은 느낌이라 약간의 공감이 된다고 할까

그리고 땅을 임대해서 각종 산업폐기물을 파묻는다는 뉴스도 종종 본거 같다.
극중 쓰레기 산이 된다는 소리를 듣는다. 원제 '235개의 고원'은 조선일보 2019년 기사가 나왔던것이
모티브가 되었던것인지 다른 정보를 찾은것인지
연극의 결론마냥 수많은 쓰레기 산들이 지금은 처리되고 있기는 한것인가..
가시화되었으니 세금으로 처리하고 있겠지. 그 범죄자 놈들은 어디에선가 또 등쳐먹을생각만 하고 있을텐데

얼필 보면 이런 사회문제를 다루는듯 보이지만 결국은 저널리즘에 대한 문제를 꼬집는거 같다.
특히나 요즘같이 대부분의 언론들이 돈에 환장한 쓰레기라 전국에 흩어진 수많은 쓰레기 산은
각 지역에 퍼져있는 지역 언론들을 말하고 있는것이 아닐까라는 약간은 과장된 상상도 해본다.
왜라이트가 판치고 있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왜라이트 똥구멍을 빨아주고만 있는 형국이니 언론을 쓰레기들이라 해도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아쉬움이라면 극장이 크지 않은데 왜 그렇게 목청들이 좋은지 배경 효과음도 제법 크게 설정하고
대사를 너무 크게 질러서인가 전달력이 좀 떨어진다. (소리를 크게 지르며 딕션을 좋게 한다는건 참 어려운일인듯)
요즘 들어 귀에 꽂히는 대사를 듣기 어려워져서. 내 청각이 안좋아졌나라는 의심도 품어보지만
그 외의 것은 적당히 잘 들린다.

왜 이렇게 소리를 지르게 연출하였는지 모르지만 조금은 더 집중할수 있고 감정선이 깨지거나 끊어지지 않도록
대사가 잘 들어오게 지시해줬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연기의 어색함을 찾아볼수 없는 베테랑들 배우분들이던데

그리고 왜 인지는 모르겠다. 약간 연세가 있는, 60을 바라보고 계신 분들은 귀가 안들리는지 연극 공연중인데도 대화를 한다.
시작전에 관련해서 안내를 좀 해주던가. 지인들만 모아놓고 공연하는 날을 따로 잡던가 했으면 좋겠다.
연극에 집중하고 있는데 뭘 그렇게 부스럭 거리며 꺼내는지, 가끔 왜 말을 해대는지. 추임세를 넣는건가?
안내만 제대로 해주면 관객매너는 분명히 잘 지킬테니 시작전에 주의사항등을 항상 꼼꼼히 얘기해서 갈쳐주자.
귀찮다고 대충 넘기면 연극 관객은 점점 더 사라질뿐이다.

출연 : 성홍일, 김성미, 이길우, 양승한, 장명갑, 이예주, 이창수, 강병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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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