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공연2025. 9. 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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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녁 7시30분 공연인데 중간 쉬는 시간 포함해서 170분?
가끔은 이렇게 한밤중 공연 한편 기분좋게 보고 집에 오는것도 좋긴 한데
집까지 또 한시간을 가야하니 쉽지 않다. 올해는 앞으로도 적지 않은 편수를 평일공연으로 예매해놨으니 조금은 한숨이 나온다.

흔한 심청을 생각하고 왔다가 큰코다칠수도 있을수 있지만 전체적으론 그렇지 않다.
일단 한 90%는 심청전 줄거리를 거의 그대로 따른다. 1인 판소리 장르를 떼창으로 하니
다들 끝까지 좋은 목 상태를 유지해서 안쓰러움도 없고(한명이 하는 판소리 완창은 언제나 힘들어 보임)

현대적인 의상, 현대적인 배경으로 바껴있다.
현대물로 완전히 바꿔놓은것인가?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현대 버전같이?

인당수에 빠지는 부분까지만 봤을때는 옷만 현대적이지 그냥 고전물인가 싶었는데
끝은 그것과 거리가 멀어보이고 이해하기도 쉽지는 않았다.
한 사람의 희생으로 많은 사람들이 눈을 뜬다?까지는 내용 흐름상 장르가 판타지니  그러려니 하는데
이번 각색된것은 저 소녀의 정체는 무엇인가? 심봉사는? 환경은 조폭에게 당하는 일가족을 말하는거 같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무엇을 상징하는지 이해안되는 부분이 많다.
파격적이네 뭐네 하긴 하는데 기존 극에서 잔인성을 부각하게되면 웬만해선 파격적이 된다.
이 창극 역시 노랫가락으로 부드럽게 넘기는 부분을 좀더 현실감 있게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져들때 다리를 묶고 무거운 물체에 매달았다거나 하는건
아무리 심청이의 심정이 굳건하더라도 죽음앞에선 쉽지않기때문에 잔인한 현실의 실감나는 설정이다.

전제적으로 다른 공연에서는 접하기 쉽지 않은 기괴하면서 아방가르드(전위적)한 창연극인데
이런류의 특징이 너무 작가주의적이라서 이해해야 하는 관객입장을 잘 고려되지 않는다는것이 심각한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그래서 한국사람이라면 거의 대부분이 알고 있는 심청전을 보면서 ???????? 라는 물음표가 나오게 하는것이겠지

좀 그렇고 그런 내용을 무대장치와 음악 그리고 창으로 떼우고 있는거 같다.

처음보는 광경으로 카메라맨 한명이 라이브로 계속 무대를 왔다갔다하면서 찍는다
그것을 무대 윗쪽에 실시간으로 적절하게 화면으로 뿌려지는데 개인적으로 저장영상을 무대에 플레이하는걸 싫어하지만
이번은 획기적이라 해야 할지 단순히 막 찍는걸 그냥 보여주는게 아니라 잘 짜여진 동선 그대로
연출이 원하는 그림을 그대로 만들어가는듯, 관객은 영상이나 무대의 배우들이 하나된 공연을 보는듯
거슬림 없는 훌륭한 무대를 만드는걸 보면서 감탄을 안할 수 없었다. 특히 흑백으로 표현되는 영상은 그 특유의
자극적으로 부각되는 표현은 일반 무대의 배우들에게 볼 수 없는 모습으로 인물의 이중적 모습을 실시간으로 감상할할수 있다.
다만 카메라맨이 기계를 주렁주렁 매달고 왔다 갔다 하니 시선을 빼앗기는거 같아서 좀 그렇지만 아무튼
오랜만에 느끼는 신선하고 창의적 연출을 본거 같은 뿌뜻함? 기분좋음? 대충 그런느낌이긴 한데

문제는 내용이겠지..

구성이 좋아서 그것만으로도 매력이 넘치지만 3시간 가까운 공연이라면 내용도 중요하지 않겠나..

심청전 배경엔 분명 인신공양이 있었던 무지한 세계였을것이다.
왕과 함께 죽는 순장도 조선이전에 있었을정도였으니 인류 역사 한 1~2백년만 앞서가면 얼마나 미개한 생태계였는지
단번에 알수 있다. 그리고 당시에 인신공양은 대부분 여자아이, 갓난아기등을 했다는 것이다.
(여아를 주로 했던것은 아무래도 전쟁으로 남자수가 부족하고 성인여자는 출산과 노동력을 제공해야 하니 그런것이 아닌가생각됨)

아무리 그렇다고 지금 시대의 여자 아이들이 떼로 웃으면서 나오고(거의 백명은 되보임) 나중에 심청이가 죽고 다시 살아났을때도
떼로 서있는 장면은 뭔가 섬뜩하다. 특히 초입부분에 아이들이 막 웃을땐 공포심마져 들던데 일부 중년 여성들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귀엽다고 좋아하지만 나는 왜 공포심으로 다가왔을까? 인위적 웃음소리를 떼로 들어서 그런것인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웃어서 그런가?
물론 나는 저 웃음을 공감못한다. 심청이의 추정나이는 15세정도로 중학생정도인데 저 아이들은 누가봐도 초등생들이니
심청이 나이 15세면 그 시기 기준으로 결혼할 수 있는 나이로 예전 환경으론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시기라서 아이로 보기엔 무리가 있는데
저 기괴한 아이들의 설정은 무엇일까? 작가가 당시의 나이와 지금의 나이를 착각하는것인가? 꼬맹이 철부지 아이의 심청이를 생각하는것인가?

그리고 현대의상까지는 그러려니 하는데 심청이의 어머니(곽씨)가 돌아가셨을때 마피아, 조폭같은 의상은 뭐지?
심학규가 엄청 잘 사는 조폭인가?싶었다. 그런데 조폭같은 사람들은 심학규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냥 상가집에 온 사람들인데 한국사회에서 상가집에 방문한 사람들의 태도가 저렇다고?
어디서 조폭영화만 잔뜩 보고 온것일까? 이 연극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심청전이 무슨 전쟁, 스릴러, 폭력물인줄 착각하지 않을까?

그리고 심학규가 심청이 젖동냥할때 정말 무서웠다. 검은색 상복을 입은 여자들이 저고리 한쪽을 모두 풀어해치고 무표정하게 서있다.
그것도 수십명이.. 마치 자신은 젖동냥하는 마네킹인냥.. 그래서 더욱더 심봉사가 조폭 두목이고 저 여자들은 어떠한 환경으로
억지 젖동냥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인식했다. 물론 그것과는 관계없는 나만의 오산같다.
이런 전위적이며 추상적인 장르의 특징인 작가가 꼴리는대로 설명하니 좀 거북스럽고 이해가 안되는것은 필수인가. 이런것을 파격이라 하면..
심청이가 심봉사를 이용해 돈벌고 장기 팔고 흥청망청 사는 내용으로 바꿔놔도 파격이라 포장하겠지.

현대적 해석은 일단 고전의 내용을 충실히 하면서 현대인들의 시각을 가미해서 재해석해야 하는데 이렇게 비꼬아놓고 해석을 달리했다는건
납득하기 쉽지 않다. 이 작가 작품중 '점찌고 옹녀'를 봐도 여성주의적(페미니즘) 시각으로 좀 이상하게 꼬아놔서 비주얼은 좋아도 막상 내용은
별로였는데 이 작가의 특징인지..(작가마다 뷰에 몰빵하고 내용은 겉치레에 불과한 사람도 있고 반대인 사람도 있고)

아무튼 이상한 오해를 받을수 있는 충분함이 있다.

그리고 장승상댁 부인은 무슨 매춘부 알선하는 사람처럼 묘사하는건 왜일까. 조폭 느아르를 만들고 싶었던거인지도 모르겠다.
선인을 악인으로 바꿔놓는것이 현시대의 시선이란소린지
아마도 이부분은 심청이가 막판에 만신창이가 되니 그 일환으로 장승상댁도 그런 주변인물로 바꿔놓은것일수 있긴 하지만
이럴바엔 '심청'이란 제목을 쓰지 말던가. 이게 이렇게 되면 심청전 원전대로 만들어지는 공연을 볼때 색안경이 씌어지지 않겠나.
선악이 갈리는 장르는 아니지만 묘사된 인물의 성품에 색이 있다면 그 성향은 바꿔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전 조폭을 미화하는 영화가 문제 됬던것은 수많은 사람 중 소수가 미화된 혹은 악화된 것을 그대로 받아드려 사회 문제가 될수 있기때문 아니었나)

그리고 무엇이 이 사람을 이렇게 보이도록 만들었는지 모르겠는데
공양미 300석을 시주하면 눈을 뜰수 있다고 얘기했던 화주승을 거의 악의 화신처럼 그려놓고 있다.
공양미 이야기 자체가 가스라이팅해서 자신의 딸을 사창가(장기 매매인가?) 같은곳에 팔라고 강요하는듯한 나쁜놈의 우두머리처럼 그리고 표현한다.
이름이 요나김(김요나라고 한국 이름표기법대로 사용하는것도 아니고 외국 방식대로 했다는것은 자신은 한국인이 아니라는것을 표현한것일텐데
한국사람 껍떼기를 한 외국인인가? 글로벌시대에 이런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국사람인척 하면서 뒷구멍으로 한국 욕하고
자신의 이익추구만을 일삼는 매국노들이 문제지)이던데 종교적 색채가 묻어나오는건 나의 선입견때문일거 같다.
(찾아보면 요나는 남자 세레명이라 하던데 이분은 여성 아닌가?)

전체 배경이 조선시대 어떤 효를 강요하듯 꾸며낸듯한 이런 내용이 아닌
거친 배경에서 생존을 위해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세상에 악마화 된 종교인이 없을리는 없겠지만
심청전에서 화주승이 갖는 의미는 종교에 대한 어떤 망상같은 성찰과 거짓 능력 등이 부각되는 주된 장면으로서
서유기에서 멍청해보이는 삼장법사가 지니고 있는 종교적 상징성과 비슷한 의의를 지니고 있는 인물인데
시정잡배, 사기꾼따위로 만들어 놨다는것은 기독교의 에반겔리즘(복음주의)으로 비롯된 배타주의의 파생이 아닐까?
'너네가 믿는 저 종교의 뒷모습은 이렇게 추악한 사탄과 같은 존재다~'라는것을 우회하여 비꼬듯

화주승때문에 심청이는 인당수에서 죽게 되는데 문제는 이로인해 다시 살아나고 황후(조선시대에 황후가 있나?)가 된다는
온갖 설화를 막 가져온듯한 이상한 이야기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전체 뼈대를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고?
그것도 사상적 뼈대가 되는 불교와 도교의 자비롭고 신비로웠던 세계를 개깡패같은 놈으로?

작금의 한국은 이상한 미신에 휘둘려 나라가 개판일보직전까지 몰렸다가 한국 민중들께서 합심해서 간신히 위기를 되돌려놓은 상황이니
종교의 폐해를 모르는바 아니지만 그렇다면 고전을 현대물로 재해석하는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신작을 만들어야지
멀쩡히 있는 과거로부터 사랑받아왔던 한국인 정서에 잘 부합하는(아비가 딸을 파는것 말고) 내용을 가지고 와서 썩어버린 사회에서 치유되지 못하게
만들어놓는것은 어떤 저의가 있는지 솔직히 의심스럽다.

이 공연을 본 사람은 앞으로 심청전을 효녀심청이로 볼 수 있을까?
영화 '아마데우스' 때문에 살리에르를 천하에 못된놈으로 바꿔버렸는데(아무리 영화적 허용이라해도 이러면 안되는거 아닌가?)

효자,효녀란게 과거에 허벅지 살을 도려내어 부모님을 공양했다는 것이 지금 통용 되지 않겠지만 말이다.

판소리 심청가는 전체적으로 보면 좀 해학스럽다.
심청이 어머니는 가부장적인 남편을 극진히 모시고 심청을 낳았지만 딸이라서 좀 서운해 하기도 하고
(심학규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심학규가 봉사기때문에 부귀영화도 힘든 상황)

심청이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대목은 무척 슬프다만 이 후부터는 심학규와 심청이의 부녀지간 사이도 적당한 그냥 형편 어려운 가정이었다.
딸자식을 어떤 꾀임에 빠져 300석에 팔았다손 치더라도 황당한건 생각보다 심학규의 삶은 그다지 어둡지 않았다는것
뺑덕어멈과 동거를 할때도 딸 팔아 공양 후 남은 돈으로 적당히 잘 먹고 잘 살다가 돈이 거의 떨어질 무렵에
심청이는 인당수에 빠져 죽다가 살아나 용궁에서 엄마도 보고 착하게 살았다고 황후가 되서 맹인잔치를 열고 각 고을에선 돈을 줘가며 잔치에 보내니
심학규 입장에는 땡큐 아닌가?

제일 특이한건 심학규는 맹인잔치에 가면서 뺑덕어멈을 잃었지만 홀로가면서 여인네들 일좀 도와주며 밥,고기 등 얻어먹고
옷을 홀라당 잃어버렸음에도 기지를 발휘해 옷, 노잣돈, 담배(당시엔 비쌌다고 함)도 얻는등 웃기게도 좀 황당한 호사를 누린다.
게다가 안씨를 만나서 결과적으론 재혼까지 하게 되는데 안씨는 부자기도 하다. 아마도 심청전에서 승자는 심학규가 아닐까싶을정도

심청전의 특징은 웬만해서는 대부분의 사람이 행복하게 끝난다는 것.
심청가, 춘향가, 흥부가, 수궁가, 적벽가 이런 한국 공연문화를 보면 한놈만 완벽하게 나쁜놈을 만드는 경향을 보긴 쉽지 않다.
그래서 결국 다같이 조화롭게 잘 살아간다는 황당한 해피엔딩이다.

그런데 특정 종교적 시선이 가미되면 선악이 확실하게 구분되면서 중간에 선을 딱! 그어놓으려 애쓴다.
이번 '심청' 창극을 꼭 그렇게 볼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3시간 남짓되는 동안 해학은 어디에도 없고
우울하고 암울하며 더럽고 추악하다. 영화 '베트맨'의 고담시티나 영화 '씬시티'같이 디스토피아도 아니고 유토피아도 아닌
못된짓을 하면 적당히 밥은 먹고 살거 같은 세상이랄까?

왜곡된 섹스어필, 이런 배경이라면 당연히 필요하겠지. 괴기스러운 여자들, 북에 피는 왜 발라놓은것일까?
이럴때 피는 여자의 그것을 상징하긴 하는데 그것이 맞을까?

오늘 콘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였지만 퇴근 후 3시간동안 졸음따위는 개나 줘버린 몰입력 끝장나는 창극이었으나
무엇인가 가슴한편 알 수 없는 찝찝함이 남아있다는것은 전위예술의 특징이려나.. 신선함은 최고인데 무엇이 불편하게 만드는걸까..
재미있는지 없는지 가늠하기엔 어려우니 두어번은 더 봐봐야 할듯

그런데 심학규 주변엔 왜 조폭밖에 없는것일까?

출연 : 국립창극단

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5. 8. 30.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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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난해하다.
재미있다고 하기엔 무엇인가 좀 심각하게 복재된듯한 아류작을 보는 기분이 들고
그렇다고 엉망이라고 하기엔 또 많은 부분에서 멋지다고 할수도 있고

2022년 초연 된 음악극라는데 내용은 식상함 그 자체다.
어느 독재자의 신변보호, 대회활동을 위해 비슷 사람들 내세운다는 설정이다.
네번째 대역 배우란 말은 사람마다 나눠놓은 역할이 있는데 그중 네번째 역할이란 말일뿐
아무런 의미도 없다. 전직 배우였기때문에 그에 알맞는 대역을 맡은것일뿐이라 이런걸 왜 제목에 넣었는지 모르겠다.
불필요하게 길기만 할뿐..(난 쇼맨이 제목이고 네번째 대역배우는 멀티 캐스팅으로 4번째 배우란 소린줄 알았음)

아무튼 쇼하는 사람이다. 어떤 나쁜놈을 대신해서 쇼를 하는것이니 쇼맨만으로 제목으로서 충분한데
다시봐도 꽤나 구차하고 구질구질한 제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제목은 그냥 '쇼맨'일거란 생각이다. 부연설명, 부재 정도를 일부러 붙여놨겠지

아무튼 한때의 쇼맨이 늙어 놀이공원에서 인형탈을 쓰고 있다가 어떤 사진작가를 눈여겨보고 부탁을 한다.
자신의 사진을 찍어달라는..
나는 이때 영정사진을 찍어달라는줄 알았다.(분장을 안해서 젊은 사람으로 보이는데 말이 늙은 사람 흉내를 내는것을 보고
늙은이 역할이구나 했지만 그러면 노인 탈을 쓰던가 늙은 네불라, 젊은 네불라 두명으로 좀 나눠서 하던가
분장도 제대로 안해서 저 사람이 늙은 이 인지, 젊은 이 인지.. 꽤나 성의 없는 설정이 아닐 수 없다. (하기 싫은 연극을 억지로 하는건가?)
아주 젊어보이는 사람이 말투만 늙은 이 흉내를 내니 얼마나 이상하겠나...

대충 자기최면을 걸면서 보면 적당히 볼만한듯 하지만
나는 이 음악극이 어떻게 대상을 받았는지 솔직히 납득할 수 없다.
어디선가 본듯한 내용의 전개. 어설픈 설정, 음악극이니 음악이 좋았을수 있지만
정동극장에서 음악감독이 누군지 모르겠으나 오늘만큼은 완전 개판이었다.(이건 후술)

도데체 네불라의 무슨 일대기를 어떻게 찍었다는거지? 저 사진작가(가짜라기보단 아마추어?)는 도데체 뭘 찍고 있는거고
네불라가 주저리 주저리 과거를 얘기할때 옆에서 얼굴을 찍으란 소린지
아니면 계속 과거를 이야기해주면서 연기를 하고 있었던건지.. 다시 생각해도 우낀 설정이다.
수아(사진작가)가 차라리 사진이 아닌 글 작가라면 물흐르듯 자연스러웠을테고 한 인물의 전기를 정리한다고 하면
말도안되는 사진작가보단 어울리는 설정 아닌가?

마지막에 무엇인가 잔뜩 찍었다곤 하지만 뭘 찍었다는 건지.. 네불라는 그걸 보며 상념에 잠기는건 또 뭔지
하여튼 무엇인가 우끼다. 관객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들만 옹기종기모여 비밀이야기를 하고 있는거 같다.

생뚱맞게 수아의 어린 과거는 또 무엇일까? 도데체 이 사람은 왜 속물이란거지?
동료를 이용해서 진급하려 했다는거? 당장 먹고 살기 어려우면 무엇이든 못할까?
작가가 부유하게 자라왔나? 그래서 이해를 못하는건가?

아무튼 자신이 동생을 제대로 못 돌봐서 동생이 다친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살아간다고 하지만
그것도 맞지 않다. 동생이 크게 다친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동생을 구하려다가 자신이 다쳤지만
아빠는 알아봐주지않아 마음의 상처만 깊어질뿐..

뭐 그냥 내용이 이러하다..

네불라의 일대기도 어떤 영화에선가 본듯한 아류작 같고
수아의 과거도 어디선가 본듯한 아유작 같은것들을 섞어놨을뿐
작품에는 어디에도 신선하다거나 창의적이거나 사회문제를 꼬집는다거나
인간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본다는 기분은 들지 않는다.

다만 메인 주제일수도 있고 현재 한국사회에서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친일매국노 세력을 옹호하는 일부 종교단체와 그 무리들을 보면
저들의 잘못이 보이지만 자신이 살아온 시간 속에 섞여있기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무리속에서
나오지 못하는 현 실태를 보는듯 해서 착잡함이 좀 들긴 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규모나 정도의 차이일뿐 조금씩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연결된 부조리와 모순된 자아를 볼 수 있다. 누구에게나...

그리고 시작하자마자 이러한 흐름이 지속되니 급격히 졸려오는게 무려 한시간이나 지속된다.
왜 였을까? 잠도 충분히 널널하게 자고와서 졸음이 오기엔 어려웠던 상황인데

추측컨데 그 중 한가지는 음향
아~ 정말 다시 생각해도 개그지같은 음향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일단 배우들의 마이크는 왜 그렇게 크게 해놨는지 규모가 대극장만하지 않은 정동극장에서 목소리만 커도 마이크 없이 공연이 가능할정도지만
배우들의 목도 생각해서 마이크 착용하는건 좋은 선택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목소리 밸런스가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었다.
그냥 소리가 크다. 그래서 무대 좌우로 왔다갔다 할때 위치감이 전혀 없다.
대형 극장, 대형 음악극을 볼때 이런 현상이 심해서 좀 거슬려하는편인데 이런 중형 극장에서 이런것을 느낄줄이야..
배우가 말을 하는데 배우 입이 아닌 스피커에서 다른 사람이 대사하는듯한 느낌마져 드는 개판 설정이다.

그리고 음악 사운드는 또 왜 그렇게 볼륨을 처올려놨는지
내가 거의 뒷쪽에 앉았음에도 귀가 아플지경이다. 나이를 먹고 있어서 점점 난청이 올법한 시기임에도 소음으로 다가올정도면
도데체 젊은 이들은 어떻게 받아드렸을까? 음향감독은 싸이의 훔뻑쇼가 부러웠던것이냐? 아니면 귀머거리더냐..
음향 밸런스는 또 얼마나 개판인지 명색이 음악극(뮤지컬)인데 음악 가사가 거의 안들릴정도로 음향설정이 억망이다.
(음향지식이 좀 부족하면 서울국립극장 음향팀에게 지원요청을 좀 해라.. 그곳만큼 좋은곳도 드믈더라)

이러니 절반 이상을 하품만 하지.. 배우들은 목 터져라 노래부르지만
관객 그누구도 노래가 끝났다고 박수치는 사람 하나 없다. 감동을 받을수 없게 만들어놨으니 박수를 칠수가 있나..

오늘은 무척 특이한 경험도 한거 같다.
배우들 여럿이 군복같은것을 입고 뭐라 뭐라 노래부르며 스팟 조명을 받는데
스팟이 배우들 뒷쪽에서 쏘는 통에 배우들은 후광을 받은 효과를 볼 수 있지만 관객석까지 각도가 잡혀있어서
좀 앞쪽에 앉아있는 관객들은 갑자기 눈뽕에 당황스러워한다.
이들에겐 환불해줘야 하지않나? 최소한 가장 값 싼 요금을 적용하고 나머지는 돌려줘야 하는거 아닌가?

내가 수많은 연극을 봐왔지만 관객에게 직접 스팟을 그것도 머리 위에서 아래로가 아닌 정면(역광?)에서 쏘는건 처음 봤다.
이러면 가뜩이나 전체적으로 어두운 공간에서 관객들은 순간 홍체가 확장하며 눈 통증이 발생할 수 있다.
제법 위험할수도 있는것인데 조명감독은 장님인가? 또라인가? 사이코패스인가?
정동극장 생김세때문이고? 내가 이곳을 적지않게 왔음에도 이런적은 없었다.

그리고 막판 네불라의 성찰같은 장면에 뒷쪽에서 노을같은것을 연출하고 싶었나본데
누런 텅스텐 조명을 관객석에 직선으로 쏴댄다. 도데체 화이트 아웃이 몇번째냐..

사진작가 컨셉은 그러려니 하지만 왜 실제 크세논관 플래시를 터트리냐.. 미친거냐?
플래시를 터뜨릴려면 관객석과 정반대 방향으로 터뜨리던가. 아~~ 한숨이 나온다.

이렇게 개판이라도 관객이 만석이라 신경안쓰는것인가?
이딴게 만석이라니..
이딴 음악극에 기립박수를 친다고? 노래가 끝나도 박수 한번 안치던 사람들이?
미리 짠것인지 앞자리 한 무더기 사람들이 우루루 일어나더니 다른 사람들도 슬금슬금 일어난다.

조명을 관객석에 쏘질 않나
소리는 너무 커서 뒷좌석에도 소음으로 들리질 않나
내용은 어디서 본듯하고

신기하다. 자기들이 홍보한다고 SNS에 사진을 잔뜩 올려놓고 관객들보곤 커튼콜때도 사진 찍지 말란다.
뭘까? 무엇이 찔리는걸까? 컨튼콜 사진을 못찍게 하는것은 웬만하면 보지않는게 좋다.
그림전시회도 사진못찍게 하는것일수록 가짜그림이 대다수에 그마져도 볼게 없는 전시회들이다.
남들과 다른 정책을 내세운것들은 무엇인가 켕기는게 있다는것이니 내용도 별로일경우가 많다.

최소한 음향이라도 개선되면 그때 보시길 권함..
지금은 관객들 난청올수 있음 특히 나이가 적을수록 귀 건강에 안좋고
앞자리는 가급적 앉지 마시길.. 조명을 그지같이 설정해서 눈건강에 치명적일수 있음
웬만하면 카메라 플래시는 좀 쓰지말거나 무대쪽을 향하자. 관객들 눈 아프다.

이제 마이크도 좋고 음향시스템이 미치게 좋은 세상인데 벨칸토는 좀 버리면 안되나?
음악극 창법으로 쓰기엔 지금 시대와 안맞는걸 못 느끼나?
옛날작품도 아니고 명색이 21세기 최신작인데 아직도 이런 곰팡내나는 삼백년전 창법으로 작사작곡을 에휴..

출연 : 강기둥, 박란주, 안창용, 남궁혜인, 김대웅, 전성혜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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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다이어리2025. 8. 24.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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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데헌(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온갖곳에서 나오는데
얼마전에 술마시며 무엇을 볼까?하다가 생각나서 틀었다가
단 5분만에 껐다. 왜? 그 짧은 시간동안 이건 아닌거 같은데? 싶었기때문

그 후 잊고 살려고 했지만 잊을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아직도 케데헌 관련한것이 온갖 매스컴에 나와서다.
그래서 지난번 실패한건 아직 본론을 못 봐서 그런거겠지 싶어 다시 보기 시작했다.

모두 보고 엔딩크래딧이 올라가는 시간이 새벽 1시30분
아~
뭔가 스토리도 엉성하고 구성도 엉성해서 급조된듯한 이 애니메이션이 전세계적으로 인기라고?
왜지?
난 왜 저들이 환호하는 그것을 나는 못 보고 있는거지?
미국식 작화에 그림과 맞지 않는 노래나 대사, 유아틱한 스토리
미묘하게 생각나는 겨울왕국(이 영화는 가슴 찌릿찌릿한 설정들이 압도적이라 디즈니가 애니메이션에 미친 기업이란걸
다시금 느끼게 해줌)의 짝퉁같은..
지금 한국 기술력이라면 입모양과 대사, 노래에 얼추 맞게 만들수 있지 않나? 일본 애니를 한국에 가져와
성우가 입힌듯 전혀 맞지도 않고 사랑노래를 부르는데 랩을 하기도 하고(순간 사운드가 깨진줄 알았음)

아무튼 나의 문화 공감력이 똥이 된걸까?
소니나 넷플릭스도 별 기대하지 않았다는 말이 엄밀히 보면 이해가 되는데..
보면서 소니가 일본기업이니 한국 소재의 애니메이션은 일부러 엉성하게 만들었나?란 생각이 들었을정도인데

나하나쯤 이해 못하고 공감 못한다고 세계에 알려지고 유명해진 케데헌의 시선이 바뀔리도 없고
한국에 여행오는 관광객이 줄어들지도 않을거지만 기왕이면 같이 공감하면 좋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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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