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애리명창의 춘향가 완창을 국립극장에서 본게 언제인가 찾아보니 2018년 4월이었다.
난생 처음 완창을 직접 들어본것이고(그 전까진 음반으로만) 장장 6시간의 공연을 처음 본것이기때문에
행복한 고행같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이때를 시작으로 이후 몇년간 국립극장에서 하는 판소리 완창을 열댓번 듣게 되었지만
이렇게 한나절이나 하는 판소리는 없었다. 관객도 힘들고 창자도 힘들어서일텐데
박애리명창께서 심청가로 다시 나왔다. 기대 되지만 문제는 5시간이라는 엄청난 공연시간.
12월에 하는 판소리 완창은 여럿이 나오기도 하는데 2시간 남짓. 길어도 3시간정도인데
무엇도 빼놓는게 아쉬운듯, 풀 버전을 관객들이 충분히 감상하실 수 있는 여유로운 템포로
공연하는데. 처음에는 '어! 그 동안 듣던 것 보단 좀 템포가 느린데? 아직 목이 안풀려서
천천히 하는것인가?' 싶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분들이 조금 빠른 템포로 진행한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정도로 각 대목마다 들어있는 주제와 함의를 천천히 음미할 수 있는 뛰어난 구성이었다는 생각이다.
한국에서 춘향가와 심청가가 가장 인기 있다곤 하는데, 춘향가 같은 경우는 1995년 김소희 명창의 녹음본을
무척 좋아한다. 너무 슬프기도하고해서 잘 듣게 되진 않지만 아무튼 왜 춘향가를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충분히 느낄수 있지만 심청가는 솔직히 그렇게 느끼진 못했었다. 왜냐하면 아버지를 위해 인신공양을 한다는게
한국사에서 없던 일은 아니라고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조금은 과한 설정이 아닌가 싶어서였다.
그리고 김소희 명창께서 부른 춘향가 만큼 귀에 쏙쏙 들어오도록 부른 명창도 없었다.
(그 동안 몇번정도 공연과 음반을 들어봤지만 대부분은 창 특유의 뭉게지는 발음은 그 속에 빨려들지 못하게 하는
크나큰 장벽중 한가지로 나가왔다.)
그런데
오늘 나는 심청가가 왜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지 그것을 알게 된거 같다.
장장 5시간 중 한시간정도 빼면 모든시간에서 눈에 눈물이 마를 시간이 없다.
이게 이렇게 슬픈 극이었다고? 시작부터 이렇다고? 춘향가는 초반부터 3분의1까지는 꽁냥꽁냥 핑크빛 물결이라
그렇게까지 애잔하지 않은데..(이 후 부터는 너무 슬픔의 슬픔의 슬픔)
심청가는 뭘까? 애초에 가난간 심봉사에 곽씨와 결혼해 곽씨는 생고생을 하다가 힘들게 자식을 얻었지만
자식 젖 한번 못 먹이고 죽은 엄마의 이야기. 그를 너무 슬퍼하는 심봉사 이야기로 시작하니
아니슬플수가 없는 시작이다. 이것을 약간은 느린 템포로 조곤조곤 또렷하게 관객 귀에 찔러대니
가슴이 안 흔들릴수가 없다. 창이나 노래란게 그 음률에 감정을 얹어 전달하기때문에 대사만 읽는다고
그 감성이 전달되진 않으니(구전문학의 특징이라면 특징) 대사집은 판 소리를 다 들은 후 읽으면
당시의 창자의 노래가락이 함께 오버랩되서 그 감정이 잘 살아나지만 이번엔 구입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조금 후회된다. 이런 감동이라면 다시금 꺼내고 싶을때가 있을텐데 그 그림자(대본)가 없다니.
기분일까? 한시간쯤 지나서부터 박애리명창의 목소리가 달라진게 느껴진다.
좀더 뻗어나가며 고음도 전보다 날카롭게 찢어내는거 같고.
소리꾼들은 한시쯤 불러야 목이 풀린다더니 정말 그런거 같다. 처음보다 훨씬 시원스럽다.
처음엔 '생각보다 목이 달라졌는데 연습을 너무 해서 그런건가'란 생각을 했지만
그럼에도 슬픈대목이 슬픔으로 밀려오는걸 보면 평생 소리를 공부한 사람들의 내공은
어떤 상황에서도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수행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노래방에서 혼자 한시간 노랠 부르면 목이 쉬어서 말 하기도 어려운데 이때쯤 되야 목이 풀리다니)
심청가는 해학스러운 부분이 심청이가 죽은 후부터나 좀 나오는 약간은 특이한 구성이다.
보통 문학에서 보면 이렇게 긴 시간 애환을 쌓아가는 장르가 있나 싶을정도로 좀 심하게 뒤흔다.
무엇인가 사건의 전개가 물 흐르듯 고저가 있으면서 점차 발달하다가 폭발하듯 터지고 마무리 되게되는 그런것이 아니라
끝도 없이 계속 슬프다. 각 대목별로 마무리가 있지만 다음 대목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된것이 아무래도 예전에는 한번에 모두 부르는 공연이 아니라 각 대목만 불러왔기때문에
그 대목에서 기승전결이 모두 이뤄져야 해서 그런것이 아닌가싶다.
그러다보니 어미가 죽기 전에 심청이를 안고 말하는 독백도 미치게 슬픈데
심봉사가 장례를 치르는 상여소리부터 모든 부분이 또 그렇다.
대부분 이렇게 몇 대목이 하나의 공연 시리즈 처럼 구성되어 있어서
슬프고 슬프고 또 슬픈 그런 이상한 예술 장르가 된것이 아닐까.
각색해서 나오는 요즘 공연들을 보면 이런 반복되는 플롯을 좀 바꿔서 나오는거 같긴 하는데 이 감성이 고스란히 오는거 같진 않다.
각 단원마다 주제가 조금씩 달라져서 그런것일수도 있고 현대에 잘 적응 못하는 문학일수도 있고.
고수는 세분이 나눠서 북을 잡지만 소리는 단사람 소리꾼 박애리만이 그 자리를 지킨다.
이게 좀 묘한 감정이 드는게. 한 사람이 장장 5시간을 혼자 고군분투 하는 모습을 곁에서 보고 있자면
힘듬이 전달되어 측은함이 생겨나서 위로해주고 싶고 기운을 불어넣어주고 싶어진다.
한시간정도 지나 목이 풀리고 서너시간 지나면 목이 지쳐지는게 느껴지는데 관객이 해줄 수 있는것은
박수밖에 없다. 한 대목 한대목 끝날때마다 힘차게 박수갈채를 보내는것이 전부.
이럴때 내 박수가 저 사람을 벼랑에서 떠미는게 아닌가?란 죄책감도 생겨난다.
'좀더 힘을 내서 내게 좋은 공연을 보여줘'라는 잔인한 아우성같은 박수소리들.
한 자리에서 한번에 판소리 한바탕을 완창하는 공연은 다른 공연과는 다르게
외로롭고 힘겨운 고단함이 관객석까지 전달되어 애처로운 심정이 공연장에 가득차는 예술이다.
이래서 공연 막바지엔 특이하게도 절정의 끝을 달려간다기보단
이 고행의 끝이 보이는 환희? 희망? 같은 관객과 창자가 함께 달려가는 묘한 일체감이 느껴진다.
고진감래, 동병상련과 비슷한 감정이라고 하면 되겠지.
이렇게 힘든 공연을 보고 나오면 다음 완창 공연을 또 볼 수 있을까? 란 걱정도 되지만
그럼에도 아니볼수 없게 만드는게 이런 가슴 벅찬 감동을 한번으로 끝내기엔 인생이 섭섭하니
다음 공연을 기다리지 않을수가 없다.
각종 매스컴이나 예전에 봤던 춘향가완창때는 몰랐는데 박애리명창께서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는 느낌을 받은 대목이 있다.
판소리란게 창자 의도에 따라서 각 대목에서 내용을 좀 늘리기도 하고 빼기도 하면서
분위에 맞게 조절하기때문에 같은 판소리라도 공연시간이나 창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판소리 자체가 엄청 길기도 하니 소리꾼 기억의 왜곡으로 한대목 빠뜨릴수도 있을수 있고 이것을 부드럽게 넘기는것도
소리꾼의 역량이라고 보는데 박애리명창은 이걸 용납하지 않는다. 심봉사가 맹인잔치가다가 옷을 모두 잃어버리고
한탄하는 대목이 실수로 빠진거 같은데 즉시 관객에서 상황을 설명하고 되돌린다.
보통은 이렇게 안하고 슬쩍 넘어가기 마련인데 이렇게까지 한다니. 이 분에게 이 무대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었을까.
딸이 관객석에서 엄마의 공연을 보고 있다곤 하지만 딸이 모두 외우고 있진 않을텐데.
엄마의 완벽한 공연을 보여주고 싶었던걸까?
아니면 창을 가르쳐준 스승들에게 이렇게 성장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던걸까?
이도 아니면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일까?
자신의 실수를 되돌려 관객들에게 충분히 설명하는 모습이 그러지 않은 사회에 던지는 일침같아서
다른 형태의 감동이었고 한 예술가의 인생을 이 한장면으로 상상하며 설명되는거 같았다.
구슬픈 특이한 한국의 노래들. 재즈도 흑인들 사회의 애환이 담겨있다고 하지만 남의 문화기때문에
깊이 와닿기 쉽지 않은데 내가 태어나서 평생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곳에서 녹아있는
소리 속에 담긴 정서는 어쩌면 한국사람들만이 느낄수있는 고유하고 독특한 문화일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보는내내 외국 사람들이 이 말도 안되는 서정적 감정을 자연스럽게 체감할수 있을까.
재즈가 내 일부로 다가오지 않듯 판소리도 외국인들에겐 한국에 쏟아지는 자외선을 보호해주는 로션정도로 다가오겠지.
고된 무대라 며칠 더 해달라는 말 조차 말하기 힘든 한국만의 특이하고 고유한 공연예술이었지만
몇번이고 다시 보고싶은 너무 아름답고 훌륭한 무대였다.
소리 : 박애리
고수 : 김청만, 이태백, 전계열
-추신-
박애리 명창의 6시간 춘향가 완창 무대를 다시 보고 싶은건 욕심이지만 다시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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