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공연2024. 5. 4.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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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4일이면 아직은 시원해야 하지 않나. 왜 이렇게 덥지?
그나마 습도라도 조금 낮아서 다행이다. 그러지 않았으면 걷는것조차 힘겹게 느낄뻔한 더운 봄의 하루였다.

산울림 소극장을 와본적이 없는거 같은데
(윤석화배우께서 공연할때 보고자 했지만 늘 매진이었고 신촌이라 좀 어색하기도 하고 ^^)
주변에 대형미술관이 있을법하지만 모르겠다. 이곳에서 한때는 술도 참 많이 마셨었는데
지금은 그냥 다른곳 같아서 뭐가 있는지 궁금하지도 않고 그냥 어색할 뿐이다.
그래도 신촌만 벗어나면 길들이 한가해서 조용히 산보하기엔 좋은데
외국에서 한국 인기가 엄청 높아졌을까 외국인들이 엄청나게 많이 보인다.
명동은 한국인이 오히려 적어서 간판만 한국어가 아니면 중국, 일본 등 다른나라라고 해도 믿을거 같다.
(전 정부가 선진국 만들어놔서인지 한류때문인지 예산 다 깎였음에도 다이아몬드를 일반 기압에서 만들어낸
기술력 때문인지.. 아무튼 신기하다.)

내가 좋아하는 극장 스타일이 부채꼴모양인데 그래야 어느곳에 앉아도 시선이 무대를 향하게 되서 보기 편하기때문이다.
이곳이 딱 그런 스타일이고 아담한 소극장 그 자체로 이런곳에서 모노드라마를 보면 너무 재미있을테지만
오늘은 2인극

적당히 잘 꾸며진 무대, 편한 관객 의자와 배치 
뛰어난 배우들.
그리고 각각의 장(막?)마다 새롭게 이어지는 긴장감

전체적인 흐름에서 특별하거나 신선함은 기대할수 없었다. 그러나 둘의 보이지 않는 벽
늙을수록 초라해지는 자신을 향한 보호본능처럼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거부감
그것을 이해하기 어려워 하는 젊은 세대와의 갈등은 어느정도 중간쯤 위치한 나로서는
양쪽 모두의 심적 상황이 명확하게 와닿는거 같아서 순간 순간 양쪽 모두에 공감대가 만들어진다. 루즈 그리고 리사 모두에게

이러면서도 역시나 전체적인 전개에서 새로움을 느낄수 없어 무대 설정만큼이나 나이먹어 보이는
연극이다. 한 1800~1900년 초중반무렵 나온 근현대쯤의 곰팡내나는 정도?
더 오래됬으면 고전(클래식) 대우라도 받았을텐데 그렇지도 않은 뻔하디 뻔한 흐름으로
뻔에 뻔자인 엔딩

연극을 보면서 분명히 다른 상황인 영화 '은교'가 떠오른것은 왜였을까.
살아온 시간으로 체면치레한답시고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해 답답한 추상적 표현만을 해대는
지식인계층의 노인류들의 허세를 표현하다가 가슴 두드리며 양쪽 모두 답답함을 토로하는
그러다가 서로 갈길을 가지만 한편으론 똥싸고 닦지 않고 나온것 마냥 뒤끝 더러운 기분

모든것을 일거에 해소시켜버리고 끝내는 어이없는 상황을 만들지 않아서 좋았지만
1996년작이면 비교적 최근인데 반짝거림을 잘 못느끼는것은 내가 오래 살았지만
철이 없어서 오래산것을 인지못해서인지, 이 작품이 그냥 그래서인지

희곡자체는 특별함이 없어서 식상해질수 있지만
배우의 연기가 90%이상을 끌어올려 흥미롭게 만드는 연극이었다.

그런데...
루스는 정말 자신의 과거사를 소설로 만든 리사에게 분노한 것일까
아니면 병들고 시들해진 자신에게 고함을 지르고 있었던것은 아니었을까
타인들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자신의 의지와 자신만의 표현 방법으로 먹고 살았기때문에 리사에게 화를 낸다는것은
거울에 비친 자신을 증오한다는 것이나 다름없을텐데 정작 리사를 가르칠땐 자신의 모습을 가르쳤고
리사역시 배운것 그대로 선생과 자신을 위했을텐데
물론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고 싶은 욕구는 당연히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존경심같은게 사라지는것은 아니니
(스승을 발 아래 두려고 이기려 하는 제자가 있으려나?)
리사의 순수성이 그다지 위선같아보이지 않아서
마굴리스가 노인 작가를 보는 자세는 무엇이었을까 사믓 궁금해진다.

출연 : 정윤경, 이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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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4. 4. 20.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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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놈의 비가 부슬부슬 하루 종일 내리는 걸까
화려한 꽃들은 다 떨어졌지만
나무들이 본격적으로 색을 입기 시작했다. 비에도 끄떡 없는 잎들로
그렇지만 내 기분은 왜 이런지. 오늘은 걷는것이 도무지 내키질 않는다. 심지어 컴게임이 땡기기까지..

신기하다. 예매 티켓을 받고 극장 입구를 들어서는데 관계자가 티켓 예매처를 또 확인 한다.
그럴거면 처음에 티켓은 왜 준거지? 그리고 좌석도 고르라고 하는데 요즘은 예매처에서 좌석을 선택할수 있게 하는데
아직 동국소극장은 그런게 안되있는지 흔히 볼 수 없는 특이한 경험 아닌 경험이었다.

60만초가 며칠인가 계산해보니 대충 7일
자신의 남은 시간을 팔기 전에 심사숙고하라는 의미로 주어진 시간이라는데
한국의 예전 드라마에서 '4주후에 봅시다'의 이혼 전, 생각할 기간보다는 훨씬 짧은 시간이다.

살인을 하고 무기수로 있는것보단 죄인이 아닌 상태의 며칠만 남겨두고 40여년을 판다?
수명을 파는 영화  '인타임'을 본거 같은데 근래에 '패러다이스'라는 독일 영화도 새로 나온거 같다.
작가가 이것들에 꼿혔을까.

수명을 사고 판다라는 생각은 어디서 나올걸까
수명이란 것을 인도할수 있다면 복제도 충분히 가능한것이나 마찬가진데 사고 팔기만 할 생각을 하다니
좀 막혀있는 사고를 보는거 같은 답답한 설정이다.

아무튼 이 연극의 배경은 수명을 사고 파는 세상이고 무기수가 자신의 수명을 팔려고 하는데
매수자, 중개인 그리고 도박에 미친 매수자의 딸 이렇게 네명의 이야기지만
그다지 색다르거나 흥미롭지 않은 주제에 불필요한 반전 등 온갖것들을 집어넣은 섞어찌개 같은 느낌의 연극이다.

윤리문제로 한 사람의 수명 전체를 매수하려는 유명 가수가 있고, 이 가수는 희귀한 병에 걸려 앞으로 1년밖엔 못 산다고 한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문제를 풀어놓을수 있을거라 생각했고 그렇게 흘러갈것이라 예상했는데
총든 이상한 사람(딸)이 들어오고(총이 있길래 경찰인줄 알았음)
생명 윤리는 오간곳 없이 갑자기 과거 살인의 누명에 관한것으로 흘러버린다.

동성애, 스릴러, 생명경시, 물질만능주의 등 엄마가 딸을 살인자로서 고발하겠다는 의지는 또 어디서 나오는걸까..

모든 사건 사고들이 맥락도 없고 이 여자는 자신의 엄마를 왜 저렇게 싫어하는지도 모르겠고
퇴학당했다고 나오는데 그 곳이 군인지 경찰인지 어렴풋 지나가는 저들의 학창시절에 벌어진 사건인데
딸은 전혀 자기절제를 못하는 망나니나 다름없는 존재로 자기 엄마의 노래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병으로 머리를 쳐서 죽인다.
그런데 친구가 모든걸 뒤집어써버리고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데 뭔가 우끼다. 사랑일까.
늬앙스로 보면 이 친구는 사랑같아보인다. 사랑에 눈이 멀면 어리석은 짓도 한다고 하니 그냥 넘기더라도
전체적인 흐름이 중구난방에 무엇하나 또렷하게 맽는것이 없고 주제 또한 흐릿한 아이의 의식흐름같이 산만하다.

난 아직도 이해안되는게 저 딸은 왜 엄마를 그토록 싫어하는걸까..
중개인은 왜 나서서 총을 맞은걸까..

맥락도 없고 이것 저것 붙여놓은거 같은 이 극을 쓴 작가는 무엇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던걸까
그냥 사회에 불만이 많고 엄마와 사이가 안좋은 자신의 처지를 써내려간건가..
정말 모르겠다.

출연 : 이채, 이혜연, 한수영, 박인선

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4. 4. 13.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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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왜 연극 관람기를 쓸땐 항상 그날 기분도 함께 적을까..
아무래도 그날 상태에 따라 보는 느낌이 달라져서도 있을태고 일기처럼 쓰기도 하니 이러겠지

이렇게 더워도 되는건지 모르겠다. 더이상은 헤드폰이 쉽지 않게 느껴지지만
연극이 끝난 이후엔 걷기 좋고 바람 괜찮게 불어 세상구경이 좋은 날이었지만 아쉽게도 다리 아프고 허리도 별로라
오래 걷진 못하고 들어오고 말았지만 여운이 좀 있고 생각을 좀 해야 할거 같은 연극이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조금은 어렵다.

내가 낭독극은 라디오를 듣는 기분이라 그렇게 선호하지 않는데
이 연극이 낭독극이란걸 오늘 처음 알았다. 꼼꼼히 읽지 않고 포스터와 제목만 보다보니 그런거지만
선호하지 않는다고해도 보면 충분히 몰입되기때문에 거부할 이유는 결코 없다.

총 3막으로 각 막마다 확실하게 마침표를 찍는 특이한 연극
리플랫이나 홈페이지만 보면 약간은 구식 형태같지만 진행은 결코 그러지 않는다.

오히려 세편의 옴니버스 연극을 본거나 다름없다.
물론 서로 연결되어 있기때문에 느낌은 연속된 한편을 본 기분이 충분하지만 배경 전환은 그러하다.

그러나 문제가 있는데 약간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저 여자는 왜 죽을생각을 한거지? 동내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좋아했는지 모두들 그녀를 구하려고
고기(?)를 고아서 살리려 한다. 죽을 생각을 했다는건 단순한 사고나 그런것은 아닌거 같고
성폭행같이 지우기 힘든 상처를 입은것인지 모르겠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그러한거 같아보이지만
구체적인 묘사는 없다. (내가 놓쳤나?)
아무튼 한생명으로 또다른 생명을 구하기 위한 인간의 선악이 섞인 카오스(혼돈)의 아이러니 한 상황속에서
어찌됬던 이렇게 저들의 연극무대가 끝이 난다.
이때 인사하고 그러길래 순간 다른팀이 나와서 두번째 극을 하는건가? 착각을 했다.
1막 코튼콜때 박수를 쳤어야 했을까? 박수치는게 왠지 매끄러웠을거 같긴 한데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고 저 여자는 왜 저러고, 저사람들에게 저 여자는 어떤 존재였는지도 모르겠다.
무언가 생선 몸통은 사라지고 꼬리만 먹은 느낌이랄까..
이 기분은 연극이 끝날때까지 해소되진 않았다.

2막은 1막의 극단연극이 끝난 후 배우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낭독극이 아닌 일반 극으로 구성된다.
이후부턴 끝날때까지 계속 일반적인 연극이다. 엄밀히 보면 1막 낭독극도 여느 낭독극과는 다르게, 연기를 충분히 많이 한다.
단지 대본을 손에 들고 있는정도가 낭독극의 형태라고 한다면 그럴뿐이다.

아무튼 조명 꺼진 무대에 모인 배우들의 껄렁껄렁한 이야기들도 이부분은 어떤 공감대 형성보단
남의 이야기를 엿듣는 기분이 들어서 그다지 공감도 안되고 재미도 덜하고 기분도 별로였다.
무대 뒷 이야기도 충분히 흥미롭게 잘 살릴수 있을텐데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엿듣는듯 구성한것은 좀 아쉽다.

마지막 3막
1,2막은 단순한 큐브 의자 몇개로 무대 장치가 끝이라서 그냥 그랬는데 3막은 무대가 확 바뀐다.
제법 잘 꾸며진 무대, 며칠 안하는 연극치곤 매우 훌륭하다.
그런데 소극장임에도 무대가 너무 뒷쪽에 있는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는데
특정 장면에서 모녀가 광분하는 부분이 몇 있는데 좀 떨어져 있어서 그런가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적게 들어서
이래서 뒤로 무대를 밀어놓은건가?생각해보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멀다.

멀어서였을까 왜 였을까 딕션이 좀..
귀에 콕콕 박히는 대사전달이 필요한 부분 같은데 무대는 뒤로 밀려있고 음향은 그다지인거 같아서
좀 울린다고 해야 할지 그래서 모녀가 흥분했을때 대사 전달이 상당히 미흡했다. 관객과 떨어져서 그런것인지
무대가 소리를 너무 반사시키는것인지, 딸의 발음은 약간은 말려들어가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감정을 끌어올리는데는 지장없었지만 세세한 딸과 어머니의 심정을 모두 받아드리기엔 약간은 아쉬웠다.

아무튼 신파같이 조금 끌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저들의 감정선에 동화된 기분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진 않았다.
하지만 귀 기울려 듣다보면 분명히 결이 다름에도 우리내 부모님들 심정이 저와 비슷하지 않을까
이상하게도 계속해서 나의 부모가 오버랩되면서 슬픔과 쓸쓸함이 동반되는 묘한 연극이었다.

두시간 연극으로 짧지 않은데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았던것은 3막이 서로 다른 상황 전개때문에
40분 연극 3편을 본거나 다름없어서일거다.

그런데 어머니의 존재 의미는 자식 때문이란 말이었나?
내가 너고 네가 나이니 존재란게 인간같이 비효율적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유기체에겐
그다지 의미 없어서 깊이 생각할만한 무엇도 없지만
어머니를 닮지 않은 딸, 딸과 닮지 않은 예쁜 어머니의 연기를 참 인상적이던데

이 극단이 인간미 풍기는 연극을 만들면 가슴 절절한 멋진 극이 나올거 같아서 오늘부터 팬이 되야겠다.

출연 : 김하리, 장하란, 나종민, 구자승, 하지웅, 조주현, 이정근, 채승혜, 김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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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4. 4. 6.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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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정말 좋다. 수많은 꽃들이 만개하고 따뜻하면서 시원하다.
그런데 오늘은 왜 버스가 시청까지 못 간거지? 시청쪽을 걷지 않으니 알 수 없지만
노인들이 집회하고 있나? 지난번 3.1절엔 제법 크게 하던데..

원작이 '카후를 기다리며'인거 같은데 그렇다고 내용을 알진 못한다.
내가 영화를 엄청 많이 보거나 책을 많이 보는 사람이 아니지만
약간의 반전이 있는 내용치곤 그다지 충격적으로 다가오지 않고 좀 허무맹랑한 얘기같이 멀게 느껴진다.
일본작이라 그런가? 한국작가였다면 이런 전개가 가능했을까?

서로 피가 섞이진 않았지만 엄마의 자식인데 같이 살겠다고 오다니
차라리 내가 여차저차한 동생이라고 말을 하고 들어와 생활하며 가족이 되는 그런 내용도 아니고
아무리 근친혼이 가능한 일본이라도 이렇게 전개되는게 맞는 내용인가
그래서 내용의 흐름은 생각보단 어색하다. 한국 정서에는 영화'가족의 탄생' 같은 전개가 맞아보이는데.

게다가 오늘은 꽤나 산만한 극장이 아닐수 없었다. 이런 연극은 특성상 아이들은 제한을 걸어야 하는거아닌가?
계속 부스럭 부스럭거리고 말하고 부모가 제지해도 그 순간뿐이다.
그리도 스마트시계 불을 계속 켜두고 있는 또라이도 있고 (암전때 그것만 튀어 보이는걸 못 느끼나?)

이러니 가뜩이나 내용도 특이한데 산만해서 집중도 안되고 자리마저도 불편하니 오늘은 안좋은 상황이 여럿 겹쳤던거 같다.

바닷풍경 예쁜곳을 배경삼아 잘 찍은 영화로 한편 보면 제법 기억에 남을거 같은데
연극은 뭔가 저 여자가 쳐다보는 저곳, 저 소나무의 감동이 전달되지 않아서 계속 상상을 해야 하는데
여자의 인물배경은 가장 마지막에 나오기때문에 저 여자가 쳐다보는 어딘가의 감정이 전달되기 어렵다.

이럼에도 전체적으로 배우들의 호흡은 매우 뛰어나서 모난곳 하나 없이 훌륭하게 마무리된다.

며칠안한다고 무대장치가 아무것도 없는 그런것도 아니고 소극장 연극으로 갖출건 다 갖춘 좋은 연극이었다.

출연 : 정소영, 서신우, 강현정, 정석원, 장탁현, 전희원

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4. 3. 28.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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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걸으니 사람들의 옷차람이 무척 가볍게 보이는데 막상 나는 아직도 겨울인가
내 모습이 보이진 않지만 이상하게 우중충한 기분이 든다. 기분좋은 햇살과 어젠 봄비가 와서 공기도 상쾌한데
왜 난 아직도 회색일까.

이 연극이 왜 퀴어 연극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퀴어 연극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의 성적 취향을 내가 알아야 할 필요가 없기때문이고
그들시선에선 내가(이성애자) 이상한 사람일수도 있으니 서로 무관심하면 되는거 아닌가
그래서 불필요하게 그들 시선을 부각시키는듯한 이런 장르는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재미있게 만든것도 거의 없고

아무튼 이 연극은 퀴어란다. 그래서 레인보우 컬러가 포스터에 들어가지만
극중의 저 동성애자들에겐 그 어떤 사회적 편견이나 어려움도 없다.
그냥 자기들 인생을 살아간다. 동성애자로서 고뇌나 괴로움은 없다.
그리고 재은이라는 극중 인물은 윤경에게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고백한다.(중학생? 고등학생때였나?)
상황상 이게 맞는건지 모르겠다.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을 한다는것은
이성에게는 전혀 호감이 없고 동성에게만 느낀다는 것인데 이제 막 2차 성징기가 끝난 시점이라서
성정체성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할 나이쯤에 '동성을 좋아하는거 같아'도 아니고 동성을 사겨본적도 없이
'나 레즈비언이야'라고 말한다고? 2000년에 태어났으니 2차성징이 빨리 와서 이미 동성애자로서의 확고함을 가진
성조숙증 인물인가?

생각해보면 꽤나 내용이 어색하다. 페미스트와 동성애는 또 다른 내용이고
'퀴어부부'라는 표현을 하는데 부부는 남녀 두가지 성만 존재하니 가지수로는 이성부부와 동성부부만 존재할뿐
퀴어가 지시하고 있는 여러부류의 성정체성, 성지향성과는 좀 맥락이 다르다.
그래서 퀴어부부가 아니라 단순히 동성부부라고 하면 그뿐이다.
(퀴어부부라고 하면 뭔가 있어보이나? 퀴어란게 좋은 의미도 아닌데)

그리고 입양을 한다. 정자 은행등을 이용해서 직접 낳자고 말하지만 세상엔 아이가 많아서 입양이 좋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것일까? 한국 인구는 줄어들고 있는데, 아프리카 난민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는것도 아니다.
작가에게서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아이를 키우기 무척어렵고 고됬다고 하지만
정작 입양할때 아이의 나이는 4살
왠지 아이가 눈치를 보며 부부의 말을 잘 들었을거 같은 상황 아닌가?

연극 자체는 전반적으론 재미 있다.
레즈비언의 애환은 눈꼽만치도 없고 사회에서 보내는 차별적 시선 역시 전혀 없다.
신기하다. 동성애자를 받아주는 보육시설이라.. 그것도 혼인신고거절까지 받은 동성부부인데 한국이 이렇게 차별없는 나라였다니
이들이 낙천적이라 그런게 아니라 연극에서 전혀 그러한 것을 다루지 않는다.
분명히 한국은 이런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있는 나라임에도 이 연극은 그 어떠한 것도 표현되지 않는다.
내용전개가 이러니 저들이 단지 동성일뿐 이성으로 바꿔도 내용이 전혀 다르질 않는다.

조금 일찍 서로를 좋아했고 떨리는 마음으로 고백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는 낳기 싫으나 키우곤 싶으니 입양을 한다.
그리고 어느정도 시간이 흘러서 헤어지고 아이를 위해 가끔 볼뿐 각자 재혼을 한것도 아니고
자신들의 삶을 99살 까지 할뿐이다. 퀴어니 동성애니 하는 것들과는 전혀 무관한 내용들을 다룬다.
그러니 이게 퀴어(성소주자?)에 대한 연극이라고 보일리가...

퀴어를 빙자한, 좀 튀어보이기 위한 순단으로 이용될뿐 단순한 인생이야기일뿐이다.

이런 연극이 일반 연극과 다른것은 뽀뽀 씬이 좀 많다는 것 정도?
이해할수 없지만 이런 성소수자 연극일수록 이런 씬이 많이 나오는데 왜일까..
자신들의 사랑관에 대해 차별적 시선을 보이지 말라면서 왜 이들의 연극은 성적묘사가 조금더 노골적일까?
물론 이 연극은 노골적이라고 해봐야 뽀뽀하는 장면 두어번 나오는거 말곤 없는정도지만
연극을 적지 않게 보는 입장에서 이정도도 다른 연극에서는 흔히 볼순 없기때문에 제법 어색하게 다가온다.
동성이 뽀뽀하는게 어색한게 아니라 연극이라는 실제 현장에서 타인들이 서로 뽀뽀하는걸 집중해서 봐야 하는 내 자신이 어색하다.

그리고 딸랑 3명 나오는 연극인데 이 넓고 좋은 극장을 대관해준 이유는 무엇일까
큰 무대가 어울리는 연극도 아니고

무대도 맨 앞구역 관객석과 그 뒤 구역 관객석 중간에도 만들어놔서
저들이 연기할때 보이지도 않고 보려하면 목이 아플정도다
정동세실에서는 이렇게 할 수 없었을텐데.. 여기는 왜 이런 뻘짓을 한건지..
이런건 관객을 우롱하는짓 아닌가? 왜 가끔 이런 개같은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넓은 무대에서 연극을 하면 무대 전체를 반드시 이용해야 한다고 협박이라도 하는건지
쓸모없이 왔다리 갔다리 해서 고작 가족 3명 나오는 연극인데 꽤나 피곤하게 만드는 설정이 아닐수 없다.

작은 규모면 관객들이 집중할수 있게 작게 세팅해서 그 속에서 열연을 펼치자.
괜시리 옆이 허전하다고 왔다갔다 산만하게 그러지 말고

그리고 예매할땐 절대로 D,E,F열은 사지 말길 권한다. 이곳에 앉으면 배우들이 뒷통수에서 연기 하는 꼴을 보게 될것이다.
예전에도 이런 연극이 있었던거 같아 무척 불쾌했었는데..
예매처에서 이런 사실을 말해줬더라면 결코 이딴 좌석을 예매하진 않았을텐데..
앞좌석과의 높이차도 없어서 앞사람 머리통으로 시야제한석이 되니 완전 맨 앞자리가 아니고서는
이 열들은 선택하지 않길 권하고 싶다.

퀴어니 동성애니 뭐니 이딴거 아니고 그냥 사랑하는 사람들 연극이니 포스터 보고 낚이지 마시길
(극중 인물들이 동성애 커플은 맞음)
대학로 소극장에서 오랜기간 하는 많은 사랑연극이 훨씬 감동적이고 가격 저렴하니 그런것을 추천함.

그리고 절대로 좌석 D,E,F열은 사지 마시길 권함.

출연 : 백소정, 경지은, 박은호, 서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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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4. 3. 24.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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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는 몸살로 예매한 연극도 못보고 넘어갔었는데 이번주는 다행이도 콘디션이 나름 괜찮다.
3월도 중반에 접어들어 나무들의 새싹이나 꽃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일부러 길게 돌아가는 버스를 타고 한시간 가량 버스여행을 하니 따뜻한 봄햇살에
잠시나마 좋음이 기분좋게 밀려온다.
좀더 여유있게 있고 싶었지만 명동에서 혜화동까지 걸어가야 하는 입장에서 남은 두시간은 그리 많은 시간은 아니다.

인사동 갤러리를 한곳도 못들르고 그냥 걷다가 극장에 들어선다.

짧은 극이라 지루할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꽤나 불편한 의자는 언제나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이 연극이 유명한 극인지 만석이라는것은 좀 신기했다.
3일 공연하는 것이라 지인들찬스겠지만 특별히 반감생기는 경우가 한번도 없었다.

가격이 무척 저렴한것까진 좋으나 공연시간 70분은 역시나 너무 짧다.

이미 유명한 희곡이라지만 지금 한국사회랑 잘 맞는다고 해야 할까
유명한 블랙코미디들은 시대를 초월하긴 하는데 작금의 현실을 보고 있는거 같아
착잡한 심정이 사라지질 않는다.

선동하는 지배계급, 그들에게 빌붙어 사는 사람, 이들에게 농락당하는 사람

배경이 바다 한 가운데 땟목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하기엔 상황이 특이하다. 우체부나 직원도 그렇고
1960년대에 나온거라 상황을 대충 맞춘건지..

보면서 좀 이해가 안되는것은 누군가 나를 잡아먹겠다는데 투표같은 규칙으로 가능한지
작가는 이런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있었을까. 부정적으로 전개되며 묘사된다.
이념, 편가르기, 모함 등 수많은 것들을 이용하여 한사람(원작에선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지식인이라 함)을 나락으로 몰고 간다.

보통 어쩔수 없을때 인간의 자기보호본능으로 현실에 대한 합리화를 하기시작하는데 이 사람 역시
상황을 되돌릴수 없다는 것을 인지해서였을까. 자신의 죽음에 대한 합리화를 하며 마무리되간다.

그렇지만 어떤 무력적 저항도 이사람은 하질 않는데 이부분에서 조금은 이상했다. 인간이란 존재가 저리도 쉽게
생명을 타인에 의해 놓을수 있는것인가. 물론 알게 모르게 가스라이팅 당해서 자살하는 사람들도 있겠으나
한정된 시간속에서 모든것을 표현해야 하는 연극이란 장르에서의 한계였는지 '너무 쉬운데'라는 섭섭함이 드는 극이었다.

좀더 집요하게 죽음으로 몰고가도 될거 같은데 중간에 나오는 우체부는 자신의 명예는 중요하지만 한사람의 목숨은
버려져도 된다고 생각한것인지 자신만 떠나버린다.

왜 바다 한가운데 땟목이란 설정을 둔것일까
내가 누군가에게 몰리기 시작하면 세상과 내가 단절된다는 상황을 그려낸것일까
그렇다면 '바다 한 가운데서'라는 제목은 총 다섯명의 등장인물 중 죽임을 당하는 홀쭉이 단 한사람에게 비치어지는 세상을 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바다라는 거칠고 외롭고 두려운 세상을 나 한사람으로 국한시켜 보면 모든것이 쉽게 이해되긴 한다.
감정선이 연결되는 순간 우울함과 고독이 파도처럼 밀려올수도 있겠지만
블랙코미디 측면에서(나를 제3자로 한발짝 떨어져서) 본다면 세상을 오징어 씹든 관중입장에서 볼 수 있을법한 내용이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밝은 사회가 보이진 않는다는게 이 극의 암울함이겠지

전체적으로 집중은 잘 되지만 귀에 쏙!쏙! 박히는 대사는 아니었다. 좀 흐려진다고 해야 하나
뚱뚱이와 홀쭉이의 대사는 흐름상 연극의 전체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인데 약간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짧은 연극들의 특징인 자극적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연극 한편 보고 나오는 기분은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좋은 극이었다.

출연 : 임준수, 고채승, 김도현, 이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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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4. 3. 20.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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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에는 눈이 엄청 오더니 이젠 바람이 분다. 조금만 온도가 더 높았더라도 시원하고 좋았을텐데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할지 난감한 하루

이 연극은 몇해전 낭독극으로 초연했던 극인거 같다. 그때 보진 못했는데 낭독극은 뭐랄까
듣는것에만 집중해도 되는 것이라 라디오 듣는거 같기도 해서 연극의 맛이 좀 퇴색되는거 같아
특별히 땡기지 않는이상 왠만해서 선택하기란 쉽지 않은 장르다.

아무튼 그 낭독극을 왜 일반 연극으로 만들게 되었을까
비주얼적으로 어느정도 구성을 하면 괜찮을것이라 생각했던것일까

배경은 조선초 고려말 고려를 지키려던 몇몇의 신하들과 도망가는 신세를 그리고 있는데
특이한것은 화전민의 촌장이 훨씬 기품있게 그려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은둔한 학자인가 싶었지만
일반 화전민일뿐이다. 사람의 가치는 삶과 깨달음에서 비롯되는 것이겠지만 표현의 투박함마져 사라지는것은 아닌데
이 극에서는 그러한 것이 전혀 표현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공연 내내 어색함이 크다.
영화 '동막골'을 연극으로 만든거 같은 느낌이 강하다고 해야 할지
하지만 영화와는 다르게 심심하게 진행되고 박진감 역시 그다지 없다.
음악과 효과음등은 실제로 연주를하는데 오페라처럼 무대와 관객석사이에있는데
북을 너무 크게 쳐서 배우들 대사가 잘 안들린다. 밸런스가 영 별로였다. 유독 북소리를 크게 설정한것은 박진감이나 긴장감을 키우기 위해서였겠지만 그다지.
그리고 강원도 사투리를 넣었는데 단어만으론 뜻을 몰라도 전체 흐름상 이해하는데 지장은 없으나
문제는 강원도 사투리가 섞이므로 대사가 귀에 꼿히는 맛이 매우 떨어진다. 디션이 안좋다고 해야 할까
이럴바엔 강원도 억양으로 하고 대사는 서울에서 하는거니 서울 말로 하면 되는게 아니었나
왠지 불필요한 아집의 산물같은 기분이 든다. 이럴거면 전오륜은 왜 사투리를 안쓰는 것인지

그리고 사건의 전개가 너무 진부하다. 외지인과의 사랑 그로인한 질투와 시기심으로 발생하는 사건들
이 뻔한 흐름마져도 표현의 색다름이 없어서 전체적으로 하품은 안나오지만 집중할만한 요소가 없다.

제목이 왜 화전일까. 갈대밭에 불을 내서 모두 잡았기때문일까? 저들이 화전민이라?
전체적으로 내용이 웃기지도 못하고 슬프지도 않고, 괴롭거나 아쉽거나 절망스럽다거나 안타깝지도 않다.
고려말, 조선초 한도끝도 없이 먼 과거 이야기 같다. 마치 호랑이 담배 피던 이상한 시절같은 이야기

현대 옷을 입고 나왔길래 시기가 현댄줄 알았는데 600여년전일줄은, 관료는 선그라스를 끼고 나온다. 그것도 한밤중에

약간은 황당한 시대배경에 특색없는 전개와 감동없는 앤딩
차라리 사랑 풍만한 그 시대의 멜로를 만들지.

그리고 예전에도 오늘과 같은 비슷한 경우가 있었는데 출연자가 박수갈채를 느끼며 한명 한명이 천천히 인사를 한다.
24명 모두가 각자 인사를 하며 모두 자신이 주연인냥 뿌뜻한 표정을 지어낸다.
제발 뭉태기로 함께 인사하자. 커튼콜을 무슨 10분동안이나 쳐하고 있냐.
모두들 수고했으니 관객도 수고하라는건지

출연 : 신현종, 김성일, 조은경, 윤슬기, 경미, 김구택, 이경성, 한동훈, 홍상용, 김보라, 이해성, 송현섭, 신욱, 이형주
이해온, 박정인, 이홍재, 박현민, 김태양, 민정오, 김강민, 성종원, 양재범, 정영재

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4. 3. 17.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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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완연한 봄이었다. 손을 주머니에 넣지 않고 걸어도 전혀 추운 느낌이 없는,
기운빠진 겨울이자 먼 발치에서 손 흔들며 달려오는 어느 봄
이런 날은 오래 걸어도 힘든 느낌이 적어서 연극 전 후에 계속 걷긴 했지만
혜화동에서 집(신사동)까지 걸어오는게 그렇게 어려운일이 아님에도 차마 그렇겐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오랜만에 쓸쓸함이 급격히 밀려와서였을까

아르코 대극장은 그래도 관객석이 좋은 편인데 소극장은 너무 허접하다.
엉덩이 아프고 자세도 매우 안좋은 불편한 의자. 어디서 이딴걸 구해온걸까.
이런곳이 돈을 많이 벌순 없겠지만 관객석은 그래도 좀 좋게 해줬으면 좋겠다.

테디인형을 달고 있는 아버지(대디)
종횡무진 뛰어다녀서 런(run)이라고 한건지

정작 아빠는 뛰어다니지 않는다. 테디 데디와 뛰어다니는 딸들?

배다른 두 딸들이 서로다른 이유로 아빠를 찾는 내용인데
문제는 각 딸들의 시선에 맞춰서 두번 반복한다는 것이다. 타임루프물은 아니고
영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같이 인물의 시선별로 시간이 반복된다.

이게 옴니버스 영화 여러편을 보는 느낌과는 다르게
그냥 두번 반복되는듯 지루함이 보인다. 왜 이렇게 해야했을까

물론 두 딸인 윤서와 니나는 같은 아버지를 가졌음에도 다른 환경에서 자랐기때문에
환경에 따른 두 가지 시선을 보여준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되는 일이긴 한데
동일한 사건을 놓고 서로 다른 심정을 동시에 표현해도 되고 서로의 갈등요소로서도 나쁘지 않은 소재임에도
불필요하게 두번 반복하는 구조를 채택했다는 것이다. 이래서 중복되는 내용들이 많아지고
시간은 길어져서 전개가 느리지 않음에도 지루하게 느껴진다.

도입부에서 분명 둘은 어느정도의 갈등 요소를 보이다가 서로 섞이는 듯한 늬앙스를 풍기는데
결론이 그렇게 되지 않겠냐는 복선같은 냄새라서 끝도 그다지 궁금증이 생겨나진 않았다.

그리고 이건 단순한 기분인데 자주 뛰어다니는 장면이 나오는데 저렇게 뛰어다는걸 어디서 봤던가.
뛰어다니는 연출이 별다른건 아니라서 다 비슷해보일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리도 기시감이 드는것은 왜일까
갑자기 떠오른 연극 한편. 얼마전에 봤던 '아들에게'라는 이곳의 대극장에서 한 연극이 떠오른다.
연극에서 뛰어다니는게 흔한 설정은 아니지만 왜 이렇게 이 연극의 뛰어다니는 장면하고 비슷한 기분이 드는지
그냥 그분이 그럴뿐이다. 두 연극 모두 많이 뛰어다는 연극이라서 같은 기분이 들었을지도.

필리핀이라 하면 한국에서는 꽤나 인식이 좋진 않다. 한국 범죄자들이 숨어드는 곳, 청부살인, 부패한 정부 등
연극역시 그렇게 그리고 있다. 그리고 한때 문제됬던 현지 처 같은 사생아 관련한 문제들
극중 인물인 니나가 그러한 인물인데 아버지는 니나의 어머니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보통 사생아를 코피노라 한다는데 이건 현지에서 가정을 꾸리고 살다가 생긴 자식을 말한다.
이렇게 아예 기억도 못하는 설정은 뭘까. 게다가 아버지는 같은 지역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물론 윤서와 한살 차이가 나는걸 봐서는 오래전 필리핀에 갔을때 만났던 사람인지는 구체적인 설명이 없지만
휴대폰으로 메세지를 주고 받기도 했는데 모른다? 무엇인가 설정에서 오류가 생긴것인지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것인지

그냥 이곳 저곳 많이 돌아다니고 다들 친절한듯 보이지만 속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아버지도 좋지 않은 일을 했다는것인지
정작 연극에서는 이게 전혀 중요하지 않아보인다. 왜 필리핀 딸은 이렇게 모르고 살아왔는지
그 딸은 왜 아버지를 찾아보려 하지도 않았는지. 그러면서 왜 문자로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지

연극의 끝은 델마와 루이스 아류작처럼 그냥 둘이 떠난다. 델마와 루이스는 친구였는데 그리고 그 끝은?
이들은 자매로 어디론가 그냥 떠난다. 물론 필리핀의 어딘가로 간다. 세계는 넓지만
니나는 아직 출생신고조차되지 않았으니 다른 나라로 갈수는 없었겠지
필리핀은 출생신고가 안된 아이의 교육은 어떻게 되는걸까? 드라마를 보고 한국어를 익혔다고 하는데
기분 교육 지식이 없는 문맹인 수준이었을 니나가 다른 나라 언어를 단순히 외워서 익힐수 있다면 언어의 천재가 아니었을까
(니나 엄마가 나중에 아빠가 한국으로 대려갈것을 대비해서 한국어 교육을 시켰나?)

숨가쁘게 뭔가를 주저리 주저리 설명하는데 솔직히 남는 말들은 극히 없다.
산만하게 이리 저리 움직이면서 관객에서 설명을 하니 어지럽기만 하고
귀 기울려도 막상 그다지 들을만한 내용도 없다.
엄마나 남자 두명이 독특한(?) 춤을 추며 대화 하는게 내입장에선 연극으로서 훨씬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아직도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연출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환경이나 배경,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사춘기 소녀 둘의 치기어린 외출 또는 가출정도?

주제를 좀 명확하게하고 그에 맞게 설정을 맞췄으면 좋으려만
리드미컬한 엄마만이 기억에 남을뿐인 연극이다.

출연 : 이동규, 서이주, 강희만, 김병춘, 진민혁, 이주환, 조경미, 한소진, 이시향, 박인옥, 엘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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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4. 3. 1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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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였을까? 일찍나와 미술관을 가려고 했는데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정리하다보니 연극을 보러갈 시간이 되버려
미술관은 다음기회로 미루고 바로 혜화동으로 직행
그래도 조금은 걷고자 동대문에 내려서 걸으니 기분은 좋지만 발걸음이 어색하다.
왜 걷는게 자연스럽지 않은걸까. 아직 시간도 여유가 있는데 무엇인가 조급하다.
꼭 오늘 볼 잉여인간의 조급함처럼..

이 연극은 전에도 한번 봤던것이다. 그때 관람기를 보니 시간을 40분가량 줄였다고 나오는데
이번도 휴식시간 15분 포함해서 160분인걸 보면 똑같이 줄인 그대로인거 같다.

처음 봤을때 기억이 나는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느낌을 받는 기분이 든다.
어떤 목적에 미친듯 달려가다가 갑자기 지쳐버려 무기력해진 한 인간.
현대인도 마찬가지일듯 한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같지 않을까

이바노프는 그것이 조금 더 강렬하게 왔던것인지,
마지막 자살하는 것이야 어느정도 예정된 순서같아보이는데 이것은 어떻게 보면 무척 위험한 결론이 아닐수 없다.

어느순간 겪게 되는 무기력증, 후회, 회한, 일어설수 없는 좌절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것들을 이겨내고 또는 뒷전으로 미루고 과거를 회상하며 현재를 살아간다.
하지만 이바노프는 과거를 회상하는듯 보이나 실상을 미래를 살아갈수 없는 자신을 원망한다.

무기력증이란 이런것이 아닐까. 미래로 나갈 힘을 상실하는것
이것과 동일시 되는 것은 바로 죽음

이 연극은 시작과 동시에 이바노프의 죽음을 보여준다.
이미 죽은 사람인데 생물학적 죽음을 보여준다고 해서 비극이라 할 수 있을까

물론 극의 전개 자체는 비극과는 거리가 멀다. 세익스피어의 비극들처럼 전체적으로 먹구름이 끼어있는것은 아니다.
다만 이바노프 머리위에만 언제나 우울함이 따라다니고 있다.
생각보다 무기력해보이지 않을정도로 짜증을 잘 낸다. 에너지는 충만한데 심리적인 의욕을 상실했다고 할까
그래서 밤마다 레베제프 집을 가서 보내다 오는거겠지. 지옥같은 집을 떠나서

그렇지만 아직도 왜 이바노프에겐 집이 숨막히는 곳인지 그 이유까지는 모르겠다.
아내와 같은 공간에 있는것이 싫다는 것같지도 않은데(애정이 식었을뿐 이혼하고 싶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니)

나도 어느순간 잠시였지만 내 집에 있기 싫었을때가 있었다. 물론 잠시잠깐이었다.
알수없는 답답함으로 무엇인가 고립되는 느낌이 싫다고 해야 할지
그래서 끊임없이 나왔던 적이 있었는데
또 어느때는 밖을 나가는것이 한없이 귀찮을때도 있었다. 집이 세상 편안한 안식처 같았다.
지금은 한 3분의2는 집에 있고, 나머지 3분의1만 밖에서 보내고 싶다.
오늘같이 연극을 본다거나 미술관을 간다거나 한없이 걷는다거나..
그러다가도 한 며칠은 방구석에서 뒹굴뒹굴 이게 현재 내가 원하는 삶인데 전혀 안된다는게 현실

이바노프의 행동이 이해되지는 않고, 이해 할수도 없을것이다. 나는 부유하지 않고 능력도 없기때문일텐데
그럼에도 이상하게 저 사람의 괴로운 심정이 이해되는듯 하다. 어쩌면 내가 지금 겪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몇해전 약간은 무기력증이 와서 회사를 그만두고 1년을 그냥 쉬었던 적이 있는데
그리고 적당히 좋아진줄 알았지만 얼마전 병원을 좀 다니면서 치료들을 하면서 다시 생긴거 같다. 알수 없는 무기력증

그렇지만 이바노프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할 필요가 내겐 없다.
조용히 쉬고 싶으면 조용히 있으면 된다. 물론 다니던 회사는 그만둬야 겠지만
이바노프처럼 잉여인간이 되면 되는것 아니겠는가. 찾는이도 없으니 훨씬 홀가분하게 털어낼수 있겠지

연극 자체는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계속해서 나를 빗대어 보게되어 묵직해지는 문제가 있지만
주제가 회색이라 구성은 전체적으로 밝은 톤을 유지하려 애쓴다. 물론 이바노프는 제외되지만 아무튼 웃음도
적당히 섞이는 흐름으로 휴식시간 포함해서 거의 3시간동안 지루함을 전혀 느낄수가 없다.

그리고 이렇게 작가 한사람의 작품을 계속 공연 해주는 극장이 있다는 것도
제법 좋다는 생각이 오늘 문득 들게되었다.
미술관에서 한사람의 작품을 연대별로 모두 보여주는것 만큼 재미있고 작품을 이해하기 좋은 관람도 없는데
연극도 한 작가의 작품을 계속 볼 수 있다는 것은 선택의 폭을 넓히고 깊이있게 관람할수 있는 방법같다.
전체 소극장의 한 1%정도는 이렇게 한 작가만을 위한 극장이 있으면 어떨까 싶지만 현실은 쉽지 않겠지

연극이 끝난 후 좀더 걷고 싶었는데 오늘은 발걸음이 너무 어색해서 오래 걷질 못한 하루였다.
보이는 세상 모두가 귀찮았던 이바노프같이

출연 : 이동규, 서이주, 강희만, 김병춘, 진민혁, 이주환, 조경미, 한소진, 이시향, 박인옥, 엘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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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4. 3. 10.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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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가 사그러들어 돌아다니기 적당한 기온의 하루
오랜만에 서울시립미술관을 들러 구본창 작품전도 보고
여유롭게 길을 거닐지만 한국은 지독한 열병에 시달리고 있어서 마음 한편이 편하질 않다.

늘 먹던 칼국수 집에선 이젠 물어보지도 않고 수제비를 칼국수에 넣어서
먹는 시간이 오래 걸려 하마터면 연극에 늦을뻔..(맛은 있지만 오늘처럼 시간여유가 없을땐 칼국수만 먹는게 좋은데)
부랴 부랴 빨음 걸음으로 극장에 도착하니 10분정도 여유가 있어서 숨도 고르고
어떤 연극일지 생각해보지만 연극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제목이 생각안난다.
티켓과 리플랫을 꺼내보면 될것인데 그러면 시놉까지 모두 읽어버릴거 같아서 제목을 모른 채 봐버렸다.

죽음에 대해 초반에는 조금 가볍게 시작하나 싶었지만
글쎄
죽음을 가볍게 넘길만한 예술가가 어디 흔하랴
온갖 썰들이 난무한다. 수많은 한자들마저 동원하면서
한자를 말한 이상 그 해석도 말을 해줘야 관객이 알아들을테니 모두 해석까지 고맙게 해준다.
이럴바엔 그냥 해석만을 말해도 흐름상 전혀 문제될것이 없어보이는데 끝까지 한문을 말한다.
심지어 리플랫에도 한자들로 가득하다.(중국인용인줄 순간 착각)

두 가정이 나오고 서로 다른 죽음에 대한 괴로움을 토로한다.
한쪽은 최대한 여파를 줄이기 위해 앞으로 남은 시간을 최대한 할애하여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을 가족끼리 나누고 토론한다.
다른 한쪽은 준비되지 않은 딸의 죽음으로 괴로워 하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온다.

두 가정의 공통점은 유가족이 될(된) 사람들은 죽음을 맞이할(한) 사람에 비하여 훨씬 괴로워 한다는 것
남겨진 자들의 슬픔을 표현한것인지

나 또한 유한한 인간의 짧은 생에 대해 항상 많은 생각을 한다. 하지만 연습할수도 없고 돌이킬수도 없기때문에
항상 물음표만이 남는 결론 없는 맽음으로 지워지곤 했다. 어느날의 어떤 경험이 있기 전까지는.....

예술가들역시 죽음에 대한 깊은 통찰을 원하고 추구하지만 찌릿할정도의 작품을 본 기억은 없는거 같다.

나는 아직도 영생을 하면 내가 하고 있는 모든것들의 시간이 멈출것인가란 질문을 던져보곤 하는데
들리지 않는 메아리일뿐

연극을 보다보면 갑자기 급발진 하는 부분들이 있다. 순간적으로 감정이 격화되면
내 안에선 이상한 보호본능이 발동해 감정선을 닫아버리는 경향이 있는거 같다.
그래서 연극에서 오열을 토하는 장면은 가급적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 이 연극은 그러지 않는다.
부모로서, 가족으로서의 극한의 슬픔을 몸으로 표현하니 다소 거부감으로 다가온다. 이들의 슬픔을 관객에게 돌려줄순 없는것일까?
관객이 슬퍼하지 않도록 배우들이 슬퍼해주는 것일까. 나는 가급적 내가 슬퍼하고 싶지 배우들이 슬퍼하는걸 보고 싶진 않다.
배우들은 내가 슬퍼할수 있도록 밑자락을 깔아주기 기대한다. 물론 슬퍼야 할 부분에선만 말이다.
요즘 보는 연극들은 대부분 배우들이 모두 슬퍼한다. 한국사회가 어지러우니 배우들이 대신 슬퍼해주고
극장을 나설때 관객의 기분좋길 기대하는것인지는 모르겠다만 좀 아쉬움이 크게 다가온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어쩜 그리도 청량한지.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목청에 힘이 빠지기 마련인데
이 할아버지는 산삼을 드셨는지 혼이 되어서도 목소리가 너무 쩌렁쩌렁해서 할아버진지 청년인지 도통 감이 안온다.
인물에 대한 해석이 이상한건지 연출이 이상하게 표현한건지 후반부로 갈수록 그 어색함은 지칠줄 모르는 철마같다.
조금은 아니 아주 많이 기운을 뺐다면 그가 가는 길 좀더 아쉬웠을까..

죽음을 지혜롭게 그리고 삶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기 위한 마무리는 식상하고 그다지 납득되지 않는 그냥 그렇게
아버지는 현대의학으론 거의 효과가 없어서 죽음을 택했는데 수술 후 멀쩡히 살아있고..(앞으로 치료가 많이 남았다곤 하지만)

그냥 그렇게 죽음을 생각하는 온갖 말들이 난무하지만 결론은 살아있으니 그냥 살자 정도로 보이는 연극이다.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랬던 내일이다' 라는 말처럼 인간의 유한한 삶에 대한
미련과 슬픔, 두려움 같은것이 녹아들어 가슴 먹먹하면서 후련함이 남는 죽음에 관한 연극 한편이 그리워지는 연극이었다.

출연 : 조주현, 김효신, 이태식, 시민지, 박유진, 윤지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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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