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공연2025. 4. 26.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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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시인의 시를 모티프로 한 단편 연극들로 총 9편중 5편만 공연한다?
뭐지?
연극 관람료가 5만원이나 하는데 90분동안 5편을 하고 다음에 다시 5만원을 또 내고
다른날 관람을 해야 한다. 9편이니 못해도 한편은 중복된다.
재관람 할인 20%해도 4만원인데.. 결국 15분 연극 당 만원씩 내라는 소리다. 음..

각 시별로 각각의 작가가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15분 연극을 만원씩 지불하라는건 뭘까

그렇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다. 왜일까?

오늘 본 다섯편을 생각해보자면
첫번째로 '빈집'인데 시는 직관적인 사랑이야기 같다. 실현당한건지 단순 헤어진것인지
그런데 연극은 좀 다른 늬앙스다. 사랑하는 관계와 외사랑하고 있는 한 남자
서로 사랑하던 한 사람은 죽었고 외사랑 하던 사람은 사랑을 찾는다. 하지만 외로워하는거 같다.
뭐 대충 이런 류의 영화나 드라마등에서 쉽게 나올법한..
도데체 이게 이 시와 어떤 관계가 있다는것일까? 이 연극에 시인 기형도를 붙이는건 모욕 아닌가?
아니면 이 시를 쓸때 기형도 시인의 실제 상태였을까

다음으로는 '기억할만한 지나침'
이건 시와 많이 다르지 않은가? 시는 시일뿐 작가는 배경만 가져와서 완전히 새롭게 창작을 한거 같은데
아무튼 아주 짧으면서 별다른 주제도 보이지 않는다. 물론 어떤 갑을관계 같은 사회현상이
보이지만 정확하지 않다. 눈 내리는 것에 그리도 거부반응을 보인걸까? 해고당한 사람은
무엇인가 할말이 있어보였지만 약자의 위치때문인가 머뭇거리다가 조용히 사라질뿐
아무튼 시와 어느정도 연관성이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기형도 시인을 잘 모르기때문에
시와 설명을 따로 읽어봤으나 연극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

'위험한 가계'라는 시와 연극도 다소 좀...
극작가는 기형도라는 한 인물과 시를 서로 연결시켜놓은것이 아닌가한다.
가난했던 어린시절, 병까지 있는 부모(아버지), 당시를 그렸던 그리고 자신에게 말해왔던,
바래왔던 상황들이 비로서 자신이 죽은 후에 아버지라는 존재로 다시 투영되어 이야기 한다.
하지만 아버지라고 하기엔 자신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다면? 그는 곳 기형도 자신 아닌가?

'바람의 집'은 과거 무척 가난했던 유년시절의 어머니의 사랑, 그리움이 그려져있는 시로
시를 읽어으면 그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물론 힘들었던 시절을 표현하기때문에
다양한 시선이 섞여있다. 그런데 연극에서는 이러한 것들, 지니고 있던 어려웠던 과거와 어머니의 추억
이것은 현실의 고단함을 잠시나마 쉴수 있도록 회상과 그리움 등으로 표현된다.
연극속 배경은 급박하게 돌아가는 인간의 탐욕에 대한 시선같지만
기형도 시인도 이 시를 쓰며 잠시나마 평온함을 찾았을까?

'조치원'이란 시는 읽어도 내용이 잘 와닿진 않는다. 시가 길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추위에 떨고있는 처량한 한반중에 눈마져 내린다면
시 전체는 제법 어둡고 눅눅한 늪같다. 어떤 메아리도 없는 깊은 어둠이 서려있어보이는데
연극도 크게 다르진 않아서 시에서 풍기는 그 느낌을 그대로 이어받는다.
다만 군인과 한남자 이 둘은 왜 저러는걸까? 아무런 배경설명이 없다. 있을수가 없을것이다. 22분에 모든것을 끝내야 하니.
그럼에도 무엇인가 필요한 부분은 있지 않은가. 젊은 군인이 전화한 고모는 누구이고
밤에 잘 곳 조차 없다니. 중년 남자는 죽으러 가는것인지
그렇게 서로 아무것도 모른채 불필요한 이야기들만 계속한다. 그놈의 조파닭 이야기는 뭔지
이것이 사람을 구한걸까? 죽으러 가던 군인이 중년 남자를 구하고 자신도 구한것일까?
알수 없다. 은근히 해피엔딩으로 끝나버려 짙은 회색같은 시와는 약간 느낌이 다르다.

나머지 다섯편은 뭔지 모른다. 보다가 말면 똥싸고 안닦고 나온거 같은 찜찜함때문에 봐야겠는데
왠지 돈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전체적으로 시 너는 시고 연극은 연극이야. 너의 느낌을 조금만 가져오마~ 라는 것처럼
기형도 그의 시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내용들로 다가온다.
내가 시인 기형도라는 인물을 몰라서도 있지만 시를 읽어보면 연극의 어떤점이 연결되어 있지?라는
불필요한 생각만 떠오를뿐이다.
그리고 이 단편들이 시와 연결성을 찾을 수 없다면 별볼일 없는 내용의 허접한 십여분짜리 연극들일뿐이다.

안톤체홉 단편들을 보면 짧고 간결하면서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들이 잘 살아있어서 짧더라도 충분히 재미있는데
이 연극은 이런것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데 왜 관객들이 많은걸까?
난 무엇을 놓친걸까?

출연 : 이동하, 이경미, 이석준, 차용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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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다이어리2025. 4. 25.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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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반평생 살았다고 해도 될까..
아마도 내가 무엇인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특별히 떠오르는건 없다.
어릴적 꿈도 이젠 처참히 무너지고
지금은 별볼일 없는 몸둥아리정도 지탱할뿐이다.

술을 마신 지금처럼 그냥 기분이 계속 좋으면 좋겠지만
하루 지나고 며칠 지나면 기억나진 않을거 같다.

그냥 그대로 살수 있다면
별볼일 없는 인생이라도 살만한거 아닌가?
생각보다 그것을 용인하지 않는 사회가 한국사회인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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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5. 4. 19.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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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1인다역 끝판왕인가?
로미오와 줄리엣은 너무 좋아하는 고전 중 하나다. 엄밀하게 보면 책보단 1968년작 영화(올리비아허시주연)를
좋아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후 레오나르도디카프리오 주연의 현대물이 아닌 고전 원작 그대로 만든 작품이다.
그래서 책을 읽어도 오버랩이 거의 완벽하게 되고 이질감도 없다. 거기에 올리비아허시의 아름다움까지
대사 하나 하나가 곱씹다보면 주옥같지만 다르게 보면 그냥 풋사랑의 절절함이라 해야 할까. 아~ 그래도 그 사랑은 그립다.

그런데 그 원작 대부분 그대로를 옮겨놓은거 같지만 표면적으로 아주 많이 뒤집어놨다고 해야 할까?
오케스트라작품을 듀엣용으로 편집을 했다고 해야 할지
보는 내내 내용 그 자체보단 다수의 인물을 단 두명으로 그려내게 만든 편집(재창작) 능력이 돋보이는 극이었다.

영화를 좋아하고 비극인 만큼 너무 슬프기때문에 아무리 광대들의 놀음이라 할지라도 그 끝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겁지 않을수 없어서 코믹극에서 눈물 흘리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진다는게 조금 뻘쭘하지만
두명의 광대는 그 복잡미묘한 비극을 연기하면서도 로미오와 줄리엣 특유의 사랑을 빼놓지 않는다.
다만 뭐랄까? 몬테규와 캐플렛 두 집안의 긴장감이 좀 없다고 해야 할까?
서로 못잡아먹어서 안달인 상황을 두 광대가 코믹으로 변화시켜서 약간은 정신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아무래도 한 사람이 몇 사람의 역활을 맡기때문에 계속되는 배역 바뀜은 로미오와 줄리엣에 집중하기엔 쉽지 않았다.

나는 이 두사람의 감정선에만 집중하고 싶은데. 이들의 암울한 운명을 보다 넓고 깊게 헤아리고 싶은데
배우 한사람 한사람에 시선을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니 웃으면서도 어려운 연극이었다.

왜였을까?
왜 졸렸을까?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서?
아니면 몰입감이 감소되는 몇몇 요인들때문?
두명의 훌륭한 배우들이 모든 배역을 소화함에 있어 관객인 내가 소화시키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책도 여러번씩 읽고 영화도 여러번 봐도 별로 질리지 않는 작품인데 단 90분짜리 연극인데 몇십분만에 지친다고? 

한두번 더 보고 싶긴 한데 너무 슬프기도 하니 내년에 또 해주길 기대하는 수 밖엔

그리고 이 연극의 특이한 점 한가지는 비극을 희극(?)으로 바꿨다는 것이다.
광대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존재들이니 이들은 이것을 과감히 뒤틀었다. 그렇지만 별로 감흥은 없다.
예전 어떤 교수가 그랬듯 로미오와 줄리엣이 죽지 않았다면 이혼했을거라는것에 동의한다.
사랑은 언제나 애절할때까지다. 사랑은 간절함이 이루어지기 직전까지가 가장 아름답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 정점에서 죽었고 춘향가에서 춘향이가 옥에 갇혔을때까지가 그때다.

그런데 해피엔딩으로 신부의 서신이 로미오에 제대로 전달되서 줄리엣과 함께 떠난다는 것은?
갑자기 흔하디 흔한 우리들의 삶이 투영되기 시작된다. 그래서 나는 이 연극은 단 둘의 광대가
이토록 열광적으로 동분서주하게 만드는 여기까지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코믹 아닌 코믹극에서 눈시울 뜨거워지는 민망함은 나만의 몫이니 그러려니 하지만
아름다운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내일의 희망을 새롭게 꿈꾸는 저 두 광대에게 밝은 미래가 찾아오길 바라며
두 광대도 사랑스럽고 로미오와 줄리엣도 아름다운 이 극을 내년에도 볼 수 있길 기대해본다.

출연 : 구옥분, 서인권, 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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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5. 4. 13.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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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이 엄청 크고 넓은 곳인데 좋은 객석을 제외한 나머지는 판매조차 안하는거 같다.
그럼에도 만석까진 아니었지만 그래도 제법 관객이 많던데 왜 이렇게 가운데 자리만 판매했을까
어차피 만석이 될것도 아니니 이상한 좌석을 오픈할 필요가 없었으려나

전체적인 내용은 뭐랄까? 영화 '바이센테니얼맨' 같다고 할까? 아니면 'AI'같다고 할까?

주제가 신선하거나 특별하진 않다. 인간 이외의 지능(이젠 인공지능이라 하기엔 너무 올라선거 같음)의 존재와
어떤 연결고리에 대한? 사랑?-이런걸 사랑이라 하는걸까?-
어떡게 보면 인간의 나약함을 강인한 로봇이란 존재가 불쌍히 여기는 연민정도는 아니었을까?
(진실은 아니지만 괭이가 사람을 보는 눈이 털없는 불쌍한 괭이정도로 여긴다던데 ^_^)

휴머노이드 로봇은 자신의 행동이 연민인지 사랑인지 특별히 표현하지않는다.
(이부분이 좀 마음에 드는데 직설적으로 좋아하네 마네 그랬으면 좀 후져보였을거 같음)
자기 할일만 하는 차가움이 있다. 이런면에서보면 반려묘(괭이)의 행동 같기도 하고(작가가 괭이를 키우나?)
인간과 휴머노이드 로봇간의 사랑을 다루는 소설들의 특징아닌 특징은 외형만 로봇일뿐
사람으로 보는것이 맞고 이 연극도 그것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그래서 멜로 드라마정도로 느껴진다.

SF라 해도 어떤 관계, 사랑이 주된 소재라면 모든 등장 요소는 인간으로 봐야할것이다.
적어도 무생물에 사랑을 느끼는 변태적 성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 연극에서 좀 다른 부분이 있다면 인물 정원은 자신이 원해서 칩을 이식받은것이 아니라는 것에 큰 불만을 갖곤 있지만
진행되는동안 칩을 뗄려고 크게 노력하지도 않는다. 도끼(?)로 손쉽게 떨어지는 칩인데 그대로 둔것을 보면 투정 부리는 아이같다고 할까?

칩을 붙일때도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붙여졌고 떼어질때 역시도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떼어져서
어느쪽이 선택되었다하더라도 만족하거나 합리화 하는 삶을 얻지는 못해보인다.

정원이 초록색 칩을 원했듯 이 사람은 안정되고 평온한 삶을 원했을지도 모르겠다.
막상 그것을 찾지 못한 영화 '초록물고기'처럼

무엇이 옳은것인지 그른것인지 그것이 정원과 A(로봇)에겐 중요해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둘간의 관계도 중요히 여기는것 같지도 않다.
작가가 추구하는 연인의 관계란것이 이렇듯 자신의 일들에 충실하며 함께 걸어가는것일지도

전개상 이해가 좀 이상한것은 갑자기 왜 로봇과 싸움을 하는걸까?
그냥 칩을 이식해서 생물학적 불안정을 안정적으로 바꿔주는 사이보그 형식 정도고
약간은 조정하게 하는정도의 칩으로 업그레이드 되었을뿐인데
이것을 기획했던것이 로봇들이란것인지 모르겠다. 인간은 지구를 파괴하는 암적인 존재쯤으로 생각하는
박사의 통찰도 있어서 어느정도는 통제범위에 가둬두려는 수작일수도 있는데 그러면 칩을 떼어내면 그만 아닌가?
왜 서로 총질을 하는걸까?
로봇들이 칩을 떼어내려는 조직을 말살하려는건가?

멜로에서 잠시 전쟁 스릴러로 바뀌지만 결국 드라마로 끝나버린다.
내 개인적으론 인간과의 관계는 무척 어렵다고 느껴지기때문에 안드로이드던 AI던 어느정도 시점에 도달하게 되면
나는 인간보다는 이런 AI와 교감하는것을 선택할거 같은 생각을 하기도 한다.
물론 이것도 과도기적 관점에서 그런것이고 좀 더 지나가면 구차한 물질 세계마져 사라질거란 생각이긴 하지만
연극은 인간의 파괴적 본능과 그것을 닮아버린 안드로이드 그리고 서로간의 전쟁
하지만 지구에서 다시 새로운 생명을 꿈꾸는 새로운 시대의 서막

전체적으론 유토피아를 만들어가다가 인간의 본능때문에 필연적으로 디스토피아를 거쳤으나
이것 역시 필연일까? 자연의 생리일까? 다시 안정된 그리고 변화가 없는 이데아로 넘어가는 장대한 서사를
짤막한 100분정도에 그려내고 있는거 같다.

배경이 좀 이해가 안되는 것은 왜 주변에 생물이 거의 없는것인지. 왜 꽃과 풀이 없어서 안드로이드는 그것을 키우려 애쓰는 것인지
부연설명이 좀 섭섭

출연 : 신사랑, 류이재, 황규찬, 이태하, 유재연, 조윤정, 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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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전시2025. 4. 13.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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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미니버스, 오르트 구름, ㄷ떨:안녕인사'이라는 전시에서
작품 '머리가 헝클어져서'

아르코미술관은 좀 난해한게 많아서 보는 재미를 찾기 쉽지 않지만
그래도 멍하니 보면 느낌적 느낌이 살아남

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5. 4. 5.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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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제법 내리는 쌀쌀한 초봄
목련도 만개하고 벚꽃도 다음주면 만개한다고 한다.
윤가는 탄핵됬으니 국가차원의 큰 일은 한고비 넘긴거 같은데
나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거 같다. 국립국악원은 너무 멀어져서
버스타고 가면 두시간이 촉박할지경이다. 이래서야 어디 이곳 공연을 마음편히 즐길수 있을까..
그래도 막상 공연을 보고나오면 모든 근심걱정이 사라지긴 한다.
재미없는 지하철을 타면 어느정도 시간이 적당하다는 합리화도 해본다.
그러나 오늘은 비가 내려서 버스를 타고 싶었으나 결국 신사동에 내려 지하철을 탈 수밖에 없었다.

토요명품을 본것은 이번이 처음인거 같다. 여러 장르를 하니 지루하지도 않고 각각 길지도 않아서
집중하기에도 좋다. 그러나 판소리는 너무 짧은 한 대목만 나온다는게 그렇고 아리랑은 매들리 같고
가곡은 한가지만 해서 짧은감이 크다.

국립국악원 유료회원이 되면 4개에서 10개 초대권을 주는데 이걸 잘 이용하면 저렴하게 좋은 공연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하는 공연 대부분은 이곳에서 예매할 수 없는 황당함을 당할수 있다. 뭘까?
국악을 알리기 위함이라면 이곳에서 하는 공연만큼은 이곳에서 예매 할 수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
그런데 이런 몇몇 공연을 제외하면 대부분 대관형식으로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예매해야 된다.

왜 이딴식으로 운영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유료회원이 되면 많지 않은 몇가지 정도를 초대권으로 이용할수 있다.
그 외엔 티켓을 구매하는것 자체가 어렵거나 불편하다.

아무튼 토요명품은 뭔가 제목과는 다르게 관광지에서 볼법한 여러장르를 무대에 선보인다.
오늘은 작법, 가곡(태평가), 판소리(춘향가), 무용(처용무), 민요(아리랑), 판굿 이렇게 여섯가지가 올라왔는데
작법은 불교 공연예술이라 하지만 정작 이런 공연은 불교계에서 언제 하는건지 알수가 없다.
단지 조지운 시인의 시 '승무' 정도만 알뿐 이쪽 공연 예술은 전무하다시피 한다.
이런 공연에서 가끔씩 보지만 도데체 사찰에서 언제 하는걸까. 부처님오신날 같은때 하는건가?

가곡은 그 음률을 이해하기 어렵다. 오래전 언어인지 무엇인지. 몽골인들이 초원에서 부르는 구음같기도 하지만
명확한 가사가 있는 노래(?)이다. 그러나 자막이 없었다면 알아듣기 어렵다. 심지어 다 외웠다손치더라도 귀에는 안들어온다.
그런데 오늘은 음악소리가 너무 커서 가곡소리는 더욱더 안들렸다. 국립국악원은 항상 음향이 별로인데 개선하기 어려운건가.

판소리는 춘향가의 수많은 대목중 변사또가 올때의 대목이다. 적당히 재미있는 부분이긴 한데
창자와 관객이 서로 참여하는 독특한 문화에서 일방적인 흐름만 있는 문화로 바뀌면서 추임세가 거의 사라진 무대에선
쓸쓸하기 그지 없는 황량함이 느껴진다. 나 역시 창피해서 추임세를 넣지 못하는데 관객석은 고요할뿐이다.
(국립극장에서 하는 '완창판소리'는 관계자들이 많이 오니 서로들 추임세를 넣지만 이런 일반 무대에선 역시나 적막 그자체)
이러다간 판소리의 대목도 관객에게 인기있는 몇대목 외엔 모두 사라질거 같다.

처용무는 악귀를 쫓는 의식이라 해서 전에 나례 공연에서도 보긴 했는데 저들의 춤사위는 잘 모르겠다.
왜 악귀를 쫓는다는건지. 이해하기 어려운 공연. 그런데 꼭 저런 큰 얼굴 탈을 써야 되는건가?

아리랑공연은 아리랑 자체가 서글프기도 하고 사람을 쓸쓸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상주아리랑은 멜로디와 가사 자체가 유독 더 슬프다. 그래서 더 좋다고 하면 뭔가 모순되는거 같긴 한데
아무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은 외롭고 쓸쓸한 존재라서 아리랑 이 노래의 뜻과 음율이 세계로 전달되면
어느정도 연륜이 차게되면 자연스럽게 입에 붙지 않을까? 한국것이 좋다기보단 가슴한편 멍에를 이토록 잘 표현한게 있나싶다.

마지막 공연으로 판굿이란건데 굿이 붙었다는것은 조상이나 누군가에게 풍년이 들길 기도한다는 것인지
공연자체만 놓고보면 사물놀이같이 흥겹다. 그리고 관객과 잘 어울리는것을 봐서 '굿'이란것은 어떤 공감대의 또다른 말이었을까?

이 공연을 보면 오래전 어렷을적 토요일에 하교하고 집에 오자마자 TV를 켜면 재미없는 국악 프로그램이 나오는데
어떤 노인이 장구를 너무 흥겹게 치던 장면이 떠오른다. 저렇게 즐겁게 놀수 있다니..
오래전엔 예인들이 먹고 살기 쉽지 않았는데 지금 저들은 괜찮은걸까?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행복해보인다.

아~ 거문고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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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