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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한 연극을 뒤로 한 채 네번째라고 익숙해진 극장을 들어선다.
이번이 마지막 공연에 미지정석으로 알고 있는데 자리 배정을 하는 어이상실
4주전에 예매하고 티켓 받으러 사람도 거의 없는 15분전에 도착해서
결국 구석을 배정받았다.
이 무슨 개같은 횡포일까?
이럴거면 예매할때 아예 자리를 선택해서 팔던가
아니면 가운데부터 순차적으로 배정하던가
그 동안 3편의 연극처럼 자리 배정을 하지 말던가
이런자리를 배정받을거라면 예매를 취소하고 다른 연극을 봤을텐데 젠장
다섯명이서 총 다섯개의 에피소드로 이뤄진 연극
하지만 시간의 연속성을 지닌다.
남녀가 섞여있어 어떤 어떤 사건들인가 헷갈렸지만
배경인물에서 남녀 모두 필요해서 그러겠거니 하고 넘어가지만 때때로 약간은 어색..
인간은 언제나 그럴싸한 무엇인가를 이뤄놓길 기대하지만 그것이 가능한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리고 무엇인가 남긴다고 그게 뭘 그리 대단하다고..
지금 남아있는 수많은 예술품들이 모두 사라진다면?
모든 소설들이 사라진다면?
무수히 많은 철학 수학 모든 과학이 사라진다면?
형태야 바뀌겠지만 인간 삶의 본질이 바뀔까?
미래엔 지금과는 다른게 바껴있을까?
인간의 과거와 미래, 현재 그리고 태어남과 죽음 이것을 고민할수록 되돌아오는 공허함
그래서 당장의 삶에 충실 할 수 밖에 없는 어리석음
작가는 타인으로부터 자아를 찾으려 애쓰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사회적 동물의 대표적인 피곤함이 대인관계지만 거부할수도 없으니)
나와는 성향이 다르니 서로 보고 느끼는것이 다를수 있지만
타인이라도 유전자의 대부분은 같다고 하는데 달라봐야 얼마나 다르겠는가
수많은 짧막한 삶들의 연속에서 태어나는 희노애락이 곁들여여진 절망감은 누구나 있는거겠지.
이런 것을 소재로 삼다보니 식상하기도 하고 당연하기도 하고 공감되기도 한다.
마지막 한개를 제외한 4개의 에피소드는 어느정도 연령이 되면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들이니
감흥이 없는것은 아니지만 착잡한 뒷맛이 남는 특징이 있다.
바로 전에 봤던것은 이해가 안되더니 이것은 뒷맛이 쓰다.
개운한 연극이길 바랬지만 제목을 거부할순 없겠지
그리고 소설등을 보면 아이들의 순수함을 빙자한 어른들의 치졸한 합리화가 보인다.
하지만 나이 먹을대로 먹고 때묻어 냄새 진동하는 성인들의 생각을 순결한 아이들의 내뱉는 진실인냥 포장 하지만
아이들의 모든것이 진리는 아니듯 그들의 입을 빌어 뱉는 말들은 성인의 추악함만이 더욱더 보일뿐이다.
말하고 싶은것이 있다면 아이의 입을 빌리지 말고 자신의 입으로 직접 하는 그런 공연이 되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