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공연2026. 5. 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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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긴 공연은 걱정부터 앞섰는데 이제는 이것도 점점 둔감해진다.
장장 6시간의 공연, 단 한 사람이 창을 하고 고수는 얼추 2시간마다 바뀌는데
6시간을 걷거나 서있는것만으로도 쉽지 않아보이는 힘든 여정이다.
한국 역사에서 이런 공연이 현대를 제외하고 있었을까?
조선후기에 판소리가 나왔다고 하지만 그때도 이런 전체를 공연한다기보다는
인기있는 부분을 주로 했기때문에 명창 칭호를 받아도 전체를 외우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하니
이 공연이 얼마나 고생스러운지 직간접적으로 알수 있다.

그런데 도데체 왜 이렇게 완창을 쉼없이 하는것이 명창의 반열에 오르는 첫걸음이 된것일까?
왜 수많은 소리꾼들을 이런 나락으로 밀어넣게 된것일까.
알진 못하지만 이것때문에 수많은 소리꾼들의 목이 날라가 좌절하게 되었을것이다. 
그래서 볼적마다 위태롭다. 저러다가 쓰러지는거 아닌가? 공연중에 목이 날라가는거 아닌가? 등

추임세를 열심히 하면 힘을 얻어서 더 잘할수 있다는데
위태로운 한명의 창자를 더 쥐어짜서 좋은 소리를 듣겠다는 관객의 오만은 아니었을까?

구성은 헤어지기 전까지 1막, 쑥대머리 2막, 그리고 마지막 3막 이렇게 나눠놨지만 중간 쉬는 시간은
고작해야 15분이니 이동안은 옷 갈아입는 정도 말곤 쉴수도 없는 순간에 불과하다.
관객입장에서 이 작은 시간은 몸을 좀 풀고 화장실도 다녀올수 있는 좋은 시간이지만.

처음에는 역시 목이 덜 풀린듯한 약간은 답답함이 있다.
전에도 느꼈지만 목이 덜풀린 소린지 몸상태가 좋지 않아서 나는 소린지 알기 어렵기때문에
시작부터 약간은 관객(나)과의 줄다리기를 하는 느낌이랄까?
소리꾼마다 느낌이 달라서 같은 대목이라도 묘하게 멜로디(?)나 리듬이 다르고 연기력에서도 다름이 보이니
매번 다른 기분으로 관람이 가능하다. 물론 100% 모두 '좋았다'라고 말하는건 쉽지 않다.
때에 따라서 목상태나 딕션이 너무 안좋거나 연기력이 부족하다거나 하기도 하니.

김미진 명창의 소리는 약간은 거칠지만 발음은 제법 좋은 편이라 어느정도 잘 알아들을수 있다.
(관련업 종사자가 이닌 순수한 청취자로서 듣는 입장임)
그래서 초반에 목이 덜 풀린상태라 해도 인물들을 이해하고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중간에 쉬는 시간을 지나고 이제부터 춘향이의 고행이 시작되고 많이 슬프기도 한 중간 토막이 나온다.

여성 소리꾼들이 이런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같은것을 수십년에 걸쳐 연마하게되면
자연스럽게 그 상황이 몸에 배게 될텐데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순종적인 형태로 바뀌지 않으려나?
가수가 자신의 노래 가사에 맞게 팔자가 바뀐다는게 그것에 너무 심취해서 생기는 현상으로 추정하는데
이런 판소리들은 남성우월주의가 빡빡하게 들어가있는 소설들이라서 이걸 평생 되뇌이며 산다는게
한 개인의 본성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는게 아닌가 싶다.
(남성입장에서 보면 최고의 신부감은 소리하는 여성이란 소리가 되려나?)

춘향이가 열대의 장을 맞고 감옥에 투옥된 후 사경을 헤매며 저승을 오가는 귀신 꿈도 꾸는 등
고난의 시간을 보내는 부분이라 전체적으로 슬프다.(계면조라고 하는데 이런것 까지는 잘 모름)
이때부터 목이 좀 풀렸는지 소리도 시원해진다. 소리를 듣다보면 김미진 창자의 창은 뭔가 멜로디의 고저가 좀 다르다.
힘들어서는 아닐거고(처음부터 그랬으니) 갑자기 터져나오는 부분들이 있는데
이런식의 흐름은 처음이라서 순간 순간 좀 특이하게 느껴기도 하고 신선하기도 하지만 조금은 낯설다.

역시 힘들어서일까? 춘향의 고통의 전달이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흐릿해진다.
딕션이 흐트러지기도 하고 그것때문에 리듬도 좀 꼬이고
이때는 이미 홀로 창 한지 3~4시간이 흐르고 있는 중이니 일반인이었으면 목소리 자체가 나오지 않는 시기겠지

개인적인 욕심으론 2막 부분을 처음에 하고 1막 부분을 중간에 하면 극도로 예민해진 춘향이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란 어이없는 생각도 해본다.
(녹음 음반은 항상 좋은 상태로 녹음되니 뭉개지는 현상이 없지만 실황은 거의 인간의 한계를 보게 된다.)

이쯤부터는 관객도 힘들고 소리꾼도 지쳐간다. 마지막을 앞둔 잠시의 휴식시간
하필 이때 떡을 나눠줘서 다들 먹고 들어오느라 관객 입장이 늦다.
(지난번에는 이렇게 중간에 나눠주면 입장이 늦어지니 끝나고 줘야 한다고 했다던데
이번 판소리는 6시간이나 되기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중간에 나눠준거 같긴 하지만 그럼에도 너무 늦게 들어온다)

초반에는 소리가 위태로웠다. 지친 기색도 역력하고. 아무리 공연예술이 화려한 업종이라도
한 예술가가 4시간을 쉼없이 공연하고 다음 2시간을 위해 무대에 올랐다면 그 누가 화려하게 보이겠는가

나머지 두시간을 버틴다는 표현은 예술가에겐 맞지 않아보인다. 이들은 처음처럼 관객의 감동을 위해 달려갈뿐이고
이 후 벌어질 일은 아랑곳하지 않는 불나방같다고 해야 할까.
마지막 불꽃이라는 하는건 단 한번의 마지막 같긴 해서 그렇지만,
땀도 많이 흘리고 몸도 힘들어 보이는데 소리는 더 좋아진 느낌이 나는건 왜일까?

판소리 완창이란 무대는 판소리를 한번에 다 부른다에 의미보다는
소리꾼의 인생을 단 몇시간 동안 함축하여 폭발하듯 선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무대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마지막 '어질 더질'이 나올땐 감동은 누구를 막론하고 벅참으로 밀려온다.

그럼에도 판소리완창 무대는 저들을 너무 사지로 몰아넣는거 같아서 마음이 썩 좋지 않은것도 외면하기 어려운거 같다.

소리 : 김미진
고수 : 김청만, 임현빈, 김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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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6. 5. 9.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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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평일에 회사에서 퇴근후에 가기 편한곳일까?
버스 한번타고 좀 걸으면 정동세실극장이 나온다.

오늘 공연은 총 6명의 명인들께서 한 10분정도씩 각각의 춤을 선사한다.
이승주의 '청연(淸緣)', 이창순의 '송정(松停)', 이정애의 '흥춤'
장인숙의 '무화(舞畵)', 이동숙의 '부채입춤', 허창열의 '고성오광대 덧배기춤'

이러한 공연중 내가 꼭 찝어 이것은 최고다 이것은 어렵다, 난해하다 등을 논할수 있는것은 없다.
익숙한것은 덧배기춤으로 좀 많이 본듯한(탈이 없는 탈춤버전같다고 할까?) 기분만.

저들의 춤을 보고 있노라면 상당히 매혹적이긴 한데 이 춤들은 어디서 행했던 공연예술이지?라는
의문이 생긴다. 술마시는 기방에서 공연 하기엔 넓은 공간에 미치지 못할거 같고
조선시대 백성들을 위한 공연이라고 하기엔 분위기나 형태가 맞지 않아보인다.
옛날 기인들은 어디서 이런 공연예술을 했던걸까. (궁중의 군무는 이것과는 많이 다름)

현대사회로 넘어오면서 무대란것이 생겨나고 그 환경에 맞게 완전히 바뀐,
형태만 차용할뿐 옛것의 원조와는 거리가 먼 그런 장르로 봐야 하는건가?

개인적으로 여성의 춤사위 선을 좋아하긴 하지만 남자가 거의 없는것은
춤은 원래가 남자보다 여자가 많은 분야인지도 궁금해진다.
(국립무용단 같은곳의 공연을 보면 남자들의 춤도 있고 여자들의 춤도 있지만
이런 독자적인 무대를 위한 춤엔 남자들이 것이 원래가 적은건지 판소리마냥 줄어든건지)

총 나흘동안 한 주에 2회씩 수,금을 하는데 모두 출연자가 다르기때문에
4시간 공연을 며칠의 인터미션을 두고 한다고 보면 되지만
이럴거면 차라리 1회공연을 두시간으로 하고 반복 2회(수,금 혹은 토,일)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관람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일반적으로 나흘동안 퇴근 후 시간을 뺀다는건 쉽지 않다.
이런 명인들의 춤을 언제 또 볼지도 알수 없는데 나흘동안 공연시간을 찢어놓고 그것도 평일에만 하니
나는 그 중 하루만을 선택할수밖에 없어서 찝찝함이 훨씬 더 크다.
(나머지 공연들은 어땠을까? 이분도 멋지고 저분도 멋져보이는데. 등)
공연 기획을 할땐 이렇게 만석이 될줄 몰랐겠지만 관람객 입장에서 기획해줬으면 좋겠다.
토요일은 극꼴집회때문에 공연은 하기 어렵더라도(토요일 저녁에라도 하지. 이땐 조용한데)

평일 저녁 힘들게 와서 한시간 남짓 보고 돌아가면 공연을 보는 시간보다 집에 가는 시간이 훨씬 더 길어지는
불쌍사가 벌어지는데 이러면 감동도 버스안에서 피곤과 함께 모두 사라지지 않을까.
시간 배정, 횟수, 주된 관객 등을 고려한 공연을 기획해주고 가급적 1회로 끝내지 말거나
아예 정기공연으로 분기마다 해주던가.(국립국악원에서 하는 '토요명품'같은 매주는 어렵겠지만 시즌별로라도)

국내 국악공연들이 특히 좀 두드러지는 경향은 자신들만의 잔치가 된다는것
어떤 노인은 추임세를 고래고래 소리친다. 다른 관객도 생각해서 적당한 톤으로 해야지
자기가 그 분야에 몸담고 있을테니 저러는건 이해하겠지만 지금 한국의 대다수는 추임세가 어색하다.
기껏해야 리듬에 맞게 치는 박수정도인데 그렇다면 환경에 따라서 좀 어울리는 추임세를 넣어도 되는게 아닌가?
분위기 조절 못하고 질러대듯 해대는 동종 종사자들의 추임세는 때때론 꽤나 거슬린다.
이러한 것들이 반복될수록 그들만의 모임 공연밖엔 되지 않으니 스스로들 알아서 적당한 선을 지켜주길.
(허창열 무인의 덧배기춤을 출땐 이분은 추임세를 어느때 넣으라고 잘 알려준다. 이건 흥을 올리기 위한 장치기도 하니
적당한 시기에 그에 맞는 추임세를 알려주고 관객은 그를 따라서 추임세를 넣으면 공연이 더 즐거워 지니 서로 좋은게 아닌가.
혼자만 툭! 튀어나와 추임세를 넣지 말고. 꼭 넣어야 겠다면 좀 작은 소리로.)

춤이란게 몸으로 어떠한 것을 표현하는것이니 잘 모르는 입장에선 느껴지는 추상적이며 형의상학적인
감정상태를 글자로 표현한다는건 쉽지 않아서 주변 소리만 했지만
공연은 눈물 날정도로 멋지고 아름다웠다. 다들 어느정도 연세가 있어보이는 분들인데
몸을 쓰는 예술분야라서 기력이 중요함에도 그 어떤 제약도 느껴지지 않는것또한 신기했다.

표면적으로 보여지는것 중에는 말도 있고 몸짓, 의상, 냄새, 생김세 등 많은것들이 사람을 판단하게 하는 요소들인데
춤이란게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수단중엔 가장 으뜸으로 보인다.
어느 정도냐면 저들은 자신이 정해진 절차대로 표현하고자 하는것을 표현하는데
저들의 일생이 저 춤과 같은 고혹적이며 기품있는 인격을 지녔을거란 착각(?)마져 들게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머지 이틀 남은 공연은 모두 매진이라 보고 싶어도 못본다.
개똥같다.

출연 : 이창순, 이동숙, 이승주, 이정애, 장인숙, 허창열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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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6. 5. 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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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춘대유희가 무엇일까? 고작 100년 된 공연인데 구체적인 자료가 없다고 나온다.
도데체 기록의 역사는 다 어디로 사라진건지. 이 시기는 강점기 시절도 아닌데.
현한국에서도 엿같은 정부가 들어서면 자료를 모두 파기 하는데 이때도 조선 말기라
부패한 놈들이 사료를 남김없이 불태웠던걸까?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당시 기사 기록으로 보면 판소리, 잡가, 탈춤, 무동놀이, 남사당의 땅재주, 쌍줄타기, 기생의 춤 등이 있었다고 한다.

이번 공연도 이정도 레퍼토리는 구성되어 있는거 같다. 주로 춤이긴 한데 판소리 등 잡가도 제법 나온다.
그러고 보면 민요는 없었던거 같은데. 민중을 대상으로 12월 밤마다 했다고 하는데 민요는 있어야 할텐데.

전체적인 플롯은 타임슬립(Time slip) 구조로 예전에 국립국안원에서 했던 이습회의 구조와 무척 비슷하다.
다만 이습회같은 경우는 좁은 무대와 상대적으로 궁중음악을하던 사람들이 나와서 공연하게 된것인데
내용이 전반적으로 조용하면서 약간은 고리타분하다고 할까? 고급지다고 해야 하나.
물론 이 마저도 아이가 앞에서 알짱되는 바람에 관람은 망쳤지만 아무튼 거의 대동소이하나 구성은 완전히 다르다.
소춘대유희란 뜻이 봄에 펼치는 즐거운 잔치 정도라는데. 막상 12월 밤에 했다고 하니(입춘때도 아니고 동지때)

현대에서 과거로 넘어가는 부분은 별 의미 없고, 그 시절의 실제 소춘대유희를 재현한것인지까지는 모르겠다만
현대에 맞게 화려하며 웅장하며 아름답게 그리고 신명나도록 새로 구성되었을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공연을 좀 보다면 비슷한 흐름의 구성이란게 감각적으로 느껴진다. 분위기를 띄우고 최고조에 올라섰을때
과감하게 마무리 하며 여운이 가슴팍에 팍! 꼿히도록. 같은 플롯이라고 구성이 달라서 감동이 다를수 밖에 없는데
오늘은 짧으면서도 강렬하고 많은것들이 오갔지만 막상 뭔지 말하라고 한다면 심청가의 심봉사 눈 뜨는 대목정도말곤
대답할 수 있는게 없을만큼 저들의 춤과 연주가 내게는 어려운 암기과목일뿐이다.
그렇다고 외우려고 애쓸필요는 없다. 주된 리듬, 춤사위나 안무는 우리가 그동안 평생 알게모르게
봐오던것들이라서 리듬에 맞춰서 몸을 맏기면 그뿐이다. 한문이 나오는것도 아니고
구성 자체가 실내악과는 거리가 좀 있는 민속음악들이니 감정선이 어렵지 않다.
(이런 공연을 궁중에서 했을거 같지는 않다. 도입부 쯤에 선비들의 춤 몇자락과 아이의 소리를 빼면)

오방신의 공연은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리는데 주로 이들이 가장 중추적으로 힘을 주지만
나는 이들보다는 백년광대들의 춤들이 개인적으로 훨씬 좋았다.
아름다운 선을 항상 유지하면서 화려하고 역동적으로 묘한 현대무용이 컬레버레이션 된듯한
극도로 절제된것보다는 과감하게 모든것을 뿌려버리는 숨막히는 춤들은 모든 신경이 저들을 위해
존재하는듯 빨려들어간다. 개인적으로 여성들의 춤선을 좋아하기때문일수도 있지만
세상 모든 미의 기준은 인구수만큼이나 개개인의 취향을 따라는것이니

시작부터 밝은 톤으로 시작해서 마무리까지 그 색을 벗어나지 않는다. 소춘대유희? 과거 사진 몇점을 뿌리는건 좀 지루함이 있었지만
(막상 당시대에 대한 자료도 없는데 몇점 남은 사진은 이질감만 커지지 않나? 그냥 봐도 너무 다른 상황같이 보이던데)
아무튼 80분이란 길지 않은 시간 숨가쁘게 달려간다.
생각해보면 국내 이런 레퍼토리가 몇개 있다. 묵향, 향연, 단, 만신, 축제 등 몇몇가진데.
아마도 이중에 가장 민중에 가깝게 들어와있는것이 소춘대유희 이 작품이 아닐까 싶다.(1902년대 말고 2020년 지금)

이런 한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조선시대에 이러한 음악,음향,안무,설비등이 있을리 없기때문에 느낌도 많이 다를수밖에)
이런 공연문화상품들이 많이 나오고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길 바라긴 하는데
문제는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1인당 6만원이라면 할인에 해당되지 않을경우 제법 부담이 된다.
수십만원이나 하는 공연도 허다한 세상이긴 한데 한국에서 정부보조를 받으며 제작하고 공연한다는 것은
민중들의 세금으로 제작과 공연하는 것이 아닌가? 사설 기관 주최로 하는 곳에서 비싸게 받던지 하고
가급적 이런 공연은 좀 현실적인 금액으로 낮춰줬으면 좋겠다. 내 욕심일수 있지만 세금은 이렇게 무너지는 그러나 지켜야 되는
전통예술에 쓰고 관객인 민중은 저렴하게 그것을 관람하므로 체화시켜 국가 문화가 사라지지 않도록 해야 하는게 아닌가?
그런데 이렇게 비싸게 운영을 해서야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있을런지.
(4인 가족이 공연보고 밥 먹고 디저트 조금 먹는 일정으로 하루 가족 나들이를 한다고 치면 적지 않은 금액이 나간다.
한달에 단 한번, 분기별 단 한번이면 큰 문제 없지만 문화라는 것이 몸에 베기 위해선 장시간 오랜 반복이 필요하기때문에
1회성으로만 기획하는것은 전통문화라는 관점에서는 맞지 않다. 그냥 사라지라고 기도하는 것일뿐)

그리고 자신의 귀가 좀 큰 소리에 예민하다고 생각되면, 아이와 동반한 부모라면
가급적 뒷자리가 유리하다. 왜냐하면 국악기들 중 꽹과리, 징, 북을 코앞에서 치면 그 소리가 어마하게 크다.
내가 앞에서 3번째 줄 자리에 앉았는데 귀가 아플정도였고 나중에는 모든소리가 섞이면서 노이즈처럼 느껴지는 구간도
일부분 있었다. 이것은 커가는 아이들의 청각에 안좋을거 같을정도로 소리가 너무 크다.
(그렇다고 연주를 조용히 하란 말이 결코 아님)
맨 앞자리는 가급적 가지 말고 둘째, 세째줄도 왠만하면 앉지 않길 권한다.
중간쯤 되는 10번째 자리는 넘어서야 좀 편히 들을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니 소리에 예만하거나 아이가 있으면
꼭 고민해보길 권한다.

그런데 1902년 조선에서는 왜 12월 저녁부터 자정까지 공연을 했을까?
생각해보면 봄, 여름, 가을 보다는 겨울, 한적하면서 쓸쓸한 한밤 중 후끈한 열기와 약간은 들뜬 기분으로
귀가 하도록 한 배려가 아닐까. 술 한잔 하면 더 좋고. 아무튼 겨울에도 이 공연을 볼 수 있길 바란다.

할인에 해당되는 분들은 꼭 봐보길 권함
대부분 군무에 음량이 좀 크고 대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공연이니 중간 이후 뒷자리가 좋음
(앞자리는 가급적 피하는게 귀건강에 좋을수 있음)

출연 : 정동극장예술단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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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6. 4. 25.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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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창이란게 명창같은 의미로 보면 되는거같다.
다만 문제는 내가 명창, 절창, 졸창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
내게 잘 부른다는 것은 귀에 가사가 명확하게 꼿히면서 각 인물의 감정이 제대로 전달되는 것인데
판소리는 기본이 전라도 사투리로 구성되어 있고 한자에 창법 특성도 있어서
무슨 말인지 몇번을 들어도 귀에 꼿히질 않는다. 그러려니 하기엔 안숙선명창이나 김소희명창의 판소리는
딕션이 대단히 좋아서 알아듣기 좋다. 그렇다면 과연 명창이란 기준은 무엇일까?
우리는 분명히 이부분에 대해서 고민해봐야 한다. 발음을 막 뒤틀어서 창하는게 과연 올바른것인가.

절창이 6번째인데 모두 달라서 1부터 보고자 해도 어디서도 볼 곳이 없다.
국악을 알리고자 한다면 일정기간이 지나명 유튜브같은곳에 공개하던가
아니면 정기적으로 나머지도 공연을 꾸준히 좀 해주던가. 난 절창을 이번에 처음 봤는데 6번째라니
물론 감독이나 출연자들이 다르기때문에 제목만 같을뿐 모두 다를것이란 생각은 들지만
6번째라면 나머지는? 내년엔 7번째가 되려나? 그러면 7번째를 처음 본 사람은 나머지를 평생 못 보는건가
꽁꽁 감추지말고 분명히 촬영했을테니 공개좀 하자. 있을때 활성화하는게 최고지 망한다음엔 다 소용없다. 

나눠주는 프로그램(팜플랫수준)을 보면 몇 대목이 나오는데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지면서 끝난다.
이정도면 보통 완창 판소리에서 중간보다 조금 더 나아간 정도인데 여기서 끝난다고?
프로그램에는 심청가 판소리는 5시간 남짓 걸린다는 둥 적어놓고 절창은 이걸 100분정도로 줄여놨다라고
말하지만 함축한게 아니라 절반만 공연을 하는 것이다. 특이한것은 뺑덕이네가 나오고(심청이가 죽은 후 등장하는 인물)
방아타령(심봉사가 맹인잔치 가다가 방아를 찌어주는 대목)이 나온다. 화초타령도 나오지만 추월만정은 안나온다.

전체 내용은 심청이가 빠져 죽으면 끝나지만 그나마 좀 유명하거나 다같이 할 수 있는 대목은 땡겨왔다.
흐름엔 크게 관계 없고 개연성도 그다지 있어보이진 않는다.
해설도 함께 해주는데 늬앙스는 심봉사는 여러 여자들을 만나면서 마음편히 살아가는 문제적 인물로 표현한다.
심청이는 자기가 살 수 있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죽음을 택한것이 올바른 효인가도 말한다.
현대적 관점으로 보면 뭐 하나 그럴만함 상황으로 보이진 않는다. 내용 자체도 곰팡내 가득하지 않은가.
고전이란게 그렇지. 시대를 초월하는 문학을 솔직히 거의 보지 못했다.
(철학사상도 현대가 훨신 앞서 있는것은 과거를 바탕으로 발전시키는거니 당연한 현상)

그래서 고전을 접할땐 그 시대로 동화되거나 감동적인 몇 대목만 계속 접하는 정도로 마무리된다.
(판소리 전체 중 각종 매체에 등장해서 유명해지는 것은 1%나 되려나? 민요는 어떻고, 북한 민요는 사람이 더 모를거다.)
우리의 감각으로 해석하는것보다 우리시대에 맞게 각색하는게 훨씬 위대한 작업이라보는데
오늘 그 한 부분의 가능성을 보았다. 심청이가 인당수에 가는 도중 귀신들이 나타나는데 중국쪽 귀신들이다.
이게 상황상 맞아보이진 않지만 아무튼 그렇다. 그것을 이번엔 한국에서 발생한 사건의 인물로 바꾸는 시도를 했다.
난 이 부분에서 어찌나 슬프던지. 심청가가 기본적으로 슬프다곤 하지만 현대 감각에서 동감하는게 쉽지 않은데
한국에서 벌어진 현재 사건으로 각색하고 구슬프게 한대목 읊조릴때 가슴 한 구석이 미치도록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공연예술의 가장 큰 힘은 그 시대를 대변하는것일텐데 판소리들은 아무래도 조선시대 작품이라서 쉽지 않았는데
그 가능성을 오늘 처음 느껴보았다. 잠깐이었지만 순간적으로 예상치 못하게 파고드는 주체하기 어려운 뜨거움.
판소리가 고전이 아니라 현대예술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것을, 앞으로도 개사 작업을 끊임없이 시도해서
진정한 계파를 형성했으면 좋겠다. (경상도 사건으로 구성된 문파, 전라도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구성된 문파.. 등)

그리고 또 하나의 새로운 가능성을 봤는데 바로 추임세가 필요없는 구성이었다는 것
물론 수많은 사람들이 추임세를 넣었다. 하지만 내가 봤을때 추임세가 일반 판소리에 비해 현격히 줄어들었다.
그 곡에 집중을 해야하는 상황이 많았는데 이러다보니 공연에서 시선 외엔 그 무엇도 필요가 없었다.
공연이 감동적이기도 했지만 박수를 쳐야 하는 순간마져도 고요히 여운을 느끼고 싶었다.
우리 판소리 공연 예술의 열린무대가 아무래도 현대적 감각엔 좀 동떨어진 경향이 있는데
공연과 관객이 약간은 벽이 있다는것이 흠이지만 다른 장점도 있으니(추임세는 집중엔 좀 방해가 됨)
이러한 형태(닫힌무대)도 함께 발전되어 관객과 문화의 다양성을 함께 증대시킬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할수 있었다.

언제부턴가 긴 판소리를 관람함에있어 걱정하는게 점차 사라지고 있는것은
내용을 모두 알고 있기때문에 인물에 동화가 쉽게 되기때문일텐데
아직까지도 잘 안되는 것은 역시 알아듣기 힘든 창법과 한문들이 내게는 큰 장벽이다.

왜 이런 규정된 공연에서도 자막을 틀지 않는것일까? 몰랐는데 창자들은 볼 수 있도록 프론터를 뒤에 틀고 있었다.
대사가 길고 하니 까먹으면 안되서 그렇겠지만 훤한 모니터에 대사를 표기해야 하는건가?
무대 바닥에 모니터 스피커 있던데 그곳에 길게 대사를 표기하는 모니터를 달아도 되겠던데
관객을 대사를 봐서는 안되는 것일까?
국립극장은 관객에게 이런 부분에 대한 예의는 별로 없다.
오늘은 함축적이면서 유명한 대목들만 선별했기때문에 한문이 많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이해는 어려웠다. 특히나 완창 판소리는 대사집을 읽었다면 판소리가 진행 순서대로 나와서 흐름을 이해하는데는 지장이 없다.
그러나 이번 공연은 판소리 진행과도 다르기때문에 머리속에 있는 판소리 흐름과 다르니 더욱더 듣고 이해하는것에 문제가 많았다.

자막을 달아주기는걸 왜 그렇게 싫어하는걸까?
영어 모르는 한국사람도 분명히 어떤 외국 노래를 들으면 이해 못하더라도 감성적으로 충만해질순 있다.
하지만 노래의 실제 내용을 알면 훨씬 더 큰 감동을 받을수 있다.(반대가 될수도 있음)
판소리를 단순한 음율이 아닌 하나의 문학으로서 관객에게 대사 한마디 한마디를 납득시키겠다는 노력을 느껴봤으면.
추임세 넣는 사람들도 제법 있던데 자신들만의 잔치로 계속 머물게 하기 싫다면
나같은 문외한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때가 아닌가싶다.

절창 1~5는 어디서 볼 수 있으려나.

소리 : 최호성, 김우정
연주 : 최영훈, 전계열, 임이환, 오초롱, 한솔잎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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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6. 4. 19.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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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에 이런 극장이 있다는것은 언제봐도 참 낯선느낌이다.
번화가 한복판에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벚나무같다고 할까?

시설은 대단히 좋지만 극장이 한개밖에 없다는것은 조금 섭섭하다.
이 좋은 위치에 이렇게 좋은 시설 하지만 대형 극장 한개만 있다니 소극장도 두어개 더 있었으면.

내용이 무척 무거운거에 맞게 전개 또한 엄청 암울하게 진행된다.
자식이 왜 범인이 되었는지는 솔직히 그렇게 중요하진 않게 다루는데
범죄라는 소재보다 그로 인한 부모의 심리적 변화를 깊으면서 넓게 다룬다.
그러면서도 주변인물들의 고충 또한 함께 곁들여진다.

각종 언론의 만행 이런것도 이 극에선 크게 중요하지 않다.
단지 어머니 브렌다의 심리를 자극하는 트리거 역활정도만 할뿐이다. 그래서 다섯명이 출연하지만
막상 기억나는것은 브렌다의 감정 변화와 한숨소리, 절규만이 남는 모노드라였다.

예전 어떤 1인극은 배우를 돋보이게 하기위한 설정처럼 보여서 그다지였는데
이 연극은 다인극임에도 단 한사람만이 기억에 남도록 구성된 전형적인 주인공 한명과 엑스트라 구조를 지닌다.

변호사, 아들들, 여친, 남편, 가정부의 비중이 결코 낮지 않지만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 처럼
시간이 갈수록 단 한사람만이 떠오르도록 집요하게 한사람(브렌다)에게서 시선을 끊지 않는다.
그래서 이 연극의 주인공인 브렌다의 호흡에 맞춰 분노와 짜증과 울분이 같은 공간에서 하나의 인물로 동화된다.
배경이 무겁고 전개가 다크하고 끈적이고 밀도가 높아서 보면서도 지치는 경향이 있는데
지치지 않도록 약간씩의 장치들이 호흡을 다시 가다듬게 만들어 130분의 제법 긴 연극이라곤
믿기지 않을정도의 몰입력을 선보여 대단히 흡족하며 끝의 찝찝함이 상대적으로 덜하도록 약간은 밝은 톤으로 마무리 되어
극장을 나올때도 그렇게만은 무겁진 않았다.

한 가정에서 이와같은 일이 생겼을때 돕고자 하는이와 이용하려고만 하던 이가 양분되어 나타나는데
모든 상황에서 불편하고 귀찮게 다가올때가 있는데 이런부분이 조금은 이상적으로 참고 기다려주는건
좀 이상향에 가깝다고 할런지. 보기드믈 경우긴 하지만(주변에 사람이 끝까지 남는다는건 그만큼 대인에 대한 예의를
끝까지 지킬때 가능한것이 아닌가싶기때문에 조금은 소설속 환상 같음)
극적 효과로서 본다면 어느정도는 용인되어 넘길수 있는 대목이다.

내용상 좀 아쉬운건 아들 매튜가 어째서 그런일을 저질렀는지. 이 가정과는 거리가 있어보이는데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지만 이것과 어느정도 연관성있는 설정인지 그런것까지 느낄수 없었다.
그냥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가지만 배경은 한 가정같다고 할까?
그러면서도 다정다감하다는 설정은 조금은 앞뒤가 맞아보이진 않는 어색함이 좀 있다.

급발진하는 매튜의 여자친구의 정신병적 발작은 심박이 올라가면서 순간 공포감마져 느꼈지만
그에 대한 구체적인 배경설명이 부족해서 충격이었지만 충격으로만 남는게 아쉬웠다고 해야 할지.
(일종의 화약 터질때 놀라는 감정같이 놀람만 존재하고 넘어간다고 할까?)

제일 궁금했던건 역시 매튜다. 뭘까? 원작도 이렇게 매튜의 입장을 철저히 배제했나?
어떤 관점에서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고 그의 내면에 따라 브렌다를 보는 시선이 달라질수도 있을텐데
그것을 방지하기위해 정제한것인지 원작을 보지 못해서 구체적으론 말 할 수 없지만
역시나 이 가정의 배경지식없이 한 사건으로 인한 어머니(브렌다)의 상황전개와 터져나오는 심리상태에
가끔은 물음표가 좀 생길수밖엔 없었다. 그리고 불필요할정도로 늘어지는 곳이 있는데
긴장감으로 피로가 쌓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호흡이 갑자기 죽어버리면 내 몸도 순간 맥을 놓아서
갑자기 밀려오는 졸음(졸정도는 아님)으로 '이대로 진행되면 졸겠다' 싶은 곳이 두어곳이 있다는게
섭섭하다면 좀 섭섭했지만 이런 기분은 하루 이틀 지나면 말끔히 사라지고
다음에 하면 또 보고 싶다는 기분만이 남을거 같은 뛰어남이 돋보이는 연극이다.

빈 무대를 보며 든 생각인데 오늘은 이렇게 멋진 무대위해서 연기를 하는 저 배우들과
어제 본 훌륭한 연극에서 무대가 좀 더 좋았더라면 이라는 기분과,
어제와 오늘간의 차이는 자본 말곤 없는것인가?란 예술세계에 대한 씁쓸한 맞을 남긴 시간도 함께 지나갔다.

하필 유대인들의 만행이 전쟁속에서 나타고 있는 싯점이라 뭔가 시기도 좀 묘하게 겹치지만
기회 되시면 꼭 보시길 권하고 싶은 연극이다.
다만 전체적으로 좀 쌘 느낌이 있어서 지칠수도.

출연 : 진서연, 정환, 홍선우, 김서아, 최호재, 최자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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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공연2026. 4. 12.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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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에가 무슨 뜻인가 싶어 찾아보면 주님? 신?정도로 보면 되는거 같다.

신의 뜻대로 하라는 의민지 이미 정해져 있는 운명론적 이야기인지 뭔지 모르겠다.
다운받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보면 퀴어 러브스토리라고 하는데 이런건 그냥 말장난 같고
(성주신하고 사람하고 사랑하는데 귀신이 전에 여자 사람이었다고 퀴어면 처녀귀신를 사랑하는 여자면 퀴어인가?)

여기 나오는 많은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죽음을 택하려는 사람들이다.
딱 한사람 집귀신만이 과로사로 자신도 모르게 죽었는데 집에 애정이 강했던지 집에 달라붙어버렸다.
퀴어라고 하지 말고 그냥 판타지라고 해야 하는게 맞아보인다.
물론 배경만 그런거고 전체적인 흐름은 드라마다.

표현이나 구성이 제법 신선하고 새로워서 웃음을 자아낸다.(장르가 코미디는 아니니 그냥 약간의 웃음정도)
집 귀신에 국한된것으로 등장 인물들중 가장 한이 없다고 해야 하나? (한이 없는데 왜 귀신이 된거지?)

어떤 예술가가 이 집을 사서 들어와 여행객들에게 게스트하우스 마냥 임대업을 하게 되는데
검은 숲이란 것이 있기때문인지 인생 끝을 위해 오는 사람들만 있다.
(극중 독일의 검은숲은 슈바르츠발트를 뜻하는지 모르겠으나 이곳의 옛날 이야기로 마녀와 유령들이 살고 있다고 함)

집중이 되면서 집중이 안되는것은 왜였을까?
한가지에 집중하기 어려운 플롯때문인가? 집귀신은 모든것에 참견을 한다. 참견이라기보다는 관객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일종의 나레이션을 하는 역할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다보니 말이 엄청나게 많아지고 군더더기가 많아진다.
사람 한명이 등장할때마다 그들만의 줄거리가 있는데 모든 사람들의 공통점은 사회를 등졌다는것
사회가 이들을 등진게 아니라 이들이 사회를 등졌다는것은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수많은 외로운 사람들을
말하는것이 아니기때문에 저들의 저 행동은 약간 색안경끼고 보면 배부른 소리로 들릴수도 있다.

괴로워하고 고뇌하고 아파한다는것은 보통 타력에 의해 어쩔수 없게된 처지를 비관하는걸텐데
집귀신은 과로사했고, 관수는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목련과 분재는 또 무엇인가.
무용수 부부 엠마만이 어찌보면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죽어가고 있는데
엠마는 치료가 불가능하다는건지 모르겠다. 남편은 근육이 사라지고 있다고 하는거 같은데 루게릭병일수 있을것이다.

도데체 이들은 왜? 

집귀신은 왜 엠마를 위해 자신을 부셔서 구했어야 하는거지?
서로 어떤 작용을 한것도 없다. 엠마가 집귀신이 있다는것을 아는것도 아니고 집을 끔찍히 아끼는것도 아니다.
이런 초자연적인 힘이 있을거면 차라리 자신을 희생하고 병을 낫게 해주던가.
목맨 사람을 구했다고 해도 엠마의 병은 그대로이다. 이게 뭐지?

집귀신의 표현들은 제법 참신하고 관객인 내게 좋은 감각을 제공하지만
내용은 뭐가 뭔지 무엇을 주고 싶은건지. 집이란 존재와 저들간의 관계를 어떻게 보는건지
내게 와닿는것이 그렇게 있지는 않았다.
그래서 뛰어난 연기와 신선함만으로는 중간 중간 찾아오는 졸음을 방어하기엔 개연성들이 너무 부족했다.
대사량도 많은 연극이지만 이거다싶은 대목도 그다지.

정동세실극장의 무대장치도 너무 비약하던데 이렇게 계속 검은 큐브에서 배우들만 분주하게 움직이는 형태로 운영할건가?
요즘 LED WALL로 무대장치를 대신하는 경우가 많던데 이런거라도 도입을 좀 해보면 안되는건지.
(이번에 코미디언 서승만씨가 정동극장 대표직을 맡았던데 이런 시설 개선을 요청하면 안되려나)

출연 : 최희진, 유은숙, 백성철, 조어진, 윤경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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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공연2026. 4. 11.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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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를 완창한다는건 창자도 힘들고 고수도 힘들겠지만 청자도 생각보다 힘듬이 있다.
때로 자리 선정이 잘못되어 주변이 시끄럽거나 부산스러우면 공연을 보는중에 나가버릴수도 없고
몇시간을 그냥 참아야 한다. 오늘은 적당히 이상하지 않은 하루였지만 그렇다고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다.
노인들께서 당이 떨어지는지 사탕을 부스럭거리며 꺼내는 소리라거나
대사집을 미리 읽지 않고 펄럭이며 펼쳐보고 있다거나 하는건 좀 그렇다.

그리고 전에는 상반기, 하반기에 판소리 가사집으로 만들어 모두 들어간것을 판매하더니
이제는 프로그램식으로 개별적으로 판매한다. 이러면 미리 읽고 올수가 없는거 아닌가.
판소리 공연을 보러와서 가사집을 보며 관람하면 그게 제대로 들어오겠나.
미리 읽어보고 한문이 많으니 주석도 좀 읽어보며 개략적인 흐름같은걸 파악하고 오는게 좋은데
예전처럼 시즌별 모인 책자를 팔면 안되는건가 싶다.
이럴경우도 단점은 있다. 이번 한번만 보는 사람은 한개만 필요한데 두꺼운걸 사게 되고
지난번에 구입한 사람은 중복되는 경우도 있고.
각 공연별 프로그램도 만들어 팔면서 가사도 넣고 통합 가사집을 만들어 주석을 꼼꼼히 달아서 한문 가사를
이해할수 있도록 하면 되는게 아닌가 싶은데 다음 시즌엔 어떤식으로 할런지 모르겠다.

수궁가는 특이하게도 '범내려온다'를 뮤직비디오로 만든것이 인기를 끌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었다.
해학스러운 내용이 많아서 이미 아이들 동화로 퍼져있고 애니매이션으로도 있어서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거 같다. 수궁가, 토끼전, 별주부전 등 많은 제목으로 불린다. (나는 별주부전이 좀 익숙함)
내용은 삼국사기(1145년)에 나오는 구토지설의 이야기 기반이라고 하는데
판소리는 막상 18세기무렵 구전으로 내려오는 음악들이 어떤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거 같다.
시조(가요?)같은것도 있고 민요같은것도 있고 연기도 하기때문에 흩어진 여러가지의 장르를
하나의 이야기에 녹여낸거 같긴 한데 수많은 한문들은 접근성도 어렵지만
무조건 내용을 합친다고 합쳐지는건 아니라서 누군가 뼈대를 만들고 붙이지 않았을까.
장르도 그렇고 탄생 시기도 그렇고 들어가있는 공연은 분명히 농민들용은 아닌것으로 보인다.

일단 한문을 이해할수 없다. 30%이상은 한문이라서 실제 해석을 보지 않으면 한국에서 단박에 알아들을 사람은
많지 않을만큼 오래되전에 사용되던 문장들이 그대로 들어가 있다.
이것들은 시대에 맞춰서 바뀌는 것도 없이 미라처럼 그대로 남아있을뿐이다.(이걸 왜 안바꾸지?)

오늘 왕기성 명창의 수궁가를 들으며 새삼 또 느낀다. 자막도 없이 관객을 받는 만행은 도데체 언제쯤 끝날것인다.
외국인들 단체(한 열명쯤)는 추임세도 모르고 대사도 몰라서였을까 중간에 나간다.
(외국인들이 들어오길래 자막이 나오는줄 알았으나 없음)

국립중앙박물관은 외국인들이 엄청 오니 유료화로 하겠다고 하고 정작 세금으로 만들었으면서
외국인들과 차별해서 요금을 받으려 하지도 않는거 같은데
판소리도 내외국민 차별없이 모두 못알아듣게 아무런 자막을 제공하지 않는다.

특성상 자막을 표기하기 쉽지 않을거란것은 알고 있다. 때로는 건너뛰기도 하고 단가를 중간에 껴넣을수도 있으니
자막을 미리 만들어 놓을수는 없을것이다.
하지만 이런 즉흥적인것은 사전에 자막이 어렵다고 고지 하고 나머지 고정적인것만이라도 제공하면 되는거 아닌가
템포가 매번 다르니 자막을 표기하는 내용을 모두 외우고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겠지만
어려운 장르를 널리 알리는 차원에서 안될리가 없다는 생각은 드나 꽤나 안바뀐다.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레퍼토리는 전적으로 내국인 중 판소리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만을 위한 정기 공연인가.
이런곳에 나같이 알지도 못하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초짜가 껴들어 초치고 있는것일까?
세금으로 자신들만의 잔치를 하고 있는것이었나?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관객을 고려하지 않는 공연이 어떻게 있을수 있는것일까?

왕기석명창께서는 관객과 함께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는데 정작 극장측에선 자막 하나 해결을 못하고 있어서
외국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내국인은 진입장벽을 높게 만들어 놓고 있다.
한문을 그대로 꼭 써야겠다면, 바꿀 능력이 안된다면 최소한 해석 자막이라도 달자.
기왕이면 한국어,영어,일본어,중국어 정도의 자막은 꼭 만들자.
한국에 여행온 외국인들을 오늘처럼 못알아듣게 해서 내쫓지 말고 함께 웃으며 즐겼으면 좋겠다. 

그런데 수궁가가 이렇게 재미있고 웃긴내용이었나?
창자에 따라 여운이 완전히 달라진다는걸 새삼 느끼게 했던 무대였다.

소리 : 왕기석
고수 : 김규형, 김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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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6. 3. 29.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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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이란 의미가 뭘까? 보통 메인 스토리 외의 자잘한 이야기를 말하는건가?
위키에서 보면 비하인드 스토리정도? 스핀오프처럼 독립된 서사와는 좀 다른 느낌이다.

외전이라고 하지만 원작의 비극과는 거리가 좀 있기도 하고
조금은 슬프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밝은 톤의 희극(코미디)이라고 하기에도 좀 어중간하다.

아무튼 긴장감 없이 볼 수 있다. 그렇게 구성되어 있다. 세익스피어 작품들 중 하필 보지 않는 두어편 중 한편이
리어왕이서 이것도 불운이긴 한데 전체 내용은 많은 곳들에서 직간접적으로 언급되기때문에
특별히 모르는것도 아는것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에서 좀 난이도가 있을까봐 좀 걱정을 했는데
그런 걱정을 할 필요 없는 구성으로 설정되어 있다.

흐름상 딸들과 왕(아비)과의 갈등 요소들이 크게 대두되는데 불효, 욕심, 집착, 탐욕 등
자신들의 이권을 위한 권모술수(생각보다 생각할건 없음)가 난무하지만
크게 보면 아비의 돈을 갖기 두 딸과 사랑은 표현할 수 없다면서 모든것을 말로 표현하고 있는 셋째딸.
주된 주제가 효도하라는 희한한 한국적 정서를 넣으려고 하지만 솔직히 전혀 가미된 느낌은 없다.
물론 셋째딸 코딜리어는 아버지를 사랑하지만 그 시대엔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지금 감각에 맞는 행동인지도 모르겠다.
(부모를 사랑한다는것을 넘어서는 엘렉트라 컴플렉스같은 기분이랄까? 아무튼 리어왕의 셋째딸은 그러함)

내가 보기엔 훨씬 현실적으로 보이는것은 첫째와 둘째지만 이건 개인적인 취향이고
왜 외전이라고 하는지까지는 무슨의도에서였는지 원전의 비극과는 거리가 있다고 하지만
전체적으로 비슷하게 따라가면서 음침함을 배제했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웃기도 적당히(박장대소할부분은 없음) 웃게 되어 분위기 전환도 잘 되고
때때로 절규도 나오지만 내용흐름상 너무 튀는게 아닌가 싶다가도 그렇게 거슬리지 않고 넘어선다.
(배우들 감정이 폭발하면 내 감정을 어디에 둬야 할지 좀 난감해짐)

여기서는 코델리아가 프랑스의 왕과 결혼하는 원작과는 다르게 음모로 쫓겨난 에드거를 만나게되는
다른 구성으로 진행되는데 이런부분은 규모를 키우지 않는 좋은 선택으로 보인다.

딱 그만큼의 요소들만 가지고 희노애락을 잘 녹여내는데
무대 장치도 원형 무대와 뒤에 큰 스크린정도가 고작임에도 잘 짜여진 조명과 스크린 배경이
다소 빈약해 보일수 있는 무대를 충분이 채워넣어준다.(점진적으로 LED Wall이 소극장에도 들어서지 않으려나) 

재미도 있고 훌륭한 연극이긴 한데.. 무어라 말로 표현하기엔 플롯 자체가 너무 단순하고
많은 부분이 잘려나가고 상투적인 내용들이 새로 들어오고 해서 그렇게 되새길만한 내용은 떠오르지 않는다.
팝연극이라 하면 배우들이나 각종 스탭들이 섭섭해 하겠지만
기억나는게 없지만 볼땐 행복했던 연극 또한 훌륭한 예술이 아닐까 싶다. (홀가분함과는 다른 감정임)

연인들 이벤트용으론 훌륭한데. 너무 비싸다.

출연 : 이영석, 강지원, 양서빈, 이지현, 한윤구, 김남표, 유병훈, 조영규, 견민성, 김유태
출연 : 유휘찬, 이석중, 조영민, 김하리, 김원중, 박민구, 박도영, 이유진, 이성환, 조유리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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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6. 3. 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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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계유정난에 대해 다들 잘 알고 있나?
난 영화같은것에서나 보고 과거 역사시간의 내용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이미 500여년 전일이니 글자 몇개 시험때문에 본건과 극히 일부의 내용을 과장한 영화 정도
이게 내가 아는 전부일것이다. 아니 그 마져도 다 잊고 지금은 배우 이정재(수양) 정도만이 생각날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거의 만석이 다름 없을정도로 사람들이 많다니
내가 얼마나 무지한 상태로 이 연극을 접하게 되었냐면 보허자란 뜻이 허공을 걷는자라길래
무협연극인줄 알았다. -.-;; 일종의 신선을 말하고 궁중에서 왕이 이렇게 무병장수하라는의미의 정악이라고도 한다.

아무튼 그런 무지속에서 극을 보는데 처음 시작부터 웅장한 무대와 음악 그리고 노래(창)가 나온다.
비주얼적으로 엄청 신경쓴거 같은 장엄함이 돋보인다. 이건 끝까지 지속된다.
무대 장치는 그렇게 별볼인 없지만 조명과 음악, 음향이 매우 훌륭했다.

110분 연극인데 110분동안 절규 절규 절규 회한 절규 절규 회한 절규 절규 끝까지 절규 절규로 끝난다.
유명한 극들중 이런게 꼭 없다곤 할 수 없다. 특히 오페라중엔 이런게 종종 있지만
이렇게 그 어떤 고저도 없이 끝까지 바닥에서 올라올줄 모르는 극은 처음인거 같다.
배경이 모두 죽어나고 있는 계유정난 후 수십년이 지났지만 서로들 한만을 가슴에 담고 있었으니
그 골이 오죽 깊었겠냐만은 극이라는게 산꼭떼기는 안되더라도 언덕정도라도 잠시 올랐가나 내려오고
그러면서 감정도 추스리고 상황도 엿보면서 다음 씬에 대한 마음의 준비도 하고 그러는데
그냥 계속 바닥이다. 판소리중에도 이런건 없고 다른 창극들도 이런건 없는데 이걸 이렇게 기획한 의도가 무엇일까.

27년이나 지났다면서 이들에겐 이 시간동안 약간의 마음이 여유도 찾을수 없는 세월이었단 말인가.

다시 봐야 좀더 알 수 있을지 정확하진 않다. 무엇이 정사고 무엇이 야사나 허구인지
이것때문에 공부를 해야 할정도 감동은 전혀 없었다.
그냥 비주얼 적으로 멋있게 꾸며진 통곡의 110분이었다.

단테의 신곡을 얼마전전 읽었는데 '지옥편'을 이런 느낌으로 그려내면 더 와닿을 것 같다.

노래한 대목이 끝나서 누가 봐도 '지금을 박수 칠 때야~'라는 쉼이 있는데 그 어떤 사람도
단 한번의 박수 치는이 없는 이 이상한 작품을 사람들이 만석에 가깝게 보는걸까?
천만관객영화 '왕과 사는 남자' 때문인가? 작년에도 이렇게 관객이 많았다고 하던데

연극이 단순히 멋만 잔뜩 있다고 해서 감동을 주는건 아니라는 걸 제대로 보여주는 예의 창극이었다.
(명색이 창작극이면 전라도 말투만 고집하지 말고 전국 말투 골고루 넣어주길.
창작극인데 아직도 자막없으면 발음을 못알아듣는 부분이 생긴다는건 이젠 발성도 좀 옛것만 고집할때는 아닌듯)

출연 : 국립창극단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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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6. 3. 8.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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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애리명창의 춘향가 완창을 국립극장에서 본게 언제인가 찾아보니 2018년 4월이었다.
난생 처음 완창을 직접 들어본것이고(그 전까진 음반으로만) 장장 6시간의 공연을 처음 본것이기때문에
행복한 고행같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이때를 시작으로 이후 몇년간 국립극장에서 하는 판소리 완창을 열댓번 듣게 되었지만
이렇게 한나절이나 하는 판소리는 없었다. 관객도 힘들고 창자도 힘들어서일텐데
박애리명창께서 심청가로 다시 나왔다. 기대 되지만 문제는 5시간이라는 엄청난 공연시간.

12월에 하는 판소리 완창은 여럿이 나오기도 하는데 2시간 남짓. 길어도 3시간정도인데
무엇도 빼놓는게 아쉬운듯, 풀 버전을 관객들이 충분히 감상하실 수 있는 여유로운 템포로
공연하는데. 처음에는 '어! 그 동안 듣던 것 보단 좀 템포가 느린데? 아직 목이 안풀려서
천천히 하는것인가?' 싶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분들이 조금 빠른 템포로 진행한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정도로 각 대목마다 들어있는 주제와 함의를 천천히 음미할 수 있는 뛰어난 구성이었다는 생각이다.
한국에서 춘향가와 심청가가 가장 인기 있다곤 하는데, 춘향가 같은 경우는 1995년 김소희 명창의 녹음본을
무척 좋아한다. 너무 슬프기도하고해서 잘 듣게 되진 않지만 아무튼 왜 춘향가를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충분히 느낄수 있지만 심청가는 솔직히 그렇게 느끼진 못했었다. 왜냐하면 아버지를 위해 인신공양을 한다는게
한국사에서 없던 일은 아니라고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조금은 과한 설정이 아닌가 싶어서였다.
그리고 김소희 명창께서 부른 춘향가 만큼 귀에 쏙쏙 들어오도록 부른 명창도 없었다.
(그 동안 몇번정도 공연과 음반을 들어봤지만 대부분은 창 특유의 뭉게지는 발음은 그 속에 빨려들지 못하게 하는
크나큰 장벽중 한가지로 나가왔다.)

그런데

오늘 나는 심청가가 왜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지 그것을 알게 된거 같다.
장장 5시간 중 한시간정도 빼면 모든시간에서 눈에 눈물이 마를 시간이 없다.
이게 이렇게 슬픈 극이었다고? 시작부터 이렇다고? 춘향가는 초반부터 3분의1까지는 꽁냥꽁냥 핑크빛 물결이라
그렇게까지 애잔하지 않은데..(이 후 부터는 너무 슬픔의 슬픔의 슬픔)
심청가는 뭘까? 애초에 가난간 심봉사에 곽씨와 결혼해 곽씨는 생고생을 하다가 힘들게 자식을 얻었지만
자식 젖 한번 못 먹이고 죽은 엄마의 이야기. 그를 너무 슬퍼하는 심봉사 이야기로 시작하니
아니슬플수가 없는 시작이다. 이것을 약간은 느린 템포로 조곤조곤 또렷하게 관객 귀에 찔러대니
가슴이 안 흔들릴수가 없다. 창이나 노래란게 그 음률에 감정을 얹어 전달하기때문에 대사만 읽는다고
그 감성이 전달되진 않으니(구전문학의 특징이라면 특징) 대사집은 판 소리를 다 들은 후 읽으면
당시의 창자의 노래가락이 함께 오버랩되서 그 감정이 잘 살아나지만 이번엔 구입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조금 후회된다. 이런 감동이라면 다시금 꺼내고 싶을때가 있을텐데 그 그림자(대본)가 없다니.

기분일까? 한시간쯤 지나서부터 박애리명창의 목소리가 달라진게 느껴진다.
좀더 뻗어나가며 고음도 전보다 날카롭게 찢어내는거 같고.
소리꾼들은 한시쯤 불러야 목이 풀린다더니 정말 그런거 같다. 처음보다 훨씬 시원스럽다.
처음엔 '생각보다 목이 달라졌는데 연습을 너무 해서 그런건가'란 생각을 했지만
그럼에도 슬픈대목이 슬픔으로 밀려오는걸 보면 평생 소리를 공부한 사람들의 내공은
어떤 상황에서도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수행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노래방에서 혼자 한시간 노랠 부르면 목이 쉬어서 말 하기도 어려운데 이때쯤 되야 목이 풀리다니)

심청가는 해학스러운 부분이 심청이가 죽은 후부터나 좀 나오는 약간은 특이한 구성이다.
보통 문학에서 보면 이렇게 긴 시간 애환을 쌓아가는 장르가 있나 싶을정도로 좀 심하게 뒤흔다.
무엇인가 사건의 전개가 물 흐르듯 고저가 있으면서 점차 발달하다가 폭발하듯 터지고 마무리 되게되는 그런것이 아니라
끝도 없이 계속 슬프다. 각 대목별로 마무리가 있지만 다음 대목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된것이 아무래도 예전에는 한번에 모두 부르는 공연이 아니라 각 대목만 불러왔기때문에
그 대목에서 기승전결이 모두 이뤄져야 해서 그런것이 아닌가싶다.
그러다보니 어미가 죽기 전에 심청이를 안고 말하는 독백도 미치게 슬픈데
심봉사가 장례를 치르는 상여소리부터 모든 부분이 또 그렇다.

대부분 이렇게 몇 대목이 하나의 공연 시리즈 처럼 구성되어 있어서
슬프고 슬프고 또 슬픈 그런 이상한 예술 장르가 된것이 아닐까.

각색해서 나오는 요즘 공연들을 보면 이런 반복되는 플롯을 좀 바꿔서 나오는거 같긴 하는데 이 감성이 고스란히 오는거 같진 않다.
각 단원마다 주제가 조금씩 달라져서 그런것일수도 있고 현대에 잘 적응 못하는 문학일수도 있고.

고수는 세분이 나눠서 북을 잡지만 소리는 단사람 소리꾼 박애리만이 그 자리를 지킨다.
이게 좀 묘한 감정이 드는게. 한 사람이 장장 5시간을 혼자 고군분투 하는 모습을 곁에서 보고 있자면
힘듬이 전달되어 측은함이 생겨나서 위로해주고 싶고 기운을 불어넣어주고 싶어진다.

한시간정도 지나 목이 풀리고 서너시간 지나면 목이 지쳐지는게 느껴지는데 관객이 해줄 수 있는것은
박수밖에 없다. 한 대목 한대목 끝날때마다 힘차게 박수갈채를 보내는것이 전부.
이럴때 내 박수가 저 사람을 벼랑에서 떠미는게 아닌가?란 죄책감도 생겨난다.
'좀더 힘을 내서 내게 좋은 공연을 보여줘'라는 잔인한 아우성같은 박수소리들.

한 자리에서 한번에 판소리 한바탕을 완창하는 공연은 다른 공연과는 다르게
외로롭고 힘겨운 고단함이 관객석까지 전달되어 애처로운 심정이 공연장에 가득차는 예술이다.
이래서 공연 막바지엔 특이하게도 절정의 끝을 달려간다기보단
이 고행의 끝이 보이는 환희? 희망? 같은 관객과 창자가 함께 달려가는 묘한 일체감이 느껴진다.
고진감래, 동병상련과 비슷한 감정이라고 하면 되겠지.

이렇게 힘든 공연을 보고 나오면 다음 완창 공연을 또 볼 수 있을까? 란 걱정도 되지만
그럼에도 아니볼수 없게 만드는게 이런 가슴 벅찬 감동을 한번으로 끝내기엔 인생이 섭섭하니
다음 공연을 기다리지 않을수가 없다.

각종 매스컴이나 예전에 봤던 춘향가완창때는 몰랐는데 박애리명창께서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는 느낌을 받은 대목이 있다.
판소리란게 창자 의도에 따라서 각 대목에서 내용을 좀 늘리기도 하고 빼기도 하면서
분위에 맞게 조절하기때문에 같은 판소리라도 공연시간이나 창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판소리 자체가 엄청 길기도 하니 소리꾼 기억의 왜곡으로 한대목 빠뜨릴수도 있을수 있고 이것을 부드럽게 넘기는것도
소리꾼의 역량이라고 보는데 박애리명창은 이걸 용납하지 않는다. 심봉사가 맹인잔치가다가 옷을 모두 잃어버리고
한탄하는 대목이 실수로 빠진거 같은데 즉시 관객에서 상황을 설명하고 되돌린다.
보통은 이렇게 안하고 슬쩍 넘어가기 마련인데 이렇게까지 한다니. 이 분에게 이 무대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었을까.
딸이 관객석에서 엄마의 공연을 보고 있다곤 하지만 딸이 모두 외우고 있진 않을텐데.
엄마의 완벽한 공연을 보여주고 싶었던걸까?
아니면 창을 가르쳐준 스승들에게 이렇게 성장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던걸까?
이도 아니면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일까?
자신의 실수를 되돌려 관객들에게 충분히 설명하는 모습이 그러지 않은 사회에 던지는 일침같아서
다른 형태의 감동이었고 한 예술가의 인생을 이 한장면으로 상상하며 설명되는거 같았다.

구슬픈 특이한 한국의 노래들. 재즈도 흑인들 사회의 애환이 담겨있다고 하지만 남의 문화기때문에
깊이 와닿기 쉽지 않은데 내가 태어나서 평생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곳에서 녹아있는
소리 속에 담긴 정서는 어쩌면 한국사람들만이 느낄수있는 고유하고 독특한 문화일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보는내내 외국 사람들이 이 말도 안되는 서정적 감정을 자연스럽게 체감할수 있을까.
재즈가 내 일부로 다가오지 않듯 판소리도 외국인들에겐 한국에 쏟아지는 자외선을 보호해주는 로션정도로 다가오겠지.

고된 무대라 며칠 더 해달라는 말 조차 말하기 힘든 한국만의 특이하고 고유한 공연예술이었지만
몇번이고 다시 보고싶은 너무 아름답고 훌륭한 무대였다.

소리 : 박애리
고수 : 김청만, 이태백, 전계열

-추신-
박애리 명창의 6시간 춘향가 완창 무대를 다시 보고 싶은건 욕심이지만 다시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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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