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공연2026. 11. 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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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전의 그것은 아니고 영화 '방자전' 처럼 다른 시점을 기반으로 새롭게 창작된 것으로
심청전은 소재로서만 활용될뿐 일관된 내용은 없다.

전체적으로 새롭지만 심청전을 알아야 새롭다고 느낄수 있을거 같은
만약 심청전을 모른다면? 인당수? 인신공양? 몸을 팔아? 인신매매? 뭐 그렇게 느낄수도 있다.
(한국사람은 심청전을 모르기 쉽지 않지만 외국인들은 알기 쉽지 않은 내용)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운점이 있는데 선주는 인당수에 인신공양 할 간난이에게 '마마'라는 호칭을 쓴다.
왜 일까? 죽임을 당하는 존재에게 예의를 표하는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처음엔 죽이니까 어여 죽으라는 선주의 암묵적인 가식인줄 알았다.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는걸 봐서는
그런게 아닌거 같기도 하지만 알기는 어렵다. 선주의 자식 셋은 분명히 간난이를 현혹시켜 인당수에 빠뜨리기에만 급급하지만
선주만은 태도가 확연히 다른데 대화 중 선주가 전에는 그러지 않았다는 말을 하는 대목이 있는데
무엇이 바뀐것일까? 앞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때문에 심청 설화를 진정 믿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 동안 수많은 제2, 제3의 청이를 인당수에 빠뜨렸기때문에 자신도 그것을 믿게 되었던 건가?

사람이 죽을때가 되면 종교적 믿음이 훨씬 강력해진다는 말이 있다. 아무래도 죽음이란것은 돌이킬수가 없기때문에
인간의 두려움이 한층 고조되고 그 공포를 이길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신일수 있으니 신께 의존하고
사후 세계를 믿을수밖에 없는것이 나약한 그리고 불필요하게 높은 지능을 지니고 있는 인간이기때문 아니겠는가.
그래서 진심으로 박간난을 '마마'로 여겼을수도 있지만 그것도 꼭 그런건 아닌거 같기도 한것이
인신공양을 하지 않고 결혼을 시키려고까지 했으니.

심청이는 분명 죽기 직전까지 슬퍼했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효만을 강조하기때문에
약간은 지나친 느낌이 든다. 물론 예전 고대 시대엔 인신공양을 미덕으로 삼던 시대도 있다.
잉카? 마야? 같은 종족은 살아있는 사람의 심장을 꺼내고 인육을 먹기까지 했다고 하는데
기꺼이 죽음을 택했다고 말하지만 최면에 가까운 무엇인가 있었던게 아닐까?란 생각도 지울수 없다.
그러나 심청이가 있던 시절은 또 그렇게 오래전의 내용도 아니라서 아무리 이러 저러한 이야기를 짜깁기 했더라도
좀 심하게 효만을 우겨넣는 기분이 들어서 좋아하는 판소리지만 내용은 그다지 달갑지 않다.
뭐랄까? 심봉사가 독하게 부려먹기 위해 세뇌당한 청이 같다고 할까? 그러지 않고서야 중이 말한다고 공양미 삼백석을
시주하겠다고 약조한다는게 흐름상 맞는 이야기인가? 당장 먹고 살것도 없는 주제에.(집만 있는 거렁뱅이나 다름없는 신세)

원전의 개똥같은 일관성을 깨면서 들어간다.
난 고작 보리 20섬에 팔여왔고 아버지는 난폭한 오입쟁이 노름꾼인데 이 사람이 팔았다.
그런데 이런 부모에게 효를 행하다 인당수에 빠지면 왕비가 될수 있다고 헛소리하는 선주에게
정면으로 대든다. 이게 당연한거 아닌가? 물론 너무 현실적이라서 극적이지 않을 수 있다.
난 간난이가 여기서 도주 하는 내용인가?도 싶었지만 그렇게 진행되면 내용이 영~ 별로였겠지.
선주의 자식 셋중 장남은 고전을 그대로 주입시키는 타입-고리타분?-, 둘째와 세째는 그나마 현실성있게
간난이를 꼬신다. 어떻게 보면 직설적이면서도 허황된다.

어느 시점부터였을까? 간난이는 자신이 인당수에 빠질수 밖에 없는 운명이란것을 직감하는데.
삼형제가 제시하는것을 모두 보고 난 후 선주의 진실됨을 보며 간난이는 느꼈을까?
자신의 죽음이 강요에 의해서가 아닌 자신의 선택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는것을.

간난의 어떤 깨달음은 사후세계를 염두한것으로 보이지 않고 윤회로부터 해탈했다는 느낌적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선주는 그 동안 해왔던 자신의 과오의 산물인 자신으로부터 떠밀려 죽음을 당하므로서
굴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쩌면 이것이 이 연극의 본질일수 있다. 과오에 대한 굴래와 현실에 대한 순응과 절망 그리고 뒤따르는 초연함

여백과 여운이 대단히 깊은 연극으로 자극적이지 않으며 소란스럽지 않지만 속 시끄럽게 만드는 아름답고 슬픈 연극이었다.

그런데 경리는 공감능력이 결여된(잘못되면 사이코패스 잘되면 냉철한 판단력의 인간) 선주의 또 다른 자아였을까.
간난이를 선택하지 않는 선택은 과거 자신의 과오를 반복하는, 인간의 굴래를 벗어난다는게 얼마나 어렵고
되돌릴수 없는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인가.

영화 '맨 프럼 어스'가 떠오르는건 왜일까?

심청가도 제법 슬픈데 이 연극은 다른형태로 제법 슬프고 멋진 연극이니 기회되면 꼭 보시길.

출연 : 송홍진, 강민지, 김지영, 엄태준, 백운철, 이현호, 서보찬, 박소현, 임태훈, 장정윤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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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6. 10. 25.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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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라는 영화가 있지 않나?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때.
종류나 형태가 다를뿐 죽기전에 되뇌면 분명히 어느 한때가 존재할거 같다.

연극의 배경이 되는 공간이 화양연화인데 사회에서 소외받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곳에서의 생활이 인생에서 가장 최고가 된다는 의미로 지어진 이름일수도? 아니면?
대부분이 그러하듯 화양연화를 꿈꾸면 대부분 지옥이 된다.
이게 문학장르의 징크스라 해야 하나? 클리세? 상투적? 이상하게 이상향의 반대상황이 이뤄지는 결말이 생겨나는데
연극을 보기 전까지는 젊은 청춘 남녀의 애뜻한 사랑이야기를 훗날 회상하는듯한 내용인가 싶었다.
관객도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오니 더욱더 그런건가보다 했다.
하지만 연극 소개 페이지엔 결코 이런 늬앙스의 이야기는 없다.
그냥 제목이 마이너스의 세계를 지시하고 있는 듯한 느낌의 지문들만이 가득할뿐 (연극을 보기전에 못 봤음)

사회에서 차별받는 사람들은 누가 있을까? 대표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는 빈곤층은 빼놓을수가 없다.
몸이 불편하더라도 돈이 많으면 과연 그 사람은 사회적으로 차별 받을까? 적어도 그 사람은 덜 받겠지
성소수자인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성전환자는 사회적 약자인가? 글쎄 이건 겉으로 표현 안하면 되는건데.
이성애자가 "난 이성애자요"라고 안하듯 동성애자도 "난 동성애자(양성애자)요"라고 안하면 그뿐인데.
아마도 가장 큰 사회적 소외자는 성전환자겠지.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어느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
아쉽게도 이 연극에선 성전화자가 아닌 동성애자가 나온다.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낸 사람도 있고 빈곤층, 치매노인도 있는데 치매는 왜? 장님, 하반신마비인 신체장애자
뭐 대충 이렇다. 대부분 빈곤함을 안고 있는거 같이 보이긴 하다.

사람이 물질적으로 빈곤한 상태라면 수많은 열등감에 빠질수 있다. 그리고 생겨나는 불신과 불만, 피해의식 들
여기 모여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러한 마음상태를 지니고 있어보인다.
초반엔 빈곤층인 민구 만이 열등감 가득한 것 처럼 보였지만 점차 하나 둘 가슴속에 맺힌 응어리들이 나오면서
인간의 어두운 면들이 하나 둘씩 나오게 되는데. 가끔 나는 생각해본다. 백지처럼 하얀 인간이 있을수 있을까?
갓난아기도 백지는 아닐거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의 이기적 행동으로 비롯되어 진행되는 파멸의 시간들

약간은 추리 스릴러 같은 긴장감이 있는듯 진행되는데 누군가를 맞추는 추리물이라고 하기엔 좀 아쉬움이 있다.
영화 CUBE 같은 이상한 엔딩과 쏘우 같은 조금은 진부한 전개와 마무리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두 사람? (이 두사람은 정말 모르겠음)

연극에서 보여주고자 한것은 이 엔딩은 아닐거란 생각이다.
인류가 에덴동산에 살아간들 분쟁이 없을리 없고
본능인 이기적 성향과 자기 보호 본능 같은것은 당연하기때문에 화양연화를 꿈꾸고 들어왔던 이들이나
어떤 세계를 만들고자 했던 어떤 이들이나 인간의 본성을 가볍게 판단하면 그 말로는 항상 어긋날뿐이다.
결국 인간의 잔혹한 운명같은 본능을 이 연극은 다시한번 일깨워준다.
일부분에선 감정이 너무 올라가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110분의 짧지 않은 시간에
불편한 자리때문에 다리를 이리 저리 움직이지 않으면 온몸이 쑤시는 그런 소극장에서
지루함 없이 집중할 수 있었다는것은 매우 잘 짜여진 구성과 뛰어난 연기력 덕분에 가능했다고 생각된다.
(극장 동국은 다른건 몰라도 의자는 꼭 개선이 필요함. 연극 품질때문에 왠만하면 보러가는편이지만 관객석 생각하면 걱정이 앞섬)

사회적 약자라는 소재보단 인간의 내면을 겉으로 드러내므로 반면교사로 삼을만한 연극이랄까?
그냥 거울같다고 하는게 마음 편하려나?

출연 : 송유빈, 심재근, 김치성, 김시원, 김원진, 최찬미, 안현, 손민목, 지연애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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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6. 10. 18.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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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좀 어려운가? 포스터 느낌도 그렇고
흑백다방같은 느낌의 포스터(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연극임)

문제는 보르헤스가 누군지를 모른다는 것. 그렇지만 연극을 보면서 어느정도 흐름은 알것도 같고
집에 와서 보르헤스가 어떻게 꿈을 꿨다는건지 찾아보니 꿈을 꾸는 방법이라기보다는
현실과 비현실, 꿈 속의 자아와 또 다른 자아 간의 충돌, 갈등, 고민?
인터넷으로 찾아보면 호접몽을 이야기 하는 경우도 있긴 한데 뭔가 좀 다른 늬앙스다.
나는 '스크루지 영감' 이 떠올랐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과거와 현재는 진실이고 미래는 허구

다만 이 연극에서 현실의 인물은 죽기 직전의 노인인것이 이야기 흐름상 맞고
나머지 시간대는 꿈 속의 꿈을 꾸고 있는것이란 설정이 맞을수도? 아닐수도?

1막에서 중간자 역할인 오십대의 한 연극 배우 그리고 이십대의 젊은 배우
이 둘은 같은 존재로서 타임머신을 타고 내려온거 같은 설정인데
따지고 보면 일방적인 설교를 한다. 이것보다 더 수직적인 관계가 또 있을까.
이십대 윤상현은 오십대의 윤상현이 신적인 존재로밖엔 보이지 않을것이다. 물론 믿는다면
그리고 오십대는 과거를 회상하듯, 이십대는 자신이 꿈꾸고 있는 배우의 생활들을 이야기 한다.
대화는 흐름은 일방적일 수 밖에 없는데 오십대의 윤상현이 말하는 것을 이십대가 어떤 반론을 할 수 있겠는가.
이미 지나버린 과거를 그대로 진행해야 하는 운명의 이십대의 심심한 미래일뿐인것을

보통 이런 전개는 미래를 바꿔가는 원동력이 된다.
(영화 '데스티네이션' 처럼 죽을 운명이면 어떻게든 죽을 사람은 죽는다는 설정도 있지만)
신기할정도로 청년은 모든것을 순응한다. 이럴 수 있나?
꿈 속 자신의 자아라서 반항을 하거나 거부한다는게 의미없기때문일까.
그래서 1막의 중반부부턴 살짝 지루함이 있다. 내 자신이 운명론자이나 미래를 알게되었다면
인간이라면 당연히 바꾸려 하는게 당연한것인데 아무리 꿈속이라도 너무 일방적인 흐름은
그냥 중년 남성의 옛날 이야기를 듣는 정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상황 자체가 서로 대립될수가 없기때문이겠지. 서로 쌈박질을 하게 된다면 패러독스(Paradox)에 빠져드니
아마 작가는 이부분에서 스스로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져들었을것이다.

2막은 상황이 바껴서 오십대의 윤상현과 구십대의 윤상현이 나온다.
이건 상황만 바꼈을뿐 1막하고 다름은 없다.
죽기 직전의 윤상현은 오십대의 윤상현에게 또 다시 일방적인 설교를 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오십대 윤상현이 구십대에게 순응하지 않는다.
죽어가는 그리고 그는 자신이 살아왔던 인생을 오십대 윤상현에게 토로하지만
글쎄 이미 오십년이나 살아온 인물이 노인과의 대화에서 어떠한 것들을 받아들이려 할까

오십대는 거부하지만 노인을 말한다. 모두 잊고 몇십년 후 지금의 내가 되어 있을거라는
이것은 청년 또한 몇십년 후엔 오십대의 윤상현이 되어 있을테니
발버둥 쳐봐야 정해진 운명을 거스를순 없다는 천명? 천성? 같은 것일까. 배우의 숙명일까.

다만 여기서 오십대 윤상현이 현실일거란 추정이 되는데 어느 모텔방에서 쓸쓸히 홀로 죽어가는
구십대의 윤상현을 보며 회한같은 감정이 생긴다는 것은 저 말로를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는지 되묻지만. 답을 알곤 있지만 다른 결말을 원하는 것일까?
좋아서 배우가 되었고 좋아서 배우생활을 하고 대학로에서 다작 배우가 되었다고.
이 단 한가지의 이유때문에 모든 인생을 받친것이 아니었나? 그러면 된거 같지만
마음 한 구석은 무엇인가 허전함이 느껴진다.
오십대 무렵 사람들에게 흔히 찾아오는 현타 같은 현상?
이쯤 되면 아흔살의 자신의 미래는 어느정도 보일테니 그 미래의 나와 이야기 할 수록 공허함이 커지겠지.

인간이 어떤 과정을 거친 후 결론에 다달았을때의 감정과 과정을 건너뛴 후 결과를 접하는 감정은
완전히 다를 수 있다. 1억원을 10년동안 힘겹게 일해서 모았을때와 갑자기 1억원이 하늘에서 떨어졌다면
그가 느끼는 1억원의 가치 크기는 완전히 다르듯
이 부분에서 1막과 2막에 공존하는 모순점이 있다. 과정을 이야기 한다고 해봐야 청년과 중년의 대화에서 청년은 이해 못하고
중년과 말년의 대화에서 중년은 이해 못하는 것이다. 서로 뜬구름같은 소리만 하는것이지.
그래서 중년 윤상현이 현실이어야만 이 이야기는 열린결말로 생각을 해볼 수 있게 된다.

끝도 비슷한게 맽음이 되었지만 뭐랄까. 중간이 좀 맹숭맹숭하다고 할까.
스크루지영감(원제 크리스마스 캐롤)처럼 극적 요소가 좀더 가미되야 수직적인 관계라도 재미가 있을텐데
심리서사 모노드라마 형식의 인물 한명의 2인극이라서 사건을 만들긴 어렵겠지만
지나온 사건이라도 좀더 재미있게 구성이 가능했을텐데 아주 조금 아쉽다. (모노드라마들이 대부분 그러지 않던가.)

양창완 배우의 양창완인물과 윤상현배우의 윤상현인물 두 연극이 설마 내용이 다른것은 아니겠지?
서사가 다르다면 두편을 모두 보는 재미가 있었을거 같기도 하고
두 배우의 스타일이 다를테니 느낌은 다르겠지만 내용이 동일하면 또 그게 큰 의미가 없어서
오늘이 하필 막공이라 한편만 본것은 조금은 아쉬운 생각이 든다.

출연 : 윤상현, 유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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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공연2026. 10. 1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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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소개를 보지 않고 포스터만 보고 구입하고 관람것이라서(시놉을 미리 좀 보겠다고 다짐하지만 잘 안됨)
두 편의 연극이 연이어 있는것인줄은 몰랐다.

그리고 140분이라는데 이상하다. 나올때 시간을 보니 한 80분정도? 됬던거 같은데. 집에 들어온 시간등을 고려하면
틀려보이진 않는다. 그런데 왜 140분이라 적혀있는걸까.

제목이 2인실과 무간도가 붙어 있다고 가정하면 스릴러, 호러? 심리물? 심장이 쫄깃해지는 그런건가싶었다.
포스터도 딱 그렇고. (2인실 병동에서 네명이 서로 뒤엉켜 말로 물어뜯는 치열한 토론의 장인줄 알았음)

하지만 두편을 연이어 공연하는 그냥 짧은 두편의 연극들이었다.

첫번째는 2인실. 두명의 환자가 침상에 누워있다.
한사람은 폐암 말기, 다른 한사람은 정신치료.(이런식으로 섞어서 병실을 배정하기도 하나? 위험할거 같은데)

폐암 말기 환자(화이트)는 몸이 너무 고통스럽고 다른 환자 한명(블랙)은 정신이 고통스럽다.
서로를 이해하진 못한다. 좀 납득이 안되는 대사가 있는데 사랑한다고 팔 다리같은거 막 내던지진 않는다. 그렇지만 블랙은
화이트(폐암말기 환자)에게 몸(세포)이 아픈건 대수롭지 않은냥 말을 던진다. 헤어질때도 고통스럽다는걸 부인하는게 아니라
통증의 종류가 다르다고 해야 하나?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리고 이미 끝에 다다른 사람들이니 피폐해진 정신상태 대화한다면
거칠고 투박한것은 당연해 보이기도 하다. 연극이니 어느정도 정제된 표현을 쓰는데
훨신 더 현실적인 인간의 가장 밑바닥 언어가 나와야 하는게 아닌가싶었다.

이부분에서 서로의 과거를 공유하고 아픔을 위로하며 끝나는줄 알았는데(보통 전개들이 그러하니)
갑자기 서로 영혼을 바꾼다?????????? 왜 갑자기 판타지로?
사이코드라마처럼 대상을 바꾼다기 보다는 상대를 완전히 바꾼다? 그리고 몸이 갖고 있던 기억들이 살아난다?
다시 말해서 폐암환자였던 화이트는 블랙의 몸과 기억을 갖으면서 폐암으로 부터 벗어난다.
블랙도 화이트의 폐암의 몸을 받게 된다. 서로 기억도 가져간다면 좀 우끼지만 둘이 하나로 합쳐져 퓨전이 되던가
아니면 영혼이 바뀐게 바뀐게 아닌 모순에 빠지게 된다.
결국 몸은 두개인데 기억이 같은 동일한 두개의 객체, 혹은 바꼈지만 바뀌지 않은 처음 그대로인 상태

아무튼 문학 허용으로 넘겨보자. 블랙은 입양되었다가 양부모에게 학대받아서 방화로 죽였다?
그리고 양부모가 다른 아이들을 입양한건지 친 자식들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들도 함께 죽였다?
그 죄책감때문에 자살하려고 했던거 같고 그 기억의 고통을 계속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배경인데

이 기억이 일순간에 내 머리속에 들어온다면 죄책감으로 다가올까? 영화같은 기억으로 남게 될까?
우리가 영화를 볼때 느끼는 감정도 충분히 사실적이다. 그 강도가 좀 약할뿐
이 연극에서는 영화같은 감정보다는, 자신이 아니지만 기억을 하므로서 자신의 일이 되버린 쪽으로 선택된다.
그래서 똑같이 괴로워 한다? 이러니까 결국은 영혼을 바꿨는데 바뀐게 아닌게 되는거다.

반면에 화이트가 된 블랙은 어차피 죽으려 했었기때문에 폐암말기고 오늘 죽는다고 하더라도
크게 개념치 않아보였는데. 고통스러워할순 있고 식도가 모두 녹아서 아무것도 못 먹기때문에
무엇인가 먹으면 죽는다고 하지만 가슴쪽에서 오는 뜨거운 통증때문에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려하는데
먹으면 죽는다는 화이트(현블랙) 말때문에 못 먹는다. 신기하지? 10년 후도 1년후도 일개월 후도 아닌 어차피 오늘 죽는다고 하는데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죽을까봐서 못먹고 있다니. 인간의 어리석음을 표현한건지 그가 지금 받고 있는 고통의 두려움을 표현하였지만
나 역시 저 사람이 아니니 저 심정을 이해할수 없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연출이 보여주려한것인지

막판엔 병실에 감금된듯한 늬앙스를 풍기는데 이건 어떤 의미였을까?
이 고통의 굴래에서 벗어날수 없다는 소릴까?

이것과 연결해서 다음은 무간도.
무간도(無間道)란 말은 영화같은곳에서 제법 쓰이는 소재이다.
무간지옥, 틈이 없다라는 의미의 무간, 영원한 시간동안 벌을 받거나 죽지도 못하고 계속 벌을 받거나 휴식없이 고통을 받거나
죄인들을 가득 채워넣어 피할 곳이 없게 한다거나 등 그래서 무간지옥이라고 하고 가장 쌘 지옥이라고 하지만
죽어서도 이런 물리적 고통을 받는다는게 조금은 유치하지 않은가?
지옥은 못된놈이 회계하도록 하기 위함보다는 착한사람을 계속 부려먹기 위해 강요하는 수단으로 만들어진게 아닌가 싶다.
(지금을 보더라도 못된놈은 그냥 계속 못됬다. 지옥이란게 실제로 있다면 이런놈들이 생겨날수가 없지)

업보(카르마)와는 좀 다르긴 한데 한 남자가 끊임없이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삶과 모든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는 삶
두 대립 관계를 일란성 쌍둥이의 인물로 표현하는데 주제나 배경은 제법 참신했다.
쌍둥이라도 공부를 잘 하고 못하고는 좀 다른 문제고 성격의 성향도 다를 수 있어서
서로 다를수 있고 부모의 관심도 역시 다를 수 있다. 대부분의 집들이 그럴텐데 공부 잘 하는 자식에게 관심이 쏠린다.
아예 자식 중 누군가 엄청 몸이 아프다거나 해서 다른 자식들은 소외받아 가정불화의 씨앗이 되는 문제도 종종 있다.
이상한것은 이 소외 받는 자식들은 부모에게 관심을 받기위해 많은 일들을 한다는 것이고
관심을 독차지 하고 있는 자식은 귀찮아한다는 것. (부익부 빈익빈. 인간의 본성에 문제인가?)

2인병실과 비슷한 설정이다. 서로 상반된 처지로 생겨나는 관점의 차이
이들은 이것을 좁혀가려 하는것인가?
독특하면서 식상한(?) 다중인격체로 묘사되기때문에 여기서는 그 마저도 설득력을 잃게 된다.
불을 지른 자의 의식과 그로 인해 화상을 크게 입은 자가 한 사람?
원래는 둘인데 하나는 불타 죽어서 다중인격이 된 형 혼자의 대화다.

엄마를 애증하는 형, 증오했던 동생
이 두 인격체는 서로의 주장을 하는데 판타지가 아니고서 애초에 이런게 가능한건지. '반지의 제왕'의 골룸도 아니고

동생은 분신자살, 엄마는 폐암으로 돌아가신 설정인데
처음에 나왔던 '2인실'에 한명은 방화를 했고 한명은 폐암으로 오늘 죽을 목숨이다. 그런데 이들은 어딘가에 갇혀있다?
'무간도'에 나온 분신한 동생과 첫째를 싫어했던 아니 둘째만 사랑했던 부모가 무간 지옥에 들어서게 된것인가?

두가지의 내용이 서로 연결점은 없다. 그러나 2인실에 갇힌 고통받는 두명의 환자는
현실세계의 죄에 대한 벌의 한 형태였을까.

전체적으로 고민해볼 필요가 있는 멋진 주제긴 한데
흐름에 필요한 소재들이 조금은 낡은건지 해졌다고 해야 할지.
전체적으로 조금은 지루함이 있었는데 그래서 140분짜리를 80분정도로 자른건가?

좀 더 집중해서 보고 싶은 연극인데 다시 올라오면 그땐 오늘보단 더 집중을 해보자.

출연 : 배소희, 김명애, 강민석, 이헌일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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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공연2026. 10. 11.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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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런 식의 구성이 있다. 로드무비처럼 백스테이지를 보여주듯
스탭이나 배우들의 무대 뒤, 그들만의 이야기를 극화 한 구성
흔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신선한것도 아니다. 그래서 근래 창작물을 이런 구성으로 하는건
조금 이해는 안되지만 연극계가 어렵다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방편으로 사용되는것일지도
일종의 항의 같은 것일까. 그것을 왜 관객에게?
관객은 돈을 내고 들어온 사람들이니 항의가 아닌 서비스(연극)을 제공해야 하는 대상인데

그 많던 갈매기를 누가 다 죽였냐고 묻는다면 대답해주는게 인지상정(로켓단?)이겠으나
내가 기득권층이 아니니 대답하긴 어렵다.

저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까지 왜 연극을 하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내 입장에선 고맙지만 왜 하는지 저들의 내면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적지 않은 시간 제법 많은 연극들을 보고 있으나 연극 배우 한명 지인이 없으니
저들의 심정을 들어본적도 이해 해보려 한적도 없다. 하지만 극 중 배역에 동화되려 항상 노력은 한다.

그래서 무대 뒷이야기가 연극의 소재로 사용될땐 간접적으로나마 저들은 저래서 연극을 하는구나 생각하는데
이해하기 어려운 예술 세계라서 심연을 확실히 이해하기엔 장벽이 높다.

누군가 우리 청년들의 날개를 꺾었다는 의미에서라면 글쎄.
과거부터 청년들의 미래는 청년들이 만들어가지 않았나?
수많은 민주항쟁의 역사, 독립의 역사, 개혁의 역사 모두 젊은 이들이 이끈 성과들 아니었나?
이들이 늙으면 기성세대로서 다음 세대가 이어받고 그 세대는 그걸 발판 삼아 다른것을 만들거나 바꾸고

무에서 유를 만드는건 인간이란 존재가 워낙 다른 동물들의 단물을 쪽! 빨아먹고 탄생한 생명체라서
어려울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에서 저것으로 바꾸는것만도 많은 피가 필요하니
갈매기를 누가 다 죽였는지 궁금해 하지말고 까마귀, 까치로 대신할 수 있는지를 기득권과 싸워주면 안되는걸까?
아마도 지금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가 되면 까마귀, 까치를 다 죽인 범인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연극은 군사정변(쿠테타, 내란, 반란)이 갑자기 나오기도 하고(광주민주항쟁과 12.3내란 영상이 갑자기 왜?)
PPL을 구성해보기도 하고(연극속에 PPL? 재미있게 구성됬지만 실제로 들어간다면 조금은 짜증이 날지도)
몇 막으로 되어 있긴 한데 다 기억나진 않는다.
일종의 시행착오들을 표현한거 같기도 하고 그것들을 극화한것이 초기 기획인건지 하다보니 만들게 된건지
그리고 반야,세자매 등 이들의 대사들이 튀어나온다.(이바노프도 나오나?)
제목은 갈매기인데 체홉 작품들을 상황에 맞게 많이 가져온듯 싶지만 결론은 모르겠다.
영상 전 마지막 장면(PPL 이후)에서 저들의 독백은 정말 멋졌고 가슴 뭉클했는데.
바로 이어지는 십여분정도의 이상한 동영상때문에(에필로그?) 모든 감정이 다 무너졌다.
왜 아르코에서 공연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거지? 그것도 길게?
연극이 너무 짧아서 억지로 끼어넣은건가? 예전에도 이와 비슷하게 에필로그 영상을 연극 뒷쪽에 넣어서 망쳐버린 연극이 있었는데
난대없이 이게 무슨 만행인지 모르겠다. 잘 나가다가 판을 엎어버리는 방법도 참 다양하다.
한 10여분 더 채울것이 그렇게 없었던가? 안톤체홉 작품 짜깁기 10여분 더 만드는게 그렇게도 어려웠던가?

아쉽다. 선호하는 구성이나 주제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들이 무엇인가를 이루려는 찰라였는데
때론 신선함도 있었고 몰입감도 잘 이어가며 긴장도가 최고조에 오를랑 말랑 한 순간.
이렇게 한순간에 엎어버린다니. 아니 싹 지워버리다니. 영화 맨인블랙의 기억 소거장치가 가동된거 같다.
차라리 커튼콜을 좀 미리한 후 에필로그 영상을 틀어놓 나갈 사람 나가게 하면 어떨까란 생각이 든다.

무슨 내용이었을까? 공동창작이라고 하니 이들은 마지막 영상에서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출연 : 이형우, 심태연, 서별, 김현영, 박진영, 박제훈, 최줄리, 안시연, 홍민국, 최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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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공연2026. 9. 5.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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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늙지 않는다는게 무엇일까? 철학적인듯 싶으면서도 별 얘기 아닌듯 하기도 하고
연극에서 사람의 스트레스를 극단적으로 낮춰서 장수하게 하는 '저속 노화 센터'라는 곳이 있는데
한 남녀가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 본인들은 돈이 없으니 한 사람 10년동안 들어가 있으면 다른 사람은 돈을 벌고
10년 후엔 교대하는 뭐 그런 시작이다. (왜 같이 10년간 벌어서 10년간 들어갈 생각을 안하는 것일까?)

신기한것은 10년이란 시간동안 한쪽은 많이 늙고 센터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거의 안늙는다는것
그래서 10년 이상의 외모 차이가 발생한다. 그리고 한쪽은 일을 해야 하기때문에 대인과 사회에 대한 모든
제약과 규약을 따라야 하기때문에 정신적으로 성숙하는 반면 센터에서 온실 속 화초처럼 생활하는 사람은
시간이 멈춘듯 매일 매일 반복하는 일상을 살아간다. 오직 오래 살기 위한 생활만을 한다. (이건 사람의 생활이라 할 수 있나?)
이 연극의 전개는 이곳에서 이미 깨진거 같다.
인간이란 존재가 태어나서부터 쳇바퀴 돌 듯 살아왔던것도 아니고 이미 젊은 시절은 일반 세상에서 살다가
갑자기 안락한 센터에서 수명연장만을 위한 무료한 삶을 살아갈수 있다고? 이 부분에서 이미 오류로 시작한다.
특히나 다른 사람들과의 커뮤니티 조차 없다. 왜냐하면 사람간의 대화는 스트레스가 발생할수 있기때문이라나
그러면 수명이 줄어드니까. (이런 기술이면 차라리 냉동 수면이 나은거 아닌가? 어차피 살아간다고 말할수 없는 상황인데)

SF라고 하기엔 당위성같은게 좀, 자연스럽지도 않다.
설사 센터 생활에 익숙해졌다고 한다면 과연 그 곳을 나올 수 있을까?
강과 현의 관계는 어떤 사이길래 10년 동안 하루에 일을 세가지나 해줄수 있는거지?
사랑하는 사이를 이렇게 오래 지속할수 있다? 둘다 동일하게?
그리고 10년 후 과감히 센터에 나와 상대를 위해 10년간 미친듯 일을 할 수 있다?
사람에 따라 그럴수도 있겠지만 너무 예외적 사건이 아닌가?
보편적이면서 극적인 상황이 아니라 애초 시작부터 극단적인 상황으로 시작하니 도무지 납득도 안되고 공감도 안된다.
서로 사랑하니까로 모두 퉁치는 기분. 작가는 사랑이란 소재를 이용하면 인간에게서 신적인 포용력을 지니게 된다고 생각하는거 같다.
그것도 수십년이란 시간을. 이 저속 노화센터가 참 좋은게 늙어진 사람도 들어가면 다시 젊어지는지 젊은 분이 나온다.

전체적인 줄거리나 소재는 SF라 하기에도 좀 민망하고
(SF는 허구-과학소설-를 바탕으로 하기때문에 엄청 치밀하게 설득해나가지 않으면 똥되는건 시간문제)
연인간의 감정 변화를 표면적인 노화라는 소재를 이용한것이라 보면 마음 편한듯 싶다.

바쁘고 고달픈 현대인들. 이들의 연예전선도 그다지 순탄한것은 아닐것이다.
서로 바라보는 마음이 같더라도 엄밀히 보면 완전한 타인이며 독립된 생활이 존재하기때문에
한쪽이 잠시 다른곳을 볼 수도, 상황에 따라선 다시 반대 상황이 될수도,
때때로 완전히 갈라질수도 있지만 본심은 그것이 아니니 그 오해를 서로 풀어가기도 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같은곳을 바라봤다고 해도 서로의 지향점의 갭은 점점 넓어질수밖에
결국 한쪽은 변화없는 지금의 삶에서 안주하는 삶을 택하고
다른 한쪽은 늙어 죽더라도 변화무쌍한 세상을 택한다. 자신이 먹던 빵을 위해, 그때 사랑했던 그리고 지금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이 모든것들의 연속성엔 필연적으로 늙어버리지 않는 무엇인가가 필요하겠지.

인간의 지속적인 삶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던지기때문에 곱씹어 볼 대목들이 좀 있긴 한데.
확실하게 와닿는 맛이 좀 떨어져서 깊게 새겨지질 못하는 아쉬움이 생겨서 한번만 봐서는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단번에 알아듣기가 쉽지 않아서 두번이상은
봐야 하는 연극이 아닌가 싶긴 한데 여러번 볼 만큼의 흥미로운 전개였냐가 문제라면 문제겠지.

요즘은 왜 이렇게 여러번 보고 싶어지는 연극들이 많아지는지.
연극 보는 횟수를 좀 줄여야 하는데 도무지 줄일수가 없네 에휴

출연 : 경지은, 권지숙, 김하람, 남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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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공연2026. 8. 17.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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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는 '이야기가 만들어 낸 시설들'이다.

상반된 두 가정. 한쪽은 눈이 안보이는 자녀를 갖은 부모로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자식에게 사랑 가득한 세상을 이야기 해준다.
그리고 다른 한 가정은 미혼모 가정인데 태어난 자식은 피부에 무슨 병이 생겼는지
흉직하다고 말은 하지만 배우가 너무 예쁘게 생겼고 분장도 얼굴에 꽃을 그려놔서 공감대는 없었지만
아무튼 상황은 그러하다. 이 부모는 자식에세 세상은 비열하고 자인하며 믿을게 못되기때문에
절대로 사람들을 믿으면 안된다고 가르친다.
이미 이 상황에서 어떻게 흘러갈지 뻔하게 보이지. 이게 시작 10분정도의 상황

베트타임 스토리란게 잠자기 전 부모가 자식에게 책같은것으로 이야기 해주는 것을 말 하는거 같다.
오늘 처음 알았지만 크게 그다지 새롭거나 신기하진 않았고 잠들기 전에 상상을 하는 뭐 그런것인가 싶었지만 좀 아쉽다.

독특하게도 음악극이다. 노래가 많이 나오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나온다.
동국이란 극장이 그렇게 음향이 좋은거 같기도 않고 그렇게 설계된곳도 아니라서
좀 낯설다고 할까? 관객석도 무척 불편한 극장 중 한곳이라 노래를 감상하기엔 안어울릴거 같지만
아무튼 음악극 형식으로 앞이 안보이는 남자와 얼굴에 흠이 있는 여자,
세상을 아름답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과 부정적인 면만 강요당한 사람
그리고 이들의 부모와 주변 이야기.

미혼모에 대한 시선이 대단히 안좋은듯 표현하고 있어서 지금의 한국사회는 아닌거 같고
다들 외국 이름들이니 미국의 어느 시댄가 생각해보지만 별다른 생각이 떠오르진 않았다.

다들 외국이름이니 외국 작품인가?(연출가 전 이니)싶었지만 어떤 정보도 없다.
스테이지 블룸의 창작극으로 생각하면 될듯 싶은데 왜 외국 이름과 지역을?
원작이 있는데 표기를 안했을뿐 내가 몰라서 모르는건가?

흐름은 전형적이다. 한 사람은 앞을 못보고, 다른 사람은 얼굴을 남에게 보여주기 싫다면
서로 잘 어울리지. 이런 드라마도 있었던거 같은데. 얼굴에 화상입은 여자와 앞이 안보이는 남자.
사기꾼 남자와 앞이 안보이는 여자(일본/한국드라마)
보통 이런 관계는 어떻게든 만남이 성사되고 서로 엮이게 된다.
그리고 앞이 안보이는 사람은 꼭 이식을 받아서 눈이 보이게 되어 상대방을 찾는다.
이런 내용을 90분으로 압축해놓은 연극이다생각하면 될듯 하긴 한데

주변 사건으론 연예인 엄마의 미혼모라는 비밀을 지키기 위한 사투? 앞이 안보이는 자식의 부모는 돈을 벌기 위해
직장인으로서의 힘든 삶? 90분에 이것들을 모두 녹여내기란 쉽지 않을거 같다.
다들 엄청 짧막짧막. 여기에 음악극이니 노래할땐 아무래도 시간을 좀 할애해야 하고
이럴때 연극이란 장르가 조금은 아쉬운 단점을 드러낸다. 너무 길게 할수도 없고 세세하게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모두 표현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보통은 중간토막을 집중적으로 묘사하는데 이 연극은
꽉꽉! 눌러 섞어놓은 비빔밥같은 선택을 한거 같다. 전체적으론 어떤 느낌인지 알겠는데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마땅히 무엇인가 꼭! 찝어서 말하기 어려운?

묘한점은 어디서 코드가 맞았는지 갑자기 울컥 하는 장면들이 몇 있었다는것인데
신선함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운 이런 로맨스 연극에서 감정이 동화되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순간 갑자기 감정을 억누르다보니 좀 이상하긴 했다. (내 삶의 단편이 보인것도 아닌 너무 딴 세상 이야기인데)

그런데 왜 음악극으로 했을까?
로맨스를 살리고 싶었나?
그러면 둘간의 시간을 훨씬 많이 투입하는게 낫지 않았을까

출연 : 불분명함.(왜 제대로 정보를 기입안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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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공연2026. 8. 1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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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 아니게까지는 아니지만 서로 다른 극단이 연극한 것을 이번까지 세번째로 보는것이다.
그런데 매번 기본적인건 기억나지만 구체적인 내용을들은 보면서 기억이 난다. 왜 그럴까?
이 극은 어떤 매력이 있길래 다양한 극단들이 이렇게 무대에 올리는 걸까? 무엇이 마음에 들까?

오늘 작품은 다른 작품들과는 아주 조금 다르게 현시대를 살짝 입혔다.
센테는 창녀였지만 그냥 노동자로 바뀐거 같고, 비행기조종사를 꿈꾸던 양순은 우주비행사
슈퓨는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컨테이터들이 많다고 하는 부자
(센테를 창녀라는 직업으로 정한것은 가장 천한 직업군이라는 이유에서였을텐데
그렇다면 약간 각색된 이번 작품은 지금 직업군들 중 천대받는 직업으로 만들면 좋았겠지만 그러진 않았다.)
신은 한명인데 벙어리에 소리나지 않는 종을 들고 다닌다. 그 종을 흔들때마다 인간은 어떤 깨달음이나 지식을 얻는다.
케리어를 들고 다니는 원추(거지), 보험설계사 링링(거지) 요정도일뿐이고
역시나 똑같이 담배가게를 산다? 왜? 거지들이 모여들어도 운영 가능한 현시대의 자영업은 뭐가 있을까?
마땅히 생각나는건 아니지만 담배가게는 쓰촨(사천)성에서 담배가게의 위치를 모르기때문에 원작이던 오늘 본 작품이던
별로 이해되지는 않는다.(독일 사람인데 왜 중국을 배경으로 한지도 좀)

신들의 역할도 중요했던거 같은데. 그러나 묵언수행을 하듯 한마디 없다.
그래서 신이 원하는 의미를 알수 없고 사회에서 어떻게 해석되야 하는지도 없다.

이 역할을 센테가 모두 한다. 현대로 시대를 바꿨기때문에 지금 청년들이 겪는 사회적 부조리를 말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 희곡의 당시 취지와 맞는것이 아닐까?
선한 사람, 악한 사람들의 모호한 경계, 종교에서 자본으로 변화되는 사회
그것을 관객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데 1940년대를 그대로 가져오면 2027년 관객들이 받아드려야 하는것은 뇌에서 1차 번역을 한 후 생각해야 하기때문에
조금 느리게 다가오고 이마저 귀찮으면 넘겨버릴수 있는데 2027년에 당면한 사건들을 주제로 내건다면 그것대로
큰 의미를 가질수 있어보인다. 불필요한 해석절차를 없애서 좀더 깊에 생각할 수 있으니 좋은 설정으로 생각된다.

현시대에 담배가게라거나 무대뽀로 들어와 살고 있는 거지들이라거나 우주인 같은 설정은 좀 손쉽고 게으른 설정들이라
이런 부분은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약간은 더 세밀하게 손보고 교정했더라면 어색한 것들도 좀 사라졌을텐데.

센테(슈타이)는 신이 맡았던 종교적인 면과 자본주의적인 면(슈타이)을 모두 소화하게 되었다. 물론 이건 원작도 마찬가지.
과거의 센테보다는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어 연극 대부분은 센테(박재이)만 보인다는 것도
이번 각색된 버전의 단점이자 장점으로 다가왔다.. 단점이라면 한 사람이 많은것을 소화해야 하기때문에
한가지라도 삐끗하면 다른 주제도 망가질수 있다는 것이고 장점이라면 여러 사람이 주장하고 내세웠던 주제를
한 사람에게 몰아넣으므로서 집중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부분에서 이번 작품의 박재이 배우는 훌륭히 잘 소화한거 같다.
그와는 반대로 조역들의 역할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게 아쉽지만(대부분 나쁘고 강한 캐릭터들이어야 하는데 대부분 순딩순딩한 느낌)
그로 인하여 슈타이(자본주의의 상징)가 훨신 독한 캐릭터로 나오지만 그렇게 독하게 표현되지는 않는다. 진짜 임산부가 조심조심하듯
모든 거지들을 냉정하게 대해야 하고 협상해야 하는 등 쌘 캐릭터긴 하지만
당시 중국사회에서 자본주의를 비판하듯 지금의 한국사회를 비판한다는 것은 늬앙스가 잘못 해석되면
자본주의를 배척하고 사회주의로 가자는 것이 되서 약간은 위태로면 면도 보일수 있지만 그정도까지 강렬하게 시대비판적이진 않았다.

노동착취같은것은 쓰촨(사천)성에 그런일이 많았다고 하지만 이건 한국도 전태일열사께서 분신하신일도 이런 노동착취때문에 발생한 사건이니
한국사회나 전세계 대부분이 한번씩은 겪어가며 바뀌고 있는 중이라서 과연 자본주의는 단점만이 장점보다 큰것일까에 대해
관객에게 질문하지만 그것은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일이다.

원작은 임신한 한 인간에게서 아기에게만큼은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강렬한 바람정도로 맽음된다.
이 부분에서 인간이 자식을 낳고 기르는 근본적인 목적이 있다고 보며 부모의 위대함이라 한다면
당신들이 겪었던 불합리하고 힘든 역경들을 자식들에겐 겪게 하고싶지 않는 열망과 갈망이 있기때문일텐데
이것은 원작이나 이번작품이나 다름 없게 다가온다.
그러고보면 이번 작품은 이부분이 좀더 큰거 같은 기분이다.

출연 : 박재이, 서도하, 이정후, 김보미, 김태훈, 이해원, 김욱래, 윤보미, 이은지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6. 8. 15.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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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의 무뚝뚝한것은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닌거 같다.
하지만 이것을 소재로 활용한 문학작품은 이번에 처음 본거같다.
부자지간의 단절된 대화. 이것은 한국만의 문화일까? 동물들 중 수컷들의 본능에 가까운것일까?

외국 영화 같은것을 보면 부자지간에 그다니 말이 없진 않다. 하지만 아버지가 충고하는 역할이 많이 나온다.
이 연극에서도 아버지가 아들에게 충고하듯 말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인생선배가 되면 충고를 꼭 해야 하는것인지 내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니 그런것인지
아무튼 나이들면 부모는 유교적이 권위적인 꼰대가 되는것은 운명인듯 싶다.

이 극장을 오랜만에 온거 같긴 한데 이렇게 컸었나?
분명 아버지가 혼자 사니 큰집이 필요없다며 작은집으로 이사했다고 하는데 엄청 크다.
그러나 큰 무대를 적절하게 잘 사용해보이진 않는다.

차라리 부채골 형태로 좀 작게 구성하면 집중도를 좀 더 올릴수 있지 않았을까?
너무 넓다. 단 두명있는 방 한개, 거실, 부엌, 다락방 이런 구성이지만 다락방과 안방은 문만 있으니
거실이 엄청 큰데 이곳 양쪽에 아빠와 아들이 쭉 찢어져 있으면 불편했겠지만 왠만하면 서로 붙어있어서
보는데는 큰 지장 없었다?. 넓은 운동장에 두명이 모여있다고 생각하면 이들에게 집중하기 어렵다는걸 느끼지 않을까?

무엇인가 설정이 좀 모호하다. 아들은 복학을 했다고 하는데 군대를 다녀왔다는 설정인지
다쳐서 휴학했다가 복학했다는 설정인지. 아니면 내가 잘못 들은건지.

부자지간의 단절된 대화는 정보의 끊김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로인하여 생겨나는 오해와 불화, 앙금 같은것이 쌓여있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태
물론 이런 상황이란걸 처음엔 알지 못했지만 부자간의 갈등요소를 생각해보면 별다른것은 없을것이다.

어머니께서 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왜 그리도 술도 안드시는데 암에 왜 걸렸냐는 둥 아들은 황당한 소리를 한다.
술때문에 암이 발생한다면 술은 애저녁에 금지식품이 되었을거다.
아이도 아니고 대학교 졸업이 코앞인 대학생인데 왜 이런 아이같은 말을 하는건지
(작가 주변에 술때문에 돌아가신 분이 계신게 아닐런지. 내 주변에도 술때문에 돌아가신분이 있긴 함)

그런데 결국 사건은 술을 마시며 발생한다. 두어잔 하며 묶혀놨던 감정의 올가미가 풀리면서
털어놓기 시작하며 둘간의 갈등은 최고조에 이른다.
하지만 이렇게 털어놓는 클리셰가 발동한다는것은 모든 사건이 해결됬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응어리의 원천은 서로간의 갈등이 아닌 단절된 대화에서 생겨난것이니 대화를 하면 당연히 풀리겠지.

이럴때 독립영화같은 경우는 그냥 헤어지고 둘 중 한명이 돌아가신 후 상가집에서 본다거나 하는
일반적이지만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들로 맽음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휴머니즘, 패밀리즘 가득한 작품에서 그럴리가 없으니 바로 다음날부터 모든 것들이 풀려간다.

다만 술 마시며 서로 극으로 치달을때 뭐랄까? 어머니를 한껏 끌어오는 신파적 환경
슬픈사연을 억지로 끌어오는듯한 최루성 짙은 흐름이라는게 좀 씁쓸하다고 할까.
이때 눈물 고인 분들도 계실테고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도 들리긴 하는데
이상하게 나는 무덤덤 했다. 왜 그랬을까? 돌아가신 혹은 편찬으신 어머니란 존재는 사람을 애뜻하게 만들지만
이번 연극에서는 그게 그렇게 와닿지는 않았다. 배우의 감정을 너무 올려놔서 동화될 틈이 없었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신파스러운건 조금은 거부감이 생긴다. 그리고 전개가 좀 흔한 흐름이라 마음속으로 다음을 준비하고 있는거 같았다.

이런 몇몇 사건을 제외하면 부자간의 갈등보다는 둘의 표현방식이 감정을 모호하고 재미있게 만든다.
아들이 태어났을때부터 20년을 매일 봤던 사이인데도 이상하게 부자간엔 대화가 서먹서먹하다.
그것이 공감되면서도 아닌거 같기도 하고
(난 비교적 아버지와 함께 있으면 심심한 대화를 좀 하지만 그렇다고 살갑게 표현하진 못하니)

몇몇의 공감하기 좀 어려운 혹은 의미없이 그려지는 상황들을 제외하면
소소한 재미가 끊기지 않는 연극이었다.

남자인 입장에서 반성까지는 아니지만 거울을 보는거 같다고 해야 할까?
여성관객들 중엔 엄마 입장에서(미혼인 여성은 공감대가 가장 적을듯 함) 아들과 남편의 행동이 그려지는지
많이들 공감하는 탄성이 여기저기서 나오는데 이런것만 보더라도 연기, 구성과 연출이 훌륭한 연극인거 같다.

중간 중간 긴 침묵이 있는 상황때문에 그 긴장감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매력도 뛰어난 작품이었긴 한데
역시 어머니에 대한 너무 많은 과대망상에 가까운 설정(어린아이 두명을 두고 떠나는 어머니)으로 그려지는건 뭐랄까?
좀 과한 설정이 아니었을까싶지만 작가가 어머니에 대한 애뜻함이 컸다면 그럴수도 있겠다싶다.

남자들이나 어머니들께서 보시면 참 재미있게 볼 수 있지만
아무래도 남자들은 이 연극을 보며 자신을 투영한다고해서 바뀌진 않을것이다.
그래도 아버지를 한번 더, 아들을 한번 더 봐주는 노력은 한번 이상은 하겠지. 그러면 성공 아닌가? ^_^

요즘 젊은 남자배우들이 너무 근육을 키운던데. 배우가 그러면 다양한 역을 하기 어렵지 않나?

출연 : 선욱현, 오현근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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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6. 8. 9.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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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생(更生)의 뜻이 무엇일까? 초기화 된 삶일까? 아니면 사회에 순기능 하도록 변화되는것을 말할까?
한문 뜻 자체만으론 다시 시작하는 삶정도 외엔 별 뜻도 안보인다.
인간 사회에서 사용되니 좋은쪽으로 시작하길 바라는 염원이 좀 있는 정도랄까?

트로이카. 세명으로 구성된 팀.  결국 새로운 삶은 시작하는 셋으로 구성된 팀을 말하는것일수도
혹은 그렇게 되길 바라는 작가의 심정? 일제강점기시절이니 일본 경찰의 마음일까?

독립군하곤 전혀 관계 없는 내용이다. 배경을 왜 이때로 삼았는지조차 솔직히 납득되지 않는다.
시대 특성상 욱일기(전범기)를 걸어놨지만
현대물로 해도 이상할건 없는데. 탈옥을 시켜야 하니 그 시절에 가능할거라 생각했던걸까?
내통하면 지금인들 불가능할까.

그리고 목사가 들어올것을 어찌 알고서 박기만(사업가)은 미리 들어와 있던걸까?

전체적으로 흐름이 좀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단 몇시간정도의 상황이라 개연성까지 따지기엔 무리가 있지만
그래도 흐름의 자연스러움이 있어야 하는데 감옥이라고 대뜸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고 있다는 등의 말을 하면
이건 누가 봐도 사기꾼이 아니던가. 최소한 첩자, 비밀경찰? 그런데 아니고서야

목사와 젊은이는 또 왜? 상황설정에 대한 부연 설명이 거의 없는 생선 중간토막만 있는데
그마져도 장르가 블랙코미디라 하지만 그렇게 보이지도 않는다.

배경하고 전혀 맞지 않는 흐름때문에 뭔가 씁쓸하고
시사풍자를 하려면 제대로 무엇인가 멱살을 부여잡고 까내려가던가
블랙코미디라고 안웃긴 코미디란 뜻은 아니지 않은가? 화끈하고 제대로 웃겨서 기억에 좀 남게라도 해주던가.

전체적으로 그냥 씁쓸한 극이다.
당시엔 독립군 팔아먹는 저런 사기꾼도 많았을텐데
종교 팔아먹는 사기꾼도 많았을텐데
유학생인척 흉내내며 사기치는 놈도 많았을텐데
이들이 대부분 나라를 좀먹듯 팔아먹으며 죄책감도 없었을텐데.

그리고 75분이 아니라 65분 남짓 될까 말까? 짧아도 너무 짧고 내용도 너무 부족하다.
뭔가 살좀 붙이면 작가가 의도한 어떤 함의를 좀 볼수 있을법 한데 왜 이렇게 미친듯 잘라낸것인지.
(유튜브에 작가 인터뷰로 작품해설이 있지만 온갖것을 붙여놨을까봐 보기 겁나서 보지 않음)
좀 넉넉히 붙여봐야 90분에서 100분인데. 간질 간질 재채가 나올듯 말듯 섭섭했다.

그런데 체홉축전이라며 7편을 두달간 하는데 정작 체홉 작품은 한작품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좀더 넣어주지.

출연 : 한창훈, 박재영, 이강원, 정연우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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