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공연2024. 6. 1.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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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불고 날은 엄청 깨끗
햇빛도 강렬해서 낮엔 여름같더니 해가 저무는 저녁엔 선선
밤인 지금은 아직까지 확실한 봄
그러나 대낮엔 몸이 끈적여서 돌아다니기 좀 힘든 시기가 된건 맞는거 같다.
월급날인데 월급은 안들어오고.. 관두란 소린가? 관두란 말 한마디만 하면 바로 관둘텐데

한시간도 안되는 연극
도데체 이게 무슨 내용인가싶어 오자마자 찾아보는데 제목을 키보드로 치는 자판(러시아어)을 몰라서
정보를 찾기 엄청 어려웠다.
종이 한장짜리 초단편인가?싶기는 한데 이걸 한시간짜리로 만든것도 어찌보면 용하다고 할 수 있어보인다.

대부분이 숨소리만으로 채워진다.
그리고 그지같은 라벨의 볼레로
내가 볼레로를 좋아하지만 이렇게 한시간동안 처음부터 끝도 아니고 특정구간만 반복한다.
'음악좀 꺼라~ 개놈아~'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이것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배우들의 미세한 디테일을 보기에 엄청난 방해가 된다.
(주변에서 아무도 말 안하나? 음악좀 끄라고..)

그래서 유튜브에서 공연한걸 찾아보니 전혀 그러지 않고 그냥 덤덤한 사무실에서
대화를 할뿐이다. 저 배우들처럼 오버액션도 전혀 없다. 물론 음악따위도 없다.

그리고 3루불이 왜 돈다발로 바뀐것일까..
각색을 하려면 공무원들의 뒷돈 문화가 만연화 된것만 풍자하면 되지
여기에 한국 비리공무원을 붙여놓은 느낌이라서 헛웃음정도만..

너무 짧은 내용을 너무 길게 늘려놔서 한시간도 안되는 시간동안 졸기도 하고 몸도 비틀어본다.
차라리 단편을 두세편 모아서 하던가 하지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다.
사회의 심층적인 무엇을 건들거나 뒷배경이 필요한 그런것도 아닌 단순히 표면에 보이는 그대로
그 시대에 체홉이 보여주려 했던 사회를 담백하게 표현한 내용을 가지고
온갖 생 난리 부르스를 한거 같은 기분이다. (스모그는 왜 그리도 많이 쓰는지)

그런데 이 극단의 느낌이 뭔가 힘이 느껴진다. 이 극은 뭐 그냥 저냥 좀 껌늘리듯 쓸때없이 늘려놔서 시간 아까운 기분이 들었지만
일반적인 희곡은 매우 뛰어날거 같은 기대감

아무튼 당시에 만연화된 공무원들의 부조리를 있는 그대로 그냥 그렇게 표현한 내용이니
리플렛처럼 뭔가 있는냥 기대해봐야 아무것도 없으니 기대 하지 않는게 좋아보이는 연극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단편 서너개 합쳐놓으면 훨씬 좋았을거 같은데 왜 이런짓을 해놓은건지 이해가 안된다.
(유튜브에서 찾아보면 짧은건 7분, 살을 막 붙여놓은 영화도 20분 미만인 극임)
그래서 쓸 내용도 솔직히 없다.

출연 : 엄지용, 임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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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4. 5. 2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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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잠자는데 지장없는 지금을 누릴수밖에 없는걸까? 조용한 에어컨을 하나 장만할까
오늘은 봄의 산뜻함과 여름의 불안감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날이었다.
어제 오늘 하늘은 무거웠지만 정작 비는 한방울도 내리지 않아서 봄 치곤 습도가 높게 느껴지던데
그럼에도 햇살만 없으면 아직은 선선하다.

벌써 몇년째일까
주말에는 어김없이 집회를 한다. 태극기를 모독하는 집회도 있고(제발 이스라엘 국기는 좀 들지 마라 쪽팔리다)
광화문광장에서 집회를 못하게 온갖 꼼수를 부려 서울역으로 밀려나 집회를 하기도 하고
(박원순 시장시절에 북한냄새 물씬나는 금색세종대왕상좀 경복궁안에 넣고 광화문 광장 중간에 구멍낸거 없애주길 바랬는데
정상적인 사람들이 권력을 잡으면 힘을 줘도 왜 빙신마냥 뭐하나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공청회만 더럽게 많이 하다가 쫓겨나듯 밀려나는걸까)

이렇게 정신 없는 날이었는데 혜화동에서는 길을 막고 행사를 한다.
마로니에공원에서는 국악 어쩌구 저쩌구, 아르코극장 앞에선 또 뭐 어쩌구 저쩌구
대학로 차도를 막고 그곳에서는 또 어쩌구 저쩌구 노래를 부른다.
모두 다 스피커 빵빵하게.. 서로 거리가 50미터나 되려나. 보통 이런건 공연이 아니라 소음공해라 부르는게 맞아보인다.
행사를 하려면 일단 스피커 음량부터 좀 조절하면서 서로 피해 안가게 해야지.
왜 공무원도 멍청해지는거 같은지. 너무 운영을 잘해서 잘나 보이면 짤릴수 있으니 윗선 따라하는건가?

아무튼 4대문 안이 온통 북새통이었다.

그런데 연극은?
뭔가 불안한 포스터 사진
보통 이런류는 정신병적이고 전위적인? 뭐 그런 독특함이 넘쳐나는데
시작부터 뭔가 불길하다.
난대없이 매일 지켜봤다니
여기서 지켜봤다는것은 스토커라기 보단 감시의 눈길이다.
'저놈이 나쁜짓 하지 않을까'라는 정도?같다.
왜냐하면 이 작품을 쓴 이유가 당시 이민법이 바뀌고 선거로 나라가 어지러웠다나

그리고 이쪽 나라들은 외국으로부터 난민이 엄청나게 들어오는 나라기도 한가보다.
한국이나 일본은 외국 난민을 거의 받지 않기때문에 이에 관련된 사회문제가 거의 없는 편이지만
유럽등은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가 될 정도로 각 국들의 고심이 큰 사항들이다.

그것을 다뤘다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이 극은 완전히 다르다.
한국에서 불법체류자들에게 제대로 된 임금도 주지않고 각종 폭행과 차별 등으로 심심치 않게 기사로 등장하는데
비슷한 문제로 보인다. 다만 다른것은 대외 명분상 불법적 행위는 아닌거 같이 대한다.

강제로 친구를 하게 만들고 강제로 무엇인가 함께 하고, 강제로 어딘가 간다. 물론 친구라는 관계로
그러니 대외적으론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둘의 관계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한명은 공무원이고 다른 한명은 불법체류자라는 것
이 관계는 연극이 시작하자마다 드러나는데 이부분에서 어떤 사고가 날까싶어 조마조마한 긴장감이 흐르지만
숨는자(아랫집남자, 불법체류자)와 법의 칼자루를 쥐어준 찾는자(윗집남자, 공무원)의 수직적 관계속의 팽팽한 긴장감보다는
숨는자의 비굴함과 차별에 순응하는 모습이 부여진다.

인간은 나이먹을수록 보수주의가 된다고 한다. 이것은 그 동안 가져왔던것을 지켜야 하니 그런것이겠거니 하지만
이들(불법체류자부부)은 마땅히 가진것도 없어보이는데, 병원에서 환자 수발드는 직이라도 얻을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남자와
당장이라도 다른곳으로 가자고 하는 여자. 누구의 편에 손을 들어줄수 없는 내 기분은 슬슬 나도
보수주의가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일까.

불안하다. 윗집부부(공무원)와 아랫집부부(불법체류자) 이들의 4가지 연결선이 모두 불안하다.
언제 어느순간 누군가 고무줄을 놓을것만 같은 기분이 끝나기 직전까지 이어져
100분이란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져서 조금더 길게 더 많은 이야기를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만 중간 중간 뭔가 템포를 잃어버리는 구간들이 있고
감정이 폭발한다기보단 폭주하는 구간도 있어서 보는데 조금은 힘든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윗집남자는 무엇을 원하는지 솔직히 지금도 모르겠다. 아랫집남자를 장난감처럼 생각하는거 같긴 한데
아마도 고위직 공무원이 아닌이상 사람들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는 곳을 찾다가 아랫집 남자의 완벽한 약점을 찾은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 심정을 알기는 어렵다.
이것때문에 이민법이 바뀐날 바로 축하하겠다고 덤벼들었으니 말이다.
(이민법이 바뀌기 전엔 감시자의 눈이었다가 이민법이 바뀌니 포식자의 눈으로 바뀐것인가)

조금 이해한되는 부분이라면
아랫집부부는 도데체 어느나라에서 어떤 고통을 겪었길래 지금 저정도 수순으로 만족하려고 저러는걸까
제법 학식있는 학자였다면 난민이라도 어느정도 해당국에서 받아주지 않나?
윗집부부는 또 왜 저렇게 서로 어긋나 있던것일까. 둘만의 어떤 사건이 있지 않고서는
스페인 사람들은 백년해로해야하는 불문율같은게 있나? 저정도면 헤어져도 벌써 헤어졌을거 같은데
마직막엔 이 윗집 부부만 헤피엔딩을 갖는다.
힘있는 자만이 승자일수밖에 없는게 현실이겠지만 공연예술분야만큼은 속 시원하게 조져놓으면 안되는것인지

아랫집 부부를 대변하는 것은 이 시대의 대다수를 보여주고 싶어서였을까
아니면 가자지구처럼 전체 땅의 극히 일부만이 고통받는것을 표현한것일까.

이런 주제의 공연을 보면 왠만해서 생각나는 두 나라가 있다.
서점에 인종차별인 혐한코너가 버젓이 있는 일본놈들이나
(이거 국제법 위반 아닌가? 인종차별등 걸리는거로 알고 있는데. 한국이 소송걸수 없는건가)
매일 매일 틈만나면 미사일 쏴대서 사람들 죽이는 이스라엘놈들이나
(이 새끼들은 지들이 죽은 숫자 만큼 다른 나라 사람들을 똑같은 숫자로 죽일작정이 아니고서)
왜 UN같은곳에서 조용히 있는거지?

출연 : 오정민, 노윤정, 고병택, 황윤희, 이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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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4. 5. 18.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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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라 하기엔 좀 그렇지만 반팔이 잘 어울리는 하루였다. 바로 엊그제만해도 비가 와서 엄청 추웠는데
비대신 햇살 가득하니 이렇게 맑은 날이 될줄이야. 그래서 길가엔 사람들로 넘쳐나는데 표정이 밝은것만은 아니다.

카메라가 아쉬운 하루였다.

연극 제목이 뭔가 좀 이상하긴 하다. 멀리서 돌아온다니
프랑스 작품이고 2003년 작이라서 그렇게 오래되지도 않은 따끈따끈한 신제품이라 할까
이쪽 동내 영화 작품들을 많이 본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포그가 깔린듯한 눅눅함이 느껴지는데
연극도 그럴줄은 몰랐다. 물론 이 연극이 프랑스 작품인줄도 모르고 예매한것이라서 다른 기대를 하긴 했었지만 아쉽다.
(프랑스 작품이란것을 미리 알았다면 망설였을지도 모름. 영화는 돌려보거나 천천히 볼수라도 있는데
연극은 그게 안되서 흐릿함을 극복하면서 볼만큼 숙련되지 못했기때문?)

처음부터 플래쉬백같은 느낌 강렬하게 시작하지만 연극이 끝날때까지 그 장면이 어떤것을 표현한것인지 모르겠다.

가족 네명의 이야기. 그런데 어머니만 동떨어져있다.
죽은자였을까? 갑자기 혼자 훌쩍 떠나버렸다고하는데 죽었다는 표현인지
정말 어디론가 떠나버렸다는것인지 프랑스에서의 이와 같은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통 전달되지 않는다.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 죽었거나 떠났거나 어느쪽이라도 남겨진 가족들의 생활에 대한 불안감 같은것은 비슷할거 같다.
어떤의미에서보면 하루아침에 사라진것은 둘다 같은 현상이고 나머지 사람들에게 비움을 알렸으니 실종과는 분명히 다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전개가 극을 이해하는데 어떤 장점이 있는지 모르겠는것
남겨진 가족 세명은 어머니의 빈자리때문에 불화가 생겨난다. 보통 불화가 생겨난다는것은 죽음같은 소멸보다는 물리적 거리가 멀어진
단순 이별정도로 보면 저들의 태도가 조금은 납득이 된다. '나를 두고 떠나버린 엄마?'
죽은 이를 두곤 원망하는 경우는 극히 드믈거 같고 이것은 프랑스라고 달라보이지 않기때문에 집나간 엄마라고 보는게 맞아보인다.

약간 납득이 안되는것은 엄마는 계속 그 주변에서 회상을 하는것 처럼 섞여있다.
물론 이들과 서로 소통되진 않고 단지 일방적으로 한쪽으로 시선을 보낼뿐이다.
그래서 초반에는 혼령인줄 생각하고 어머니가 죽은 상황으로 봤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쪽이 맞는지 모르겠다.

어머니는 어느순간 떠나버렸다? 그리고 남겨진 자식들은 떠난 어머니를 원망아닌 원망같은것을 하고
남편은 자식들때문이었는지 별다른 동요는 없어보이지만 평온해보이지 않았다.

이게 도데체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어서 집에 오자마자 검색을 해보지만 20년이나 된 극 치고은 한국에서는 정보가 거의 없는편
구성원들의 심리묘사가 뛰어나다고 하는데
낭독극으로 나왔다고 하는 이것을 일반 극으로 만들어놔서였는지 관객이 상상해야 될 부분에서 상상이 잘 안된다.

리플렛에 보면 여자, 어머니, 딸의 전형적인 형태의 틀을 깬다고 하는데 도데체 언제 어떻게 무엇을 깼다는 소릴까
프랑스 여자들은 조선 후기나 중세시대의 여자같이 어떤 소유물 같이 살고 있나?
내가 보기엔 어떤 이유에서든 그녀는 떠났고 그로 인해 남겨진 자들은 불안해 한다. 물론 어머니로서의 형태는 아버지가 대신하게 된다정도?

이 플롯에서 별다른 기존 개념이 바뀐것은 없다. 한국에서도 흔히 볼수 있는 홀아비 가정? 한국과 다른것이라면 가정이 똘똘 뭉친다기보다는
하기 싫은것을 더 안하려 한다는 정도랄까. 이런걸 보면 엄마가 딸에게 강요한다기보단 이 가정에서는 엄마의 입김이 엄청 쌨다는 정도로 보인다.
작가 집안의 엄마 힘이 막강했던 가정에서 자라났던게 아닌가? 피아노도 빡쎄게 가르치고 이것이 되물림 되고
이런건 한국사회에선 대부분의 가정에서 행해지고 있는 보편화 된 폭력중 한가지라서 대수롭게 보이지도 않는다.

이런 부분에서 각국의 문화차로 특별해 보이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피날레부분에선 가족들이 떠나버린 집에 어머니가 돌아오는데 이건 처음 시작때와 같은 부분이라
처음과 끝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회상(플래시백) 부분이란것인지.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 그러하긴 한데
정작 문제는 작가가 관객에게 보여주고싶어했던것은 가족들의 심리변화였을까
나(작가)의 심리변화였을까

전체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고 그다지 호기심이 생기는 주제도 아니었다.
어떤 소설을 보면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은 어떤 어머니가 갑자기 이혼을 하고 혼자살았던
내용이 떠오른다. 이 사람은 단지 혼자 살기 위해 이혼한것뿐이라 혼자서 평생을 살았다.
재산 문제로 찾아온 딸과 손녀, 서로간의 대화는 간결하게 마무리 되었지만 다시 만나게 되어
몇번의 왕래가 있었다. 그리고 말 없이 떠나버린 노인이 된 어머니
혼자가 아닐때 혼자가 될때 찾아오는 두려움때문인지 아무튼 이런 장면이 생각난다.

복잡하지 않게 흐르는대로 보면 되지만 그러기엔 꽤나 졸린 연극이었다.

피날레에 찾아온 그 여인은 무엇(?)일까.. 그리고 프랑스 사람들은 왜 이런 눅눅한 문학을 좋아하는걸까..

출연 : 채연정, 한인수, 이하정, 안미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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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공연2024. 5. 15.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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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은 비가 자주온다. 비를 좋아하지만 옷이 어중간한 요맘때는 춥고 우산은 거추장스럽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선 건축관련 무엇인가 제법 그럴싸하게 전시하고 있는데 보는내내
한국의 현실과의 괴리감때문인지 우울한 기분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이 곳을 다녀간 수많은 미래의 건축가들은
이것들과 같은 건물을 설계하고자 마음먹었겠지만 한국의 현실은 김수근의 대공분실(돈과 권력에 휘청)이 아닐까?
(가끔은 이 건물을 왜 철거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근래엔 다시 사용될거 같은 불안감 마져도 든다.)
아무튼 한국의 건축물은 공공기관 건물조차도 난개발스럽게 지어지고 있으니

정동세실극장 무대가 더 크지 않았던가? 왜 전보다 작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의자도 바꿨나보니 낡은 티가 팍팍 나는걸 봐선 그대로인거 같은데
무대가 좀 낮아진거 같긴 한데 아무튼 느낌이 달라졌다.

연극의 제목처럼 거의 인간이 다 되고 있다는 내용인지
무엇을 담고싶었을까? 출산의 고통에서 자유로워진 인간?
(출산의 고통은 야훼가 이브에게 준 징벌인데 신을 초월하게 된 인류를 뜻하나)
사라지고 있는 예술 분야?
종교를 빙자한 인간의 탐욕?
더이상 인간은 끼어들 자리가 없는 AI의 창작 세계?
법조계의 불확실성에 대한 모호한 현실?

수많은 것을 담고 있다.
그만큼 깊게 들어가려다가 대부분 끝나버린다.
극 자체도 뭔가 찝찝하게 끝난다.

인류, 특히 여성들은 임신과 출산 육아 걱정을 대부분이 할수밖에 없을텐데
이 시대는 모든것이 해결된듯 보인다. 심지어 임신조차도 체외에서 수정시키고 비닐팩(인공자궁)속에서 키우고 출산하는 시대.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것은 자신의 난자와 정자라 할지라도 비닐팩에서 자라고 있는데 엄마의 어떤 숙명과 숭고함을 느낄수 있는건가?
아직 세포단계라 보이지도 않는 상황에서?
교감도 어느정도 태아가 커져서 약간의 움직임이라도 있어야 서로 느낀다고 착각이라도 할텐데
그러길 바라는 작가의 바람같은게 녹은 판타지였는지도 모르겠다.

목사가 나오고 신도들, 갑자기 기도를 하는등 묘한 식상한 전개가 그려지는 상황으로
아니나 다를까 그냥 그대로 간다. 바람피고 말로 폭력을 행사하고 자신의 잘못은 하나님께 모두 전가하는
전형적으로 여자 밝히는 먹사

극중 작가(맨토라고 하던데 왜 이런 명칭이 붙은건지. 작가 세계에선 스승을 맨토라고 하나?)는 AI를 불신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어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며 자신을 파괴하지 말길 바라지만
빠르게 진화하는 또다른 지능을 갖은 객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극중 작가

중심적인 인물들은 대충 이러한데 이 세가지 캐릭터들이 서로 얼켜지며 파멸과 회복 그리고 희망같은
상투적인 스토리로 진행된다.

인공자궁, 사라져가는 예술분야, 신을 등에 엎고 저지르는 만행, 인공지능이 진화할수록 그에 맞춰 퇴보하는 인류
이중에 한가지만 정해서 100분간 심층적으로 분석하면 재미없었을까?

생물의 관점에서 인류의 진화는 매우 더딘편이다. 전우주적으로 보면 찰라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인공지능의 원인과 결과를 더이상 인간이 파악하기 힘들게 된 지금에서 보면
인공지능에서 인공은 의미가 없어보인다. 다만 인프라 구축 만큼은 인공이니 아직까지는 인공을 붙여주지만
이마져도 어느순간에는 저 새로운 무엇인가가 알아서 모든것을 하는 시대가 올것이다.

인간은 어쩌면 스타워즈같은 세상은 근처에도 못가고 멸망하거나 세포단위로 쪼개져 시험관속에 들어가는 신세가 될수도 있겠지

어떤 주제라도 조금만 파고들면 100분정도는 충분히 재미나게 풀어놓을수 있는 것들인데
아쉽게도 이 연극은 모든것을 담아낸만큼 그냥 다 가볍다.

인공자궁을 칼로 쨌는데 낙태가 된다는 발상도 특이하지만 그로인해 감옥에 갔는데 어느순간 베스트셀러가 되어 있다.
먹사는 천사(?)를 만나 재혼한다고 하고
그러면 처음 시작할때의 평화로운 분위기와 무엇이 바뀐것일까?
환경만 바뀌고 모두 해피엔딩.

인생사 새옹지마라서 모두 좋게 끝나는건지
현실은 암울한 포스트아포칼립스 같은 세상일수밖에 없기때문에 연극이라도 좀 기분좋게 끝내려했던건지
무엇인지 모르겠다.

이 연극에서 확실한것은 출연배우 모두 일품배우들이라 연기를 보는 재미가 뛰어나다는것
공감대가 생기려가다 말다가를 반복해서 뭉클함이 생기지는 않지만
100분이란 짧지 않은 시간, 시간 흐름이 느껴지나 지루함이 동반되지 않은 뛰어난 연극이었다.

출연 : 강해진, 강현우, 김선경, 김유민, 김정은, 서창호, 성여진, 안병찬, 양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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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4. 5. 11.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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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미친듯 불어 기분 좋지만 무겁기만 한 하늘
이러다가 비 내려 폭풍우라도 되면 우산으로 버틸수 있으려나 걱정하며
시청에서부터 걷다가 우산 한번 뒤집히니 그냥 그렇다.

그런데 왜 우산이 뒤집히면 좀 챵피할까? 내가 뒤집힌것도 아닌데. 우산과 나를 동일시 하나?

혜화동에 도착하니 마로니에공원에서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고 있는데 비가 많이 내려서
관객이 없으니 너무 안쓰럽다. 멋진 곡을 부르지만 청중이 없으니 공연을 하는건지 리허설을 하는건지..
이렇게 비오면 공연을 취소하거나 다음주로 연기하면 안되는건가?
안타까움에 눈을 다른곳으로 돌릴수가 없다.

그리고 석가탄신일이 15일인데 도로를 모두 막고 행사를 하는것은 왜일까
15일이 쉬는날로 정해놓은것은 그때 행사를 하기위함 아닌가? 왜 토요일에 하는거지?
그러면 석가탄신일을 휴일로 지정하지나 말던가 이날을 휴일로 지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이 아닌 또다른 존재들이 사람을 보는 관점에 대해 논하는 연극
총 세가지의 존재들이 서로 다른 관점으로 인간을 바라본다.

첫번째는 신
하지만 이들은 인간사회를 철저하게 관망 할뿐 그 어떤것도 개입하려 하지 않는다.
규칙은 그러한데 노아의 방주때 대홍수도 신의 개입이었고 살인범이 사고 당하도록 하는 저 젊은 신도 개입을 한다.

신은 왜 인간을 만들었지?

장난감도 아니고 관여하여 유토피아로 이끄는것도 아니다. 심지어 불안정한 존재로 만들어놔서
오래 살지도 못하고 노쇠하여 죽게 만들어놨다. 판타지 장르에 나오는 요정들처럼 불멸하게 만들고
번식은 극도로 적게 하게 만들면 분쟁이 사라지지 않나?

애초에 신이 인간을 만든 자체가 피곤한 참견을 한건데 개입하지 말라니.. 이것에 대해
우리 관객은 어떤 시선으로 저들-신-을 바라봐야 하는걸까

두번째는 바퀴벌레들의 시선
해설자는 동반자들의 시선이라 하는데 어떻게 동반자관계가 성립할까?
이들에게 인간은 파괴자일뿐이다. 터미네이터(종말자)? 프레데터(포식자)? 같은 일방적으로 가해 하는 존재이다.

인간이 바퀴를 멸종을 못 시켜서 공존하는것은 아니라 생각하는것은 나만의 착각?
생태계 꼭지에 있다는것은 피라미드가 무너지지 않도록 아랫쪽도 지켜봐야 할 의무가 따르기때문에
적당히(?) 죽여서 큰 피해 없이 개체수를 조절(학살)하며 공존할뿐으로 생각한다.
그러니 저들이 보는 인간은 공존이 아닌 회피의 대상일뿐이다. 물론 인간이 버린 음식물을 먹고 살기때문에
어떤면에서 보면 공존이라 할 수 있지만 바퀴의 생존력이 높은것은 잡식성으로 많은 것을 먹을수 있어서
자연에서라고 생존에 큰 어려움이 있는것은 아니다. 다만 박쥐같은 천적에서 보호받을수 있는 건축물을 공유해서
공생, 공존이라 하면 완전 틀린말은 아니지만 동반 생물로 보기엔 바퀴의 상황이 너무 안좋다.

상황이 이렇게 불리하기때문에 저들은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할 뿐이다. 그리고 그다지 인간을 이길수 있는
능력이 보이는면도 없다.

마지막으로 경쟁관계라는 외계인
여기서는 인간이 바퀴벌레 취급당하며 일순간에 절멸한다.
요즘 한참 인기인 드라마 '삼체'에서의 외계인이 지구인을 벌레취급하는 것과 똑같은 상황이다.
당연한 결과인가?

이 세가지의 존재는 인간사회가 점차 계급사회로 가고 있는 상황을 표현한것이 아닐까..
(혹자는 현재 한국을 비롯한 많은 사회가 자본을 기반으로 한 계급사회라고 함)

아무튼 적절히 코믹스러워 부담없다는 점은 좋지만
인간사회의 문제점을 비판하기에는 너무 단편적인 것들로 빠르게 넘어가서
기억에 남는것은 그다지 없고 단순히 웃긴 연극이란 느낌 정도만 남는다.

SF적 요소를 충분히 가미할수도 있고 종교적 색채를 넣을수도 있었는데
작가의 의도를 표현하기엔 너무 짧고 단순함으로 인해 부족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시간이 너무 짧다.
60분 연극이라니.. 이정도면 3곳의 시선이 아니라 한곳의 시선만 표현해도 짧은 시간인데

거창하게 시작해서 마지막은 소박하게 맽음하는것은 뭔가 소재와 구성의 쪼들림때문이 아닐런지

처음 신편에서 기대감이 세번째 침략자에서 허무하게 사그러든다고 해야 할거 같다.

출연 : 문호진, 류진현, 최은경, 이성민, 권혜빈, 유경민

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4. 5. 4.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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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4일이면 아직은 시원해야 하지 않나. 왜 이렇게 덥지?
그나마 습도라도 조금 낮아서 다행이다. 그러지 않았으면 걷는것조차 힘겹게 느낄뻔한 더운 봄의 하루였다.

산울림 소극장을 와본적이 없는거 같은데
(윤석화배우께서 공연할때 보고자 했지만 늘 매진이었고 신촌이라 좀 어색하기도 하고 ^^)
주변에 대형미술관이 있을법하지만 모르겠다. 이곳에서 한때는 술도 참 많이 마셨었는데
지금은 그냥 다른곳 같아서 뭐가 있는지 궁금하지도 않고 그냥 어색할 뿐이다.
그래도 신촌만 벗어나면 길들이 한가해서 조용히 산보하기엔 좋은데
외국에서 한국 인기가 엄청 높아졌을까 외국인들이 엄청나게 많이 보인다.
명동은 한국인이 오히려 적어서 간판만 한국어가 아니면 중국, 일본 등 다른나라라고 해도 믿을거 같다.
(전 정부가 선진국 만들어놔서인지 한류때문인지 예산 다 깎였음에도 다이아몬드를 일반 기압에서 만들어낸
기술력 때문인지.. 아무튼 신기하다.)

내가 좋아하는 극장 스타일이 부채꼴모양인데 그래야 어느곳에 앉아도 시선이 무대를 향하게 되서 보기 편하기때문이다.
이곳이 딱 그런 스타일이고 아담한 소극장 그 자체로 이런곳에서 모노드라마를 보면 너무 재미있을테지만
오늘은 2인극

적당히 잘 꾸며진 무대, 편한 관객 의자와 배치 
뛰어난 배우들.
그리고 각각의 장(막?)마다 새롭게 이어지는 긴장감

전체적인 흐름에서 특별하거나 신선함은 기대할수 없었다. 그러나 둘의 보이지 않는 벽
늙을수록 초라해지는 자신을 향한 보호본능처럼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거부감
그것을 이해하기 어려워 하는 젊은 세대와의 갈등은 어느정도 중간쯤 위치한 나로서는
양쪽 모두의 심적 상황이 명확하게 와닿는거 같아서 순간 순간 양쪽 모두에 공감대가 만들어진다. 루즈 그리고 리사 모두에게

이러면서도 역시나 전체적인 전개에서 새로움을 느낄수 없어 무대 설정만큼이나 나이먹어 보이는
연극이다. 한 1800~1900년 초중반무렵 나온 근현대쯤의 곰팡내나는 정도?
더 오래됬으면 고전(클래식) 대우라도 받았을텐데 그렇지도 않은 뻔하디 뻔한 흐름으로
뻔에 뻔자인 엔딩

연극을 보면서 분명히 다른 상황인 영화 '은교'가 떠오른것은 왜였을까.
살아온 시간으로 체면치레한답시고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해 답답한 추상적 표현만을 해대는
지식인계층의 노인류들의 허세를 표현하다가 가슴 두드리며 양쪽 모두 답답함을 토로하는
그러다가 서로 갈길을 가지만 한편으론 똥싸고 닦지 않고 나온것 마냥 뒤끝 더러운 기분

모든것을 일거에 해소시켜버리고 끝내는 어이없는 상황을 만들지 않아서 좋았지만
1996년작이면 비교적 최근인데 반짝거림을 잘 못느끼는것은 내가 오래 살았지만
철이 없어서 오래산것을 인지못해서인지, 이 작품이 그냥 그래서인지

희곡자체는 특별함이 없어서 식상해질수 있지만
배우의 연기가 90%이상을 끌어올려 흥미롭게 만드는 연극이었다.

그런데...
루스는 정말 자신의 과거사를 소설로 만든 리사에게 분노한 것일까
아니면 병들고 시들해진 자신에게 고함을 지르고 있었던것은 아니었을까
타인들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자신의 의지와 자신만의 표현 방법으로 먹고 살았기때문에 리사에게 화를 낸다는것은
거울에 비친 자신을 증오한다는 것이나 다름없을텐데 정작 리사를 가르칠땐 자신의 모습을 가르쳤고
리사역시 배운것 그대로 선생과 자신을 위했을텐데
물론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고 싶은 욕구는 당연히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존경심같은게 사라지는것은 아니니
(스승을 발 아래 두려고 이기려 하는 제자가 있으려나?)
리사의 순수성이 그다지 위선같아보이지 않아서
마굴리스가 노인 작가를 보는 자세는 무엇이었을까 사믓 궁금해진다.

출연 : 정윤경, 이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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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4. 4. 27.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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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순간부터 내가 나이먹는 다는것을 느끼기 시작한거 같다.
허리가 아퍼서 누워있기도 하고 허벅지안쪽 신경통이 더 심해지기도 하고
병원신세도 졌고 난생 처음 119도 불러봤다.
이것때문만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공연이 죽음에 관련된것들을 본의아니게 많이 고르게 된다.
(본의 아니라는것은 크게 신경 안쓰고 포스터정도만 보고 고르는데 이러함)

이번 사자의 서 역시도 그렇다.
사람의 죽음과 저승에서의 심판(이건 좀 상투적인 설정이라 좀 달라질때가 되지 않았나)

국립극장을 오면 자꾸 국립국악원이 생각난다.
비슷해보이는데 이상하게 음향이 너무 다르다.

국립국악원은 소리의 조화가 영 별로인 반면에 국립극장은 웅장하면서 섬세함 그 자체다.
해오름, 달오름, 하늘극장 모두 뛰어난데 국립국악원의 우면당, 예악당, 풍류사랑방 모두 별로다.
왜 그럴까.

오늘은 맨앞자리라서 보는것은 조금 불편했지만 소리만큼은 일품이었다. 물론 공연도 일품이었다.

국립무용단은 원래 다(?) 하는건가? 현대무용, 한국무용 이것 저것 다 국립무용단이라고 적힌거 같던데
국립현대무용단, 국립고전무용단 뭐 이런식이 아니 그냥 퉁쳐서 국립무용단?

과연 오늘 공연이 한국무용이었을까?란 생각도 든다.
전위적이며 추상적인 저들의 표현은 옛부터 내려온 춤이라 하기엔 너무 현대스럽고 서양스럽다.
음악도 무척 세련된것이 국악이라 하기에도 좀. 오히려 한국 장단이 중간에 무용으로 표현되는데 결이 좀 맞지 않아 어색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아무튼 전체적으로 나는 이해하긴 어려웠다. 무용을 많이 접해본적도 없고 직관적인 표현의 형태인 무용(발레같은?)이라면
그다지 부담없겠지만 현대무용의 그 전위적 형태를 이해하기엔 어려움이 크다.
현대 예술이 전반적으로 극단적인 추상화를 극대화 하는거 같기도 하고
근본적인 원인은 내 이해력이 심각하게 달려서 그런것이겠지만 이해 안되는걸 어떡하겠나.

하지만 이렇게 난해한 부분은 1장(총 3장)에 일부분 국한된것으로 봐야 할거 같다.
2장부터는 과거를 회상하는 것인데 별다르게 이해 안될것도 없고 특이한것도 없다.
진부한 사랑 전개와 미칠듯한 외로움만이 남겨지는 암흑의 고요함같다고 할까
(연극 와일더의 '우리읍내' 같이 불꽃 튀다가 사그러들어 천천히 어두워지는 희나리 같이 식상한 전개)

70분정도의 짧은 공연이고 3장으로 의식의 바다, 상념의 바다, 고요의 바다 식으로 거창하게 적어놨지만
1장은 사후의 심판, 2장은 과거청년기, 3장은 죽음과 남겨진 자 정도로
2,3장은 망자의 일생을 이야기 하는데 1장의 비장함같은것은 느껴지지 않지만
연인들의 설렘과 마지막 죽음에 대한 절망뒤 잇는 고요함은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그렇지만 중간쯤 살짝 졸음이..
짧은 공연이라서 졸음이 올거라곤 생각못했지만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잠도 충분히 잤는데.

그리고 표현이 일부분에선 산만하다. 많은 무용수들이 나와서 군무아닌 군무를 선보이지만
사람의 어지러움을 표현하려고 다들 저렇게 다른 표현들로 누구에게도 시선을 줄수 없도록 만드는건지
꼭 이렇게 어렵게 만들어야만 했던것인지

어떤부분은 망원경을 들고 보고 싶을정도로 집중하게 만들지만 어떤부분은 하품을 참아야 한는 부분도 있고
어떤부분은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 란 생각만 머리속에 가득찰때도 있는
짧지만 다양한 감정(?)이 들게 하는 공연이었다.

이상하게 점점 무용이 좋아지고 있는데 괜찮은건지.. 올해는 서양고전음악쪽으로 좀 집중하려 했는데..
내년으로 미뤄야 하나. 한창 귀가 예민해져서 음악이 딱 좋은 해인데..

출연 : 국립무용단

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4. 4. 20.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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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놈의 비가 부슬부슬 하루 종일 내리는 걸까
화려한 꽃들은 다 떨어졌지만
나무들이 본격적으로 색을 입기 시작했다. 비에도 끄떡 없는 잎들로
그렇지만 내 기분은 왜 이런지. 오늘은 걷는것이 도무지 내키질 않는다. 심지어 컴게임이 땡기기까지..

신기하다. 예매 티켓을 받고 극장 입구를 들어서는데 관계자가 티켓 예매처를 또 확인 한다.
그럴거면 처음에 티켓은 왜 준거지? 그리고 좌석도 고르라고 하는데 요즘은 예매처에서 좌석을 선택할수 있게 하는데
아직 동국소극장은 그런게 안되있는지 흔히 볼 수 없는 특이한 경험 아닌 경험이었다.

60만초가 며칠인가 계산해보니 대충 7일
자신의 남은 시간을 팔기 전에 심사숙고하라는 의미로 주어진 시간이라는데
한국의 예전 드라마에서 '4주후에 봅시다'의 이혼 전, 생각할 기간보다는 훨씬 짧은 시간이다.

살인을 하고 무기수로 있는것보단 죄인이 아닌 상태의 며칠만 남겨두고 40여년을 판다?
수명을 파는 영화  '인타임'을 본거 같은데 근래에 '패러다이스'라는 독일 영화도 새로 나온거 같다.
작가가 이것들에 꼿혔을까.

수명을 사고 판다라는 생각은 어디서 나올걸까
수명이란 것을 인도할수 있다면 복제도 충분히 가능한것이나 마찬가진데 사고 팔기만 할 생각을 하다니
좀 막혀있는 사고를 보는거 같은 답답한 설정이다.

아무튼 이 연극의 배경은 수명을 사고 파는 세상이고 무기수가 자신의 수명을 팔려고 하는데
매수자, 중개인 그리고 도박에 미친 매수자의 딸 이렇게 네명의 이야기지만
그다지 색다르거나 흥미롭지 않은 주제에 불필요한 반전 등 온갖것들을 집어넣은 섞어찌개 같은 느낌의 연극이다.

윤리문제로 한 사람의 수명 전체를 매수하려는 유명 가수가 있고, 이 가수는 희귀한 병에 걸려 앞으로 1년밖엔 못 산다고 한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문제를 풀어놓을수 있을거라 생각했고 그렇게 흘러갈것이라 예상했는데
총든 이상한 사람(딸)이 들어오고(총이 있길래 경찰인줄 알았음)
생명 윤리는 오간곳 없이 갑자기 과거 살인의 누명에 관한것으로 흘러버린다.

동성애, 스릴러, 생명경시, 물질만능주의 등 엄마가 딸을 살인자로서 고발하겠다는 의지는 또 어디서 나오는걸까..

모든 사건 사고들이 맥락도 없고 이 여자는 자신의 엄마를 왜 저렇게 싫어하는지도 모르겠고
퇴학당했다고 나오는데 그 곳이 군인지 경찰인지 어렴풋 지나가는 저들의 학창시절에 벌어진 사건인데
딸은 전혀 자기절제를 못하는 망나니나 다름없는 존재로 자기 엄마의 노래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병으로 머리를 쳐서 죽인다.
그런데 친구가 모든걸 뒤집어써버리고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데 뭔가 우끼다. 사랑일까.
늬앙스로 보면 이 친구는 사랑같아보인다. 사랑에 눈이 멀면 어리석은 짓도 한다고 하니 그냥 넘기더라도
전체적인 흐름이 중구난방에 무엇하나 또렷하게 맽는것이 없고 주제 또한 흐릿한 아이의 의식흐름같이 산만하다.

난 아직도 이해안되는게 저 딸은 왜 엄마를 그토록 싫어하는걸까..
중개인은 왜 나서서 총을 맞은걸까..

맥락도 없고 이것 저것 붙여놓은거 같은 이 극을 쓴 작가는 무엇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던걸까
그냥 사회에 불만이 많고 엄마와 사이가 안좋은 자신의 처지를 써내려간건가..
정말 모르겠다.

출연 : 이채, 이혜연, 한수영, 박인선

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4. 4. 13.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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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왜 연극 관람기를 쓸땐 항상 그날 기분도 함께 적을까..
아무래도 그날 상태에 따라 보는 느낌이 달라져서도 있을태고 일기처럼 쓰기도 하니 이러겠지

이렇게 더워도 되는건지 모르겠다. 더이상은 헤드폰이 쉽지 않게 느껴지지만
연극이 끝난 이후엔 걷기 좋고 바람 괜찮게 불어 세상구경이 좋은 날이었지만 아쉽게도 다리 아프고 허리도 별로라
오래 걷진 못하고 들어오고 말았지만 여운이 좀 있고 생각을 좀 해야 할거 같은 연극이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조금은 어렵다.

내가 낭독극은 라디오를 듣는 기분이라 그렇게 선호하지 않는데
이 연극이 낭독극이란걸 오늘 처음 알았다. 꼼꼼히 읽지 않고 포스터와 제목만 보다보니 그런거지만
선호하지 않는다고해도 보면 충분히 몰입되기때문에 거부할 이유는 결코 없다.

총 3막으로 각 막마다 확실하게 마침표를 찍는 특이한 연극
리플랫이나 홈페이지만 보면 약간은 구식 형태같지만 진행은 결코 그러지 않는다.

오히려 세편의 옴니버스 연극을 본거나 다름없다.
물론 서로 연결되어 있기때문에 느낌은 연속된 한편을 본 기분이 충분하지만 배경 전환은 그러하다.

그러나 문제가 있는데 약간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저 여자는 왜 죽을생각을 한거지? 동내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좋아했는지 모두들 그녀를 구하려고
고기(?)를 고아서 살리려 한다. 죽을 생각을 했다는건 단순한 사고나 그런것은 아닌거 같고
성폭행같이 지우기 힘든 상처를 입은것인지 모르겠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그러한거 같아보이지만
구체적인 묘사는 없다. (내가 놓쳤나?)
아무튼 한생명으로 또다른 생명을 구하기 위한 인간의 선악이 섞인 카오스(혼돈)의 아이러니 한 상황속에서
어찌됬던 이렇게 저들의 연극무대가 끝이 난다.
이때 인사하고 그러길래 순간 다른팀이 나와서 두번째 극을 하는건가? 착각을 했다.
1막 코튼콜때 박수를 쳤어야 했을까? 박수치는게 왠지 매끄러웠을거 같긴 한데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고 저 여자는 왜 저러고, 저사람들에게 저 여자는 어떤 존재였는지도 모르겠다.
무언가 생선 몸통은 사라지고 꼬리만 먹은 느낌이랄까..
이 기분은 연극이 끝날때까지 해소되진 않았다.

2막은 1막의 극단연극이 끝난 후 배우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낭독극이 아닌 일반 극으로 구성된다.
이후부턴 끝날때까지 계속 일반적인 연극이다. 엄밀히 보면 1막 낭독극도 여느 낭독극과는 다르게, 연기를 충분히 많이 한다.
단지 대본을 손에 들고 있는정도가 낭독극의 형태라고 한다면 그럴뿐이다.

아무튼 조명 꺼진 무대에 모인 배우들의 껄렁껄렁한 이야기들도 이부분은 어떤 공감대 형성보단
남의 이야기를 엿듣는 기분이 들어서 그다지 공감도 안되고 재미도 덜하고 기분도 별로였다.
무대 뒷 이야기도 충분히 흥미롭게 잘 살릴수 있을텐데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엿듣는듯 구성한것은 좀 아쉽다.

마지막 3막
1,2막은 단순한 큐브 의자 몇개로 무대 장치가 끝이라서 그냥 그랬는데 3막은 무대가 확 바뀐다.
제법 잘 꾸며진 무대, 며칠 안하는 연극치곤 매우 훌륭하다.
그런데 소극장임에도 무대가 너무 뒷쪽에 있는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는데
특정 장면에서 모녀가 광분하는 부분이 몇 있는데 좀 떨어져 있어서 그런가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적게 들어서
이래서 뒤로 무대를 밀어놓은건가?생각해보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멀다.

멀어서였을까 왜 였을까 딕션이 좀..
귀에 콕콕 박히는 대사전달이 필요한 부분 같은데 무대는 뒤로 밀려있고 음향은 그다지인거 같아서
좀 울린다고 해야 할지 그래서 모녀가 흥분했을때 대사 전달이 상당히 미흡했다. 관객과 떨어져서 그런것인지
무대가 소리를 너무 반사시키는것인지, 딸의 발음은 약간은 말려들어가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감정을 끌어올리는데는 지장없었지만 세세한 딸과 어머니의 심정을 모두 받아드리기엔 약간은 아쉬웠다.

아무튼 신파같이 조금 끌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저들의 감정선에 동화된 기분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진 않았다.
하지만 귀 기울려 듣다보면 분명히 결이 다름에도 우리내 부모님들 심정이 저와 비슷하지 않을까
이상하게도 계속해서 나의 부모가 오버랩되면서 슬픔과 쓸쓸함이 동반되는 묘한 연극이었다.

두시간 연극으로 짧지 않은데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았던것은 3막이 서로 다른 상황 전개때문에
40분 연극 3편을 본거나 다름없어서일거다.

그런데 어머니의 존재 의미는 자식 때문이란 말이었나?
내가 너고 네가 나이니 존재란게 인간같이 비효율적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유기체에겐
그다지 의미 없어서 깊이 생각할만한 무엇도 없지만
어머니를 닮지 않은 딸, 딸과 닮지 않은 예쁜 어머니의 연기를 참 인상적이던데

이 극단이 인간미 풍기는 연극을 만들면 가슴 절절한 멋진 극이 나올거 같아서 오늘부터 팬이 되야겠다.

출연 : 김하리, 장하란, 나종민, 구자승, 하지웅, 조주현, 이정근, 채승혜, 김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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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4. 4. 6.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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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정말 좋다. 수많은 꽃들이 만개하고 따뜻하면서 시원하다.
그런데 오늘은 왜 버스가 시청까지 못 간거지? 시청쪽을 걷지 않으니 알 수 없지만
노인들이 집회하고 있나? 지난번 3.1절엔 제법 크게 하던데..

원작이 '카후를 기다리며'인거 같은데 그렇다고 내용을 알진 못한다.
내가 영화를 엄청 많이 보거나 책을 많이 보는 사람이 아니지만
약간의 반전이 있는 내용치곤 그다지 충격적으로 다가오지 않고 좀 허무맹랑한 얘기같이 멀게 느껴진다.
일본작이라 그런가? 한국작가였다면 이런 전개가 가능했을까?

서로 피가 섞이진 않았지만 엄마의 자식인데 같이 살겠다고 오다니
차라리 내가 여차저차한 동생이라고 말을 하고 들어와 생활하며 가족이 되는 그런 내용도 아니고
아무리 근친혼이 가능한 일본이라도 이렇게 전개되는게 맞는 내용인가
그래서 내용의 흐름은 생각보단 어색하다. 한국 정서에는 영화'가족의 탄생' 같은 전개가 맞아보이는데.

게다가 오늘은 꽤나 산만한 극장이 아닐수 없었다. 이런 연극은 특성상 아이들은 제한을 걸어야 하는거아닌가?
계속 부스럭 부스럭거리고 말하고 부모가 제지해도 그 순간뿐이다.
그리도 스마트시계 불을 계속 켜두고 있는 또라이도 있고 (암전때 그것만 튀어 보이는걸 못 느끼나?)

이러니 가뜩이나 내용도 특이한데 산만해서 집중도 안되고 자리마저도 불편하니 오늘은 안좋은 상황이 여럿 겹쳤던거 같다.

바닷풍경 예쁜곳을 배경삼아 잘 찍은 영화로 한편 보면 제법 기억에 남을거 같은데
연극은 뭔가 저 여자가 쳐다보는 저곳, 저 소나무의 감동이 전달되지 않아서 계속 상상을 해야 하는데
여자의 인물배경은 가장 마지막에 나오기때문에 저 여자가 쳐다보는 어딘가의 감정이 전달되기 어렵다.

이럼에도 전체적으로 배우들의 호흡은 매우 뛰어나서 모난곳 하나 없이 훌륭하게 마무리된다.

며칠안한다고 무대장치가 아무것도 없는 그런것도 아니고 소극장 연극으로 갖출건 다 갖춘 좋은 연극이었다.

출연 : 정소영, 서신우, 강현정, 정석원, 장탁현, 전희원

Posted by 시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