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공연2019. 6. 2.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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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인(낭독공연)-

버지니아 공대 사건을 모티프로 한 연극인거 같긴 한데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건의 내용 이외 범인이 범행을 저지르게 된 원인은 전혀 모르는 사건이다.

그러니 이것을 어떻게 풀이하던 그러려니 하겠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영화 '사랑의 블랙홀'같이 끊임없이 시간이 반복되며 문제점을 고쳐간다.

추리,스릴러는 아니고 극중 부모(부모인가?)가 계속 회기하여 재민(극중 총격살인범)이 써놓은 희곡을 읽으며
당시의 심리를 추리한다. 하지만 관객입장에서 무엇을 맞춰야 할 것은 없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였을때 그에 관한 인과관계가 무엇이지를 찾는 내용이지만
글쎄 그렇게 끊임없이 반복해서 나오는 결론들이 과연 그때 그곳에서 총을 난사한 한 인간의 모든 심리를 대변할수 있는것인지 모르겠다.

이것은 자신(총를 난사한 범인 아닌 그의 아버지)의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인지
아니면 자식의 억울함을 풀기위함인지 모른다. 사건 자체가 너무 극단적이라서-원한관계라고 하기엔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
(극중 내용과는 다르게 실제 사건의 사건의 동기는 경제적 불평등과 피해망상이 컸다고 하지만 어느정도 믿을만한지 모르겠음)
어떻게 봐야 할 사건인지..

그런데 이걸 낭독공연이란 특이한 형태로 공연하는데
낭독공연은 1년에 한두편정도 보게 되는데 그냥 읽는게 아니라 어느정도 연기를 한다.
배우들이 영화 촬영하기 전에 대사를 서로 맞춰보는 장면이라고 해야 하나? 리딩(?)을 하는거 같이
말로는 모든 감정이 실려있지만 몸짓은 거의 없고 손에는 대사가 들려있는 형태이다.

대사를 못 외워서 보고 한다고 하면 되지 이걸 왜 낭독공연이라 하지?

차라리 프롬프터를 앞에 설치하고 두손과 몸이 좀더 자유롭게 한 후 연기하는게 낫지 않나?

순수하게 대사에서 눈을 안떼는것도 아니고 몸 움직임이 없는것도 아니고
단지 대사를 대본에서 읽느라 시선이 그곳에만 있을뿐이다. 손에 들려이는 대본에

그래서 낭독이라 하는것도 좀 우끼다.
정자세로 말에만 온 신경을 다쓴것이 아니기때문에 눈을 감고 귀에만 신경을 쓰며 감상할수도 없다.
그다지 낭독에 맞는 대사도 아니고(호흡이 그냥 말을 하는거면 남들처럼 대본을 외워서 연기를 하지 뭐하러 그렇게 읽고 있는지)

그럼에도 연기는 대단히 멋지다.
한손에 대본이 들려있는것 외엔 일반 연극과 큰 차이가 없으며 연자들 모두 연기가 일품이 아닐수 없다.
내용이 좀 심각하고 시간이 반복되며 조금씩 미흡한것들이 채워지는 구조라서 어렵진 않으나
흐름 구조때문인지 마지막 살짝 졸리운 느낌을 지우긴 어려웠다.
(연극을 보기전에 공원의자에서 수십분 졸다 왔기때문에 졸리면 이상한거였는데 45분정도 되는 연극 끝부분에서 졸립다는건 아무래도)

아무튼 이런 대사의 호흡, 이런 구성이라면 낭독공연이란 이름 붙이지 말고 그냥 연극을 해줬으면 좋겠다.

출연 : 신우, 심완준, 장기석

-핏대-

짧게 두편을 하는데
'샤인'은 올 당선작이라 해서 계속 하고
'핏대'는 오늘까지, '나의 아버지'는 다음주부터 한다고 한다.

뭐지?
그럼 '나의 아버지'를 보기 위해선 '샤인'을 또봐야 한다는건가?
3편 모두를 붙여서 다음주까지 했으면 안되었을까

특이한 구성이지만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저렴하기때문에 두번봐도 전혀 아깝지 않다.
그러나 같은것을 또 보고 싶어서 또 보는게 아니라면 두번 봐야 하는건 좀 그렇지..

그리 영화를 많이 보며 사는 사람은 아닌데 연극을 보면 가끔 뭔가와 비슷하단 기분을 받을때가 있다.

이 연극은 배경이나 기타 모든게 다르지만 이상하게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생각난다
마지막 장면때문인가? 생각해보면 그렇지도 않은데 이상하게 떠오른다.

아무튼 내용은 묘한 반전도 있고. 엽기적인 내용이 있기도 해서 그런 부분은 그리 공감이 되지 않는다.
(김기덕 감독 영화도 약간은 엽기스럽지만 이상하게 공감되는 부분이 제법 있음)

하지만 부자지간의 그 특이한 긴장감이라고 할까? 서로 경쟁의 대상이 아님에도 이상하게 아버지와 아들 사이엔 약간의 긴장이 있다.
그것을 표면으로 끌어내다보니 한편으론 나의 아버지, 어머니가 떠오르기도 하던데 한국 아버지의 무뚝뚝하지만 특이한 자식애와
자식의 표현 부족한 부모에 대한 그리움 같은것을 잘 표현해준다.(이게 이 연극의 맛인거 같음)

부모앞에선 늘 부족한 자식으로, 그런 부분은 그러려니 할수 있는데
동생에 대한 이해할수 없는 행동은 그럴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꼬맹이일때 짜장면때문에 동네 중국집에서 나 먼저 먹고 동생은 짜장면 먹는걸 그대로 두고
집으로 혼자 와버린 적이 있긴 한데 집과 중국집이 가까웠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죄책감으로 남음)

사람이 아이일때라도 감옥같은 답답함을 충분히 느낄수 있고
그것을 벗어나려 애쓸수 있지만 모르겠다. 자신은 그곳에 남고 동생을 벗어나게 한다는게
미지의 세계로 밀어버린다는게..-보통은 함께 벗어나려 하지 않나?-
(동생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서로 사건이 없이 자라진 않으니 옛 기억을 꺼내는 소재긴 함)

아무튼 엔딩 역시 좀 이상하다.

빚이 얼마였길래 오래된 트럭을 끌고 가는것일까?
장기를 팔겠다는 협박도 없다.
사채업자는 돈을 받아내면 그만이라면서 제법 인간적으로 그려놓은점도 독특하다.
(미화된 조폭영화를 많이 봤나?)

사건이 이것 저것 많고 어느정도 기억되는 괜찮은 구성이지만
무엇보다도 부모들의 무한한 자식사랑을 느낄수 있는 마지막 그들의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다.

출연 : 김명중, 이경성, 심홍근, 윤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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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19. 5. 26.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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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 가방을 구입가에 맞먹는 가격으로 수선에 맡겼지만 한편으론 홀가분하다.
아마 공연을 보기전의 기분이 이와 비슷할까, 보기전엔 왠지 걱정이 되고 일같이 느껴지다가도
공인을 보고 끝난후엔 보기 잘했고 뿌듯한 기분을 안게된다.

이런 기분이 판소리 완창 시리즈에선 특히 더 크게 다가온다.

일단 공연시간이 짧은게 3시간 길면 6시간(소개하는곳에선 8시간도 한다지만 이건 있을까 말까 한정도고
대부분 줄이지 않으면 순수하게 5시간정도에 중간 쉬는시간-인터미션- 두번정도와 소개하는 시간 포함하면 6시간)

오늘 하는 심청가는 4시간(쉬는시간, 소개시간 포함)
그런데 이 공연시간은 공연장에 와야만 알 수 있다.
물론 어느정도 할거라고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안나오는 경우도 허다함(이번도 홈페이지엔 3시간이라 적혀있음)

나같이 끝나는 시간에 별 문제가 없는 사람은 관계 없지만
가정이 있고 약속이 있는 사람들은 어쩌라고
좀 길게 할 예정이면 좀 일찍 시작하면 그래도 끝나는 시간이 너무 늦지 않을텐데

4시간 공연인 오늘은 7시무렵 끝났지만 홈페이지 내용대로 3시간정도로 생각하고 이후 약속을 잡은 사람은 어쩌라는건지
공연 한시간 분량인 끝부분을 빼면 피날레를 모두 날려야 하는건데
조금 긴 시간 공연을 할거면 좀 일찍 시작하고, 어느정도 예정된 시간을 미리 공지하는게 현대사회에 맞을텐데
고급 공연예술이라고 모든 관객이 널널하게 시간 조정을 할 수 있을거란 거만함은 좀 안해줬으면 좋겠다.

심청가는 이번이 3번째?
대사를 읽은것도 3번정도 되었나
아직 대사를 읽을때 소리꾼의 그 소리가 연결되지 않아서 크게 와닿진 않지만
(춘향가같은경우는 대사집만 읽어도 이젠 막 슬퍼져서 지하철에서 읽다가 울컥울컥 거릴때가 있음)
그래도 청이가 아버지에 대한 한탄은 글로 읽어도 그 슬픔이 바로 전해진다.

몇번 읽고 몇번 보다보니 내용이 점차 상세하게 들어오고 있는 와중이긴 한데
좀 이상하긴 하다. 아버지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인신공양으로 죽는다?
그리고 죽은 부인도 남편을 신 떠받들듯 한다.

문학은 그시대의 사회문제를 대변 할텐데
그렇다면 이게 나올 당시엔 남편를 천대하거나 자식이 부모를 우습게 알았다는 것일까?
유교적 사고는 적어도 부모에 대한 공경(효)은 끝이 없을텐데
이런 사회에서 이런 문학이 탄생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이렇게 독하디 독한 문학작품이 탄생했다는것은
군사부에 대한 공경이 땅에 떨어져버렸다는것으로 보인다
(춘향가역시 신분 차별에 대한 것이라 하지만 내용을 보면 창녀취급 받는 기녀의 자식이 수절을 한다?라는 독특한 설정을 한다.
이것은 당시의 성문화가 매우 부적절했기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일부종사와 거리 먼 대상이 수절을 한다는 것을 주제로 해서
경각심을 주려 했던것이 아닐까싶다.)

이러니 남편을 위해 미친듯 밤낮없이 일만 하면서도 장님이라 일하나 못하는 남편을 받들며 살고(뺑덕어미가 훨씬 현실적임)
아버지를 위해 동냥까지는 할 수 있겠지만 먹고 사는것도 아니고 눈뜬다는 중의 말을 들어 절에 시주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해치는 행위를 나이 15세때 한다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보다 극적인 구성을 위해 이렇게 설정할수도 있지만 이게 먹히는 사회였고 좁은 공간, 돈 많은 사람들 아니면 초빙하기 힘들었던
판소리 장르에 이런게 유행했다면 역시나 꼰대들의 바람이 깃들어 있는(노인들이 대우 못받는 사회에 대한)듯 하다.
지금 어딘가에서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거리를 배회하는 노인들에게 심청전을 보여주면 이들은 눈물을 흘리겠지.

각설하고
소리꾼 오민아씨의 목 음색은 낯익으면서도 그리 선호하는 목소리는 아닌데
너무 거칠다고 해야 하나
쇳소리를 넘어서서 굵은 사포에 긁는 듯한 소리가 난다
음역도 넓은 분 같은데 이러니 절규하는 부분에선 대단히 돋보이지만
아니리(가락이 없는 일반 말)에선 좀 그렇고
일인다역을 해야 하는 이상한 장르에 걸맞는 다양한 연기력이 돋보여야 하지만 좀 아쉬움이 남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민아 소리꾼의 소리에서 기력이 빠져나간다는게 느껴지고
몸 콘디션이 안좋은지 물을 자주 마시는 모습이 좀 안쓰럽다.

이 사람의 소리를 듣다보면 툭!끊겼다가 숨이 이어지는 곳들이 종종 보이는데
왜 그런지 모르지만 대단히 어색하고 신경에 거슬리지만 숨을 끊는 이유를 모르겠다.
고수와 박을 맞추기 위해서 그런건지 아니면 개인 스타일인지 무엇인지
소리가 좀 여유롭게 박을 이어가면 좋았을텐데 약간은 조급해 하는거 같기도 하고
뭐에 쫓기듯 막 달려가기도 하고 그러다보면 약간 트리지기도 한다.

하지만 흔하면서도 흔하지 않은 걸걸함에 호탕하며 여유있는 이분의 목은 어떤 대목이라도 여유있게 소화해낸다.
가끔 어떤 소리꾼은 특정 소리를 내기위해 얼굴이 찌푸려질정도로 쥐여짜듯 소리내는데
이분은 모든 부분, 모든 대목이 여유롭고 호기로워 매력과 호소력 깊어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어떤 대목은 녹음했다가 다시 듣고 싶을정도로 강한 인상을 줄정도

막판엔 결국 눈물샘이 살짝 열리기도 해서 닦아내느라 눈꼬리가 쓰리다.
방아타령은 이 처량맞은 심청가에서 그나마 즐거운 대목인데 빠진건 좀 섭섭하지만
이런것들이 다 포함되었다면 5시간 공연이 되었겠지

훌륭한 사람들의 공연을 또 보고 싶어도 도데체 어딜 가야 찾을수 있는걸까
공연장을 나오면서 이사람 공연을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시간을 되돌릴수 없고
이런 무대에 언젠가 또 서게 될때 내가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판소리는 되돌릴수 없는
시간같은 존재로 지나치는걸까

언제쯤 자막이 달릴까?
오늘 보니 일본인 관객도 있던데 이 사람은 어떤느낌으로 봤을까
발음이 독특해도
청각이 좀 안좋아도
모두 즐길수 있게 공연에 방해 안되는 자막이 달리는 그날을 위해..

그런데 알고 있을까?
이 공연극장의 의자가 연극 소극장의 후진 의자 수준이란것을
이런곳에서 서너시간 이상 공연을 보는 곤욕을 치뤄야 한다
객석 바닥을 나무 마루 바닥으로 만들어 공연도중 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얼마나 크게 들리는지..
(나무면 무조건 좋은것처럼 생각하는 또라이가 설계한거 같음)
천정은 온갖 구조물로 잠깐 고개라도 들라치면 정신이 혼미해진다.
(조명과 음향 이외엔 좀 안보이게 막을수 없나?)

참 그지같은 공연장이다.(혜화동 초라한 소극장도 이보단 좋음)
소리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은 이렇게 쓰레기 같은 공연장에 있는것이다.

명색이 국립극장이고 한국의 전통중 최고로 치는 판소리 공연을 하는곳이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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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19. 5. 18.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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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장 연극중 인터미션(중간 쉬는 시간)이 있는 연극을 하는 곳은 이곳이 거의 유일한거 같다.
쉬는 시간 포함해서 2시간30분정도 되는데 생각해보면 한번에 쭉 해도 될정도 시간인데 왜 쉬는 시간이 있지?
공연중 음료를 마음대로 마실 수 있고 커피도 나눠주기때문에 쉬는 시간이 있는것일수 있지만
이게 좋은것인지 오늘은 좀 의문이 든다.
다들 음료를 꺼냈다 넣었다 하는 소리와 옆에 앉은 사람은 종이컵을 질겅질겅 씹고 있질 않나
(종이컵 씹는소리가 조용한곳에선 엄청난 소음으로 다가온다는걸 오늘 처음 알았음)

극장내 규칙은 극장 주인이 마음대로 정하겠지만 그 정한 규칙이란게 다른 관람객들에게 피해를 준다면
관객이 오지 않으면 되는건가 아니면 극장 규칙을 약간 손보는게 나은것인가

그리고 오늘 느낀점인데 객석중 VIP라고 해서 비교적 편한 좌석이 있으나 너무 더럽다는 것이 보여버렸다.
빨간시트의 의자인데 때타서 얼룩한 검은 느낌이 감도는 의자
머리쪽엔 수많은 사람들이 머릿기름을 발랐을텐데 그 흔한 천커버 한개 씌어있지 않다.
(고속버스에 붙어있는 하얀색 천쪼가리조차도 없음)

그렇다고 냄새가 난다거나 하진 않지만 청결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면 이런 의자가 꼭 좋은지 모르겠다.
차라리 때가 덜타는 비닐같은 재질이 낫지 않나?

아무튼 다음부터는 왜 이름이 vip석인지 모르는 이 자리는 가급적 앉기 싫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특정 사이트에서 구입하면 가격이 절반
협찬이나 기타 사유로 특정 사를 통하면 저렴하게 판다는건 어느정도 이해할수 있다.
그러면 저렴하게 팔수 없는곳에선 안팔면 안되는것인가?
싸게 파는 곳에서 모든것을 저렴하게 팔면 되지 않나
그곳에서 구입하면 비록 자리가 조금 뒷자리라도 소극장은 앞뒤 거리가 문제 되는것도 아닌데
왜 바가지 써서 구입한거 같은 불쾌감을 주는걸까
이런거 몇번 당하면 이곳에서 하는 연극은 다시 보기 싫어질텐데
(극장 주인은 정감있고 멋지지만 이런 운영은 좀)

연극관람인구가 넘쳐나는것도 아니고 관객이 가득차는 경우는 거의 못보는 현실에서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씁쓸하다.

내일은 챔피온?
영화인가? 만화인가? 어디선가 들어본 제목이긴 한데
내용이 기억나진 않으나 머리속에 박힌 관념에서 특별히 벗어나진 않는다.

막이 오르고 한 여자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하는데 이 어색함은 뭘까?
내가 아직 잠에서 덜 깼나?(공원에서 잠시 졸다가 왔음)
발음도 이상하고, 억양도 이상하고, 연기도 좀 이상하고
어디선가 본듯한 낯익은 얼굴이지만 TV를 안보니 연예인을 아는것도 아니고
연극에서 봤던 얼굴일수도 있지만 어렴풋한 느낌만 있을뿐 정확한건 없다.
그러나 너무 이상한 저 연기는 뭘까(노이즈 마케팅 전략?)

다른 사람들은 자연스럽고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다보니
이 사람의 모든 행동이 독특하게 보이는 기이한 현상까지 생겨난다.

운동과 여자는 떼어낼수 없는 어떤 관계가 있는건가?
(여성은 남성의 파워-권력-에 이끌린다는 동물적 생존본능이 있다는거 같은데 그것때문인지 드라마를 완성하기 위함인지
항상 남자운동선수 옆엔 늘 여자 문제가 있음)
이 연결성은 여지없지만 상투적인 순정,청순따위하곤 다소 거리가 있으나 별다름 없이 상투적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배경과 소재만 다를뿐 어디선가 본듯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특히 어색한 나레이션으로 시작하는 것 부터 기억이 맴돌지만 한곳에 꼿히질 않아 답답하다.

초반 몇십분 보면 끝이 보이는 배경이니 전체 줄거리의 재미보단
소소하고 자잘한 구성이 좋은 연극이다.

사람사는것, 치기어린 광란의 시절, 알수 없는 이유로 신에게 의존적인 사람도 있고

그런데 남녀간의 애정선이 빠지면 한 사회가 형성되기 어려운건지 한국 특유의 멜로라인은 연극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이 연극에서도 삼각관계 두 그룹, 외사랑 두 그룹, 감초같은 분 한명
이게 이 연극 전체 연결선이고 모든 심리가 이안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그러다보니 내용들 전체가 대단히 식상하다.

하지만 두시간이 지루하지 않고 순식간에 지나갈정도로 매력있다.(또 보고 싶은 극은 아님)

이건 연기력이 뛰어나서인지 소소한 구성들이 뛰어나서인지
(둘 다 라고 생각함)

각각의 인물 배경은 큰 의미 없어 보이게 전개된다.
한 건물 입주자들의 몇개월간의 사건사고들을 재미있게 구성해놓은 연극

하지만 임팩트는 없다.

무엇인가 고조시키려다 사그러드는 경향도 좀 있고
(독립영화의 심심하고 무료함이 있는것도 아니고 스펙터클한 현란함도 없고 스릴러의 충격도 없음)
끝 역시 살짝 미소정도로 마무리?
아주 기분좋게도 아니고 아주 슬프거나 씁쓸하게도 아님

그래서 보고 나온 지금 관람기를 쓰고 있는 내가 '무엇을 봤지' 라고 생각을 곱씹어야 할정도로 남는게 없다.

참 특이하다.
두시간 넘게 지루함 없이 봤음에도
기억에 남는거라곤 초반 어색하기 그지없는 나레이션과
마지막에 '이렇게 노래 못하는 사람이 가수를 하겠다는 꿈을 꾸다니'라는 생각뿐이다.

만약 이곳에서 이 연극을 볼 계획이라면
이것보단 '잉여인간 이바노프'를 보길 권함.
그리고 객석은 VIP석에 걸맞는 의자의 청결도 써주길
(빨간 의자가 검은 느낌이 드는건 좀)

출연 : 김병춘,이주환,최재호,이유청,최세옹,권대현,박장용,김원경,
조한나,김가빈,김린,박혜주,남명지,이유빈,지민규,염인섭,조경미,장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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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19. 5. 11.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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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내란 말이 발가락에 나는 꼬랑내같은 말 아닌가?
사전에는 썩은 달걀같은것에서 나는 냄새라 적혀있긴 한데
(어원은 예전 중국사람들-당시엔 송,거란,여진중 송애들이겠지-고려사람에게서 나는 냄새를 고려취라 해서 유래되었다고 함)
아무튼 고린내는 그냥 꼬랑내정도 생각하면 되겠지..

문제는 배경이 창녀촌이라는데 이쪽 문화를 전무할정도로 모르다보니(영화 '창' 같은곳에서 접하는것 외엔)
저들의 심리를 알순 없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쪽 현상을 모르면 작품을 쓰기도 어려울텐데 어떻게 쓰는건지?
아무튼 외국보다 더 모르는 세상 하나가 가볼수 없는 북한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성문화다.
(엄연히 한국내에 존재하는 사회의 일부분인데 모르는것도 한편으론 좀 바보같음)

그래서 내게 이런 배경은 막장드라마 같은 느낌이랄까? (말도 안되는 허상?)

사람사는 곳이니 표현의 형태만 다를뿐 다 비슷할거란것엔 이견이 없지만
문제는 그 표현이 매우 낯설다는 것이다. 대부분 이 부분에서 낯설다는 것을 넘어서는데 있어서
표현의 과격함이 때론 외면의 대상이 된다.
(내가 그 강력하고 직설적인 감정을 감당 못하는거나 싫어하는거 같음)

그러니 그들의 절규가 내겐 감정의 벽이 만들어져 오히려 덤덤해진다.
(혜화동에서 비정규노동자들의 시위가 있어서 잠시 듣고 있었는데 그들의 말들이 훨씬 더 속상함. 한국의 현실이라 그런가?)

연극이라서 그런건지, 속에서 거부하는건지 아니면 아예 공감자체를 못하는건지
최루성 구성은 꼬맹이때부터 지금까지 늘 감정선이 연결되지 못하기도 했지만

내용이 가볍지도 않고 주변에서 접할수도 없는 상황
저들은 저런가보다 라고 상상하는것도 한계가 드러나는 배경은 참~ 어려운거 같다.

예술세계에서 그 배경이 안보이는 것 만큼 심심하게 느껴지는것도 없는데

상황이 이러다보니 배우분들의 세세한 디테일에 집중하게된다.
자잘한 웃음, 쓱! 지나가는 슬픔, 분노등 그 생명력-지속성-이 너무 짧아서 지쳐버리는 내 감정
뭔가 격한 연기를 멋지게 하고들 계시지만 한치앞이 안보이는 안개속 저멀리서 웅얼웅얼거리듯 초점을 잡을수없다.

포주? 다른 포주는 어쨌네 저쨌네? 백날 얘기 한들 관객중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지금 저 포주가 하는 행동이 인간적인지 악덕포주인지 관객중 몇이나 알까?
(일하는 사람-김미주-은 돈도 없어보이는데 포주는 강남에 60여평짜리 아파트가 있고
아이들 둘 모두 공부시켰다고 하는데 이러면 포주는 괜찮은 사람인가? 악덕업주로 보이는가?)
몸파는 일을 하다가 결혼한 사람은 거의 없고 모두 그 끝이 좋지 않을수밖에 없다는것은 그들 세계에선 진리인가

어떤 사람은 지방에 형제도 있어서 아이를 그리로 보내는데 몸을 팔고 있다.
이 직업이 돈을 많이 버는지 모르겠지만 연극속에선 그리 많이 벌고 있는거 같지도 않아보이는데
그러면 형제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 소박하게 살수 있는거 아닌가

직업엔 귀천이 없고 사람들은 저마다 사정이란게 있기때문에 내가 이해 못한다고 그들을 비난할순 없다.
하지만 현실이 아닌 공연예술인 연극인만큼 어느정도 그럴수밖에 없는 배경정도는 풀어내며 진행해야 보는 맛이 있을텐데
갑자기 결혼한다는 사람도 있으나 둘도 없는 친구라는 사람은 그 남편될 사람의 배경을 모두 알고 있어보임에도
특별히 반대하지 않는다. 이것은 그 결말을 전혀 눈치 못채고 있었다는 건지, 이미 알고 있지만 무시한것인지
남편에게 맞으며 살아도 그곳-창녀촌-을 벗어나는게 좋다고 생각는지 도무지 어느 감정선에 기대야 할지 알수없다.

아무튼 이 연극은 90분정도 시간을 참 요상하게 써서 재미있으려다가 졸립게 만든다.
물론 이건 내 성품이 후져서 공감력이 부족하여 생기는 문제일수도 있다.

좀더 해학스럽게, 욕도 제대로, 표현도 좀더 노골적으로 하던가 아니면 아예 피하던가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상태
처음부터 끝까지 웃게 만들던가(저들은 비록 천대받는 일을 하지만 그들만의 행복이 있다는 정도?)
아니면 아예 다큐스럽게 심층적으로 파던가
막장드라마 스럽게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든면을 보여주던가(이러면서 극장에서 나올때 뒤끝이 모래씹은거 같이 아주 안좋음)

보고나와도 뭐가 뭔지 알수 없다.

그런데 중년 부부들 관객은 왜그렇게 많은지
(5월 가족의 달이라도 부부가 볼만한 내용은 아닌데)

나도 아내와 함께 연극 보고 싶어지니 5월은 되도록 연극은 멀리 해야 겠다. -.,-;;

 

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19. 5. 4.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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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면서 따뜻한 봄날에 하는 연극 치곤 제목이 특이하다.
'구멍을 살펴라'라니.. 하수구속 쥐들 얘기 인가?
독특하게도 인터넷 예매처 조차 아무런 사전 내용이 없다.

보통 시놉, 제작의도 정도는 나오기 마련인데 아무것도 없다.

관객은 제법 많지만 태반이 지인들 같은 기분이 들고(지인들이 나왔을때 특유의 웃음들이 관객석 여기 저기 퍼져나옴)
내가 앉은곳은 콘트롤 박스 있는 곳이라 기대어 보니 덜 불편했지만
이곳이 아니라면 제법 불편했을거 같다.(요즘은 등받이 있는 의자는 많던데)

공연 시간도 5시로 조금 늦게 시작해서 3시쯤에 시작하는 연극이 있으면 한편 더 보려 했는데
눈에 띄는것도 없어서 느즈막에 나와 해가 거의 떨어진 시점에 극장을 들어섰다.

썰렁한 무대

연극이 시작되지만 이게 무슨 내용인지 도통 알수 없다.

여러편이 묶여있는 기분은 들지만 명확하지 않아서 연계성을 찾으려 애쓰지만 마땅히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 무렵에 가면 어느정도 이어지려나?기대도 해보지만
계속 이해 안되는것은 그 끝이라도 반전이 기가막혀 모든것이 해소되는 경우는 극히 없었기때문에
이 연극 역시 이해 불가로 인한 지루함의 연속에서 끝을 보겠구나란 허탈함이 중반부부턴 강하게 박혀간다.

작가가 보는 구멍이란것은 인간 내면의 빈틈을 말하는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틈을 통해 수많은 유혹의 손길들이 들어올테니 주의 하란 소리일까?

이런 극을 보고 배우들은 어떤 감정으로 연기를 하는지도 때론 궁금하다.
허구속의 허구?
감정을 이입하려면 어떤 대상(무생물이라도)이란게 존재햐야 하는데 이 연극에선 그것이 있는것인가.
안개같이 잡히지 않는 기분?

작가 의식의 흐름을 종이위에 연필로 적고 그 적은 대본을 배우들이 보고 연기하는것일텐데 작가의 의도가
필체에서 느껴질수 있는것인지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로 그들은 이해하고 있는것인지
하지만 나는 관객으로서 이해할수 없었다.

수많은 이야기, 서로의 연결은 느껴지지 않는다.

글작가가 종이위 몇줄 적다가 동그랗게 구겨 휴지통안에 던져버린 수많은 단편 이야기들을
주어모아놓은거 같이 어지럽기만 할뿐이다.
그 절정이 마지막 키보드를 또닥또닥이는 한 노인의 모습에서 부각되어진다.

나의 구멍은 수도 없이 많을것이고 그 구멍들로 수많은 허구의 유혹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것들로 하여금 희노애락이 생성되어 열여덜열여덜 거리며 여생을 만들어가는것인데
이 것들을 단속하려면 묵언보다 한단계 더 올려서 무념수행을 하란 말일까

아무튼 다시 생각해도 100분간의 연극속 흐름은 너무 다양해서 무엇이 무엇인지 알수 없다.

무슨 내용인지 알기 위해 눈알에 힘을 주다보니 쉽게 지쳐버리는 연극...
지쳐버린 후 의도를 알게 된들 무슨소용있는건가?

출연 : 정태화, 유은숙, 권정훈, 김용희, 박은경

 

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19. 4. 27.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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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벚꽃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지나가버려 아쉬웠는데
연극 제목마져 이리도 씁쓸하다니

인생 끝자락에 사람들이 마주서게 되었을때의 심정을 알진 못한다.
어렴풋(이상한)한 느낌으로 회한보단 하고 싶은것이 많으나 할 수 있는게 없겠다 싶은정도랄까?

좀더 늙어야 느낌이 제대로 올지, 지금 느끼는 감정 그대로 끝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알아도 그다지 쓸모 없는 감정이 아닐까?

인간은 외롭기에 이것을 견뎌내기 위한 수많은 노력을 하며 살아간다.
이 노력의 가지수는 아마도 인류를 모두 합한 수와 같을것이기에 사람들을 이해하려해도
각각의 방법이 다른 만큼 이해의 깊이는 종잇장보다 얕을수밖에 없다.

이 모든 노력이 부질없게 느껴질땐 허탈하여 온몸의 힘이 모두 빠져버리길 기대하기도 한다.

아무튼 이 연극은 끝에 서있는 두 여인과 한 젊은 여인의 이야기인데
전체적인 분위기는 한국풍경이라기보단 일본 느낌이 이상하게 많이 든다.
(두 늙은 여인들간의 대화나 서로의 관계-대인에 대한태도- 한국사회에서 볼 수 있는 것과는 좀 다름)

가끔은 나의 어머니,아버지 두분중 한분이 홀로 되셨을때 외로우실 걱정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두분이 그다지 활동적인 분들도 아니니 어느분이 되셨던 홀로 되셨을땐 많이 외로우실텐데
뾰족한 대안이 보이는것도 아니고

이 연극처럼 근처에 친구로 함께 지내실 분들이 있으면 좋겠지만 글쎄
어쩌면 황혼기의 두 사람의 인생이야기보단
그들을 지켜보는 자식들의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의 그림자같이 다가온다.

그런데 극중 젊은 여인은 어떤 의도인지 잘 모겠다.
그냥 가끔 나와 어슬렁 어슬렁?
저 늙은 여인들의 회상형(?) 인간인가? 아니면 젊은 여인의 미래가 늙은 저 두 여인인가?

시놉을 보면 여성은 어떤 일생을 사는지등 잡다한 얘기가 나오는데
여성은 어떻고 남성은 어떻고?
인생 끝자락으로 넘어가면 다 비슷할텐데 이런걸 남여로 나눠서 될 문제가 아님에도
뭔가 있어보이도록 해놓은것인지

사람이 죽음직전에 무엇이 떠오르는가?는 남자 혹은 여자의 문제는 아닐거 같다.
단지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았냐에 따라서 느껴지는 감정이 달라질뿐

오래전 드라마 '엄마의 바다'같이 전업주부라는 약간은 고립된 삶은 살다가
남편의 죽음으로 험난한 사회로 나온 한 어머니의 삶에 대한 내용같이
다른 세상에서의 깨달음같은 그런 내용에서나 성찰이란 말을 쓰는거지
무슨 여성들의 삶의 성찰이라는 등 그딴걸 적어놓는건지 이해할수 없다.
(이런건 관객 몰이를 위한 과대광고, 작가의 과대망상으로밖에 안보임)
내용 자체만으로 보면 고독한 사람들의 말동무로 잔잔한,
예전 흔하게 동내 사람들의 담소나누며 생의 마무리를 엮던 것 정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는 내용들이다. 그 속에서 작가는 무엇인가를 찾고 싶었던걸까?
(일본쪽이 이런 밍밍한 삶속에서 과할정도로 망상-개똥철학중 왕 개똥철학-을 많이 섞어놓긴 하는데)
자식으로서 부모의 모습을 걱정어린 시선으로 그려낸것인가

아무튼 잔잔히 시작해서 잔잔히 맽음을 하다보니
내용은 강렬한 사건이 발생한다거나 하지 않아서 독립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가정의 달인 5월이 되고 있으니 이런 연극 한편 자식들이 봐보는것은 좋지만
노부모들께서 보시기엔 글쎄..
(연극 자체가 너무 무자극이라 어머님들께서 연신 하품하는 소리가 들리던데 충분히 이해되는 상황임 -.,-;;)

제목처럼(오시마 료타의 하이쿠에서 나오는 한 구절이라고 함)
인생은 순식간에 지나간 아쉽고 그리운 시간들이겠지만 인간의 숙명인것을
(어떤 사람은 모두 이루었다고 자살하기도 하던데)

출연 : 박경은, 김보경, 김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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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19. 4. 21.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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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두번째 판소리 완창인데 엄밀히 따지만 3월에 봤던것은 반만 했기때문에(반이라도 3시간이나 되었음)
이번이 진짜 완창 무대이고 줄이지 않아서 공연시간도 6시간이나 된다.

5시간 이상씩 되는 공연이란걸 작년에 박애리명창의 춘향가 6시간 공연을 보고
(이때가 판소리 완창을 실제로 처음 봤던 뜻깊은 시간이었음)
이 후 봤던 판소리는 모두 줄여놔서 3시간정도였다.
그중엔 몇십분만 당사자가 나오고 제자들이 나머지를 채운 공연도 있어서 섭섭한면도 있다

아무튼 이런 공연을 저렴하게 볼 수 있다는것은 언제나 기분이 좋을수 밖에 없다.

대사(가사?)를 읽어봐도 그렇고 왜 전라도 말들 일색일까?란 의문이 든다.
한국이 전라도만 있는것도 아니고 이런 극이 전라도만 있는것도 아닌데
아리랑도 각 도마다 있듯 판소리도 도마다 색을 다르게 해서 나오면 안되는 것인가
(전라도 억양이 예술적 표현에 매우 적합하다고 할수도 없다. 이몽룡은 경상도, 성춘향은 전라도 뭐 이런식은 안되나?)

아무튼 최진숙소리꾼이 나와 공연이 시작된다.

음...
여성치곤 제법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
그런데 방자와 이몽룡간의 변화차가 크지 않아서 헷갈린다.
여자(춘향,월매,향단)들의 표현은 각각 특색있게 표현을 해서 누가 누군지 충분히 알수 있는데 반하여
남자인 이몽룡,방자,변학도,운봉등은 그 색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아주 헷갈린다.

심지어 중저음 성향을 지닌 목이라도 여자 역활에선 높낮이를 충분히 잘 살리지만
남자들은 저음 일색이다. 억양도 평이하고

뭐랄까? 여자역에 비하여 남자역은 대단히 단조롭다고 해야 할까?
춘향가는 아무래도 남자보단 춘향이가 지배적인 1인 주인공 극이지만 그렇더라도
혼자 여러 인물을 표현해야 한다면 주된 인물들 만큼은 그 색을 명확히 해야 하는것이 아닌가
그리고 초기 한시간가량은 목이 덜 풀렸는지 단조로운 소리로 사랑가전후로 몇분정도 졸기도 한거 같다.
(춘향가의 진국은 서로 죽고 못살때보단 헤어질때부터-이별가- 절절함이 최고인거 같아서 몇분 졸았어도 뭐)

이몽룡과 헤어진 후 중간 휴식이 끝나고 시작할땐 몸이 확실히 풀렸는지 전시간보다 훨씬 멋진 소리를 들려준다.
쇳소리도 좋고 힘도 좋았지만 춘향이 절절함은 왜인지 모르게 맛이 덜하다.
창법때문인지 목소리때문인지 단지 이 사람의 스타일인지 아무튼 좀 심심하다.
뛰어나면서도 밍밍한 느낌.
이렇게 이몽룡은 과거시험을 합격하고 남원으로 오면서 두번째 시간도 맽음을 한다.

마지막 타임
이땐 고수가 최진숙소리꾼이 아버님(최영길)께서 직접 나오셨다.
이분도 소리를 하신다고 하셨고 그 윗대인 할아버님께서도 하셨다고 하는거 같은데
모두 모르지만 부녀가 함께 나와 소리하는 장면?
영화'서편제' 비슷하지만 그렇게 엄했을지는 모르겠고 영화에서 처럼 집요할정도로 한을 표현하려 하는거 같아보이도 않는다.

1대, 2대 모두 대통령상을 받았으니 3대인 최진숙씨도 이 상을 받길 원하시는 여느 아버지들과 같은 모습을 보여준 최진숙소리꾼의 부친.

그래서 좀더 흐믓하다고 할까? 기분 좋기도 하고 좀 느낌이 특이하기도 하고

5시간째 소리를 하고 있다는것은 얼마나 힘든일인지 상상이 안된다.
(노래방에서 노래 몇곡만 불러도 목이 잠기는데 지금 창을 하고 있는 저 사람은 다섯시간째다)

약간은 힘이 빠진듯 보이고 끝에 한두번 대사을 잊기도 하고 두통이 온다고 하는데
이상하게 이해된다.(노래를 많이 불렀을때 두통이 온다는것을 알리 없지만 왠지 공감이 됨)

이렇게 춘향이와 몽룡은 또 해피엔딩이다.(도데체 몇번째 해피엔딩인지 알수가 없음 ^_^)

다 끝나고 최진숙 소리꾼이 아버님께 큰절을 올리고(사회자 말로는 이런일이 그동안 없었다고 함)
벚꽃시즌이 마무리 되는 최고의 공연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밤 9시, 비가 부술부술 내리는 남산 에휴..
늘 가지고 다니던 우산을 오늘은 또 왜 안가져왔는지 하여튼

얼마전부터 갑자기 느껴진것인데
오늘에서야 비로소 확실하게 느끼게 된것이 판소리는 너무 고급진 특수한 계층만을 위한 공연이었다는 것이다.
수많은 한시를 그대로 읊지 않나? 상놈,양반 할거 없이 서로 말장난을 한문으로 한다.
이런 언어유희를 바로 받아드릴수 있는 계층은 적어도 당시 백성은 아닐것이다.

고수 한명, 소리꾼 한명
소리꾼의 목소리가 커봐야 탁 트인(원형 무대도 아닌) 공간에서 들을수 있는 사람들은
코앞 몇미터 정도의 소수들..

서양 음악중 현악4중주 같은게 귀족들만이 즐기던 음악이었듯

기본적으로 음량에 한계가 있는 모든 공연은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즐길순 없었을거다.
예술가도 먹고 살아야 하니 소수만을 위한 공연이라면 당연히 돈 많고 많이 배운 사람들 대상으로 해야 표현이 고급스럽고
대우를 받을수 있었겠지..

그 정점에 올라서있는것이 한국에선 판소리가 아닐까 싶다.

한시들이 즐비하게 섞여있다보니 말들이 대단히 간결하면서 뜻은 깊다.
하지만 지금 세대가 단박에 알아들을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두보시를 음만 듣고 알아들을정도면 대단한 한문 내공의 소유자라고밖엔)

고급스럽다는것은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수도 있는데 그 격차를 좁히는 방법들이 없는것은 아니지만
한국에선 그럴려고 노력하는거 같아보이진 않는다. 그러면서 멀어지고 있는거겠지.
컬레버레이션(콜라보)한다며 인기 있는것들에 편승하려나 할뿐

오늘도 역시나 대사가 잘 들어오는 말이 나올땐 사람들 호응이 눈에 띄게 좋은 반면
한시같이 한국말과는 거리가 먼 말들이 나열될땐 조용한 침묵만이 뒤따를뿐이다.
일부 관련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나 추임세를 넣을뿐

자막이라도 뒤에 나왔더라면 창법 특성상 알아듣기 힘든 발음도 어느정도 극복되고
때에 따라선 한시도 음만 듣고 어느정도 추정가능할수도 있기때문에 이해하고 즐기는데 훨씬 나을수 있겠지만
한국 예술을 한국인을 위한 배려를 하지 않고 있다.

판소리가 즉흥적인 면도 있어서 소리꾼 재량에 따라 이것 저것 붙여 늘릴수도 있고
줄일수도 있다보니 자막이란게 안맞을수도 있지만 이런건 운영자가 적절하게 자르고 건너뛰는등 하며
최대한 맞추면 될것인데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대사집도 4회를 한대 묶어 팔아대서 작년에 샀던 대사집과 겹치는 것이 있지만 다시 사야되고
두꺼워서 지하철같은곳에서 읽으려면 불편하기 그지 없다.(공연을 보기 전에 한번쯤 읽어보고 보는 편)

김세종제던 뭐던 이제 현대에 맞게 한문시도 좀 풀어서 한국말로 넣고
중국고소설들 보면 불필요할정도로 나열을 하는데 판소리도 그런 경향이 있는부분은 조정하고
(서울에서 남원오는데 뭘 그리 지역 지역 모두 서술을 하는지, 흥보가에선 제비가 강남에서 올때 온갖것을 다 나열하고
심청가는 눈뜰때 장님들 나열, 적벽가는 불타 죽는 병사들 나열하는 것등, 수궁가는 아직 못들었음)
지금말로 좀 잘 꾸며서 새로운 부류를 만들면 나름대로 다 의미가 있는것 아닌가?
그런것을 이런 무대에 올려 많은 사람들이 부담없이 즐길수 있게 만들고 (다른 창극들은 가격이 비쌈)

말이 6시간이지 대중공연을 6시간 한다는것은 좀 그렇지 않은가?
상류층이야 하루 종일 하더라도 무슨 관계가 있겠냐만은 일반인들은 늘 일이란것을 해야 하기때문에
이쪽으로 큰 에너지를 소모하기 어려우니 크게 2회정도로 나눠서 하면
소리하는 사람도 부담이 적고 보는 사람도 훨씬 좋지 않겠나?

시대에 맞춰 공연예술의 본질을 깨지 않으면서 어느정도 조절하며 변화해야 하는데
어쩜 이리도 무대뽀일수 있는지

예술가의 자존심도 지키면서 관객도 늘어나는 방법을 좀 고민해줬으면 좋겠다.

 

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19. 4. 14.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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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극장에선 안톤체홉것만 하는지 모르지만(전엔 다른것도 본거 같은데)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임에도 훌륭한 연극을 볼 수 있다.

이번엔 이바노프

조금전 구매사이트를 가서 연출의 의도에 관한걸 읽어보는데 원작보다 40분을 줄였다고 나온다
지금도 2시간이 넘는데 40분을 줄였다고? 왜?

아쉽다.

스피드감은 있지만 뭔가 가위질 당한 느낌이 있는거 같긴 했으나
공연시간이 2시간이 넘기때문에 내 느낌이거나 작가(안톤체홉)가 그렇게 만든거겠지란 생각을 했는데
연출의 의도였다니..(한국정서에 맞지 않는다는건 어떤 부분인지 더욱더 궁금하다.)

차라리 자르지 말고 조금 호흡을 빠르게하지
아무튼 궁금하다. 1/4이나 잘려나간 부분이 어떤것인지
(다음에 공연할땐 한국 정서고 뭐고를 떠나 모두 해주시길)

갑자기 무기력해져있는 이바노프
딱 내나이때 오는 그 무기력증과 비슷한것일까
아닐수도 있고 그럴수도 있다.

체홉이 쓸 당시 러시아 부호들의 고맘때 흔히들 그랬다는식이던데
내가 아는 세계는 아니니 그러려니 하지만 아무튼 이바노프의 나이대와 나와 비슷하고(비슷한가?)
젊었을땐 누구나 그렇듯 열심히 뭔가 했을것이고 그것이 원인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무기력증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보면 일부분은 이상하게 저 사람의 심정이 이해되는 면이 있다.

일부 친구들은 나와 비슷한 회의감에 빠져있는걸 보면
인간이 인생의 중간토막을 건너갈때 오는 어떤것인지 그리고 이 연극의 주인공이 그러한것인지

이바노프는 부자이고 나는 아니지만 이바노프시절의 부자가 누렸던 것들을 지금은 사람들 모두 누릴수 있는 부분도 있으니
그 시절 일부 계층의 메너리즘에서 오는 무기력증 같은것이 지금 시대엔 나같은 서민에게도 올수 있는것이 아닐까
(당시의 서민들과 노예들은 먹고 사는 생존권 자체가 위협받던 시절이니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이런것을 느낄수조차 없었겠지)

볼적엔 홀딱 빠져들어 못 느꼈었는데 나올땐 뭔가 심현에 깔리는 여운이 끊기질 않아서
약간은 혼란스럽다.

이바노프라는 이 극때문인지
그렇게 각색, 연출했기때문인지
내 상태가 삐리리 한것인지

그런데 첼로라는 악기를 듣기나 했을뿐 연주란걸 해본적이 없어서 모르지만
TV드라마에도 그렇고(예전 베토벤 바이러스인가?) 이번 연극에서도 나온걸 보면
연주가 가히 엉망이 아닐수 없다. -.,-;;;
(훌륭한 연주자의 바흐 무반주 첼로 연주 듣는걸 좋아하기때문에 더욱더 그렇게 느낄 수 있음)

이럴바엔 차라리 음악을 깔고 모션만 취하지(공연용으로 소리 안나는 현이 있을법 한데)

백작과 합주도 한다는 등 말은 하지만 뭐랄까? 확! 깬다고 할까?

이 연극의 설정에서 이렇게 좀 깨는 면이 있는데

무대가 좀 특이하다
온통 깔려있는 하얀색 천.

이것때문에 암전상태에서 불이 켜졌을때 그 거부감은.. 으~
(어두운 방에서 잠 곤히 자고 있는데 커튼을 갑자기 걷어내어 쏟아지는 빛에 깜짝? 하지만 잠을 깨는 불쾌감이 뒤따르는)

하얀색 배경, 혹은 검은색 배경은 배우들에게 집중이 잘 된다는 것이야 사물 촬영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지만
하얀색 배경의 연극은 눈 아프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눈이 계속 아픈건 아니고 처음 환하게 되어 홍채가 갑자가 좁혀질때만)

앞자리 일반석에 앉아서 그랬을까?(VIP석이라고해서 영화극장 의자가 있는 독특한 극장임)
좌우 넓게 퍼진 배우들에게 집중하기엔 좀 불편한 감이 있다.
(부부는 두배 가격인 VIP석을 절반으로 할인해준다. 난 솔로고 부부라고 우길만한 이성친구도 없다 젠장)

일반석이라도 가격이 저렴하면서 의자도 크게 불편하지 않아서 좋다.
이소극장에서 너무 근사한 의자에 앉아 관람을 몇번 해보니 왠지 배우들에게 미안한 기분도 들고 해서
이번엔 일반석을 사서 본건데 전혀 불편함은 없으나 배우들과 눈높이는 좋았지만 좌우로 긴 무대를 관람하기엔
좀 가까운 단점이 있어보인다.
솔로석도 있던데(몰랐음) 이곳은 어떻게 구입하는거지? (커플석도 있음.. 젠장)

단순한 무대 연출
하지만 구성때문인지 오히려 상상을 자극하여 허전함을 느낄수 없다.

소극장을 당골로 한다는것은 이상하지만
그래도 이곳은 가급적 오래 지속됬으면 좋겠단 생각이 드는 곳이다.
커피도 주고 박카스도 주고(공연중 소변마려울까봐 마셔본적은 없음)

그런데 011전화번호 쓰는게 그렇게 특이했나? 큰소리로 물어보고.. -.,-;;
아직까지 수백만명이 쓰고 있는데.. 흑흑흑

재미있고 잘 만들어진 연극이나 따뜻한 봄날 보기엔 적합한 내용은 아닐수있다.
(봄엔 분홍분홍 약간 심장이 펌핑되는 그런 연극이 잘 어울리지만)
연인 이벤트성이 아닌 연극 좋아하는 분이라면 후회 없을 연극 같음

출연 : 이동규,남명기,유영진,신지은,한소진,김인수,오정민외

 

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19. 4. 7.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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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오묘한 연극을 본거 같다.
좀더 엄밀히 말하면 전혀하기 어려운 연극

그래서 였을까?
집에오자마자 2~3시간을 자버리고 말았다.(밥먹어서 졸린건지 이해가 어려워 스트레스로 졸린건지)
정보를 찾아보지만 마땅한 정보도 없다.

사유의 결과물인가?

단 두명의 대화는 무엇으로 부터 시작했는지 모르겠고 저들의 존재 조차 납득되지 않는다.

갑자기 난파되어 들어온 섬인지 어딘지에서 둘의 생활이 시작되지만
돌맹이와 얘기하는 다중인격자?

그게 맞을수도 있겠지

그런데 그가 뜯어먹은 인물은 또 무엇인지

작가를 찾아봐도 마땅히 작품을 이해할만한 무엇도 나오지 않는다.
시놉은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도 않고
옆에선 어린아이가 재미없어하며 부스럭 거리고
(도데체 왜 이런 연극에 아이들을 입장시키는건지
부모는 연극 내용을 모르고 대려올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입장을 허가하면 나머지 관객들은 방해받아도 된다는 소린가
제발 멍청한 인정따위는 개나 줘버려라.)

단순한 흐름으로 표면적인 내용을 보려 해도 정보가 부족하다.
갑가지 고립된 공간으로 들어온것도 이상하지만(이런부분은 그냥 넘어가도 됨)
쳇바퀴도는듯한 시공간은 무엇일까?
'현대 프랑스 연극'이란 책의 일부분에 보면 모더니즘 어쩌구 저쩌구 하는데 헛소리 같다.
(관행을 거부하면 모두 모더니즘이더냐?)

이 사람, 이 사회엔 이러한 내용이 먹혀들정도의 배경지식이 필요한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예술이란게 때론 빙신같은 이면성도 지니고 있고
너무 깊은 세계로 빠져들면 나같은 범민이 이해하기엔 어렵지 않겠는가

외국것을 가져오면 약간은 살을 좀 붙여주던가

아무튼 표면적인 시각의 흐름으로 보면 느낌이 대단히 특이하다.
세계를 만들고 그 속에서 자신들만의 유희를 즐기다가
특정 계기로 인하여 내면을 드러낸다. 그것이 그 사람을 짖누르고 있던 바위였는지 모르겠지만
이런부분을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을거 같다. 실수를 하고 자신의 기준으로 맞지 않는 죄라 인정하고
그 억눌림에 생명을 단축한다

그것을 넘어선 후엔(죽인 후) 허무함속의 속죄로서 죽은 자신을 먹는 행위
(용어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자아 상실에 대한 보상으로 그 자아를 먹어버리는?)

하지만 그 갖혀있는 공간에 누군가 다시 들어온다.
이 반복은 인간의 어리석음, 혹은 사디즘,마조이즘적 본능을 뜻하는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이코 패스나 소시오패스와는 다르고, '어글리'란 심리 공포 영화와 비슷하다고 할지, 무한 반복하는 살인의 원천은 내면)

아라발은 이것을 관객이 깨닫길 바랬던건지 자신이 그랬단건지 알수 없지만
곱씹어 생각하니 섬뜩한 느낌이 드는것은 내속의 본능도?란 불안감 때문일수도 있을거 같다.

출연 : 오민석, 김준영, 윤광희

 

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19. 3. 31.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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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말쯤에 보고 올해 새로 시작한 완창 판소리 시리즈
아직 수궁가를 들어보진 못했고 적벽가나 흥보가는 한번씩밖에 못들었지만
춘향가와 심청가는 창자가 많은지 제법 여러번 듣게 되었다.

이번 상반기 시리즈도 심청가 2회, 춘향가 2회로 구성
왜 이렇게 배정을 하는지 이해할수 없다.

'판소리 완창'이란 기획은 인기 없이 사라지고 있는것을 보존하기 위함 아닌가?
그렇다면 골고루 배정을 해서 전수자들이 한쪽으로 편향되지 않게 해야지
이런식으로 진행하면 인기 없는것은 그마져도 버티기 힘들어질텐데 관계 없다는건지
(이미 기록이 다 되어서 사라져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그리고 놀란것은 작년 무대 시설 그대로라는것

예능인의 무대이고 이것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예술인데 작년에 써먹었던 무대를 그대로 사용?

무슨 골방에 쳐박아놨다가 꺼내서 먼지 털어내고 보여도, 우리것이니 모두들 좋아할거라 생각하는건가?
이쪽으로 편성된 예산이란게 있을텐데 어떻게 이럴수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올해는 자막이 나오는 기획을 했을지 기대했지만 여지없이 무너진다.

이것은 관계자가 판소리라는 한국의 독특한 공연예술 장르가 사라지길 바라거나, 아예 관심없거나
오만하고 거만한 정도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내가 어렷을적에도 일주에 한두번 방과후 TV시청이 거의 없을 시간에나 나오던 국악프로그램이라
개략적인 줄거리는 알더라도 각각의 디테일함을 알수 없다. 그렇기에 충분한 교육이 필요한 시점에서
이놈들은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는다.

주구장창 떠드는 소리는 힘들다. 멋지다. 위대하다.등 헛!소리들이나 하고 있다.
그러면서 하소연 하는 소리가 사람들이 관심없다, 서양것만 너무 좋아한다라는 등 개소리나 하고 있으니
이럴 시간있으면 한줄이라도 더 해설을 붙여 그 맛을 이해하도록 해야..
오만함속에서 죽어가지 말고 대중예술이라기 보단 상류문화에 가까운게 판소리 예술이지만
부잣집 앞마당에서 소리를 할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면 대중들 속으로 들어갈 궁리를 강구해야 하는게 아닌가

보면 볼수록 작금의 현실이 답답해진다.

하지만 소리꾼 방수미란 분은 멋진 소리를 보여줬다.

전후반 소리가 다르다며 설명해주는데 확실히 좀 다른거 같다.
(동편제 서편제 같은것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방송출연이나 많은 무대 경험이 있어서인지 마이크가 귀에서 계속 떨어져도 당황하지 않고,
여유있게 대처하며 그의 소리로 무대를 가득 채워넣는다.

고수분들의 독특하고 긴장감 있는 북소리들 역시 진행의 긴장 고조에 큰몫을 차지하지만 집중하다보면 잊게되기도 한다.
리듬악기인 이런 타악기 하나와 추임새만으로 분위기를 만든다는게 특이하지만 북이 갖는 독특한 매력이라서
비단 한국 판소리 고수의 북만이 꼭 그런것은 아닌거 같다.

그런데 소리꾼과 고수는 서로 맞춰 보는건가? 아니면 누가되었던 그냥 맞는건가?
생각해보면 3~6시간짜리 공연을 맞춰본다는것도 쉽지 않고(서로 한곳에서 연습하는 사이가 아니라면 일부러 시간 내어 맞춘다는게 가능할지도)
맞춰보지 않는다는것도 쉽지 않아보이고

공연중 이들의 호흡은 틈이 벌어지질 않는다.
영화 '서편제'에서는 남매였고 어렷을적부터 서로 호흡을 맞췄던 사이니 그러려니 하고
그 외 판소리 음반은 녹음이니 충분히 가능할거라 생각했지만 공연장에선 볼적마다 궁금해진다.
이들은 공연 전날이라도 모두 맞춰보는걸까?

아무튼 이 사람의 소리는 대단히 여유가 있어서 조급함이 없다.
머리속에 책한권의 모노드라마가 들어가 있다는것 까지는 이해할수 있지만 이것을 여유있는 호흡으로 관중에게 호소한다는것은
얼마나 많은 연습을 해야 하는건지 상상이 안될 지경이다.

좀 아쉬운것은 '완창판소리'인데 2/3정도에 끝냈다는것?(춘향이가 장을 맞는 대목에서 끝남)

명색이 '판소리 완창'인데 간략하게 기승전결 맽는게 아니라 사건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을무렵 끝나버린것인다.
다음회가 기약되어 있는것도 아닌데

하필 왜 이런 구성을 기획한것인지 알수 없다.
춘향가를 줄이기엔 아까워서 후반부를 안하더라도 전반부는 가급적 빼지 않고 하는것이 낫다고 판단한건가?
공연을 3시간 정도 했지만 내용 진행은 중간이 아니니 제법 빠르게 진행되어 한시간정도 더 하면 왠만해선 마무리 될법 하던데
지금 생각해도 아쉬움이 남는다.

작은 채구지만 힘은 개그우먼 박나래 같은 느낌이랄까
심지어 목도 비슷한거 같다.(방수미 소리꾼에선 좋은건지 나쁜건지 모르겠지만 내 느낌은 그러했음)
그래서 박나래씨도 소리에 맞는 목인가?란 상상도 해보게 된다.

소리를 들으면 그 특유의 쇳소리가(대금의 청같은) 있는데 방수미 소리꾼은 이부분이 아쉽다고 해야 할지
(여자는 이 소리가 잘 없는게 목의 특성때문인지 모르겠음)

판소리는 종합예술이라 하지만 기본은 노래 아닌가?
그런데 그 가사가 귀에 안들어온다는것은 이 노래가 갖는 특징이라 하더라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전라도 말이 주류지만 지금이 조선같이 각 지역만의 고유한 말들을 서로 이해하기 힘든것도 아니니
어느지역 말이라도 관계없는 시대가 되었음에도 판소리 가사 만큼은 너무 안들어온다.
한자,한시 등을 그대로 사용하는것도 문제고 거기에 가락을 넣었으니 더욱더 말이 안들어오겠지

예전 어느때부터 느낀것이지만 소리꾼의 소리가 귀에 쏙쏙 잘 들어오는 대목에선 관객의 호응(추임새)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이런 현상은 모두들 이해가 안되어 가만히 있었을뿐 이들의 흥은 계속 억눌리고 있었다는게 아닌가
이것을 해소할 방법은 매우 자주 접해서 자연스럽게 외워지게 하던가, 모르더라도 알 수 있도록 보조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작년에 썼던 무대 그대로 또 써먹지 말고(판소리가 아름다운 종합 예술이라면 그에 걸맞는 무대도 필요하다고 생각됨)
어려운 말들을 이해하기 쉽도록 자막을 넣는정도부터 시작하자.
(도데체 서양애들을 위한 공연엔 자막을 충실히 넣으면서 정작 자국민을 위해선 최소한 배려도 없다는 것인지 납득이 안됨)

특히나 소리꾼들의 기운이 떨어질수록 그 발음은 더욱더 안좋게 느껴진다.
오늘도 내 청각이 지치고 있거나 소리꾼의 소리내는 기관에 무리가 되고 있는것인지
발음이 점점 어려워지는게 느껴진다.(3시간동안 혼자 노래하고 말하고 연기하는데 지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것)

그의 기운이 점점 쇠하더라도 그가 내뿜는 모든 노력은 관객이 느껴주길 바라지 않을까

지쳐가고 있으면서도 그가 표현하려는 인물들이 충실히 묘사된다는것은
오래도록 전해져온 판소리가 위대한것이 아니라
판소리를 하고 있는 명창 방수미가 위대한것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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