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숭무대소극장'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24.05.11 연극 -인간을 보라-
  2. 2023.05.11 연극 -가석방-
  3. 2022.11.26 연극 -부정 Denial-
  4. 2021.02.20 연극 -지대방-
  5. 2019.01.26 연극 -오셀로:피는 나지만 죽지 않는다-
  6. 2018.10.20 연극 -섬,1945-
  7. 2017.10.15 연극 -분장실-
연극.공연2024. 5. 11.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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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미친듯 불어 기분 좋지만 무겁기만 한 하늘
이러다가 비 내려 폭풍우라도 되면 우산으로 버틸수 있으려나 걱정하며
시청에서부터 걷다가 우산 한번 뒤집히니 그냥 그렇다.

그런데 왜 우산이 뒤집히면 좀 챵피할까? 내가 뒤집힌것도 아닌데. 우산과 나를 동일시 하나?

혜화동에 도착하니 마로니에공원에서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고 있는데 비가 많이 내려서
관객이 없으니 너무 안쓰럽다. 멋진 곡을 부르지만 청중이 없으니 공연을 하는건지 리허설을 하는건지..
이렇게 비오면 공연을 취소하거나 다음주로 연기하면 안되는건가?
안타까움에 눈을 다른곳으로 돌릴수가 없다.

그리고 석가탄신일이 15일인데 도로를 모두 막고 행사를 하는것은 왜일까
15일이 쉬는날로 정해놓은것은 그때 행사를 하기위함 아닌가? 왜 토요일에 하는거지?
그러면 석가탄신일을 휴일로 지정하지나 말던가 이날을 휴일로 지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이 아닌 또다른 존재들이 사람을 보는 관점에 대해 논하는 연극
총 세가지의 존재들이 서로 다른 관점으로 인간을 바라본다.

첫번째는 신
하지만 이들은 인간사회를 철저하게 관망 할뿐 그 어떤것도 개입하려 하지 않는다.
규칙은 그러한데 노아의 방주때 대홍수도 신의 개입이었고 살인범이 사고 당하도록 하는 저 젊은 신도 개입을 한다.

신은 왜 인간을 만들었지?

장난감도 아니고 관여하여 유토피아로 이끄는것도 아니다. 심지어 불안정한 존재로 만들어놔서
오래 살지도 못하고 노쇠하여 죽게 만들어놨다. 판타지 장르에 나오는 요정들처럼 불멸하게 만들고
번식은 극도로 적게 하게 만들면 분쟁이 사라지지 않나?

애초에 신이 인간을 만든 자체가 피곤한 참견을 한건데 개입하지 말라니.. 이것에 대해
우리 관객은 어떤 시선으로 저들-신-을 바라봐야 하는걸까

두번째는 바퀴벌레들의 시선
해설자는 동반자들의 시선이라 하는데 어떻게 동반자관계가 성립할까?
이들에게 인간은 파괴자일뿐이다. 터미네이터(종말자)? 프레데터(포식자)? 같은 일방적으로 가해 하는 존재이다.

인간이 바퀴를 멸종을 못 시켜서 공존하는것은 아니라 생각하는것은 나만의 착각?
생태계 꼭지에 있다는것은 피라미드가 무너지지 않도록 아랫쪽도 지켜봐야 할 의무가 따르기때문에
적당히(?) 죽여서 큰 피해 없이 개체수를 조절(학살)하며 공존할뿐으로 생각한다.
그러니 저들이 보는 인간은 공존이 아닌 회피의 대상일뿐이다. 물론 인간이 버린 음식물을 먹고 살기때문에
어떤면에서 보면 공존이라 할 수 있지만 바퀴의 생존력이 높은것은 잡식성으로 많은 것을 먹을수 있어서
자연에서라고 생존에 큰 어려움이 있는것은 아니다. 다만 박쥐같은 천적에서 보호받을수 있는 건축물을 공유해서
공생, 공존이라 하면 완전 틀린말은 아니지만 동반 생물로 보기엔 바퀴의 상황이 너무 안좋다.

상황이 이렇게 불리하기때문에 저들은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할 뿐이다. 그리고 그다지 인간을 이길수 있는
능력이 보이는면도 없다.

마지막으로 경쟁관계라는 외계인
여기서는 인간이 바퀴벌레 취급당하며 일순간에 절멸한다.
요즘 한참 인기인 드라마 '삼체'에서의 외계인이 지구인을 벌레취급하는 것과 똑같은 상황이다.
당연한 결과인가?

이 세가지의 존재는 인간사회가 점차 계급사회로 가고 있는 상황을 표현한것이 아닐까..
(혹자는 현재 한국을 비롯한 많은 사회가 자본을 기반으로 한 계급사회라고 함)

아무튼 적절히 코믹스러워 부담없다는 점은 좋지만
인간사회의 문제점을 비판하기에는 너무 단편적인 것들로 빠르게 넘어가서
기억에 남는것은 그다지 없고 단순히 웃긴 연극이란 느낌 정도만 남는다.

SF적 요소를 충분히 가미할수도 있고 종교적 색채를 넣을수도 있었는데
작가의 의도를 표현하기엔 너무 짧고 단순함으로 인해 부족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시간이 너무 짧다.
60분 연극이라니.. 이정도면 3곳의 시선이 아니라 한곳의 시선만 표현해도 짧은 시간인데

거창하게 시작해서 마지막은 소박하게 맽음하는것은 뭔가 소재와 구성의 쪼들림때문이 아닐런지

처음 신편에서 기대감이 세번째 침략자에서 허무하게 사그러든다고 해야 할거 같다.

출연 : 문호진, 류진현, 최은경, 이성민, 권혜빈, 유경민

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3. 5. 1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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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니 비가 오는건 좋은데 왕창 내린후 개는것도 아니고 이틀간이나 내린다니
이틀동안 두편의 연극은 모두 눅눅하겠지만 기분만은 시원하다.

제목에서 모든것을 보여주는듯 전체 흐름이 예상되될거 같았지만
실상 내용은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원작 제목은 '어둠속의 빛'이라 나오고 영화 '우나기'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영화 우나기는 오래전에 봤던 영화인데 전체 내용은 기억나지 않고 장어가 나온다는 정도만 기억난다.
(장어가 일본어로 우나기니 당연한건가?)

흐름은 가석방된 한 인물의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연극이지만
일본 특유의 냄새가 너무 풍긴다는게 조금은 거리감으로 다가온다.
아무래도 한국 풍토에서 나온 작품이 아닌이상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을 지울수 없는데
특히 모든 행동들이 사실적인듯 싶으면서도 좀 과장된거 같기도 하고
일본 영화를 보면 정적인것은 너무 정적인반면 격동적일땐 상식 이상으로 격하게 표현된다.
그것이 실제와 거의 유사할지라도 흔한 상황은 아니기때문에 어색함으로 다가오는걸텐데

국내 창작품이나 중국이나 서양 예술은 이질감이 덜한반면 유독 일본 예술은 좀 다르게 다가온다.
유달리 인간의 잔인성을 잘 묘사한다고 할지 그래서 더 무섭다고 해야 하나
섬나라 특유의 집요함이 좀 있을순 있는데 이게 예술로 표현되면 때때로 어렵고 거북스럽게 다가온다.

AI나 사실적 묘사가 주류가 되면서 '불쾌한 골짜기'(너무 인간같아서 생겨나는 거부감?)라는 표현이 많이 부각되고 있긴 한데
왠지 사이코패스(공감력 부족)라는 약간은 먼세상 사람같은 인물의 묘사가 진실같아서 불편해진다고 해야 할지

한국에서 사이코패스를 표현할땐 차갑고 냉정하며 무심하고 자기중심적으로 표현하면서 선을 긋는다.
그런데 이 연극에서 사이코패스의 묘사는 내면속에서 불타오르는 분노와 자기 합리화를 강렬하면서 차갑고 노련하게 이끌어간다.

특히 어항속 물고기들에게 감정을 표출할때는 꽤나 충격적으로 다가와 생명경시에 대한 인물의 성향을 극단적으로 묘사되어
연극임에도 순간 순간 공포감이 밀려든다. 예상컨데 이 공포감은 나만의 감정은 아니었을것이다.

이렇듯 흐르는 전체 요소들은 묘하게도 가성방에 대한 부정적 시선으로 이끄는 이상한 결론으로 감정선이 도달된다.
작가의 의도가 그런것인지 알수 없고, 영화 우나기의 줄거리가 기억나지 않는 상황에서
연극의 끝은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에 대한 시선보다는 가석방된 범죄자 모두에게 화살을 겨누는듯하다.

표현자체가 극적인대다가 등장하는 인물 모두 흔하지 않은 문제적 특성을 지니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매우 암울한 세계 속에서 표현되는 암울한 일상을 그려내고 있으니
결론이 좋을수 없다는것은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특히 텐지로(주연)의 모든 행동은
칼을 품고 있는 그 무엇과도 같아보임에도 불구하고 곁에서 집요하게 행복을 찾으려 애쓰는 토요코
그 옆에서 스토킹과 부부 사이를 이간질을 하는 히누마, 불륜의 진위여부를 알수 없는 업체 사장 등
전체적으로 블라맹크의 회화처럼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한 세상을 표현한다.

그래서 매우 훌륭한 연극 한편을 봤음에도 기분이 개운하거나 흡족하기보단..
불필요한 색안경을 쓴 느낌이다.
예전 영화 '우나기'를 봤을땐 이런 느낌이 들진 않았던거 같은데 내가 잘못 이해 하고 있는것일까.

출연 : 강성해, 윤상호, 원완규, 최지은, 이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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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2. 11. 26.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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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가 풀리는 회사란 존재할수 없는걸까.. 왜 이렇게 몸이 피곤해지는지 모르겠다.
더 일을 많이 시키기 위하여 휴일이란걸 만들었을 모르지만 더 일을 많이 하기 위하여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싶다.
그 휴일에 나는 연극 한편과 짧지 않은 시간을 걸으며 피로가 풀리길 기대하지만
생각보다 효과적인방법은 아니다. 단지 좋아하는 걸 하고 싶다는 갈망을 풀기 위함일뿐

이번 연극이 꼭 이런 느낌이다.
무엇인가 개운하게 풀리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보는 내내 묘하게 뒤틀어놓은 세상을
돋보기로 과장해놓은 집합체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편할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리를 뻗을수 있는 맨 앞자리에 앉았다는것인데
관객석이 좁고 극장 구조가 좋지 않아서 답답하기때문에 좁은 관객석에 앉았었다면
연극 내용도 답답한데 공간마져 그러하니 더욱더 조여오는 무기력함으로 극장을 나와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기억의 왜곡은 오래전부터 흔하게 듣던 말이었고 이론적으로도 어느정도 규정되있다.
(뇌의 시스템이 밝혀지면 좀더 명확한 답이 나오겠지면 아무튼 결론적으론 비슷할테니 큰 의미는 없다.)

은연중이라 해야 할까. 종교를 까는거 같기도 하고 페미니즘을 까는거 같기도 하고
인류의 모순된 형태중 현시대에 부각되는 것들을 비판한다.
작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을까? 마무리는 이런 모든것이 단순히 떡밥처럼 흐지부지 된다.

그래서 더욱더 모호하다.
기억의 왜곡도 어떤면에서 보면 아닌거 같다.
중간무렵, 자신이 악마라는 이도석의 말에 진영은 악마가 아니라 악마를 잡으려다가 동화되었다는 말을 한다.
결론이 흐릿하다보니 김인성을 구해낸 후 자신이 그러한 존재가 되어버렸을까?라고 되새김하게 만드는 대화였지만
이 정도만으로 섣불리 결론을 만들어낼순 없었다.

기분 더러운 다양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 이묘희(딸)는 어떠한 방법으로든 자신을 드러내고자 한다 하고
이도석(아버지)는 딸은 이유없는 거짓말을 절대로 안한다고 한다.
(딸은 거짓말을 하고 있지만 단순히 재미로 하고 있는것은 아니라는 의미로 받아드려지긴 하지만 이것 역시 쉽지 않다)

전체적으로 매우 적절한 흐름으로 난해하지만 결코 이해되지 않거나 대사가 귀에 안들온다거나 하질 않아서
다양한 결말을 마음대로 만들어낼수 있지만 어떤 방향도 좋은쪽이라곤 찾아볼수 없는 미친 자극을 해댄다.

잘만든 극같기도 하지만 사람들에게 권하기도 난감하고
다시 보고싶기도 하지만 답답함을 또 겪어야 되나 싶기도 하다.
큰 무대보단 작은 무대가 확실히 잘 어울리지만 울분을 토하는 부분에선 귀를 막고 싶다.

소극장 연극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면 꼭 같이 봐보고 싶은 극이다.
시원 맥주한잔과 함께 비워버리면 개운해지려나

피로회복을 하려면 좀더 기분좋은 연극을 봐야 하는데 왜 난 이런극을 보면 잘 봤다고 생각을 하는걸까..

출연 : 진영, 이도석, 이묘희, 김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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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1. 2. 20.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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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연한 봄이 온 것 처럼 가볍고 밝은 옷차림들이 많이 보이는 하루
계절이 바뀔땐 항상 그러하듯 조금은 외로움을 느낀다.
1년 내내 기후 변화가 없는 곳으로 이사가야 할까

한국사회에서 불교는 오래되어 한몸같은 종교중 하나다.
그래서 많은 행동과 사상이 녹아있지만 막상 불교라는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은
절반에 못미친다.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기독교가 불교와 대등한 수준이란것도 특이하다.
(신흥종교가 강력하게 뿌리잡을수 있을수 있었던것은 그만큼 조선후기, 일제강점기, 한국전쟁등을 통해
사람들이 고통받았다는 것이다.)

이 연극은 지대방이란 곳에서 승들의 대화를 통해 안고 있는 짐같은것을 엿볼수 있게 한다.
깨달음이란것이 도데체 무엇을 말하는지 무척 궁금하지만 그 어떤곳에서도
명확하게 무엇이라 말하는 곳이 없다.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사상이 아닐수 없는 부분이다.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 이외에 또 다른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인가
인간 이외 동물들은 이미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것인지. 그들은 결코 이런것을 알고자 추구하지 않는다.

괴로움은 인간만이 지닌것도 아닌데

지능이 발달하며 생겨난 허상의 산물이 깨달음일수도 있다.

생존과 종족번영을 위해 적당한 룰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
그 것 이외가 존재한다는것은 지금의 세상과 똑같은 우주가 여러개 존재할것이라 주장하는것과
다름 없어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 허구의 세계를 탐닉하고 싶다. 현세계가 그다지 재미있지 못하기
때문일수 있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일수 있다.

아무튼 이 연극은 승들의 공통적인 업인 깨달음이란것에 목매이는 승과
포기한듯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듯 한 노승과의 묘한 갈등을 그려내지만
이런 소재는 불교를 배경으로하는 영화 연극등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소재이다.
(불교가 한국에 들어오기 이전에는 인간은 깨닮음이란 것 자체가 없었나)

답답한 내 인생에 단비가 되주진 못한다. 다만 현재의 나를 연극으로 표현한거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할까
당장 잘먹고 잘살아도 미래를 알 수 없는 인간의 카르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여
종교가 없음에도 저들의 심정이 한편 이해된다.

그런데 해산승은 왜 그렇게 명령조에 큰 소리를 질러대는 걸까?
억양과 톤이 너무 튀어서 흐름을 깨는 느낌이 강하다. 그렇다고 연기가 이상한것은 아니지만
대단히 어색하다. 1980년대 TV문학관 같은 지상파 프로그램에서 그려내는 승들을 보면
적당히 차분한데(때론 분노를 그려낸다손 치더라도 거칠지 않다) 이런것에 익숙해서 그런지
승은 이런 톤으로 이어지는것이 좋지 않나 싶다.

막판에 나오는 우지승은 또 왜 그런 캐릭터인지.. 불타오르는 화산같다.
음악에서 조가 바뀌는것 처럼 분위기가 완전히 바껴버리는 느낌. 그렇다고 극적이지도 않다.
무엇을 그리내려 저러는 것인지....

문 하나 없는 곳에서 몇년간 수행해봐야 골방에 박혀있는 자신만 초라해지는거 아닌가?
깨달음이 무엇인지 모르니 무엇을 얻고자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얻으려 하는것도
범민의 욕심일뿐 무엇이 다르겠나.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너무 알고 싶다.
나는 범민이니 이것을 쫓아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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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19. 1. 26.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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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의 오셀로는 바둑판 같은 알이 뒤집히는 게임.. ^_^
하지만 이번 오셀로는 세익스피어의 여러 비극중 한개

내용은 지극히 간단하다.
컴플렉스가 많고 사회적 편견을 받아오는 한 성공한 인물
이런 사람 주변엔 언제나 꼬이는 똥파리들
현실에선 비극으로 끝날까? 희극으로 끝날까?
하지만 소설속에선 대부분 비극으로 끝난다. 왜냐하면 그래야 재미나니까

나에게 비극은 로미오와 줄리엣(올리비아 핫세 나오는? ^_^)

나머지 비극들은 인간의 어리석음과 사회구조적 문제점들 속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면밀히 그려낸것이라
깊은 맛이 일품이지만 인간과 인간사이의 슬픔이 올라오진 않는다.
그러나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회적 편견부터 인간관계의 허망함, 어이없고 황당함, 아쉬움, 인간에 대한 갈망과 절규등 많은게 잘 녹아있어서
비록 극중 배경은 현실과 다를지라도 구성은 인간의 보편적 삶과 닮아있어보인다.
인위적 죽음(자살)을 인생의 종착역쯤으로 조금 길게 늘려서 생각하면 더욱더 비슷해 다가온다.

아무튼 오늘 본 오셀로로 돌아오면
현실에 맞게 각색했다고 해야 할지 오셀로의 구성을 이용한 현대극이라 해야 할지

하지만 오셀로가 갖고 있었던 내면세계를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지는 의문이 든다.
극중엔 오셀로역을 맡은 이혼한 중년 배우, 사회적으로 성공한 삶도 아니고(20년 연극을 하는데 주인공은 처음이라는 설정임)
하지만 젊고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하게 된 또다른 의미로의 성공한 인생
그로 인한 주변으로 부터의 시기와 질투, 이런점에선 TV의 막장 드라마와 비슷하다고 할수도 있겠다.
(막장 드라마란것을 보질 않아서 잘 모르지만 '사랑과 전쟁'같은 단편 드라마를 생각하면 거의 흡사하다고 해야 할지)

작정하고 속이려 들면 속지 않을사람 없다는 말도 있고
미인은 근심(화)을 부른다는 말도 있듯(아무래도 남자들의 과한 탐욕때문에 생겨난 말인거 같다)

이런 환경에서 발생한 사건은 자연발화되어 큰 산불이 생겨나듯 그 전개는 당연해 보이고
생각을 해본다거나 할만한게 없다.(흐름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동물의 세계같다고 할까)

그래! 여러 남자들이 사랑하는 아름다운 한 여자.
누구나 인정할만 멋진 남자(?)도 아닌 늙고 힘없는 한 남자와의 결혼
결국 주변에 꼬이는 똥파리들의 시기와 질투 그리고 음모

남자는 파국을 맞이하고 절규한다?

인터넷 예매하는 곳에서 보면 '<오셀로>의 완벽한 해석'이라고 적혀있다.
완벽한 해석?
'또다른 해석'이라 해야 하지 않나?

한가지 비슷한건
열등감(고전엔 백인들 사이에서 혼자 흑인이란것, 이 연극은 나이먹고 능력 없는 이혼남) 정도?
이것이 오셀로란 연극을 지탱하는 힘이긴 하지만 그 느낌은 많이 다르다.

아무래도 원초적인-본능에 가까운-것은 빈곤한 삶속에서 잘 드러나지만
고등한 인간의 심연을 엿보기엔 부유한 사람들의 내적 갈등에서 잘 드러난다.

같은 행동이라도 이런 환경적 요소에 따라 관점이 달라지기때문일텐데
그래서 이 연극 치정드라마같다.

그래서인지 더 재미있다.
이 사람(세익스피어)의 비극시리즈는 좀 피곤하다고 할까? 곱씹어야 하는 것들이 좀 있는데
이 연극은 물 흐르듯 즐기면 된다. 물론 단순히 즐기기엔 좀 격한 연극이지만 아무튼 달리 표현하기 그러니
보이는것 그대로 보고, 감정 흐르는 그대로 느끼면 된다.

연극속의 오셀로연극과 연극속현실이 오가지만 줄거리를 비슷하게 설정하여 함께 진행하기때문에
(극중 배역의 성격이 오셀로속 인물들과 약간 다르지만 크게 신경 안쓰임)
왔다 갔다 하는 구성은 스릴감 있고 관련된 음모도 과하지 않으면서 세심하다.

'나는 관객, 너는 배우' 느낌이 좀 깔리는 섭섭함이 있지만 잘 선택했다는 느낌의 훌륭한 연극이다.

그런데 왜 고전연극(한 50년전 것이라도)만 하면 발성과 억양이 바뀌는걸까?
오페라를 보는것도 아니고 확성기 없는 시절도 아니고
소극장 극인데 일반 연극처럼 우리들 삶과 같은 발성은 안되나

아무튼 재미있는 연극이니 기회되시는 분들은 봐보시길..

여담인데
연극을 한창 보고 있는데 갑자기 목구멍에 뭔가 걸린거 같은 느낌이 들면서
기침이 강하게 나와 어떻게든 참으려 했지만 기침을 몇번하는데 순간 목구멍을 막고 싶었다.
얼마나 참으려 애썼는지 눈물이 뚝!(기침을 어떻게는 참으려 하면 눈물이 난다는걸 이번에 처음 알았음)
이럴땐 어떻게 참아야 하는건지.. 에휴

출연 : 원완규, 정성호, 한상철, 오수윤, 최현섭, 오택조, 구은홍, 김규섭, 정찬희, 김기주, 이혜진, 김성태, 한재진, 하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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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18. 10. 20.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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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컴퓨터가 됬다가 죽었다가를 반복
왜 전날엔 멀쩡했던게 하룻밤이 지나면 문제가 생기는걸까?
밤새도록 무슨일이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다.

대충 마무리 하고 혜화동을 나가는데 햇볕이 너무 뜨거워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늘진곳에선 싸늘기운 역력한데.. 퍼런하늘 넘어 우주는 이보다 더 심하겠지

섬, 1945?
원작은 아톨 후가드의 아일랜드를 하시마섬(군함도)과 한국인으로 설정을 바꿔 각색하였다고 하니
그런가보다 할뿐 아일랜드를 모르니 이것이 그것이겠거니 하며 고민 없이 극장에 앉았는데
관객이 5명 남짓? 다행이도 출연자가 두명이라 이보단 많은 관객이지만
전 스탭들을 포함하면 그보다 관객이 적을거 같다.(이렇게 관객이 적은 연극을 하루 이틀 본건 아니지만 언제나 좀 민망함)

대학로소극장 축제라며 가격도 저렴하고 팜플렛도 만들어 나눠주던데
실제로 출품작이 그리 많지도 않고 기한도 짧은거 같다.(단 두곳에서 4편의 연극이 전부니 축제라는 말이 좀)

대학로 일대를 보면 극장에서 하는 이상한 이름들의 수많은 연극제가 있다.
이것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왜 한 동내에 모여있는 이들은 서로 담합해서 연극제를 만들지 않고 이렇게 중구난방으로
아무도 모르는 연극제를 만들고 또 사라지는건가. 연극제를 하면 지원금이 나오나?

아무튼 작은 연극제면 어떻고 단막극이면 어떤가 연극이 재미있으면 그만이지

그런데 이 연극은 그다지 재미가 없다.

내용은 인권에 대한?(원작은 신권-자연-에 대항하는 권력에 항거하는 뭐 그런)
이것을 일제 강점기, 부당하게 처벌받는 두명의 죄수로 하여금 풀어내려 하지만

그것을 표현함에 있어 그 주체할수 없이 느린 호흡을 어떻게 해야 할지
시간이 멈춘듯한 적막감..

라디오에서 몇초간 아무말도 없으면 방송사고라 하는데 연극에서도 이런게 있었으면 좋겠다.

도데체 어두침침한 곳에서 아무말도 안하고 있으면 관객이 무엇을 느끼겠나?
고통,고뇌가 있으면 표정이나 행동이라도 좀 취하던가
가만히 고통을 되새겨봐야 관객은 아무런 감흥이 없다.

이런 구성이 처음부터 끝까지 지속된다.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늪같은 멈춰진 시간의 공간속

눈을 감고 명상을 할수도 없는 그 답답한 곳

직면한 이 상황을 어찌 할 수 없다면 몸부림을 치던가 비명이라도 지르던가
관객에 뭔가를 어필해야 할게 아니냐?

애니 주토피아의 나무늘보같은 호흡을 연극에서 보게 될 줄이야
(전체중 일부만 그런경우는 종종 있지만 이렇게 시종일관 지속되는경우 처음인듯 함)

연극의 전반적인 배경보단 차라리 감옥생활은 짧고 간결하고 강하게 구성하고
안티고네 재판을 좀더 심층적으로 묘사했더라면 어땠을지
조금만 풀어놓으면 훨씬 곱씹어 볼게 많은 주제

그리고 이 두명의 죄수는 군함도에 수감되어 있는 사유가 뭔가 좀 안맞는거 같기도 하다.

무엇을 보여주고자 한다면 숨쉴틈 없이 보여주거나
머리 아플정도로 생각하게 만들어주거나
눈알 핏줄이 터지도록 집중할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줘야
그래야만 배우도 관객도 모두 만족하지 않겠나싶다.

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17. 10. 15.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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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완연한 가을을 넘어서 스산하기까지 하다.
앞으로 1개월정도만 있으면 초겨울이라 하겠지..

분장실 하면 예전 개그콘서트의 분장실 강선생인가?가 떠오른다.
하지만 이 코미디 프로를 생각하고 예매한것은 아니다.
영화 '여배우들' 처럼 볼 수 있을까 생각해보고
포스터를 보면 일본 영화 '헬터 스켈터'같이 약간은 기괴하면서 쓸쓸할거 같기도 하고

프롬프터라는 역활(연극무대에서 배우에게 대사를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이번에 처름 알았다.
무조건 외워서 하거나 가끔 일부 못 외울때 약간의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있는줄 알았지만

이것을 직업으로 생각한다면 눈앞에 보이는 무대에 오르지 못하니 고문 아닌 고문이 아닌가?
배우아닌 배우들과 실제 배우들(?) 간의 표출되지 않는 팽팽한 긴장감
이런점은 영화 '여배우들'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여배우들'은 모두 배우들로 정점에 있는 사람들이고
이 연극에 나오는 프롬프터라는 사람들은 무대에 오르지 못하는 사람들이니 처지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판소리의 고수같다고 해야 하나?
소리를 하고 싶으나 능력부족으로 북을 잡을 수 밖에 없는 섭섭한 직업
(고수도 죽으면 소리 하는 귀신이 됬을지도 모르는 일임)

프롬프터나 배우나 그 목적은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고 관중에게 환호 받기 원하는 것이지만
이미 무대위에 있는 배우들 마져 이 연극에서는 이들 삶이 녹녹하지 않게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는 것은 배우라는 직업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 끊임없는 고통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는것인지

프롬프터들은 아직 그 단계까지 오르지 못하여 망상에 사로 잡혀 스스로 한을 쌓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연극이란 세계에서 배우라는 직업은 목적없이 과정만 존재하게 된다는 건데
예술 세계의 목적지라는것이 망상이나 다름 없는 추상적 세계를 뜻하는 것일까?

아무튼 귀신들은 귀신으로서 그 자리를 맴돌며 고뇌하고 배우는 배우로서 고뇌한다.

이 연극을 보고 있노라면 예전에 봤던 '백조의 노래'에서 노인배우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던 연극이 떠오른다.
황혼기 시간을 되돌리는 것이 아닌 마지막일지라도 모든 것을 마지막 한점까지 태워버리를 열정.

망상 속 열정이란 달콤함은 놓을 수 없는 힘의 근원이 된다.
(노인이 죽을때까지 금가락지 한개 손가락에서 빼지 않고 간직하고 있는 그것)

하지만 저들이 측은하다.
준비를 아무리 오래 하더라도 그들에겐 오를 무대가 없다. 그들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다.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무대가 확정되지 않더라도 먼지같은 가망성을 갖을 수 있지만
이들(귀신)에겐 먼지같은 희망조차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작은 분장실에서 연습과 화장을 하며
끊임없이 매일 매일 어두침침한 분장실에서 세계를 만든다.

조금은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이게 귀신만의 사정일까?
진정 귀신들만의 일일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것은 화려한 주인공이라는 병풍을 깔아놨지만
우리들의 인생은 그와 관계없는 프롬프터 인생으로 마감하며 무거워 승천 할 수 없는 한 만을 간직한다는 소리가 아닐까?
그렇게 우리들의 인생이 죽어간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게 아닐까?

별볼일 없지만 별볼일 있었으면 하는 헛된 미래
하지만 시간의 미래가 현재가 되면 별볼일 없는 과거와 같은 현실

수많은 사람들의 무한반복의 굴래

주인공 배우는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인간의 잔인함, 분노, 괴로움등을 끊임없이 겪고 인내하여 그 자리에 섰겠지만
누구나 같은 고난의 시기를 참고 견뎌낸다면 저 사람처럼 저 자리에 설 수 있을까?

적어도 과실을 얻기위해 꾸준히 노력한다고 해서 모두에게 같은 과실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달고 맛있고 탐스러운 무엇이 얻을 수 있겠지만
어떤 사람은 맛없고 볼품없는 무엇이 떨어질수도 있다.
이것을 종교에선 윤회,사후세계,시간의 굴래로 다른 형태의 희망을 제시하며 입을 닫게 만든다.

노력의 산물로 보기엔 너무나 다른 현실

우주는 존재하기 힘든 확률로 탄생한것과 같은것일지도 모르겠다.
범위를 좁혀서
어느 별은 생명이 살아가기 힘든 행성을 갖고
어느 별은 생명 충만하고 아름다운 행성을 갖는다.

이것은 별의 노력 여부와는 관계 없이 생겨난 결과로 자신이 별이 되기까지의 노력과 과정은 비슷하다.

조금 더 뒤로 물러서서 약간 더 넓게보면 부질 없는 생각으로 느낄수 있지만
좀더 뒤로 물러서서 바라볼 능력이 안되는 것을 놓고 부질없다는 생각하는 그 자체가 부질 없는게 아닌가?
(인간이 만들어낸 신과 인간의 차이로 어떤것이 되었는 어리석은것인데그 어리석음의 크기를 놓고 싸우고 있는 꼴임)

가볍게 생각하고 가볍게 보면 가볍게 볼 수 있는 연극이고
깊게 생각하려 들면 한없이 깊어지는 연극인거 같다.

제법 다양성을 내포하여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을거 같은 연극이긴 한데..

귀신들의 독백같은 연기는 맥베스같은 것 말고 좀더 대중성 있는 것을 하면 안됬을까?.
중간 한대목 인용(?)할때 그 짧은 시간에 관객이 빠져들려면
연기하고 있는 그 상황의 앞뒤가 모두 머리속에서 뒷받침 되고 있어야 가슴 짜릿할 수 있는데..
알 수 없는 관객석의 무거운 침묵이 느껴진다.

원작은 그렇지 않더라도 대중을 위한 연극이라면 많은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한대목이 더 나을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바뀌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여기가 한국인데 2차세계대전(태평양전쟁)에 죽은 일본인 프롬프터가 아닌 625때 죽은 프롬프터라도 이상할거 없지 않은가
일본 옷을 입지 않고 그 무렵 한국에서 입고 있던 옷을 입고 있어도 되는것이고

목적(원작자의 의도)을 위한 수단은 그 시대 관객을 위해 좀 맞춰보는 것도 좋을거 같다.
(너무 원작에 충실하게 해서 관객이 떠나면 혼자 자위하는것과 다름 없다는 입장이고
원작자 자신도 자신의 시대에 맞춰 쓰여진 각본일텐데 한국의 현시대에 맞춰 수정하는것도
어떤면에서 보면 작가가 원하는 작품의 연속성이 아닐런지)

배경 특성상 연극속 연극이 많이 나오게 되는데
연극속 연극은 일반적인 연극과는 다른 특이한 감정이 들게 한다.
이런 상황에선 배우들의 연기가 조금 더 과해지는데 연극 자체가 표현이 큰데 그 보다 더 큰 표현?
이렇게 되면 무거워도 무겁지 않고 가벼워도 가볍지 기뻐도 슬퍼도 그렇지 않은 오묘한 기분
꿈속에서 꿈을 꾸듯 환타지하기도 하고 뻘쭘하기도 하고 피식하기도 하고.. 아무튼 이상하다.-.,-;;

여자만 넷이 나오는 보기 드믄 연극이지만 어색함 없이 충분히 재미있었던거 같다.
(남자만 나오는 연극은 흔한데 여자만 나오는 것은 의외로 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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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