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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5.01.01 공연 -송년판소리-
  2. 2024.09.14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 2
연극.공연2025. 1. 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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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일이 있어서 특근 아닌 특근을 하게 됬다. 너댓시간 있으니 졸리워 회사의자에 앉아 수십분 졸음
하지만 이상하게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 뭘 그리 힘든 삶을 산다고 피로가 풀리지 않을까
신사동에서 이사하기 전에 첫눈이 많이 내려서 무척 기뻤는데 그 후론 눈다운 눈을 서울에서 본 적이 없다.
약간 흣날린정도. 오늘도 청명하고 싸늘하고 냉정한 하늘만 무심하다.
춥지만 막상 겨울옷을 꺼내 입기엔 무엇인가 내키질 않아서 아직도 늦가을 옷에 조끼 한개를 껴입고 다니니 올 겨울은
다른 해보다 조금 더 춥게 다가오는거 같다.

송년판소리는 안숙선 명창의 독무대같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번이 두번째 공연을 보는것이지만
특이하긴 하다. 이 좋은 무대를 오래도록 왜 이분의 정기 공연장이 되었을까?
그런데 오늘은 좀 다르다. 무엇인가 분위기가 기념하는듯한 약간은 침침한 분위기

시작부터 홀로그램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홀로그램이 아닌거 같은데 왜 홀로그램이라하는지) 며칠전 찍은
안숙선명창의 저장 판소리를 틀어준다. 왜 이랬을까? 그냥 명창께서 나와서 직접 불러주시지 이상한 퍼포먼스는 왜 하는걸까?란
의문이 들다가 문득 '안숙선명창께서 연세때문에 이제는 더이상 창을 못하실정도가 되셨나?'란 약간의 불안한 기분이 감돈다.
2년전인가 3년전이가 그때 송년판소리엔 그래도 건강하셨던거 같은데..

아무튼 1부 한시간 무대는 이렇게 불안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제자분들이 나와서 모든 공연을 했다.
안숙선명창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그와중에 '사랑가'는 왠지 좀 그랬다. 손녀라고 하는데....
아무리 같은 길을 나섰다곤 하지만 어설프디 어설픈.. 이런 좋은 무대를 손녀라는 이유로? 그냥 예쁘고 귀여운 꼬맹이정도던데.
다른 훌륭한 제자들이 많고 많을텐데 뭔가 아쉽고 섭섭한 무대였다.
나머지 모든 공연은 말하면 입아픈 멋진 공연으로 평생을 몸바친 말 그대로 전무가들의 공연이니 아무리 못해도 프로패셔날 그 자체다.

새타령과 추월만정은 왜 그리도 슬픈지.. 눈물이 잘 나는 편이 아닌데 눈꼬리가 쓰라리다.

피날레는 역시 마지막 단원인 안숙선 명창의 명예로운 상패수여식을 하는데 재자들이 부축이며 나오는 모습에
아~ 내년 연말엔 뵐수 있으려나.. 안타까움과 속상함이 반복된다.
그럼에도 민요 몇 소절 하실때에는 쩌렁쩌렁 하신것을 봐서는 소리에 대한 열정과 애정만큼은 그대로인듯 싶다.

조금 힘드셨어도 앉아서도 좋으니 판소리 한두대목 해주셨면 어땠을까란 안타까움도 든다.
관객인 나를 위함이 아니라
소리로 평생을 관객과 함께한 안숙선명창 그 자신을 증명하기 위함의 무대로서

한편으론 다행이라고 할까? 안숙선명창은 수많은 훌륭한 제자들을 두셔서 외롭지 않으시겠단 안도가 든다.
아직도 충격적인 기억으로 공옥진여사 말년 다큐멘터리가 떠오른다. 예인의 안타까움일지 시대와 맞지 않아 대중으로부터 냉정하게 버림받은 예인의 마지막 모습
문화예술이란게 때론 냉정하게 내동댕이 쳐지기도 하기때문에 때때로 모르게 사라진 기억의 인물들의 안타까움이 먼저 떠오르기때문에
안타까움이 버릇처럼 앞장서지만 역시나 안숙선명창은 그렇지는 않을거 같은 생각이다.

TV나 우연히 알게 되어 팬이 되었던 그런 사람이 평생 몇이나 된다고 이제는 슬슬 명을 달리하시는데
이건 내가 그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말이 되지만 그럼에도 오늘 공연에서 제자들이 부추겨 나오시고
부채를 한 손으로 펼 힘도 없으셔서 양손으로 힘겹게 펼치시고 제자들과 민요를 맞추시는 안숙선명창을 보고있노라면
한사람 인생의 끝자락은 어떤 환경이나 어떤 상황이라도 기쁘게 맞아주긴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오늘 공연은
눈꼬리에서 눈물이 마르질 못했던거 같다.

우리의 명창 안숙선.
앞으로 남은 시간 끝까지 관객앞에서 멋진 노래를 하시길 기원합니다.

출연 : 명창안숙선, 제자들, 국립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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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4. 9. 14.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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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가 시작되었다. 추석연휴때라면 저녁에는 싸늘해야 하는데 아직도 덥다.
9월에 열대야도 있다고 하니 지구가 더워지긴 했나본데 북쪽으로 이사해야 할까

변강쇠 점 찍고 옹녀? 변강쇠.옹녀 이렇게 표현되는건가?
포스터를 봐도 그렇고 한국사회에서 변강쇠, 옹녀의 이미지는 코미디언에 가까운 캐릭터이다.
전례된 내용의 변강쇠는 동내 양아치 같은 존재랄까? 물론 섹스를 좋아하고 잘(?)했는지 여자들도 많이 따른거 같다.
다만 영화나 기타 매체에서 변강쇠는 오직 섹스에만 몰빵한 단순한 캐릭터에 오줌발(?) 미친 그런정도?

변강쇠전의 옹녀는 청상살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남편들이 모두 죽는다.
그지같은 말중에 "남편 잡아먹는 년"이란 말이 이런곳에서 나온 것일텐데 이제는 살아져야 할 말들이지만
우수갯소리로 지나가듯 말하는 것은 아직도 남아있는거 같다. (현대극에선 완전히 없어져야 될 말같은데)

아무튼 창극은 옹녀의 등장부터 시작한다. 물론 남편들이 죽어난다. 여차저차한 사연으로 몇명이 죽고
동내 남자들이 가만두질 않았는데 그러다보니 이들도 다 죽어나서 월경촌이 과부촌이 되기직전 그녀는 마을에서 쫓겨난다.
여기까지 옹녀의 바탕이 되는 고난이 나오는데 이상하게 너무 서글펐다. 저 여자의 바람은 한사람과 백년해로하겠다는 대단하지 않은것인데
그게 안되서 결국 저지경까지 몰린것 아닌가. 아마도 죽은 남자들만이 저 여자의 순수성을 이해줄수 있었을것이다.
옹녀의 노랫가락이 너무 슬펐지만 장르가 코미디인지라 눈시울을 닦아낼수밖에 없었다. 한국 노랫가락들이 전반적으로
너무 슬프기도해서 가슴속 깊이 끌어내는 비극으로 만들어도 가능할법한데
'눈물없인 볼 수 없는 옹녀전' 뭐 이런? 언젠가 볼수 있으려나.. ^_^

그렇게 유량민이 되어 어디론가 떠나가다 변강쇠를 만난다.
변강쇠는 동내양아치마냥 놀고 먹고 여자들과 하룻밤 정을 통하고 또 다른곳 가서 그렇게 놀고 먹는다.
어떻게 돈도 안벌고 그럴수 있는지 조선후기땐 지금 한국보다 복지가 좋았던건지 여자들이 먹여살린건지 아무튼 부러운 능력이다.
옹녀와 변강쇠가 만나 부부의 정을 통할땐 온천지가 요동치내마내 하지만 영화같이 웃긴 장면들이 묘사되진 않는다.
(천지가 흔들리고 땅이 갈라지고 오줌싸면 태양을 식히고)

아무튼 전례되는 내용도 그렇고 이들은 분명 남다른 성기를 지니고 있었던지 그 묘사들이 기묘하다.
하지만 알아들을수 없다. 어느시절 말인지 한문인지 뭔지 자막을 봐도 모르겠다. 은유인거 같긴 한데 단어의 표면적 의미도 모르겠으니
이게 말장난인지 학술적 용어인지 뭔지.. 전라도 사람들은 알아듣나? 나만 못알아듣고 있는건가?

이렇게 물고 빨고를 어느정도 그러다가(얼마나 그런건지 모르지만 짧은 시간은 아닌거 같은데 이 사람들은 밥 안먹고도 가능한건가?)
마을로 내려가 정착하려고 했으나 양아치인 변강쇠가 일을 할턱이 없지 않은가.
결국 옹녀만 뼈빠지게 일을 하며 변강쇠를 먹여살리다가 결국은 지리산 어디론가 들어간다. 변강쇠전은 유량민들의 고단함을 표현하기도한다지만
이 극에서는 그러한 것이 표현되지 않는다. 게으른 한 사람과 사랑이란 이름으로 그 사람을 먹여살리기 위한 한 사람
그렇지만 그 게으른 변강쇠도 옹녀말을 안듣는것은 아니다.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라도 조금은 하려 했으니.

원작은 변강쇠가 저주를 내려서 옹녀가 재혼도 못하다가 힘들게 풀렸다곤 하지만
이 극은 전체적으로 둘의 사랑만큼은 애틋하게 표현된다. 변강쇠는 죽어서도 옹녀를 그리워 하고 옹녀는 변강쇠가 죽을때까지도 온갖노력을 하고
변강쇠가 죽어서도 장승들을 죽여가며 변강쇠를 되찾으려 애쓴다. 죽은 사람을 살릴수 없지만
적당한 해피엔딩으로 코미디 장르에 맞도록 그럭저럭 각색되어있다. 일반적인 코미디장르가 그러하듯 다 보고 나면
남는게 별로 없다. 해학적인 블랙코미디는 좀 다르겠지만 아무튼 그냥 남는거 없는게 코미디란 장르다. 스트레스 해소는 되었을라나..

사람들마다 취향이란게 있으니 이 극의 표현을 놓고 뭐라 하긴 그런데
전체적으로 말장난들의 연속이다. 그로인한 웃음이 나오는것은 좋지만 아쉬움이라면 해학적인 블랙코미디 요소는 찾아보기 힘들다는것이다.
요즘 다시 부활한 개그콘서트란걸 보면 시대를 반영한 정치.사회풍자는 오간데 없이 상대방 외모비하로 웃겨먹는 코미디의 기술 중 가장 천박함만이 보여서 못보겠던데
이 작품도 그런 느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10년전에 만들고 시대상을 반영하며 바뀌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울궈먹고 또 울궈먹고 또 울궈먹으니 그런것이겠지만
과연 변강쇠전이란게 처음 나왔을때 단순히 말초신경만 자극하는 대중예술로 탄생했을까?란 생각은 한번쯤 해보는것도 나쁘지 않아보인다.

그리고 항상 느끼는 거지만 한국의 전통 창 발성은 떼창에 과연 어울리는가?이다.
특히 국악기를 서양악기들마냥 세팅하고 마치 오페라를 연상시키듯
떼창을 하려면 오페라나 대형뮤치컬들 처럼 화음을 좀 맞추고 나눠서 전체가 하나처럼 들리면서도 복잡함이 섞인 심정을 표현하면 좋지만
그런것은 없다. 혼자 부르는건 심금을 울려서 사람 미치만드는데 떼창은 정신산만하고 시끄러워 소음처럼 다가온다.
좋은 청력에 절대음감이라도 갖고 있는 사람이 이런 음악을 들으면 미쳐버릴지도 모를일이다.
떼창때만큼은 발성을 좀 현대적으로 바꾸고 음을 좀 나눠서 화성(和聲)이란걸 좀 셋팅하면 어떨까 싶다.
솔직히 떼창때는 짧은 시간이라도 너무 힘들었다.

국악의 고질적으로 섭섭했던것은
고작 10년된 따끈따끈한 신작인데 자막을 보지 않으면 문장 한개도 제대로 듣기어렵다는 것이다.
옹녀는 북쪽 사람인데 왜 전라도 사투리를 써대고 있냐?
단어들도 좀 현대적으로 만들고 딕션좋게 만들어 자막을 안보고 배우들의 표정을 보며 바로 알아들을수 있으면 좋겠지만
머나먼 미래의 얘기다. 어쩌면 구글 통역기를 켜놓고 듣는 시대가 먼저 올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때쯤이면 한국악은 사라지고 유물로나 남아있겠지. 적어도 지금처럼 말초신경만 자극하는 정도라면
그리고 자막은 좀 중앙에 넣어라.. 눈 사시되게 무대 밖 양쪽에 넣지 말고.
사이코페스도 아니고 왜 관객에게 이런고통을 주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무대 밖 양쪽 모니터에 자막을 쳐까는걸 보면 욕이 안나올수가 없다.

그런데 옹녀의 소리는 왜 그렇게 슬펐을까.
그냥 너무 슬펐다.
가을엔 마냥 즐거운 그런것을 봐야 할까보다.

출연 : 이소연,최호성,김차경,우지용,김금미,이영태,나윤영,이광복,윤충일 외 국립창극단 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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