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예술극장'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20.02.25 연극 -천국의 나무-
  2. 2019.06.07 연극 -만주전선-
  3. 2019.06.02 연극 -샤인, 핏대 두편-
  4. 2018.05.12 연극 -마당 씨의 식탁-
  5. 2018.03.25 연극 -아홉 소녀들(밀고 당기기)-
  6. 2017.08.27 연극 -네더 The Nether-
연극.공연2020. 2. 25.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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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두편을 보게 되었는데 전에 봤던 연극이 예상과 다르게 20분정도 더 길어서 간만에 뛰니 숨이 찬다.

간당간당하게 도착

무대전면에 보이는 저 괜찮은 그림은 무엇인가?

아~ 이제와서 느끼는것이지만 이 연극의 등장인물인 세라핀루이(Seraphine Louis)의 그림들을 좀 보고 오는건데란
약간의 후회가 된다. 시놉을 안보고 포스터만 보고 예매를 하다보니 이런 아쉬움이 가끔 발생하지만 때 늦은 후회일뿐이다.

심지어 모노드라인줄도 몰랐다

전화로 여차저차해서 자리를 바꿔야 한다길래 그러라고 했는데
예약당시엔 앞쪽 B열로 예매했었지만 황당하게도 G열까지로 밀려있더니 젠장..
최소한 앞자리로 예매를 했는데 안된다면 그에 상응하는 최대한의 앞자리를 줘야 하는거 아닌가?

멀다. 추워서 그런지 눈의 초점도 잘 안맞는 느낌이다.(노안이 이렇게 사람을 피곤하게 할줄 몰랐음)

수많은 예술 문학 장르를 이해함에 있어 반드시 배경으로 깔아야 할게 있다면
결과물속에 작자 자신의 세계가 존재한다는것이다.

그림 자체가 한 인간의 세계이다.

이건 비단 그림만 그런것은 아니다. 조각, 음악, 글, 심지어 컴퓨터 프로그래머, 각종 공학등 모든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들.
전방위적으로 인간은 저마다의 세계를 만들어 그곳에서만 존재한다.
이것은 모순되게도 전체의 세계에 포함되기 위한 인간의 몸부림의 일환이지만 결국 그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여
인간 전체 세계에서 스며들게 되지만 결국 그 끝은 자신의 공간에 국한된다.

물리적 공간으로 많이 등장하는 곳이 정신병원, 골방, 인적드믄 길
내게 이런 공간중 한곳을 선택하라 한다면 인적드믄 길, 화창한 하늘이나 검은 달을 볼 수 있는 정도를 바라고 있지만
요즘들어 나는 내 세계를 만들지 못한거 같다. 단지 그 동안 착각한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세라핀의 세계는 목동이나 가정부가 아닌 캠버스 속 색에 있었을것이다.

이 사람의 일대기를 김담희라는 뛰어난 배우께서 표현하며
이보람이란 연주자께서 그 배경을 그려준다.

이 연극을 보면서 강하게 느낀것은 세라핀의 인생보다는
비주얼강한 공연예술을 보며 내가 책을 읽고 있구나 라는 상상력이 풍성하다 못해 넘쳐흐르는 예술 한복판에 있다는 것이다.
모노드라마가 갖는 강력한 매력이긴 한데(상상력을 엄청 자극함)
소재 자체가 화가다 보니 그의 세계를 들여다 봐야 한다는 관객에게 주어지는 숙제마져 있으니
머리속이 훨씬 복잡해지면 더욱더 집중하게 된다.(매우 추상적이기때문에 전위적 느낌도 강하게 듬)

연극을 보면서 상황(작가)를 느끼고 결과(그림)를 상상하니 행복함이 느껴진다고 할까?
다만 세라핀의 일대기는 굴곡이 심한 인물이라서 내 기분에 너무 취하면 인물에 미안함이 조금 들기도 하지만
아무튼 감정에 흠뻑 젖는 연극 한편 보고 나온 기분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격한 연극을 늘 선호하진 않는다. 정신에 너무 치우치면 기운이 쉽게 빠져 금세 지쳐버리니
가끔 한편씩 걸리길 기대하는 정도 ^_^

하루 지난 지금도 아쉬웠던게, 좀더 가까이서 봤으면 더 좋았을걸이란 생각이 든다.

좀 특이하다고 해야 할지, 철저하게 세라핀 본인의 대사만 한다는 것이다.
모노드라마에서 대화부분을 표현할때 상대방의 대화 내용을 반복하여 관객이 대화내용을 이해할수 있도록 하는데
이 연극은 그게 없다. 그래서 어순이 다른 외국 문장을 읽듯 모든 대사를 다 들어야만 상황이 이해된다.
어느정도 앞뒤 정황이 있으니 대부분 감은 잡히지만 관객과 대화를 나누듯 시선을 고정하는 배우
그러나 관객은 침묵할수밖에 없으니 좀더 뇌를 자극한다. 아니 간질간질하게 한다.
애초에 상상하도록(해야하도록) 기획된 연극일까?

한명의 배우와 한명의 연주자 그리고 그 곳에 존재하는 어떤 화가
한명의 굴곡진 화가의 이(異)세계를 탐닉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출연 : 김담희, 연주 : 이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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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19. 6. 7.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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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집 정리도 어느정도 마무리 할겸해서 현충일에 연극 한편 보고, 휴가 하루 내서 이틀간 작업방 정리하고
마지막 하루는 빈둥빈둥, 계획은 제법 그럴싸하다. ^_^;;

오전에 인사동 겔러리 구경갔다가 국립현대미술관 잠깐 들러서 어슬렁거리다가 낮잠 살짝 자주고
혜화동으로 왔는데 비가 온다.
한쪽엔 카메라, 한쪽엔 가방, 한손엔 우산.. 에휴.. 바쁘다.
하지만 공원엔 사람들이 없어서 우산쓰고 공원의자에 앉아있으니 오랜만에 느껴보는 한적함, 하지만 빗소리에 적막하진 않다.

만주전선?

만주 군관 학교 장교출신 하면 유독 떠오르는 한명이 있다.
다카키마사오, 오카모도 미노루(이건 아닐가능성도 있음), 바로 박정희

이 연극에서 군관학교 졸업한 한 인물이 나오고 독립군을 처벌하겠다는 우회적 발언도 한다.

일본애들이 침략해서 그러는건 한편으로 그럴수 있다치지만 군관학교를 가라고 떠민것도 아니었는데
사람들은 한국이 독립되지 못할거라 생각한것이었을까?(모 영화의 어떤 인물처럼 "그럴줄 몰랐으니까")

일제강점기가 한세대(35년)를 넘겼으니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수 있는 세대들은 넘쳐났겠지
어쩌면 자신이 조선 사람이란걸 분하게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을것이다.

당시에 일본인들이 조선(한국)사람을 차별한다고 해봐야 일본인이 한국땅에 얼마나 있었다고
그 차별이 그렇게 싫었을까?싶은 의구심도 들지만 아마도 철저한 식민사관을 교육했기때문에
수십년간 그것을 받아드린 사람들이라면 일본인들이 차별하지 않아도 자신은 비참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지금 이 사회에서 자본이 사람들을 낙오자 취급하며 자신들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강요한다.
그리고 패배주의를 심어놓는다.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그리고 돈을 숭배하도록 만들어버린 지금과
당시 일제강점기때와 형태의 차이만 있을뿐 별반 다르지 않을것이다.

이들은 이것을 모두 표현한다. 철저하게 친일매국노의 시선으로......
등장인물 누구하나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 구성. 미개한 조선 사람, 그리고 그들을 개화시킨 일본

난 그래서 처음엔 친일매국노가 만든 연극인가?싶었다.
문화는 다양성이 있어야 하니 어떤시선이라도 피할이유는 없기때문에 매국노가 만들었던 관계는 없다.
보고 욕하고 싶으면 욕하면 되니

친일매국노 실존 인물도 나오고 당시 특정 종교를 비꼿는 느낌도 조금 있기도 하다.
(유독 특정 종교가 많이 나오고 당시엔 매국노가 많이 속해있었다고 함)

일본인들에게 핏박받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은 조선(한국)사람들을 싫어한다.
먹고 살기 어려워 보이지도 않는데,

진짜인지 모르지만 노천명은 일하는 여자가 아니면 위안부로 끌려가기때문에 일본을 찬양하는 모 신문사에 들어갔다고 하지만
이런 사유도 보이지 않는다.

이 연극을 보는 내내 찝찝했던것은 바로 이부분
이들은 일본인에게 별다른 박해를 받는 인물들도 아닌 스스로 알아서 일본인이 되고자 노력했던 사람들이란것

당시엔 이런 사람들도 많았을것이다.

문제는 별다른 이유 없이 일본인이 되고자 하는 이들을 놓고 돌을 던질수 없다는 것이고
그래서 친일매국노를 우회적으로 합리화 시키는거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해학스럽고 익살스럽게 까고 있는듯 하지만 그들의 만행은 제대로 집어내는 것은 어디에서도 볼수 없다.

단 한명 일본 유부남와 밀애를 나누다가 버림받은 한여자가 있으나 이건 당시 일본인 뿐만 아니라
한국인이라도 여자는 그 박해받던 시기다.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도 그렇고 미국에서도 여성 참정권이 생겼을 무렵임)
그래서 이건 비단 일본인때문이란 사유가 되지 않는다. 당시 남자들의 문제였을뿐

아무튼 그래서 보는 내내 찝찝함을 지울수가 없었다.
작가는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일제강점기를 미화하는 연극인가? 작가 집안에 친일매국노가 있나?
마지막 몇초의 반전같은 행위가 나오지만 전혀 뒤집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조선사람들을 최대한 깔보며 현대까지 이어져오는 저들에게 무엇을 말하려 하는걸까?
현대의 저들이 현대의 일반에게 해악을 끼치는 것 조차 그 어떤것도 표현되지 않는다.

참 이상한 연극이다.
재미있으나 대단히 냄새가 불쾌한 연극
작가는 일제 강점기시절 친일매국노들을 까고 싶은걸까?
아니면 당시 사회풍토가 그랬으니 친일매국노들은 어쩔수 없었다는것인가

배우 모두 매력 넘치던데 모두들 또다른 연극무대에서 앞으로도 계속 볼 수 있길 기대해본다.

출연 : 남호섭, 김다림, 김수진, 배수진, 윤국중, 김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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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19. 6. 2.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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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인(낭독공연)-

버지니아 공대 사건을 모티프로 한 연극인거 같긴 한데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건의 내용 이외 범인이 범행을 저지르게 된 원인은 전혀 모르는 사건이다.

그러니 이것을 어떻게 풀이하던 그러려니 하겠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영화 '사랑의 블랙홀'같이 끊임없이 시간이 반복되며 문제점을 고쳐간다.

추리,스릴러는 아니고 극중 부모(부모인가?)가 계속 회기하여 재민(극중 총격살인범)이 써놓은 희곡을 읽으며
당시의 심리를 추리한다. 하지만 관객입장에서 무엇을 맞춰야 할 것은 없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였을때 그에 관한 인과관계가 무엇이지를 찾는 내용이지만
글쎄 그렇게 끊임없이 반복해서 나오는 결론들이 과연 그때 그곳에서 총을 난사한 한 인간의 모든 심리를 대변할수 있는것인지 모르겠다.

이것은 자신(총를 난사한 범인 아닌 그의 아버지)의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인지
아니면 자식의 억울함을 풀기위함인지 모른다. 사건 자체가 너무 극단적이라서-원한관계라고 하기엔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
(극중 내용과는 다르게 실제 사건의 사건의 동기는 경제적 불평등과 피해망상이 컸다고 하지만 어느정도 믿을만한지 모르겠음)
어떻게 봐야 할 사건인지..

그런데 이걸 낭독공연이란 특이한 형태로 공연하는데
낭독공연은 1년에 한두편정도 보게 되는데 그냥 읽는게 아니라 어느정도 연기를 한다.
배우들이 영화 촬영하기 전에 대사를 서로 맞춰보는 장면이라고 해야 하나? 리딩(?)을 하는거 같이
말로는 모든 감정이 실려있지만 몸짓은 거의 없고 손에는 대사가 들려있는 형태이다.

대사를 못 외워서 보고 한다고 하면 되지 이걸 왜 낭독공연이라 하지?

차라리 프롬프터를 앞에 설치하고 두손과 몸이 좀더 자유롭게 한 후 연기하는게 낫지 않나?

순수하게 대사에서 눈을 안떼는것도 아니고 몸 움직임이 없는것도 아니고
단지 대사를 대본에서 읽느라 시선이 그곳에만 있을뿐이다. 손에 들려이는 대본에

그래서 낭독이라 하는것도 좀 우끼다.
정자세로 말에만 온 신경을 다쓴것이 아니기때문에 눈을 감고 귀에만 신경을 쓰며 감상할수도 없다.
그다지 낭독에 맞는 대사도 아니고(호흡이 그냥 말을 하는거면 남들처럼 대본을 외워서 연기를 하지 뭐하러 그렇게 읽고 있는지)

그럼에도 연기는 대단히 멋지다.
한손에 대본이 들려있는것 외엔 일반 연극과 큰 차이가 없으며 연자들 모두 연기가 일품이 아닐수 없다.
내용이 좀 심각하고 시간이 반복되며 조금씩 미흡한것들이 채워지는 구조라서 어렵진 않으나
흐름 구조때문인지 마지막 살짝 졸리운 느낌을 지우긴 어려웠다.
(연극을 보기전에 공원의자에서 수십분 졸다 왔기때문에 졸리면 이상한거였는데 45분정도 되는 연극 끝부분에서 졸립다는건 아무래도)

아무튼 이런 대사의 호흡, 이런 구성이라면 낭독공연이란 이름 붙이지 말고 그냥 연극을 해줬으면 좋겠다.

출연 : 신우, 심완준, 장기석

-핏대-

짧게 두편을 하는데
'샤인'은 올 당선작이라 해서 계속 하고
'핏대'는 오늘까지, '나의 아버지'는 다음주부터 한다고 한다.

뭐지?
그럼 '나의 아버지'를 보기 위해선 '샤인'을 또봐야 한다는건가?
3편 모두를 붙여서 다음주까지 했으면 안되었을까

특이한 구성이지만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저렴하기때문에 두번봐도 전혀 아깝지 않다.
그러나 같은것을 또 보고 싶어서 또 보는게 아니라면 두번 봐야 하는건 좀 그렇지..

그리 영화를 많이 보며 사는 사람은 아닌데 연극을 보면 가끔 뭔가와 비슷하단 기분을 받을때가 있다.

이 연극은 배경이나 기타 모든게 다르지만 이상하게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생각난다
마지막 장면때문인가? 생각해보면 그렇지도 않은데 이상하게 떠오른다.

아무튼 내용은 묘한 반전도 있고. 엽기적인 내용이 있기도 해서 그런 부분은 그리 공감이 되지 않는다.
(김기덕 감독 영화도 약간은 엽기스럽지만 이상하게 공감되는 부분이 제법 있음)

하지만 부자지간의 그 특이한 긴장감이라고 할까? 서로 경쟁의 대상이 아님에도 이상하게 아버지와 아들 사이엔 약간의 긴장이 있다.
그것을 표면으로 끌어내다보니 한편으론 나의 아버지, 어머니가 떠오르기도 하던데 한국 아버지의 무뚝뚝하지만 특이한 자식애와
자식의 표현 부족한 부모에 대한 그리움 같은것을 잘 표현해준다.(이게 이 연극의 맛인거 같음)

부모앞에선 늘 부족한 자식으로, 그런 부분은 그러려니 할수 있는데
동생에 대한 이해할수 없는 행동은 그럴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꼬맹이일때 짜장면때문에 동네 중국집에서 나 먼저 먹고 동생은 짜장면 먹는걸 그대로 두고
집으로 혼자 와버린 적이 있긴 한데 집과 중국집이 가까웠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죄책감으로 남음)

사람이 아이일때라도 감옥같은 답답함을 충분히 느낄수 있고
그것을 벗어나려 애쓸수 있지만 모르겠다. 자신은 그곳에 남고 동생을 벗어나게 한다는게
미지의 세계로 밀어버린다는게..-보통은 함께 벗어나려 하지 않나?-
(동생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서로 사건이 없이 자라진 않으니 옛 기억을 꺼내는 소재긴 함)

아무튼 엔딩 역시 좀 이상하다.

빚이 얼마였길래 오래된 트럭을 끌고 가는것일까?
장기를 팔겠다는 협박도 없다.
사채업자는 돈을 받아내면 그만이라면서 제법 인간적으로 그려놓은점도 독특하다.
(미화된 조폭영화를 많이 봤나?)

사건이 이것 저것 많고 어느정도 기억되는 괜찮은 구성이지만
무엇보다도 부모들의 무한한 자식사랑을 느낄수 있는 마지막 그들의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다.

출연 : 김명중, 이경성, 심홍근, 윤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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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18. 5. 12.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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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햇살 가득해도 모자를 판에 비가 하루종일 음산하게 내린다.
연등행사를 한다고 종로 일대 길들을 모두 막던데 이렇게 비가 와도 가능한건지
행진용 동물모형들은 비닐안에서 나올줄 모르고
많은 사람들은 연등을 들고 분주히 어디론가 이동하지만 그들이 앉아 쉴곳은 없어보인다.

비오는 날을 좋아하지만 걷는것은 번잡스러운것을 봐선. 창밖 비오는것만을 좋아하는게지

극장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데 또다른 빛공해인 손전화를 켜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눈을 감고 있어도 번쩍번쩍한 느낌이 든다.
특히 바로 옆 사람이 그러고 있다면 더욱도 잘 보이는데 이번엔 양쪽 모두가 전화기에서 눈을 못 떼니
나 역시 눈을 못 감는다. 밝기를 조절하면 사용자도 눈이 편하고 주변 사람에게도 피해를 덜 줄텐데
뭘 그리도 밝게 해놓는지.. 그러면서 블루컬러 차단이 어쨌네 저쨌네라는 말은 뭐하러 하는건지..

현대인들은 단 몇분도 가만히 있을수 없는 운명을 타고 태어난것인지
전화기에서 손을 못 떼고 있는것을 보면 한편으론 좀 안쓰럽기도 하다.

아무튼 그렇게 기다리다 시작한 연극
난 이제서야 주인공 이름이 '마당'씨인것을 알았다. -.,-;

집에 와서 관람기를 쓰려고 제목을 보는데 뭔가 이상해서 인터넷을 확인해보니
이름이 마당?
(마당에 뿌린 씨악이나 뭐 그런 의미의 제목쯤으로 생각했었는데)

아무튼 초중반까지의 흐름은 연극스럽다고 해야 하나? 만화가 원작이라는데 만화를 안봤으니
연극만 놓고 보면 음식등을 할때의 표현하는 장면이 이색적이다.
처음엔 수화인가?고민할정도였는데(수화를 모르니 정말 수화라도 몰랐겠지만)

전체적으로 연두연두(뭐라 말로 표현하기 좀 어렵고 요즘 봄날 같음)하다.
텃밭이 있는 외곽의 작은 집. 동내 사람들도 좋아보이고 부부는 더욱더 좋아보인다.

자식과 부모간의 갈등도 크지 않고
한국사회에서 흔하게 보이는 갈등정도만 보인다.

조금 더 과장됬다고 해야하나.

어떤면은 모자지간이 더욱더 돈독한거 같고 부자지간엔 반대인거 같아보이고
사건사고도 별로 없다.(배경은 사건사고가 많이 발생할거 같은데 전체적보면 없다시피함)

다만 어머니께서 몸이 아프시다는 것인데
여기서 만화와 비교가 되겠지만 만화를 모르니 연극만 봤을때
모자지간의 끈끈함은 알겠지만 그 표현을 영화처럼 적막감으로 채워넣는다.

연극에서 배우가 가만히 있는다?

극장 무대에 누워있는 어머니와 조용히 있는 자식

그리고 조용할수밖에 없는 관객

어쩌란 거지?

라디오에서 이러면 방송사고라 한다.

연극에서 이런 장면이 길어지면 자라는 의미밖엔 안된다.
(어두컴컴한곳이 조용하면 당연히 졸음이 올수밖에)

영화라면 적막하더라도 앵글의 다양화로 관객에게 감정전달을 어느정도 할 수 있지만
연극같은 경우 일정 거리 떨어져있어서 배우들의 세부적인 묘사를 볼 수 없고 보이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이곳에 아주 작은 소극장도 아니고(2층까지 있는 곳임)

병상에 누워계신 어머니앞에서 자식이 무엇을 할수 있겠냐만은
연극에서 그걸 그렇게 사실적으로 묘사한다는것은 심각한 무리수가 아닐 수 없다.

초중반까지의 느낌이 무척 좋아 오늘은 가볍에 나올수 있겠다 싶었지만
이렇게 지루한 진행이 전체의 절반가량이나 되서
연극이 끝난 후 발걸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런 부분에서 만화는 독자가 조절 하면 되는 문제라 지루함이 덜하지만
연극은 관객이 그럴수 없으니 연출이 조절 해줘야 하는데 어떤 의도였는지 모르겠다.
(관객에게 생각할 시간을 제공하려고 했나?)

초반 집 천장에 뛰어 다니는 쥐표현도 황당하고
(집 천장에서 뛰어다니는 쥐 소리를 그렇게 우렁차고 과격하질 않는데 들어본적이 없나?)

초중반의 기조 그대로 끝까지 이어가지
부모 자식간 오묘한 벽은 조금은 가볍게 다루고
부자지간의 골과 어머니의 빈자리는 깊으면서 짧은 맺음으로 마무리 해줬더라면

자잘한 재미와 부모 자식간의 숙명도 지나칠수 없는 괜찮은 내용이지만
다시 생각해도 지루하면서 아까운 연극이었다.

조금 조절해서 관람 후 가볍게 나올 수 있는 연극으로 재탄생해주길
(그냥 사라지기엔 그들의 음식 표현이 아까움)

 

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18. 3. 25.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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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를 보니 영상 10도씨를 넘고 있어서
가볍게 입고 나갔으나 바람불고 춥다.
따뜻한 봄을 기대했건만 처량한 신세 같은 하루

예상과 다르게 약간 늦게 도착해서 숨고를 틈 없이 바로 시작
(매표소에서 좀 기다리다 보니 숨가쁜상태까진 아님)

아홉소녀들이라며 남자셋 여자여섯이 나오는데
남자 셋이 여장을 하고 있다.

이럴거면 각색해서 남셋, 여여섯 식으로 하던가, 모두 여자로 하던가
아예 모두 남자로 하던가

남자가 여자역활, 여자가 남자 역활 하는것은 물리적,사회적,후천적 각인현상으로 어색함이 있어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남자와 여자의 행동패턴이 다르다보니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거 같음)

수많은 일화(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 필요한 인원들이 나와서 해당 역활하는 상황극같이 진행한다.

제목의 '아홉소녀들'이란 의미는 특별히 없어보인다.
아홉명이나 필요해 보이지도 않는다.
(인원이 줄어들면 그만큼 한 배우당 양이 많아지니 원작자가 상황에 맞췄을지도)

좀 난해한게 있을수도 있지만 내용들 자체는 차별,집착,부조리,합리화,이기주의,차별,시선등
사회에 만연화되고 있는 수많은 것들을 한가지 한가지 보여준다.

하나의 줄거리에 모든것이 녹아있는게 아니라
하나의 줄거리에 한가지의 문제점만을 표현하다보니
몇몇 내용들이 단편적으로 기억날뿐

가지수가 너무 많고 90분의 길지 않은 공연이라 한가지당 몇분정도일뿐이다.
(어떤것은 1분정도밖에 안되보이는것도 있음)
문화차이인지 알수 없지만 상황전달이 좀 안되는거 같기도 하고
(제일 앞자리에 있었으니 대사가 안들린것도 아니고 힘든 연기를 해서 숨이 찬것도 아닌데
귀에 쏙쏙 들어오는 맛이 없음)
그리고 넓은 무대를 대관해서였을까? 무대를 너무 넓게 써서 시야에서 벗어나던데
단 몇명이 나와도 양끝으로 찢어져 있으면 관객입장에선 매우 불편할수밖에 없다.
(무대 너비만큼 벌려서 써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는건지..)
가능한 최대한 좁혀서 관객이 배우에게 집중할수 있게 해줬으면 지금보단 내용이 많이 기억났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은 단순하며 과격하다.
연극이 끝날무렵 자살한 한 여자 얘기가 나오길래
전에 봤는 모연극마냥 한사람의 일대기를 여러사람들이 그려내고 있는것이라 생각했다.
(한 여성이 학생시절 겪어왔던 경험들. 고통,괴로움,괴롭힘,차별,따돌림,방탕,일탈..등)

하지만 집에 와서 관련 내용을 읽어보니 아동들의 잔인성에 대한 다큐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니
나의 생각은 단순한 망상으로 맺음된다.
작가가 겪었던 일화일수도 있지만 그런 말은 없으니 불필요한 색안경은 필요없어보인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그것 그대로 느끼면 된다.
쟤가 뭘 말하려 하는지 숨겨진 내용따위는 없다.

이러면 연극이 너무 단조로워서 재미없을수도 있는데
(이런 내용을 놓고 재미 운운하는것 역시 인간의 잔인성일까? 아니면 나의 이기심일까?)

각 극마다 고통받는 한명이 존재하는데 그것이 나 자신이라 생각하면 폭력적으로 바뀌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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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17. 8. 27.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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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8월인데 완연한 가을, 청명한 하늘이라 낮잠을 자도 상쾌한 기분이 드는 주말

포스터에 인지도 높은 배우의 얼굴이 나와서 예매하였을뿐 그외 다른 이유는 없다.
연극을 자주보게 되면 연극이 보고 싶은데 선택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싫은 날이 있다
그럴때 사용하는 방법이 인지도 높은 배우가 출연하는 연극을 보거나 오픈 런(인기없으면 문닫는 연극) 연극을 고른다.

예매한지 3주 전이라 구체적으로 몸이 귀찮았는지 아닌지는 가물가물하지만
어찌됬던 그런거 같다. ^^

초반에 좀 난해한 시작?

가상세계를 말하는건지 현실이지만 또 다른 세상을 네트워크 상에서 회원 모집을 했다는 소린지
어느정도 진행되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문제지만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궁금증이 초반에 생겨난다.
나같은 사람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하자면 초기 경찰같은 사람에게 조사를 받을때 그 외 모든 배경은 가상세계이다.
오직 조사 받는 두 인물과 한 경찰이 있는 그 공간만이 현실세계이다.

음.. 가상세계 이것이 키워드긴 하지만
좀 다른 시각으로 보자면 컴퓨터라는 세계속이 가상인지 현실인지 나는 그 해답을 아직 찾지 못하였다.
궤변이라 할 수 있지만
머리속 상상이란것도 에너지의 흐름속에서 만들어진 시공간속 에너지의 형상인데
수많은 전자/전기의 흐름속에서 탄생한 또다른 관념인 그 세계는 가상일까? 현실일까?
물론 그 속에서 사과가 나타났다고 해서 지금 세계의 사과와는 다른 성질의 사과라는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을 사과라 명명하였을 경우 그것은 사과가 된다.

이것은 허구일까?
현실의 사과와 다르기때문에?
조금더 발전하면 맛과 향, 촉감등 수많은 것을 동일하게 뇌에서 느끼게 해줄수도 있을것이다.
(지금도 인공적으로 만든 수많은것으로 이와 같은것을 만드는게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니)
그렇다면 이것도 가상일까?

머리속 과거의 기억은 모두 현실의 연속이라 진실로 여기며
전자기 속 시공간은 가상세계로 거짓이라 하면 무엇인가 이상하지 않은가

어찌됬던 이런 결론짓지 못한 공간속에서 벌어지는 인간 내면에 대한 것을 심층적으로 다룬 연극이다.

나의 상상은 범죄에 해당하는것일까?
허락된 메조히즘(피학)와 사디즘(가학) 같은것은 사회에 죄가 되는것일까?

왜 사회는 이런것을 가상세계라 칭하는 그곳에서마져 금지시키는 것일까?

이러한 것에 대한 실제 사례는 무척 많지만 일본에서 소아성애자에 대한 처벌과 만화속 속 아이 같은 그림에 대한 금지 관련 문제가 불거졌을때
일본은 그림 속 인물은 창조된 그림으로 국한될뿐 실제 아이에게 어떠한 피해도 끼치지 않는다 하여 이부분은 다르게 취급되어졌다.
(반대하는 쪽은 이런 그림을 자주 접하면 현실세계에서도 동일하게 행동하려 한다고 주장하지만 구체적인 증거를 찾기엔 어렵다고 생각됨)

반면 한국은? 음란물이라면 전방위적으로 모든것을 차단한다.
18금 딱지를 붙이는 기준도 모호한 지들 멋대로 포르노와 성인용를 구분짓는데 그 행태를 보고 있자면
우끼고 건방지고 병신같은 제도가 아닐 수 없다.
(포르노를 불법이라 하려면 지금 지상파에서 성코드를 내세우는 모든 컨텐츠부터 없애라)

이러한 것이 가상세계라는 또다른 세계속에서 벌어지고 있다면 이것은 없어져야 하는것일까?
아니면 현실세계에서 벌어지지 않으니 그냥 둬야 하는것일까?

다양한 욕구를 거부당하고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
누구에게도 피해를 안주며 추구하던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세계
그래서 그 세계속으로 걸어들어간 사람들, 그들에게 과연 돌을 던질 수 있는것인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간음(마5:28)이라고 모 종교에선 말했던가?
생각조차 안하는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움에서 벗어난것이라 생각 해보진 않았을까?
(일부종교의 이런 틈 없이 조건을 내세우는것이 보기 싫을때가 종종 있음)
생각은 할 수 있으되 그것을 실행하지 않는 인내를 갖는것, 그것이 고등생물로서의 가치가 아니던가?

이 연극은 이러한 것을 날카롭게 표현한다.
어느것이 옳다 그르다를 칼로 자르듯 나누지 않으나(관객이 생각할 수 있는 여분을 남겨둠)
상상은 상상일뿐 사회에 어떠한 피해도 주지않는 쪽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는 머리속 세계도, 네트워크상의 세계도 가상이란 답을 얻지 못하였기 때문에
확실하게 손을 들지 못하지만 적어도 사회의 구성원은 일률적이지 않다는 것이며
이 수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이상, 많은 구멍들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탈출구를 제공하지 않으면
그 사회는 붕괴할 수 있다고 믿는 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연극 속 가상세계는 그들에겐 필요한 공간이란 입장이며
사회를 관리하는 기관이 파괴할 권한은 없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반대인 사람들도 많이 있을것이고 이러한 다양성이 존재하고 존중받는 사회를 건강한 사회라 할 것이다.
작가가 주장하는 것이 이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렵지 않지만 깊은 생각을 해볼수 있는 연극
몰입할수록 재미있지만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몰입이 된다.

일부에서 조금 발음이 새는 경향이 있어서 놓칠때가 있지만 크게 문제안되며
무척 매끄럽고 날카롭고 잘짜여진 연극인거 같다.

몇일 안남았으니 시원한 가을 이런 연극 한편 봐보는것도 좋을듯 싶다.
그리고 왠만하면 앞자리에 앉기를 추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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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