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공연2026. 3. 8.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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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애리명창의 춘향가 완창을 국립극장에서 본게 언제인가 찾아보니 2018년 4월이었다.
난생 처음 완창을 직접 들어본것이고(그 전까진 음반으로만) 장장 6시간의 공연을 처음 본것이기때문에
행복한 고행같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이때를 시작으로 이후 몇년간 국립극장에서 하는 판소리 완창을 열댓번 듣게 되었지만
이렇게 한나절이나 하는 판소리는 없었다. 관객도 힘들고 창자도 힘들어서일텐데
박애리명창께서 심청가로 다시 나왔다. 기대 되지만 문제는 5시간이라는 엄청난 공연시간.

12월에 하는 판소리 완창은 여럿이 나오기도 하는데 2시간 남짓. 길어도 3시간정도인데
무엇도 빼놓는게 아쉬운듯, 풀 버전을 관객들이 충분히 감상하실 수 있는 여유로운 템포로
공연하는데. 처음에는 '어! 그 동안 듣던 것 보단 좀 템포가 느린데? 아직 목이 안풀려서
천천히 하는것인가?' 싶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분들이 조금 빠른 템포로 진행한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정도로 각 대목마다 들어있는 주제와 함의를 천천히 음미할 수 있는 뛰어난 구성이었다는 생각이다.
한국에서 춘향가와 심청가가 가장 인기 있다곤 하는데, 춘향가 같은 경우는 1995년 김소희 명창의 녹음본을
무척 좋아한다. 너무 슬프기도하고해서 잘 듣게 되진 않지만 아무튼 왜 춘향가를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충분히 느낄수 있지만 심청가는 솔직히 그렇게 느끼진 못했었다. 왜냐하면 아버지를 위해 인신공양을 한다는게
한국사에서 없던 일은 아니라고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조금은 과한 설정이 아닌가 싶어서였다.
그리고 김소희 명창께서 부른 춘향가 만큼 귀에 쏙쏙 들어오도록 부른 명창도 없었다.
(그 동안 몇번정도 공연과 음반을 들어봤지만 대부분은 창 특유의 뭉게지는 발음은 그 속에 빨려들지 못하게 하는
크나큰 장벽중 한가지로 나가왔다.)

그런데

오늘 나는 심청가가 왜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지 그것을 알게 된거 같다.
장장 5시간 중 한시간정도 빼면 모든시간에서 눈에 눈물이 마를 시간이 없다.
이게 이렇게 슬픈 극이었다고? 시작부터 이렇다고? 춘향가는 초반부터 3분의1까지는 꽁냥꽁냥 핑크빛 물결이라
그렇게까지 애잔하지 않은데..(이 후 부터는 너무 슬픔의 슬픔의 슬픔)
심청가는 뭘까? 애초에 가난간 심봉사에 곽씨와 결혼해 곽씨는 생고생을 하다가 힘들게 자식을 얻었지만
자식 젖 한번 못 먹이고 죽은 엄마의 이야기. 그를 너무 슬퍼하는 심봉사 이야기로 시작하니
아니슬플수가 없는 시작이다. 이것을 약간은 느린 템포로 조곤조곤 또렷하게 관객 귀에 찔러대니
가슴이 안 흔들릴수가 없다. 창이나 노래란게 그 음률에 감정을 얹어 전달하기때문에 대사만 읽는다고
그 감성이 전달되진 않으니(구전문학의 특징이라면 특징) 대사집은 판 소리를 다 들은 후 읽으면
당시의 창자의 노래가락이 함께 오버랩되서 그 감정이 잘 살아나지만 이번엔 구입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조금 후회된다. 이런 감동이라면 다시금 꺼내고 싶을때가 있을텐데 그 그림자(대본)가 없다니.

기분일까? 한시간쯤 지나서부터 박애리명창의 목소리가 달라진게 느껴진다.
좀더 뻗어나가며 고음도 전보다 날카롭게 찢어내는거 같고.
소리꾼들은 한시쯤 불러야 목이 풀린다더니 정말 그런거 같다. 처음보다 훨씬 시원스럽다.
처음엔 '생각보다 목이 달라졌는데 연습을 너무 해서 그런건가'란 생각을 했지만
그럼에도 슬픈대목이 슬픔으로 밀려오는걸 보면 평생 소리를 공부한 사람들의 내공은
어떤 상황에서도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수행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노래방에서 혼자 한시간 노랠 부르면 목이 쉬어서 말 하기도 어려운데 이때쯤 되야 목이 풀리다니)

심청가는 해학스러운 부분이 심청이가 죽은 후부터나 좀 나오는 약간은 특이한 구성이다.
보통 문학에서 보면 이렇게 긴 시간 애환을 쌓아가는 장르가 있나 싶을정도로 좀 심하게 뒤흔다.
무엇인가 사건의 전개가 물 흐르듯 고저가 있으면서 점차 발달하다가 폭발하듯 터지고 마무리 되게되는 그런것이 아니라
끝도 없이 계속 슬프다. 각 대목별로 마무리가 있지만 다음 대목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된것이 아무래도 예전에는 한번에 모두 부르는 공연이 아니라 각 대목만 불러왔기때문에
그 대목에서 기승전결이 모두 이뤄져야 해서 그런것이 아닌가싶다.
그러다보니 어미가 죽기 전에 심청이를 안고 말하는 독백도 미치게 슬픈데
심봉사가 장례를 치르는 상여소리부터 모든 부분이 또 그렇다.

대부분 이렇게 몇 대목이 하나의 공연 시리즈 처럼 구성되어 있어서
슬프고 슬프고 또 슬픈 그런 이상한 예술 장르가 된것이 아닐까.

각색해서 나오는 요즘 공연들을 보면 이런 반복되는 플롯을 좀 바꿔서 나오는거 같긴 하는데 이 감성이 고스란히 오는거 같진 않다.
각 단원마다 주제가 조금씩 달라져서 그런것일수도 있고 현대에 잘 적응 못하는 문학일수도 있고.

고수는 세분이 나눠서 북을 잡지만 소리는 단사람 소리꾼 박애리만이 그 자리를 지킨다.
이게 좀 묘한 감정이 드는게. 한 사람이 장장 5시간을 혼자 고군분투 하는 모습을 곁에서 보고 있자면
힘듬이 전달되어 측은함이 생겨나서 위로해주고 싶고 기운을 불어넣어주고 싶어진다.

한시간정도 지나 목이 풀리고 서너시간 지나면 목이 지쳐지는게 느껴지는데 관객이 해줄 수 있는것은
박수밖에 없다. 한 대목 한대목 끝날때마다 힘차게 박수갈채를 보내는것이 전부.
이럴때 내 박수가 저 사람을 벼랑에서 떠미는게 아닌가?란 죄책감도 생겨난다.
'좀더 힘을 내서 내게 좋은 공연을 보여줘'라는 잔인한 아우성같은 박수소리들.

한 자리에서 한번에 판소리 한바탕을 완창하는 공연은 다른 공연과는 다르게
외로롭고 힘겨운 고단함이 관객석까지 전달되어 애처로운 심정이 공연장에 가득차는 예술이다.
이래서 공연 막바지엔 특이하게도 절정의 끝을 달려간다기보단
이 고행의 끝이 보이는 환희? 희망? 같은 관객과 창자가 함께 달려가는 묘한 일체감이 느껴진다.
고진감래, 동병상련과 비슷한 감정이라고 하면 되겠지.

이렇게 힘든 공연을 보고 나오면 다음 완창 공연을 또 볼 수 있을까? 란 걱정도 되지만
그럼에도 아니볼수 없게 만드는게 이런 가슴 벅찬 감동을 한번으로 끝내기엔 인생이 섭섭하니
다음 공연을 기다리지 않을수가 없다.

각종 매스컴이나 예전에 봤던 춘향가완창때는 몰랐는데 박애리명창께서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는 느낌을 받은 대목이 있다.
판소리란게 창자 의도에 따라서 각 대목에서 내용을 좀 늘리기도 하고 빼기도 하면서
분위에 맞게 조절하기때문에 같은 판소리라도 공연시간이나 창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판소리 자체가 엄청 길기도 하니 소리꾼 기억의 왜곡으로 한대목 빠뜨릴수도 있을수 있고 이것을 부드럽게 넘기는것도
소리꾼의 역량이라고 보는데 박애리명창은 이걸 용납하지 않는다. 심봉사가 맹인잔치가다가 옷을 모두 잃어버리고
한탄하는 대목이 실수로 빠진거 같은데 즉시 관객에서 상황을 설명하고 되돌린다.
보통은 이렇게 안하고 슬쩍 넘어가기 마련인데 이렇게까지 한다니. 이 분에게 이 무대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었을까.
딸이 관객석에서 엄마의 공연을 보고 있다곤 하지만 딸이 모두 외우고 있진 않을텐데.
엄마의 완벽한 공연을 보여주고 싶었던걸까?
아니면 창을 가르쳐준 스승들에게 이렇게 성장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던걸까?
이도 아니면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일까?
자신의 실수를 되돌려 관객들에게 충분히 설명하는 모습이 그러지 않은 사회에 던지는 일침같아서
다른 형태의 감동이었고 한 예술가의 인생을 이 한장면으로 상상하며 설명되는거 같았다.

구슬픈 특이한 한국의 노래들. 재즈도 흑인들 사회의 애환이 담겨있다고 하지만 남의 문화기때문에
깊이 와닿기 쉽지 않은데 내가 태어나서 평생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곳에서 녹아있는
소리 속에 담긴 정서는 어쩌면 한국사람들만이 느낄수있는 고유하고 독특한 문화일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보는내내 외국 사람들이 이 말도 안되는 서정적 감정을 자연스럽게 체감할수 있을까.
재즈가 내 일부로 다가오지 않듯 판소리도 외국인들에겐 한국에 쏟아지는 자외선을 보호해주는 로션정도로 다가오겠지.

고된 무대라 며칠 더 해달라는 말 조차 말하기 힘든 한국만의 특이하고 고유한 공연예술이었지만
몇번이고 다시 보고싶은 너무 아름답고 훌륭한 무대였다.

소리 : 박애리
고수 : 김청만, 이태백, 전계열

-추신-
박애리 명창의 6시간 춘향가 완창 무대를 다시 보고 싶은건 욕심이지만 다시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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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6. 2. 28.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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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로라는 뜻이 '우리 로봇'이라고 한다. 그렇게 와닿는 말은 아니지만 이름을 지을때
간단명료한것이 좋으니 나도 생각나는대로 짓다보면 이런게 되지 않을까.

영화'바이센테니얼 맨' 또는 '아이 로봇' 같은게 겹쳐진 (좋게 말하면 오마주 나쁘게 말하면 표절)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엄밀히 보면 이 영화들같이 멋지고 아름답게 표현되진 않는다.

요즘은 연극 소재로 사용이 줄긴 했는데 예전엔 달동내의 소소한 사건들 스토리가 많았다.
아무래도 사람들간의 자잘한 사건 사고들은 사람들이 서로 엉켜있어야 발생하는거고
그 곳에서 인류애같은것도 생겨나는거니 많이들 사용했고 작가 자신의 과거 향수일수도 있고
이 연극은 그런 자잘한 사건들 속에 로봇(우로)이 껴들어서 사건을 해결한다는 것정도이다.

그런데 작가가 로봇에 대한 이해가 좀 떨어지는지 로봇과 휴머노이드 로봇과 다르다는듯 설명을 한다.
당연히 같은거고 휴머노이드는 그냥 사람같은 사람 친화적으로 외형이 생긴 로봇일뿐 그냥 로봇이다.
물론 로봇으로 나온 배우도 사람처럼 생겼으니 당연하다.(사이보그-로봇이 사람과 융합된 형태-와 헷갈렸나?)

그리고 내용상으론 로봇이 장장 3세대까지나 나왔는데 사람들은 1세대 로봇도 낯설어 한다.
3세대까지 연구실에서만 존재했던 사회에서는 환상속의 로봇이었나. 아무튼 뭔가 전체적인 설정이 어설프다.
그래서인지 SF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우로의 성장드라마 같다.
아직 미성숙한 단계에서 점차 인간사회의 형태를 익히면서 그들의 일원이 되가는
물론 로봇의 설정 특성산 사건 사고는 다 해결한다. 그렇게 뛰어나 보이지도 않고 뛰어남을 몸소 보여주지도 않지만
말로 모든것을 해결한다. 이런점이 아무래도 영화와는 다르게 표현될수밖에 없다.
그래서 SF 연극은 조금은 논리적으로 끌고 가야 하는데 그런 면을 전혀 볼순 없다. 달동내 소박한 스토리의 미래형이랄까?

사건사고도 이모부의 바람(오해), 딸의 임신과 이혼, 엄마의 꿈 등 드라마 소재로 많이 사용되는 것들뿐이다.
여기서 우로(로봇)는 가정부, 말동무(벽보고 말하는거 같다고 하니 실패), 고민해결사 같은 걸 하지만
냉랭한 처리 외엔 없다. 오히려 우로의 친구 애로(로봇간에 오프라인으로 왜 만나야 하는지는 모르겠음)를 만나서
인간 사회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도 하지만 이것도 너무 인간같아서 저들이 갸우뚱거린다는것 자체가
아이들의 호기심에서 나오는 갸우뚱거림과 다르게 보이진 않았다.

이 연극이 빛을 내는 부분은 SF적 서사가 아니라
코믹디가 깊게 박힌 요소들에 있다. 춤, 순간순간 치고 나오는 묘사, 대사, 리듬, 환경 등
전체적으로 코미디를 벗어나지 않는다. 드라마 요소가 다분하지만 전체는 그냥 코미디다.
그래서 아예 분위기를 확실하게 올려놨으면 관객이 웃기 시작하는 시간이 훨씬 짧아졌을텐데
아쉽게도 중반 이후부터나 웃음소리가 많이 들리기 시작한다.
관객들 구성은 분명 연극계 친분이 있는 사람들(선후배?)이 엄청 모인거 같음에도 그러했다.
무엇인가 템포가 약간은 웃어야 되나? 싶다가 말다가. 엄밀히 따지만 그런 매 순간에 다 터져야 하고
작가나 배우는 모두 그것을 바랬을지 모른다. 이래서 장르가 코미디면 연극 시작전에 분위기를 충분히
띄우고 시작하는 것일텐데 이 극은 그게 미흡했다.
(협찬이 있으면 선물이라도 좀 주면서 하던가. 없다면 막대사탕을 선물로 퀴즈라도 내던가)

그리고 빈약한 줄거리는 역시나 90분밖에 안되는 길지 않은 연극임에도 막판엔 지루함이 찾아온다.
코미디의 한계일수도 있고 소재의 식상함이나 전개의 따분함 등
막판에 이상한 신파같은 루즈함도 있다. 왜 이런요소를 넣었는지
(몇몇 부분이 좀 타이트 해지면 80분 미만으로 끝날거 같은 내용면으론 참 그저 그런 극임)

특이한점은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대단히 훌륭하다는게 이 연극의 특장점인거 같다.
엄청 젊어보이는 배우부터 나이좀 있어보이는 배우 모두 정렬적이며 어색함을 찾아볼수 없고
우로와 엄마(김성희)는 모든점에서 뛰어난 연기라서 관람하는데 별 내용 아니라도 자연스럽게 집중하게 된다.
사운드 좋고 소극장이지만 객석도 훌륭했다.

뭔가 재미 있으면서도 지루하고 웃기면서도 하품이 나오기도 하는
그래도 이정도면 따뜻한 초봄에 충분히 볼만한 연극이었다.

출연 : 김석, 태보라, 마수현, 김진영, 함태현, 황예진, 김민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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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6. 2. 21.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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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느끼지만 혜화당의 관객석은 손을 크게 봐야 할거 같다.
의자 쿠션은 다 죽어있는 상태이고 휘청휘청, 너무 낮아서 다리가 뜨다보니
엉덩이 뼈로 계속 앉아있어야 해서 너무 아프다.
이 상황에서 연극이 끝나니 너나할거 없이 이곳 저곳에서 엉덩이가 아프다고 아우성.

극장 운영이 어려우니 이런 허접한 관객석을 유지하겠지만
당근이나 중고나라에서라도 좀 구하거나 쿠션이라도 위에 붙이거나 하지않으면 안될상황으로 보인다.
(요즘 이런 허접한 의자를 써도 위에 두꺼운 쿠션을 덧대는 소극장도 좀 있음)

코로나가 끝난지 벌써 4년이 되가고 있지 않나?
끝났다기보다 마스크 의무 착용을 안한지라고 해야 맞겠지. 요즘도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은 흔하다
코로나때문은 아니고 공기가 안좋다거나 독한 감기가 유행이기도 하고 나 같은 경우 비염때문에 착용하는 편이다.

연극 배경이 코로나 한창때보단 한풀 꺾인 무렵인지 마스크를 안쓰고 공원 산책도 하고 그런다
결혼식장 하객 제한을 둔 편도 나오니 한창때인 시기도 있다.

전체 여섯편의 각기 다른 짧은 연극들이 붙어있다.
작년에 할땐 아홉편이던데 왜 3개를 줄였을까. 1,2편으로 나눠 공연하는게 부담스러워
여섯편만 추려내서 한편의 공연으로 만들려 했을거 같은 기분이다.

제목만 좀 나열하자만 '새벽,호모마스쿠스','순대만주세요','숙주','우리는만나지않았다',
'사랑할수없는사랑에대한극적소고','파인다이닝' 이렇게 인데
서로 연관성은 없고 코로나 때를 배경으로 한다.
아마도 여기서 코로나가 어떤 원인제공이 된것은 '순대만주세요'정도일것이다.
코로나가 한창일때 결혼식 하객 제한을 해서 생겨난 예비 부부의 갈등을 다루기때문이다.
그 외에는 코로나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냥 코로나 시기에 벌어진 일상적인 일들이였다.
골이 깊어진 부부, 연인, 우연한 만남 등 그냥 그렇고 그런 내용들이다.

검색을 해보면 2022년도에 희곡집이 출판됬던데 이때라면 코로나로 인해 독한 사건사고들이
많았을거 같고 그에 관련된 내용들도 많았을거 같았는데 내용은 역시 드라마를 벗어나긴 어려운거 같다.
(이때 이런 주제로 좀 쌔게 만든 연극도 있었음)

연극들 자체가 워낙 짧기때문에 집중 좀 하려하면 갑자기 암전이 되면서 끝난다.
짧아도 너무 짧다. 그렇다고 기승전결이 없는건 아니지만 너무 압축해놔서
개콘을 보는 느낌정도랄까? 어떤 감동이나 여운, 생각 따위를 할 여유가 없다.
바로 다른 주제로 넘어가고 서로 연결성 자체가 전혀 없기때문에 바로 머리속을 비워야 한다.
코로나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주제를 좀 연결하는 기획으로 각각 작가를 붙이면
여러편을 보더라도 심리적인 여유가 있었을거 같은데 그럴 결흘이 없다.

한 작가가 일생동안 쓴 단편들을 모아놓고 한번에 공연하면
작가의 일관된 세계관이 투영되기때문에 완전 다른 내용같아도 그 속에서 연결된 고리를 찾을수 있는데
이건 작가와 연출이 모두 다르고, 배경만 툭! 던져놨는지 그냥 쌩판 다른 연극일뿐이다.
옴니버스형식은 그래도 굵직한 하나의 주제를 통일시키는데 어쩜 이리도 따로노는지.

그래서 100분이 정말 순식간에 지나가고 머리속에 남는것도 하나도 없는 킬링타임용 연극이었다.
(킬링타임용 연극이라니. 좀 모욕적인가?)

볼만은 했는데 기억에 안남고 코미디도 아니라서 스트레스 해소가 됬던것도 아니고 그럴만한 내용도 아니었고
멜로는 있지만 여섯편중 코미디 장르는 없다. (상황이 암울한데 코미디로 승화하기엔 쉽지 않겠지)

이런 펜데믹은 또 다른 형태로 우리 사회에 계속해서 발생할테니
비슷한 시리즈가 계속 나오는것도 재밌겠단 생각이 문득 든다. 요즘같이 주식시장이 난리통이라면 이때 많은 일들이 생겨나고
언젠가 또 다른 바이러스가 한국을 강타할수 있고, AI 로봇들이 인간사회를 뒤집어놓을수도 있으니
그런 굵직한 배경을 바탕으로 시리즈로 나오면 매년 찾아서 보는 맛이 쏠쏠하지 않을까싶다. ^_^

출연 : 이준우, 전해리, 안수민, 황원규, 곽지유, 정진호, 도경, 강여정, 송은지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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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6. 2. 7.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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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처음 선보이는 토크쇼형식의 판소리 공연으로 사뭇 기대가 되긴 했는데
아무래도 진행이 매끄러운 TV토크쇼에 익숙해져있으니 조금은 거칠게 느껴진다.
시범적으로 한번 진행하는것인지 구체적으로 알순 내부 사정을 알순 없지만
계속 정규 편성을 하게 된다면 점차 좋아질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대화라는것만 놓고 봤을때이고

두 출연자 모두 이쪽 분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분들로 공연의 품질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분명히 의자에서 일어날때는 힘겨워 하는 모습이 역력한데
소리를 시작하면 그 힘겹던 모습은 오간데 없이 젊은이들 못지 않는 엄청난 파워가 뿜어져 나온다.
이것이 공연예술가들의 힘일까? 이들에게 무대와 관객은 생명이나 다름없어보였다.

김일구명창께서는 아쟁같은 악기도 출중한 능력의 지니고 계셔서
악기 연주를 하면서 관객과 은연중 밀땅을 하시며 즐거워하시는 모습은 오랜 시간 노력한 자만이
누릴수 있는 특권같이 보였다.

적벽가, 심청가 한대목과 민요 그리고 마지막에 창극 춘향전의 한 대목을 부부께서 함께 공연하는데
개인적으로 이부분은 무척 인상깊고 감동적이었다.

판소리와는 다르게 창극은 연기의 비중이 높은 공연인데 나무꾼역을 맏은 김영자명창께서는
완전 다른 사람처럼 젊은 현역 배우 못지 않은 역동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이몽룡 역인 김일구 명창께서는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눌때는 부부의 대화가 좀 서먹서먹 하던데
창극에서는 어쩜 그리도 찰떡같은지. 평생 광대의 인생을 살아온 한 부부의 결정체를 보는 기분이어서
공연 막바지에 깊은 울림을 선사한 공연이었다.

좀 아쉽다면 두분 연세가 연로하시니 앉았다 일어났다 할때 힘겨워하는 모습에 나도 힘들다고 할지
꼭 바닥에 앉아야만 공연이 가능한건지. 테이블위에서 아쟁연주를 한다거 하는건 불가능 한것일까
아니면 바닥에서 일어날때 전동의자같은것으로 연주자가 힘들지 않게 일어날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장치를
고민하면 충분히 가능할것도 같지만 아직 한국에서 예술인에 대한 이런 배려까지 생각할 여력은 없는거 같다.

그리고 관객들의 추임세는 흥을 돋우니 좋지만 바로 옆에서 추임세를 큰소리로 질르듯 넣을땐
옆에 앉은 나로서는 대단히 거슬릴수밖에 없다.
좀 작게 추임세를 넣어도 다 들릴텐데 비명을 지르듯 큰소리를 내면 좀 그렇지 않을까.

이부분을 우리 마당놀이 문화에서 어느정도 해결해야 할 숙제같은 부분으로 보인다.
분명 관객과 소통의 한 부분으로 괜찮을수 있지만 현대 공연 구조는 이게 좀 맞아보이진 않는다.
(추임세를 넣는 분들은 아무래도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분들이 많아보이는데
이런 분들은 좀 앞자리에 배정할수 있도록해서 공연하는 분들도 신나고 일반 관객도 놀라지 않는 구성이 어려울까?고민이 된다.)

이틀간 공연인데 왜 다른 구성으로 만들었을까?
평일 공연을 보기 위해 일반인이 두번이나 시간을 뺄 수 있다고 생각하는건가?
다회 공연을 하더라도 레퍼토리는 같게 하는것이 기본중의 기본이다.
무슨 판소리 축제로 매일 매일 다른 인물이 나와서 다른 공연을 하는것도 아니고
같은 명창이 나오는데 다른 구성을 만든다는것은 어이없는 것이다. 이것은 힘들게 시간내서 보러온 사람을
반쪽만 보고 가는거 같은 찝찝한 기분이 들게 하는 이상한 구성은 좀 지양했으면 좋겠다.
왜 국악은 이런 형태로 자주 공연기획을 하는지

이번 계기를 통해 예술인들의 진솔한 얘기도 들어보고 공연도 보고
이런 무대는 국립극장보다는 국립국악원의 풍류사랑방 같은곳이 딱 적절한 무대인거 같은데
(국립극장 하늘극장은 토크쇼를 하기엔 좀)
이번 한번으로 끝내지 말고 계속 정기적으로 하는 공연이길 기대해본다.

소리 : 김영자, 김일구
고수 : 김태영
사회 : 유은선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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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6. 1. 1.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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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하남에 있다는 것은 서울에서 하는 평일 저녁 공연을 보기쉽지 않다는 의미일 수 있다.
오후 7시 30분 공연이고 서울 중간쯤 위치한 남산의 공연장 하지만 하남에서는 2시간이상 걸린다.
그럼에도 이렇게 계속 본다는건 갈땐 괴로워도 공연이 끝나고 나올땐 흐믓하기때문이겠지

2025년 마지막 날의 공연이니 조금더 기대됬다.
저들은 프로기때문에 특별한 날이라고 공연이 더 좋다거나 하면 안되지만
아무튼 관객입장에서 기대하는건 어쩔수 없나보다.

'어질더질'의 뜻이 소리꾼들이 이제 지쳤으니 그만하고자 할때 하는 말이라는데
실제로 들어본 기억은 없다. 마무리를 위해 이쯤에서 2025년 국립창극단 공연은 끝이란 소린지
2025년까지만 창극단 단원생활을 하는(정년퇴임 두명, 자발 퇴사 두명)사람들의 끝이 있어서 하는 소린지
(이 공연을 이번만 한것은 아닐테니 그냥 한해를 마무리 한다는 의미로 보면 될듯)

한국에서 국립이 운영하는 극단은 몇개나 되는걸까? 인원수도 제법 많아보이는데
각 지역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예술단체를 모두 포함하면 제법 사람들이 되지 않을까?
특히나 한국에서 국악은 인기가 무척 없기때문에 국가가 운영하지 않으면
진작에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오늘 정년 퇴임을 맞는 두명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걸까?
선생으로서 예능인으로서 나머지 생을 지금과 같이 살아갈수 있는걸까?
그렇다고 정년을 늦추자니 젊은 세대들의 자리가 없어지고.. 참 난감하다.
당사자들은 더 하고 싶었을지도 모르는데. 강제로 나가야 한다니..
(외국은 일본정도 그 외 나라에는 법으로 강제한다기 보단 연금 수령년도와 연계와 강제 퇴사 금지정도)

아무튼 공연은 사랑, 운명, 해학, 악, 비극 큰 주제를 놓고 여기에 해당됬던 창극들의 한 대목들을
발취해서 공연을 한다. 그래서 제법 가짓수가 된다. 이중에 내가 본건 몇편 안되는거 같다.
창극단이 이렇게 많은 공연들을 하는지도 몰랐지만 목록을 보면 관심이 가는 창극이라 하면
만신 정도가 좀 보고 싶다는 정도랄까..(2026년도 하려나.)

창극 갈라쇼같이 주제에 맞는 부분들을 선보이는데 시상도 한다.
물론 어느정도는 쇼의 형식정도로 보이는 수준으로 별 신경은 안쓰이지만
시상식 구조를 선호하지 않다보니 마지막에 떠나는 이들에게 공로패정도 주는건 그거려니 하겠는데
(내 돈내고 완전 타인이 상받는걸 왜 봐야 하는지 이해를 못함. 상을 내게 준다해도 입장료를 낸다그러면 안갈듯)
주제마다 시상식과 해설자가 나와서 일일히 호명하는 등 불필요한 일들을 전체 공연시간의 절반가량이나 할애 한다.

이런 구조였다면 나는 6만원이 받는 이 공연을 보진 않았을것이다.
보아하니 관객들도 다들 동종업계에 있는 사람들이 주류인듯 보이기도 한데
동내 잔체에 시간과 돈 내가면서 이래야 하나 싶은 감정이 들기도 했다.
전에 관람 한적있어서 있던 공연들은 중간 토막만 선보여도 맥락을 알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것들은 상황을 알 수 없다. 게다가 창극이니 느낌도 달라서 해당 공연을 보지 않은 경우라면 더욱더 난감할거다.
그래서 갈라쇼같은건 많이 유명해진 넘버들이 주로 나오는게 아니겠나. 그래야 관객들도 함께 즐길수 있으니
내가 이들 공연을 거의 보지 못했기때문에 앞뒤를 상상으로 만들어가며 5분정도 되는 중간토막을 봐야 했다.

연말에 자신들만의 잔치를 왜 비싼돈 주고 보러왔나 싶은 생각이 조금은 들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왜 이런 공연이 6만원이란 적지 않은 돈을 받는걸까?라는 생각도 했다.
차라리 100%초대권으로 관계자들만 초청해서 시상식 하고 관련한 짤막한 관계 공연하는 형식으로 하지.
그리고 유튜브같은곳에서 실시간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면 다 같이 즐기는게 아니겠나.

내년에도 또 같은 공연을 할거라면 시상과 관련된 맨트는 전체 포함해서 10분이내로 끊자.
2시간 공연이라며 1시간을 시상관련으로 영상시청과 해설자 이야기가 차지하는데
이럴바에 공연시간은 1시간 먼저 하고 이후 1시간 시상식(볼 사람만 보는거로) 이런식으로 하던가
그리고 이렇게 길게 시상 할거면 관람료는 받지 말자.
자신들의 잔치에 엄한 사람들 주머니 털지 말고 그냥 초대권으로 알아서들 하던지 하시고
완창판소리 공연같이 이 가격-너무 저렴-에 봐도 되나 싶은 공연도 있지만 이번같은 공연은 돈 아까워 본전생각이 날정도였다.

그런데 '송년음악회'라고 하지 말고 '송년창극회'라고 하면 안됬나? 창극도 음악이긴 하지만
극에 가까운 것을 놓고 왜 '음악회'라고 붙인걸까?
엄연히 설명이 있었음에도 나는 왜 판소리 유명한 대목들, 단가 같은것을 들을거라 기대는 또 왜했을까? 에휴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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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5. 11. 8.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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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무용을 전혀 이해못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공연을 본다는 것이 맞는지 때로는 의문이 든다.
그럼에도 계속 보려고 노력은 하지만 역시 어렵다.
프로그램을 1층에서 나눠주는데 있는지를 몰라서 아무런 사전지식이 없는 상태로 보게 되었다.
국립극장 예매 페이지에도 상세한 설명은 없었기때문에 더욱더 모르는 상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만
크게 불안하거나 불편한 기분은 없었다. 무용이란게 무엇인가를 예술로서 형상화하는 것이니
보면 알겠지라는 막연한 오만함과 나태함 그리고 더 이상 무엇인가 할 수도 없었기때문에
편안하게 받아드리자는 심정으로 보기 시작

총 세명의 안무가가 각 한편씩 총 세편으로 구성된것이고 서로 연관성은 없어보인다.
처음은 죽 페스(Festival of Dance & Goodbye)인데 필멸의 존재로서
수많은 철학자, 예술가들이 논한 바로 그 장르 죽음에 관한것이다.
이 작품에서 전재는 사후에 무엇인가 있다는것인지 단순히 망자를 위한 장례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준것인지
무용을 보면서는 전혀 알 수 없다. 사람이 생을 다한다는 것이 축제가 되려면 사후 세계가 있어야 하는데
동서양을 불문하고 모두 있다고 거짓말을 하지만 문제는 누구도 갔다가 온 사람이 없다는것이고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또다른 세계로의 탐험이 낭만적인 서사는 아닐거라는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래서 떠나가는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사이에서 축제보다는 한국처럼 상여소리 같이
값지게 보내주고 남겨진 자들은 그 시간만큼은 충분히 슬퍼해주는 것이 상황상 가장 적합한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입장에서 이번 무용은 확실이 이해하기 어려웠고 무엇을 나타내고자 하는지 무용의 무지함으로서
거의 와닿는것은 없었다.(주제 특성상 꺼져가는 한 인간의 희노애락이나 남겨진 자들의 숙명같은 무엇도 크게 느껴지진 않았음)

단지 저들의 무용속에서 힘겨움같은것과 막판엔 정말 축제같은 분위기긴 했는데
나는 이것이 어떤 생명의 탄생과 고난의 과정을 지나 해탈같은 흐름의 순환이 아닌가란 느낌을 받았다.
생명의 순환의 의미로서 축제라고 한다면 충분히 설득력 있는 무용이었다고 보여진다.

두번째는 옷(Beneath the cloth)인데 시작할땐 신선한 물속의 묘사에 놀랐었다.
옷걸이가 낚시 바늘이었는지는 몰랐지만 아무튼 해초같은 그 풍경은 상상을 너무 자극해서 다시 보고 싶은 장면이다.
그 이후부터는 잘 모르겠다. 수많은 옷들. 그것을 고르고 있는 어떤 존재들. 상호 연계가 되지 않아보이긴 하는데
주제가 단순해서 표현이 더욱더 난해한것일까. 시간이 흐르고 저들은 끊임없이 갈망하고 무엇엔가 쫓기듯 괴로워하기도 하고
웬지 기뻐했던 기억은 나질 않는걸 봐서는 옷이라는것은 나를 가리고 변화하는 용도로서 남에게 나를 감추기 위함이니
그것에 대한 허무함 등을 표현한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것들을 잡아내면 훨씬 좋은 관람이 될 수 있었겠는데
사전 지식이 없이 보는것은 역시 힘들다. 장이 바뀔때마다 한줄정도씩 자막을 넣어주면 안되는 거였을까?

마지막은 너머(Beyond) 인데 가장 난해하고 가장 전위적이었던거 같다.
제목부터가 저 너머에 무엇이 있다는 것인지 수많은 복선들을 내포하는 제목이라서
희망도 있을수 있지만 절망또한 전혀 어색하지 않은 우주같은 제목이다보니
표현또한 이해하기 무척 어려웠다. 이 작품이 오히려 페스티벌 같이 보였는데 훨씬 다채로운 넓은 설정때문에
무엇을 해도 크게 어긋남이 없기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어두운면부터 시작해서 쾌락의 정점까지 올려놔도 되서
곱씹어 생각하면 그 범주내에 있었던 훌륭한 작품같은 생각이 든다.
물론 이것은 내 멋대로 생각한 것일뿐 정소연 안무가의 의도와는 많이 벗어났을것으로 본다.
그리고 기분탓인데 여성으로서의 상징성도 많이 표현된거 같기는 한데 꼭집어 말하기는 어렵고
느낌적 느낌이라고 할지 아무튼 생물학적인 여자로의 묘사가 좀 들어간듯해서
보면서 약간의 벽이랄까? 내가 남자라서 느끼는 어색함이랄까? 뭔가 아무튼 이질적인 기분이 좀 들긴 했다.

이렇게 총 세편이 100분동안 공연되는데 암전 상태가 좀 길어서 긴장감이 깨지는것은 좀 아쉽기도 하고(인터미션은 없음)
각각의 연계성이 없다보니 생각의 틀 혹은 준비상태 역시 리셋되어야 하기때문에
공연이 시작되도 다시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그다지 좋은 구성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이 공연을 한국무용이라 하는건지는 모르겠다.
그냥 현대무용이라 하면 안되는건가? 한국 정서가 들어가 있어서 그런것일수 있지만 그것을 골라내는게 여간 힘든게 아니다.
적어도 내가 춤을 엄청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이상 연결점을 자연스럽게 느낀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 현대무용공연도 내게는 난해함의 연속인 일종의 실패담이지만 뭐 계속 보면 무엇인가 팍! 오는 기분이 들겠지.
안오면 말고.

출연 : 국립무용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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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5. 9. 27.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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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어 두주째 목요일에 회사에서 두시간 거리에 있는 국립국악원을 찾았다.
이곳이 이렇게 멀었다는것을 20여년동안 몰랐으니(20여년동은 근처에 살았음)
올적마다 다음엔 평일엔 오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하지만 막상 공연을 보면 다음엔 뭐가 하나
찾게되니 이 뫼비우스 띠같은 윤회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런지.

예악당에 이런 좌석이 있는지 몰랐다.
나와 내 뒷자리 높이 차가 급격히 커서 뒷 사람이 발을 꼬고 있으면 그 발이 내 머리 옆에 온다는것이다.
왜 이렇게 개그지같이 설계한거지? 병신같이 설계한 새끼는 어디선가 잘먹고 잘 살고 있을텐데
이렇게 구분되어있는 구간이 1층에만 몇줄이나 된다. 예약당에선 이딴거 신경 안쓰겠지.. 개놈들

좌석 예매할땐 중간 자리를 잘 선택하지 않으면 뒷사람의 발이 내 얼굴 옆에 있을수 있다.
다시 생각해도 개같은 구조다. 최소한 칸 막이라도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

이번엔 굿들만 4가지가 엮여 있다.
전통의 재발견에서 전통이란게 굿만 있는것을 분명 아닐진데
예전 '꽃신 신고 훨훨'같이 망자를 기리는 공연이라면 충분이 이해되지만
물론 굿이란게 망자만을 위한 문화도 아니고 잘되길 기원하는 당시 백성들의 애환이 담겨있는것이긴 한데
그럼에도 제목과는 사뭇 다른 기분이 든다. (홈페이지에 설명은 되어 있었음. 내가 안봤을뿐임)

난 아직도 국악 관현악단의 존재를 느낄만한 공연을 본적은 없다.
오늘 역시 '그다지'라는 기분이었다. 이유는 아무래도 네개의 굿이 나오는데
한국의 굿 문화에서 등장하는 악기라고 해봐야 태평소, 꽹과리, 북, 징 정도 아닌가?
그런데 관현악단이라니.. 완전하게 각색된것도 아니고 그냥 예전에 있던 그것에 관현악을 덧붙여놨다?
이것을 국악오케로 편곡했다곤 하는데 국내악기 특색에 맞는 편집이었나?라는 것은 나같은 초짜 입장에선 그다지란 말밖엔
달리 떠오르는 생각이 없다.

일단 겹칠때 소란스럽고 창자가 굿을 하는데 국악현악단이 합치기 시작하면 창자의 말이 전혀 안들린다.
이게 어느정도냐면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공연을 하면 술취한 노인이 나와서 흐느적거리는거 같은
전혀 안섞인 이상 두 부류가 따로 존재하는거 같다.

서양에서 악기 협주곡은 솔로일땐 철저하게 그사람을 돋보이게 관현악은 바닥에 스스로 깔릴뿐이다.
그리고 합주일땐 구성으로 흡수되어 전체에 음악의 흐트러짐이 없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번 공연들은
오케와 섞이기만 하면 다 흐트러진다. 오케의 멜로디가 올라오는것도 아니고 창자의 구슬푼 노랫가락(굿)이 올라오는것도 아니다.
결국 산만하기만 한 소음과 같은 경우도 적지 않다. 왜 일까? 우리도 궁중음악으로 분명히 합주란것을 해왔고 편성도 대규모로
전체적으로 조화도 이루었는데.. 아직은 노랫가락과 합치는것이 어색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판소리 다섯바탕이라고 해봐야 북 말곤 없지 않은가. 민요에 들어가는 악기라고 해봐야 장구, 쾡과리, 징, 태평소, 피리 같은것뿐 아닌가

현악기에 포함된것은 시조같은 묘한 음율의 세계였고 그마저도 지금 그 음율을 이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이런와중에 대편성으로 콘체르토를 하겠다니.. 하지만 계속 시도되야 한다.
서양 음악중 지금껏 남아있는 이유도 지금의 열배, 백배 이상이 나왔기때문에 그중에 옥이 살아남은것 아니겠는가.
그 중에 사라남는것들. 그것들이 판소리 다섯바탕이고 민요고 그러겠지.
한백년 지나면 이중에 유명한것들이 남아서 세기의 명곡 반열에 오르지 않겠는가.

그래도 명색이 전문가들이니 조금은 조화, 벨런스 화음에 신경써주길 기대해본다.

예악단의 개같이 단차가 심한 의자 배열을 좀 바꿔라. 어떤 놈이 머리통 옆에 뒷사람 발을 보고 싶겠냐. 개놈들

출연 :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유지숙, 김동언, 이태백, 정영만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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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5. 9. 20.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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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선보이는 구성이라고 하는데
공연은 네가지(적념,여창가곡,남도시나위,승무)로 구성되어있어서 여느 국악 공연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독특한점이라 하면 한공연이 끝나면 그 중간에 명상가(이정은)라는 분께서 나와
관객과 함께 한 5~10분정도 명상을 알려주고 함께 명상을 한다.
그러다보니 전체 공연의 한 30분정도는 명상을 했던 특이한 공연인데
공연과 잘 붙는가는 좀.. 그리고 공연장에 공조기 소리때문인지 고요함이 없고 기침하는 사람도 있고
무대뒤에서 대화하는 소리가 다 들리는 통에 명상을 하고 공연에 집중할수 있는 기획은 좋았지만
진행에서 좀 미흡하지 않았나싶다.

그리고 3일간 공연하는데 가만히 보니 3일간의 공연이 모두 다르다.
3일모두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같은 공연을 내년에 또 할것도 아닐테고
이런식으로 하게되면 하루에 네가지씩 총 12가지 공연중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을 하게되는데
문제는 과연 이 12가지 공연을 모두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레퍼토리가 많아서 어쩔수 없더라도 기획을 좀 다양하게 하고 기획 한개당 며칠간의 공연은
가급적 같은 공연을 하는게 어떨까 싶다. 이렇게 3일동안 모두 다른 공연을 하면 이중 한가지만 볼수없는 나같은경우
똥싸고 닦지 않은것 마냥 찝찝한 기분이 든다.
공연을 봤는데 3분의1만 본거 같은 그런 개운함이 없는 느낌

그리고 명상시간을 제외하면 공연이 매우 짧다. 평일 공연이니 너무 길어도 집에가기 불편하긴 한데
국립국악원(예술의 전당)이 외진곳에 있다보니 회사에서 끝나고 재시간에 도착하려면 고생좀 하는데
너무 짧으면 아무래도 섭섭함이 커지는건 어쩔수 없는거 같다.

평일에 이런 품격있는 공연 한편 기분좋게 보고나와 늦은 시간 집에 들어와서
잠을 청할때 그 안정감, 만족감, 충만감, 뿌듯함 등 수많은 기분들이 몰려들어서 힘들더라도 보고 싶은 공연은 안볼수 없다.
가급적 평일은 이런 국악,클래식과 같이 좀 시간이 지나 농익을대로 농익어 웬만하면 감동받는 장르가 아무래도 좋지.

이번 기획은 좀 엉성했을지 몰라도 공연예술을 접하기 전에 몸과 마음을 차분히 하면 한결 집중이 잘 되서
중간 중간 명상전문가 나와 명상하는것도 괜찮은 생각같다. 너무 형식화하진 말고 가볍게 다음 공연에 집중할수 있을정도로만
그리고 시간은 최대한 짧게, 주된 공연의 시간이 너무 짧아지면 주객이 전도된 느낌을 받을수도 있으니 살짝 맛만 보는정도? 심호흡정도?

이번 공연에서도 느낀거지만 난 승무를 참 좋아하는거 같다. 그 속에 숨긴 의미는 공부해본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바라춤도 그렇고 오늘은 남성이 나왔는데 기개가 있어보이기도 하고 확실히 남성은 여성에 비하여
힘이 좀더 있는 느낌이지만 남녀 크게 다름은 없을거 같다.
승무를 보고 있으면 종교적 색채보다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표현하는거 같기도한,
신비한 세계를 간접적으로 엿보는 기분도 들고 품격있게 절제해놓은 느낌이라 감동마저 절제되는 느낌이다.
인도나 중국에도 이런 승무가 있는지 찾아보면 중국은 무술로 발전했다는데
쿵푸를 보면 격투보단 어떤 선을 유지하는 일종의 예술 같긴 하다.

평일에 보는 공연은 신사동 살때가 교통이 좋아서 좋았는데.. 밤에 밥 먹을때도 많고.
군자동은 10시정도 되면 술집 말고 밥집은 빨리 닫는거 같은데 이게 정상이지만 그래도 출출하면 좀 아쉬움

그리고 커튼콜때 모두 나와 사진 한방정도는 찍게 해주자.. 이런것도 기념인데 ^_^

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5. 5. 25.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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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세실극장은 지난번 단심을 봤던 정동극장의 첨단 시설과는 거리가 먼
좀 낡은 극장 그대로처럼 보이는 정감있는 곳이지만 그래도 웬만한 극장보단 좋은 곳인데
집회시위때문일까? 토요일엔 공연을 안해서 토요일에 보고 일요일은 집에서 쉬는것을 선호하지만
그게 잘 안되는 약간은 섭섭한 곳이 아닐수 없다.

'어느 볕 좋은 날'이란 제목은 서정적인것 처럼 보이지만 어떻게 보면 슬픔이 엿보인다고 해야 할지..
대충 그러한듯한 느낌으로 솔직히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창작ing 시리즈는 일종의 창작극 패스티벌 같은 것으로 보면 될듯 한데
좀 내용이 빈약한것도 있고 특이한것도 있고 때론 아류작같은것도 있다.
이번은 음악극인데 스토리 전개상 장르를 무어라 말하긴 좀 어렵다. 인물 다큐정도로 보기에도

흠영일기를 아는 사람이 있나? 난 이번에 완전 처음 들었다. 유만주라는 한 인물이 쓴 13년간의 일기내용이라는데
문학적으로 뛰어난 소질과 거의 매일 쓴 일기덕분에 당시의 많은 내용들을 유추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로 평가한다고 한다.
이순신장군의 난중일기 처럼 사료로서 훌륭한 작품인듯 한데 도데체 누구일가?

아무튼 이렇게 들어본적 없는 인물의 일기를 배경으로 다룬 연극인데 일기속 내용을 토대로 4명의 배우와 3명의 연주자가
무대를 이끌어간다. 4명의 배우중 한명은 창을 하는거 같고 나머지 세명은 성악같은(서양 뮤지컬 노래 풍) 벨칸토로 노래를 한다.
난 개인적으로 서양 뮤지컬 장르속 노래풍을 좋아하진 않는다. 옛날에 마이크, 스피커 없던 시절 발성이 뛰어나야 됬지만
요즘은 소근거려도 스피커가 빵빵하게 울려주는데 꼭 그렇게 배속에서부터 끌어올린듯한 발성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그 소리가 내 귀엔 그다지 좋게 들리는 편도 아니다. 물론 이건 나의 순수한 개인적인 편견일뿐이다.

4명이 모두 일기속 등장인물들을 번갈아가며 서로 섞이고 섰이면서 진행되는데
문제는 도데체 이 인물이 누군지를 모르니 저 네명이서 열의와 성심을 다해 표현하지만 도무지 와닿질 않는다.
이 사람의 일기가 사료로서 가치가 있더라도 이건 학문적인 영역이고
지금 이들이 연기하는 것이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면 어떤 연결점이 있어야 하는데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 양반으로 과거시험에 번번히 낙방하는 무기력한 삶, 무능력 그리고 죽음..
젊은 나이에 죽기는 하는데 왜 죽는지도 극상으론 알수 없었다. 집에 와서 이 사람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고나서야
첫째가 죽고 일기를 안쓴지 1년 후 병으로 죽었다는 정도를 알게 됬을뿐이다.

왜 자신의 일기를 태워달라고 했는지 모르겠다만 죽음을 미리 감지했던게 아니었을까.
아무튼 이렇듯 처음보는 어떤 한 인물을 저들은 열심히 연기한다.

유만주라는 사람을 난생 처음 들은것도 문제지만 이보다 큰 문제는 내가 유만주라는 인물을 모르더라도
이 극만 보았을때 이 인물을 이해 할수 있도록 좀 도움을 주면 좋겠는데
그것이 상당히 빈약하다. 그리고 음악극인만큼 감미롭고 멋진 노래가 많이 나오지만
가사 전달이 거의 잘 안된다는것도 큰문제다. 이 노랫가락들이 유만주라는 인물의 심리상태를 전달하려는 도구였을텐데
거의 전해지지 않아서 더욱더 답답하다.
이것은 배우들의 실력이 떨어져서라기보단 세실극장의 음향이 좀 그런게 아닐까싶다.
음향 밸런스가 영 좋지 않아서 배우들의 가사가 귀에 꼿히질 못하고 때론 소음으로 변질되기도 했다.

내가 앞에서 3번째쯤 앉았는데 너무 가까워서였을까? 아니면 그냥 이곳은 이런곳일까?

생각해보면 특정 배역을 맡은것이 아닌 내용 흐름에 맞게 배역들이 계속 바뀌며
진행되는 연극을 언젠가 본거 같은데 기억나질 않는다. 어렴풋한 기억으론 그때도 뭐 그냥저냥 그랬던거 같은데
뭐 갑자기 생각났다.

인물에 대한 배경 전달이 허전하고, 심리묘사는 더욱어 알아듣기 어려워서
일반적인 연기와 대사를 할때 외엔 주제를 알 수 없는 노래 공연을 본거 같아서 치즈에 난 구멍같은 느낌이 강한 연극이었다.
다들 연기와 노래 모두 훌륭하던데 무엇이 문제였을까? 내가 유만주를 몰라서가 가장 큰 원인이었을까?

어떤면에선 묘한 느낌이 들었다.
연극속 인물 따위는 다 필요없으니 버리고 볕 좋은 날처럼 그냥 기분 좋게 살아가라는 정도?같은
허망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왜였을까?

오늘 볕이 너무 좋아서 계속 걷기는 했지만 이렇게 볕이 좋으면 오히려 외로워지지 않나?

출연 : 김승용, 박은미, 송광일, 김율희
연주 : 고수영, 윤두호, 김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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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
연극.공연2025. 5. 17.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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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면 세실극장이나 정동극장이나 비슷한것 같다. 약간은 낡은듯 하고 의자도 편한듯 편하지 않다.
그런데 이런 낡은 극장에 첨단 무대시설이 동원되었다.
바닥까지 LED Wall를 깔아서 전면,좌,우,바닥까지 영상이 나온다.
보통은 프로젝터를 이용해서 벽면에 투사하는데 초대형 tv를 놓은것 마냥 선명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다만 바닥은 아무래도 무용수들이 이리 저리 움질때 소음이 좀 있는데 아무래도 LED 모듈이 울퉁불퉁해서겠지
그리고 일부에선 타일만한 LED모듈이 1~2mm 빠져나왔던데 이런곳에 자칫 잘못하면 무용수가 다칠수도 있으니
안전사고에 유의했으면 하는 불안함이 이었다. (LED모듈이 뜨거워서 좀 더웠을텐데..)

이런 무대장치때문에 전체적으로 돋보이는 영상과 뛰어난 무용을 보게된것은 기쁘지만
내가 춤이란 세계를 아는것도 아니고 저들의 춤사위가 어떤 감정을 전달하려는지 이해하기도 쉽지는 않았다.
대부분은 추상적이지 않고 직설적인 표현들이라 대사를 듣듯 지나칠순 있었지만
심청이와 그의 다른 면, 이 둘간의 갈등은 인간이라면 누구가 겪는 일일수도 있지만 순수히 행동으로만 표현되기때문에
이해한다는게 맞는것인지 모르겠다. 표현하기 위한 소재 자체가 내면이라서 말로 이야기해도 어려운데
익숙하지 않은 무용이란 도구는 나같이 몸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에겐 높은 벽으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눈시울 뜨거워질때가 많았다. '심청가' 자체가 당시 삶의 고단함을 표현하기때문이기도 하고
판소리는 좀 해학스러운 부분도 있어서 가볍게 넘기는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추월만정같은 우울함의 연속이라
이 공연 또한 다를리 없으니 포스터(채시라 포스터 말고) 그 느낌 그대로였다.

심청가의 한 부분정도만 극적으로 부각해서 공연하는것인줄 알았는데
거의 전체 내용을 75분동안 공연하니 빠지는 내용도 많고 각색된부분(채시라부분)도 좀 특이했지만
용궁에 갔을때 옥진부인을 보는게 아니라 이상한 용궁여왕으로 나오는데 이게 뭔지..
이런거 보면 디즈니가 백인들 동화 주인공을 흑인으로 만드는거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차라리 용왕은 그냥 용왕으로 두고 옥진부인 역을 만들어 심청이와 상봉하는 슬프면서도 기쁜 뭐 그런 부분이었으면 좋았을것을
채시라가 수십년가 배우생활을 했다손 치더라도 춤은 다른 분야이고 오랜시간 힘든 훈련으로 완성되는 것이니
쉽지 않았겠지만 기왕에 도전을 할거라면 부채들고 왔다 갔다하지말고
제대로된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섞였더라면 어땠을지 좀 아쉽다. 포스터나 인터뷰같은건 마지막 공연 후에나 하고..
(이정도 공연이라면 굳이 채시라같은 인지도 높은 배우의 티켓파워쯤은 없어도 되지 않나?)

그런데 무용수들을 보면 뭔가 사람으로서 독특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 말 한마디 안하면서도 몸의 움직일수 있는 모든 기관을
이용하여 독특하면서 납득가능한 움직임을 만드는데 발레도 그렇고 한국무용도 이런점에선 보면 볼수록 빨려드는 매력이 있다.

한국전통무용은 타국과 무엇이 다를까? 생각해보면 국립극장에서 하는 '묵향'같은것을 보면 미치도록 절제된
움직임의 미학을 확실히 느낄수 있으나. 이 단심이란 공연은 뭐랄까? 옛한국무용이라는 느낌보단 서양 발레같은것을
한국식으로 약간 손본느낌이랄까?
아무래도 표현자체가 대범하고 직설적인 부분들이 많았기때문일 수 있다.
그래서 전통이란 단어를 붙일수 있을까? 보면서 의문점이 들었다. 물론 이 '단심' 공연포스터에는 전통이란 단어가 붙어있는것은 아니다.
다만 줄거리가 '심청가'다보니 나의 선입견이 발동한것이겠지

'심청가'가 해피엔딩이니 이 공연도 그렇게 끝나는데 하얀심청이야 '심청가'의 심청이 그대로지만
검은 심청이도 심봉사에게 정중한 인사를 하며 퇴장하는데 인간의 다중적 면중에 하나겠으나
세상엔 악인이 없다는 소린지 심청이는 천성이 아름답기때문에 이면조차가 선하다는 것인지

무용을 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건 심청가를 머리속에 넣어놨기때문일까
저들의 마음이 전해져서였을까.
무대장치, 음악, 무용 모두 뛰어난 훌륭한 작품이었다.

한번에 여러번 보기엔 부담되니 내년에 다시 보는것으로 해본다.

무용수: 박정은(하얀심청이) 이수빈(검은심청이) 외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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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