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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공연은 어찌됬던 부담이 된다. 7시30분 공연이라도 회사 퇴근 후에 볼 수 있는 시간이지만이 끝나고 집에 오면 9~10시 사이 이때 저녁밥을 먹으면 소화되기도 전에 누워야 된다. 물론 이것은 내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위한 행동이라 내 탓일 수 있지만.
이날은 다행히 한 몇십분 일찍 끝날수 있어서 조금 여유있게 들어선 풍류사랑방 이곳은 신을 신지 않고 맨발로 들어가는 특이한 공연장이다. 하지만 걷는 바닥의 느낌은 그다지 좋지 않다. 딱딱하다고 해야 하나 마루바닥인데 왜 느낌이 안좋은지 모르지만, 대충 느낌은 별로라는게 지워지지 않는다.
양반다리를 하고 앉을수 있는 푹신한 방석과 등받이. 그런데 고정이 되지 않아서 양반다리하다가 옆자리와 붙을수 있기때문에 이것도 그렇게 까지 훌륭하단 느낌은 안든다.
꽤나 고풍스럽게 꾸미려 애쓴 공연장이긴 한데 이런 공연이 어울리는 곳인가?
적로? 이슬방울? 피리적(笛)자인줄 알았지만 물방울 적
창극이라 하기에도 그렇고 이미 몇년전에 봤던 극이란걸 시작한지 조금 지나니 익숙한 진행으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보지 않았더라도 그다지 내용 전개가 특별하진 않아서 말 그대로 뻔할뻔자다. 잊기 힘든 어떠한 인물과 얽혀있는 기맥힌(?) 사연정도? 두번째 봐서 그런건 아닌데 전체적으로 엄청 지리하게 내용을 끌어 간다. (60분짜리 공연을 80분짜리로 억지로 늘려놓은 기분이 들정도)
신파 물씬 풍기는 억지 눈물샘 자극도 많고
무엇보다도 노래가 너무 어색하다. 뭔가 현대 음악인듯 하기도 하고 오랜시간 내려온 거 같기도 하고 두마리 토끼를 잡으려다가 아무것도 못잡은 꼴같다. 그래서 노래부르는 장면만 오면 졸려지고 가슴아린 가사들이 이상한 가락에 모두 파묻혀버린다.
민요나 판소리도 엄청 구슬픈 대목들이 많은데 그런식으로 만들던가. 아예 현대 노래로 만들어 소리와 현대 음악을 조화롭게 섞던가. 연주자중엔 피아노 연주자도 있고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어색하지 않고 매끄럽게 섞여있는 멋진 연주 음악들인데 왜 노래는 그렇게 되질 못한건지. 심지어 따라부를수 있는 음율도 아닌. 내가 이쪽에 식견이 없어서 그런지 내 느낌으론 그지 깽깽이같은 노래들이었다.
젓대소리로 유명했다던 박종기 선생에 대한 일대기도 아니고 모두 허구인 내용인데 마지막에 두 예인의 돌아가신 내용을 적어놓으니 실화를 그려놓은것 마냥 착각하게 만든다. (실화도 아니면서 실제 있었던 일인냥 꾸며놓는건 보고 난 후 좀 짜증나던데)
전체적인 흐름만 놓고 보면 뻔하디 뻔하기때문에 영화 서편제가 훨씬 재미있으나 너무 멋진 연주로 이 연극을 볼 그 가치는 충분해 보인다. 발때문에 연주자들이 공연내내 안보인데 그렇게 할필요가 있었을까? 오페라처럼 연주는 앞쪽이나 옆쪽에 그대로 노출되도 좋았을텐데. 젓대 연주 명인 두사람의 이야기지만 이 공연의 백미는 대금보다는 그 외의 연주들이 특히 더 멋진데, 정말 신명난다는 말이 딱 맞다는 생각이다.
뭔가 이도저도 아닌 이상한 노래들 하지만 발 뒤에서 미친 연주를 보여주는 멋진 공연
불필요한 신파를 넣어서 눈물샘 자극하지 말고 담백하면서 덤덤히, 상여소리처럼 품격있게 시조처럼 기품이 흘러넘치는 그런 한국전통의 신선한 작품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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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국악 정보를 접할수 있는 방법은 길을 걷다가 우연히 보게 되는 포스터 또는 몇몇의 공공기관이 운영 문화 사이트에서 오는 메일 그리고 페북같은 SNS에서 친구로 맽어놓은 국악인들이 올리는 정보에서 공연정보를 얻는데 이번과 같이 평일에 공연하게 되면 회사원인 입장에서 관람하기 쉽지 않지만 잠시 백수가 되어 좋은 기회다 싶어 국립국악원에서 연주회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공연이 있어서 바로 예매했지만 평일 오후 7시30분에 관람한다는건 집에 오면 9시가 넘기때문에 아무리 백수라도 부담이 된다.
부담 되더라도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올해는 연주회를 좀 다니고자 하는 생각이 봄 언제쯤인가 문득 생각이 들어서였다.
단독 콘서트는 아니고 두명이 나와서 한시간동안 연주하는것이라 국악을 잘 모르는 나라도 크게 걱정이 되진 않았다.
예술의 전당 미술관은 적지않게 다녔지만 바로옆에 붙어있는 국립국악원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리고 독특하게도 신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풍류사랑방.. 크~~ 옛 선비들이 모여 명인의 연주회를 들으며 풍류를 즐기던 그런 모양은 아니지만 ^_^ 조금 상상은 할수 있다. 어떤곳인가 인터넷을 찾아보면 다기와 차도 주던데 이번은 그런게 없었다. 그리고 양반다리를 할수도 있지만 좌석 거리가 좀 좁아서 양반다리하는게 조금 불편했지만 가능 하다는게 기분좋다. 첫날은 비가 와서 바닥을 온돌처럼 따뜻하게 해놨던데 공연장에서 엉덩이가 따뜻해본적 있던가 (오늘은 덜 춥다고 히터를 끈거 같음 ^_^;;)
폭신한 좌식의자 하지만 좌석간 거리가 좁아서 좌식으론 못 앉는 이상한 배치(널널하면 그만큼 관람인원이 줄어드니 이해함)
첫날도 긴장되고 둘째날인 오늘도 긴장된다. 왜냐면 음악의 선율을 이해하기 어렵기때문이다. 국악 음반이 좀 있는데 주로 판소리, 민요같은것이고 연주는 가야금, 대금 산조들이 나머지지만 듣다보면 솔직히 무엇을 표현하는지 모르겠다. 무엇이 연상되거나 어떤 느낌이 난다거나 해야 할거 같은데 한국것임에도 모르겠다. 내게 와닿는 느낌은 약간의 변조가 버무려진 도돌이표같다고 해야 할지, 비발디 4계도 이보단 덜 반복적일듯 싶다.
아무튼 시작되는 첫무대는 피리 얘는 목관악기겠지만 흔히 서양악기의 목관악기 음색을 생각하면 제법 난감하다.
그냥 풀피리 같기도 한 대나무에 구멍 뚤어놓은듯한 나무 막대기 '서'라고 하는 리드와 나무 한개가 끝인데 소리도 맑고 청량하고 투명하다거나 부드럽다와는 좀 거리가 있다. 말 그대로 투박한 소리가 나온다. 고급진 소리보단 군살 잔뜩 붙어있는 농부의 손같이 거칠거칠하다.
끊임없이 무엇인가 반복되는 멜로디가 있는데 이것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모르겠다. 기승전결이 있는 것인지도 솔직히 잘은 모르겠다. 다만 저 투박해 보이는 악기위의 손가락의 움직과 그에 맞춰 퍼지는 선은 때론 곱고 때론 강렬하고 이상하다.
아기처럼 섬세하기도 하고 쟁기질을 하듯 거칠다. 그렇지만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판소리는 문자화된 구체적인 서사가 있기때문에 읽을 줄 알고 뜻만 알면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사양 고전음악류들 역시 기승전결이나 주제가 있기때문에 감정이 선율의 고조에 맞춰 긴장이완을 충분히 할수 있어서 시간의 아름다움을 만끽할수 있지만 한국의 피리연주는 모르겠다 왜 이렇게 반복이 많은걸까. 이것이 주제는 아닐건데, 이것이 주제라면 그것은 또 무엇인가.
국악의 특징인지 모르겠지만 연주자의 무표정 또한 한몫 크게 한다. 한국 사계를 말하는걸까, 선비의 올곧음일까, 연인의 사랑일까 아무튼 무엇인지 모르지만 길지 않은 시간이라 짧게 즐겨봤지만 피리 연주로 한시간정도 했다면 나는 틀림없이 졸았을 것이다. 대금산조는 음이 표현하는 것들이 많아서 좋던데 피리는 그렇게까진 만들기 어려운지 솔로 연주에 특화된 악기가 아닌것인지 아무튼 미묘한 변화 말곤 전체적으론 단조로운 반복의 연속이었다.
두번째는 내가 좋아하고 배우고 싶어하는 거문고연주다. 거문고를 좋아하는 것은 지독히 간결하고 절제된 선율때문인데 이번 연주자(박영승)의 연주는 내가 생각했던 그런 연주는 아니었다. 생각한 거문고 연주보단 훨씬 경쾌하다고하면 맞는 표현인지 그리고 서양 악기 연주자 처럼 온몸으로 운율을 타는 모습이 사뭇 신기하기도 하고 멋지기도 했다.
악기 연주자니 손의 움직임을 아무래도 보게 되는데 흐름이 끊김없이 물 흐르듯 유연하며 강렬하다. 글로 표현하긴 아직 어렵지만 거문고 특유의 독특한 여운은 비록 좀 빠른 연주라 덜하더라도 사이 사이 사그러드는 물결은 순간의 고요함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나의 국악 연주회 첫경험을 모르쇠로 일관하며 끝나버렸다 ^_^;;;;
둘째날인 오늘 세번째는 다시 피리 피리는 참 어렵다. 아니 단조롭다. 미세한 변화를 알아야내야 하는건지 미세한 음 컨트롤에 환호해야 하는건지 이 음악은 누구에게 무엇을 보이기 위해 작곡된것인지 두번째 들어선 도무지 모르겠다. 연주자(박치완)께는 미안하지만 두번째 경험따위로는 아직 안되나보다.
연주시간이 짧아서 지루하진 않으나 두번째 경험도 이렇게 지나쳐버리니 아쉽다. 관객입장에서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걸까. 우리 음악을 듣는데 공부를 해야 할정도면 초중등교육이 심각하게 왜곡되어졌다는 의미일수도 있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야금이다. 가야금은 기본적으로 너무 익숙하고 민요, 창등 병창에도 많이 나와서 어색함이 전혀 없다. 음 표현의 다채로움으로 귀가 무척 즐겁지만 국악기중엔 너무 핑크핑크한 느낌이라 배워보고 싶진 않았던 악기다.
처음은 가야금 산조인데 여느 가야금 산조와 크게 다름은 없어보인다. 다만 이렇게 가야금 산조를 눈앞에서 본건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인데, 짧막하겐 보적 있고 각종 영상 매체에서도 많이 봤는데 느낌이 너무 다르다.
서로 각기 다른 놀림의 왼손과 오른손, 그 것들을 묵묵히 지켜보는 지긋이 바라보는 두 눈과 근엄한 몸짓
분명히 한사람의 연주를 보고 있는데 소편성 교향곡을 눈으로 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물론 눈만 그러하다. 소리는 잘 녹음된 수많은 연주보단 훨씬 음장이 좋지만 그렇다고 엄청난 차이가 나는것은 아니다. 그래서 가야금 연주가 비주얼적으로 이렇게 강렬한지 오늘 처음 알았다.
연주중에도 틈틈히 얼굴에 뭐가 묻었는지 닦아내는데 결코 급하게 닦지 않는다. 매우 리드미컬하다고 해야 할지 그러면서 끊김없는 손동작으로 얼굴을 닦아내고 다시 현으로 손을 올려놓는다. (국악기 연주자들은 이런 손동작도 따로 교육을 받는건가? 의문이 들정도로 부드러운 선을 유지한다.)
역시 종특이라 해야 할지 단아함 그 자체의 표정으로 변화없는 매력을 뿜어낸다.
양손은 저리도 바삐 움직이는데 저런 고운 자태를 만들수 있는것은 저 사람의 수많은 피땀의 결과겠지만
가야금연주를 배워보고 싶게 하는 짧은 시간의 황홀함이었다.
한국악기중 가야금, 거문고는 한사람의 각 기관이 서로 침범하지 않으면서 조화로움을 만들어내는것부터 시작일까
미치도록 절제된 움직임속의 실내악.
마지막으로 피리와 가야금이 함께 연주하는데 특별한 고저가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미묘한 변화를 지속한다. 차한잔 마시며 친구와 도란도란 담소나누기 좋은, 절의 풍경소리 같은 연주다. 가야금은 각 음절의 시작과 끝을 담당하고 피리는 살을 붙이는 식이라고 해야 하나 이런것을 무엇이라 하는지 모르겠지만 시조의 운율 같아보이기도 하다. 무엇이 되었던 이들을 떼어놓으면 한쪽이 너무 외로울거 같은 조합으로 끈끈히 이어가다가 조용히 막을 내린다. 연인의 삶일까, 벗의 관계일까, 외로운 군자의 삶은 아닌거 같다.
어쩜 이리도 근사할까..
그러나 아직도 잘 모르겠다. 좀더 많이 봐봐야 할거 같은데 백수생활도 끝나가고 평일에 어떻게 봐야 할지도 걱정이다. 올해는 되도록 연주를 많이 보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