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늙지 않는 마음-

마음이 늙지 않는다는게 무엇일까? 철학적인듯 싶으면서도 별 얘기 아닌듯 하기도 하고
연극에서 사람의 스트레스를 극단적으로 낮춰서 장수하게 하는 '저속 노화 센터'라는 곳이 있는데
한 남녀가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 본인들은 돈이 없으니 한 사람 10년동안 들어가 있으면 다른 사람은 돈을 벌고
10년 후엔 교대하는 뭐 그런 시작이다. (왜 같이 10년간 벌어서 10년간 들어갈 생각을 안하는 것일까?)
신기한것은 10년이란 시간동안 한쪽은 많이 늙고 센터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거의 안늙는다는것
그래서 10년 이상의 외모 차이가 발생한다. 그리고 한쪽은 일을 해야 하기때문에 대인과 사회에 대한 모든
제약과 규약을 따라야 하기때문에 정신적으로 성숙하는 반면 센터에서 온실 속 화초처럼 생활하는 사람은
시간이 멈춘듯 매일 매일 반복하는 일상을 살아간다. 오직 오래 살기 위한 생활만을 한다. (이건 사람의 생활이라 할 수 있나?)
이 연극의 전개는 이곳에서 이미 깨진거 같다.
인간이란 존재가 태어나서부터 쳇바퀴 돌 듯 살아왔던것도 아니고 이미 젊은 시절은 일반 세상에서 살다가
갑자기 안락한 센터에서 수명연장만을 위한 무료한 삶을 살아갈수 있다고? 이 부분에서 이미 오류로 시작한다.
특히나 다른 사람들과의 커뮤니티 조차 없다. 왜냐하면 사람간의 대화는 스트레스가 발생할수 있기때문이라나
그러면 수명이 줄어드니까. (이런 기술이면 차라리 냉동 수면이 나은거 아닌가? 어차피 살아간다고 말할수 없는 상황인데)
SF라고 하기엔 당위성같은게 좀, 자연스럽지도 않다.
설사 센터 생활에 익숙해졌다고 한다면 과연 그 곳을 나올 수 있을까?
강과 현의 관계는 어떤 사이길래 10년 동안 하루에 일을 세가지나 해줄수 있는거지?
사랑하는 사이를 이렇게 오래 지속할수 있다? 둘다 동일하게?
그리고 10년 후 과감히 센터에 나와 상대를 위해 10년간 미친듯 일을 할 수 있다?
사람에 따라 그럴수도 있겠지만 너무 예외적 사건이 아닌가?
보편적이면서 극적인 상황이 아니라 애초 시작부터 극단적인 상황으로 시작하니 도무지 납득도 안되고 공감도 안된다.
서로 사랑하니까로 모두 퉁치는 기분. 작가는 사랑이란 소재를 이용하면 인간에게서 신적인 포용력을 지니게 된다고 생각하는거 같다.
그것도 수십년이란 시간을. 이 저속 노화센터가 참 좋은게 늙어진 사람도 들어가면 다시 젊어지는지 젊은 분이 나온다.
전체적인 줄거리나 소재는 SF라 하기에도 좀 민망하고
(SF는 허구-과학소설-를 바탕으로 하기때문에 엄청 치밀하게 설득해나가지 않으면 똥되는건 시간문제)
연인간의 감정 변화를 표면적인 노화라는 소재를 이용한것이라 보면 마음 편한듯 싶다.
바쁘고 고달픈 현대인들. 이들의 연예전선도 그다지 순탄한것은 아닐것이다.
서로 바라보는 마음이 같더라도 엄밀히 보면 완전한 타인이며 독립된 생활이 존재하기때문에
한쪽이 잠시 다른곳을 볼 수도, 상황에 따라선 다시 반대 상황이 될수도,
때때로 완전히 갈라질수도 있지만 본심은 그것이 아니니 그 오해를 서로 풀어가기도 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같은곳을 바라봤다고 해도 서로의 지향점의 갭은 점점 넓어질수밖에
결국 한쪽은 변화없는 지금의 삶에서 안주하는 삶을 택하고
다른 한쪽은 늙어 죽더라도 변화무쌍한 세상을 택한다. 자신이 먹던 빵을 위해, 그때 사랑했던 그리고 지금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이 모든것들의 연속성엔 필연적으로 늙어버리지 않는 무엇인가가 필요하겠지.
인간의 지속적인 삶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던지기때문에 곱씹어 볼 대목들이 좀 있긴 한데.
확실하게 와닿는 맛이 좀 떨어져서 깊게 새겨지질 못하는 아쉬움이 생겨서 한번만 봐서는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단번에 알아듣기가 쉽지 않아서 두번이상은
봐야 하는 연극이 아닌가 싶긴 한데 여러번 볼 만큼의 흥미로운 전개였냐가 문제라면 문제겠지.
요즘은 왜 이렇게 여러번 보고 싶어지는 연극들이 많아지는지.
연극 보는 횟수를 좀 줄여야 하는데 도무지 줄일수가 없네 에휴
출연 : 경지은, 권지숙, 김하람, 남명렬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