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절창VI(심청가)-

절창이란게 명창같은 의미로 보면 되는거같다.
다만 문제는 내가 명창, 절창, 졸창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
내게 잘 부른다는 것은 귀에 가사가 명확하게 꼿히면서 각 인물의 감정이 제대로 전달되는 것인데
판소리는 기본이 전라도 사투리로 구성되어 있고 한자에 창법 특성도 있어서
무슨 말인지 몇번을 들어도 귀에 꼿히질 않는다. 그러려니 하기엔 안숙선명창이나 김소희명창의 판소리는
딕션이 대단히 좋아서 알아듣기 좋다. 그렇다면 과연 명창이란 기준은 무엇일까?
우리는 분명히 이부분에 대해서 고민해봐야 한다. 발음을 막 뒤틀어서 창하는게 과연 올바른것인가.
절창이 6번째인데 모두 달라서 1부터 보고자 해도 어디서도 볼 곳이 없다.
국악을 알리고자 한다면 일정기간이 지나명 유튜브같은곳에 공개하던가
아니면 정기적으로 나머지도 공연을 꾸준히 좀 해주던가. 난 절창을 이번에 처음 봤는데 6번째라니
물론 감독이나 출연자들이 다르기때문에 제목만 같을뿐 모두 다를것이란 생각은 들지만
6번째라면 나머지는? 내년엔 7번째가 되려나? 그러면 7번째를 처음 본 사람은 나머지를 평생 못 보는건가
꽁꽁 감추지말고 분명히 촬영했을테니 공개좀 하자. 있을때 활성화하는게 최고지 망한다음엔 다 소용없다.
나눠주는 프로그램(팜플랫수준)을 보면 몇 대목이 나오는데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지면서 끝난다.
이정도면 보통 완창 판소리에서 중간보다 조금 더 나아간 정도인데 여기서 끝난다고?
프로그램에는 심청가 판소리는 5시간 남짓 걸린다는 둥 적어놓고 절창은 이걸 100분정도로 줄여놨다라고
말하지만 함축한게 아니라 절반만 공연을 하는 것이다. 특이한것은 뺑덕이네가 나오고(심청이가 죽은 후 등장하는 인물)
방아타령(심봉사가 맹인잔치 가다가 방아를 찌어주는 대목)이 나온다. 화초타령도 나오지만 추월만정은 안나온다.
전체 내용은 심청이가 빠져 죽으면 끝나지만 그나마 좀 유명하거나 다같이 할 수 있는 대목은 땡겨왔다.
흐름엔 크게 관계 없고 개연성도 그다지 있어보이진 않는다.
해설도 함께 해주는데 늬앙스는 심봉사는 여러 여자들을 만나면서 마음편히 살아가는 문제적 인물로 표현한다.
심청이는 자기가 살 수 있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죽음을 택한것이 올바른 효인가도 말한다.
현대적 관점으로 보면 뭐 하나 그럴만함 상황으로 보이진 않는다. 내용 자체도 곰팡내 가득하지 않은가.
고전이란게 그렇지. 시대를 초월하는 문학을 솔직히 거의 보지 못했다.
(철학사상도 현대가 훨신 앞서 있는것은 과거를 바탕으로 발전시키는거니 당연한 현상)
그래서 고전을 접할땐 그 시대로 동화되거나 감동적인 몇 대목만 계속 접하는 정도로 마무리된다.
(판소리 전체 중 각종 매체에 등장해서 유명해지는 것은 1%나 되려나? 민요는 어떻고, 북한 민요는 사람이 더 모를거다.)
우리의 감각으로 해석하는것보다 우리시대에 맞게 각색하는게 훨씬 위대한 작업이라보는데
오늘 그 한 부분의 가능성을 보았다. 심청이가 인당수에 가는 도중 귀신들이 나타나는데 중국쪽 귀신들이다.
이게 상황상 맞아보이진 않지만 아무튼 그렇다. 그것을 이번엔 한국에서 발생한 사건의 인물로 바꾸는 시도를 했다.
난 이 부분에서 어찌나 슬프던지. 심청가가 기본적으로 슬프다곤 하지만 현대 감각에서 동감하는게 쉽지 않은데
한국에서 벌어진 현재 사건으로 각색하고 구슬프게 한대목 읊조릴때 가슴 한 구석이 미치도록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공연예술의 가장 큰 힘은 그 시대를 대변하는것일텐데 판소리들은 아무래도 조선시대 작품이라서 쉽지 않았는데
그 가능성을 오늘 처음 느껴보았다. 잠깐이었지만 순간적으로 예상치 못하게 파고드는 주체하기 어려운 뜨거움.
판소리가 고전이 아니라 현대예술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것을, 앞으로도 개사 작업을 끊임없이 시도해서
진정한 계파를 형성했으면 좋겠다. (경상도 사건으로 구성된 문파, 전라도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구성된 문파.. 등)
그리고 또 하나의 새로운 가능성을 봤는데 바로 추임세가 필요없는 구성이었다는 것
물론 수많은 사람들이 추임세를 넣었다. 하지만 내가 봤을때 추임세가 일반 판소리에 비해 현격히 줄어들었다.
그 곡에 집중을 해야하는 상황이 많았는데 이러다보니 공연에서 시선 외엔 그 무엇도 필요가 없었다.
공연이 감동적이기도 했지만 박수를 쳐야 하는 순간마져도 고요히 여운을 느끼고 싶었다.
우리 판소리 공연 예술의 열린무대가 아무래도 현대적 감각엔 좀 동떨어진 경향이 있는데
공연과 관객이 약간은 벽이 있다는것이 흠이지만 다른 장점도 있으니(추임세는 집중엔 좀 방해가 됨)
이러한 형태(닫힌무대)도 함께 발전되어 관객과 문화의 다양성을 함께 증대시킬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할수 있었다.
언제부턴가 긴 판소리를 관람함에있어 걱정하는게 점차 사라지고 있는것은
내용을 모두 알고 있기때문에 인물에 동화가 쉽게 되기때문일텐데
아직까지도 잘 안되는 것은 역시 알아듣기 힘든 창법과 한문들이 내게는 큰 장벽이다.
왜 이런 규정된 공연에서도 자막을 틀지 않는것일까? 몰랐는데 창자들은 볼 수 있도록 프론터를 뒤에 틀고 있었다.
대사가 길고 하니 까먹으면 안되서 그렇겠지만 훤한 모니터에 대사를 표기해야 하는건가?
무대 바닥에 모니터 스피커 있던데 그곳에 길게 대사를 표기하는 모니터를 달아도 되겠던데
관객을 대사를 봐서는 안되는 것일까?
국립극장은 관객에게 이런 부분에 대한 예의는 별로 없다.
오늘은 함축적이면서 유명한 대목들만 선별했기때문에 한문이 많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이해는 어려웠다. 특히나 완창 판소리는 대사집을 읽었다면 판소리가 진행 순서대로 나와서 흐름을 이해하는데는 지장이 없다.
그러나 이번 공연은 판소리 진행과도 다르기때문에 머리속에 있는 판소리 흐름과 다르니 더욱더 듣고 이해하는것에 문제가 많았다.
자막을 달아주기는걸 왜 그렇게 싫어하는걸까?
영어 모르는 한국사람도 분명히 어떤 외국 노래를 들으면 이해 못하더라도 감성적으로 충만해질순 있다.
하지만 노래의 실제 내용을 알면 훨씬 더 큰 감동을 받을수 있다.(반대가 될수도 있음)
판소리를 단순한 음율이 아닌 하나의 문학으로서 관객에게 대사 한마디 한마디를 납득시키겠다는 노력을 느껴봤으면.
추임세 넣는 사람들도 제법 있던데 자신들만의 잔치로 계속 머물게 하기 싫다면
나같은 문외한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때가 아닌가싶다.
절창 1~5는 어디서 볼 수 있으려나.
소리 : 최호성, 김우정
연주 : 최영훈, 전계열, 임이환, 오초롱, 한솔잎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